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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법사 1권(4화)
제3장 황금진인(2)


점소이 장삼은 그 손님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림의 초고수들만이 들어온다는 이 객잔에 저런 허름한 차림으로 유유히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도 그렇지만,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보라는 듯 도전적인 저 황금잔. 엄청난 무공의 고수이거나 갑부일 것이 분명하다. 잘하면 제대로 한 매상 올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장삼은 물을 들고 그들이 있는 자리로 달려갔다. 그는 친절하게 황금잔에 물을 따랐다. 하지만 손님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 잔은 물을 따르라고 있는 것이 아니오.”
“아, 아아! 소, 손님, 죄송합니다. 어서 새 잔을……!”
장삼은 금발 사내의 날카로운 눈빛에 흠칫 놀라며 후다닥 새 잔을 가져왔다. 틸러는 눈을 내리깔고 황금잔에 담긴 물을 새 잔에 옮겨 담았다. 그러곤 탁자 한쪽 구석으로 스윽 밀어 두었다.
“이 집에서 고기가 많이 들어가는 가장 비싼 음식이 뭔가?”
‘역시나!’
장삼은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이자들은 봉이다! 제대로 잡아야 한다.
“저희 집은 봉황십이로채(鳳凰十二쾆菜)와 궁보계정(宮保鷄丁)이 아주 맛이 좋습니다.”
모두 일인분에 닷 냥이나 하는 최고급 요리들이다. 하지만 사내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일인분씩 가져다주게. 아주 맛있게 만드는 것, 잊지 말게.”
“예이!”
장삼은 재빨리 계산서를 적고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무림의 고수들이라 하여 돈 씀씀이가 헤픈 것은 절대 아닌지라 이 집의 주 메뉴는 만두와 소면이었다. 이런 봉들은 들어오는 순간 확실한 맛으로 잡아 두어야 다음에도 또 이용한다는 것을 장삼은 잘 알고 있었다.
옆에서 연랑은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불가에서는 육식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했는데 어찌하여…….”
틸러는 그런 연랑을 보며 씩 웃었다. 연랑은 이제 저 웃음이 약간 무서워지기 시작했지만, 약사여래불의 행동이니만큼 큰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릇 세상의 모든 만물은 돌고 도는 법. 내 죽은 축생의 고기를 먹어 그 축생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우화등선할 수 있다면 어찌 불도의 법을 계속 따르겠느냐. 그리고… 세상에 나온 이상 내가 약사여래불이라는 것은 비밀로 하자꾸나. 이곳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잘 믿지 않을 테니. 다만 인간의 이름을 빌려 사람들을 구원하고 다니는 게 좋지 않겠느냐.”
엄청난 달변이다. 연랑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리고 말았다. 틸러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로 온 잔에 물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황금잔 안을 깨끗하게 닦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이내 임금님 수라상에나 올라갈 법한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대령되었다. 학의 형상을 한 큰 접시에 색색의 나물과 고기들이 주욱 둘러진 요리하며, 각종 야채와 닭고기를 볶아 만든 요리까지, 먹음직스럽기 그지없었다.
“자아, 먹자꾸나.”
틸러는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집어 먹었다. 그러곤 맛에 탄복한 듯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반면 연랑은 마치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는 듯 떨리는 젓가락을 고기 조각으로 가져갔다. 태어나서 한 번도 고기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만큼 어떤 맛일까, 내가 죄를 짓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도 이상한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틸러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리고 이내 얼굴을 붉혔다.
“마, 맛있네요.”
“음, 그렇지? 어서어서 먹어라, 식겠다. 이 객잔 음식, 정말 맛이 좋구나. 천상의 맛이야. 허허허!”
그들은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객잔 안은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강호의 귀재들이 만나고 모이는 자리이니만큼 수많은 정담이 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유난히 조용한 곳이 있었으니, 2층 구석검은 장발의 사내가 앉아 있는 곳이었다. 제멋대로 헝클어진 새까만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갈색 도복을 입은 붉은 눈의 사내. 그 사내의 주위만큼은 아무도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출신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저런 사내의 근처에 있어 봐야 하등 이득 될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저 사내 주위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는 살기는 꽤 멀리서도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벌컥!
그때 객잔 문이 큰 소리로 열렸다. 순간 객잔 안이 잠잠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그 문으로 모였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들은 청성파의 도사들 다섯. 그중에는 예전에 아미의 비구니들을 괴롭히던 태현도장도 끼어 있었다. 도사들의 선두에 서 있는 황엽(黃葉)도장이 객잔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살인자는 썩 앞으로 나와라!”
그의 호통에 무림인들 중 절반 이상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솔직히 무림에 몸담은 이상, 사람 한두 번쯤 죽여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도사들은 그런 그들에게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닌 듯싶었다. 그는 1층 사람들을 죽 둘러보다가 위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여기 있었구나! 네 이놈!”
쒜에엑! 투콰쾅!
황엽도장은 도사들 중에서도 성질 급하기로 유명한 자였다. 2층의 구석에서 여유롭게 소면을 먹고 있는 살인자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속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끓어올랐는지,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주위 무림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래 정파의 무공을 배운 자라면 상대를 공격할 때 무공 명을 외치는 것이 암묵적인 법칙이 되어 있었다. 상대에게 자신이 쓰는 무공에 대한 것을 알려 주어야 싸움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황엽도장은 그런 것도 하지 않고 달려들었으니, 그의 성질이 얼마나 급한지 알 법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살인자라 불린 자도 만만찮기는 매한가지였다. 황엽도장에게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음에도 재빨리 몸을 날려 천장을 밟고 옆으로 몸을 피하지 않는가.
“식사를 방해하는군.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터인데.”
살인자는 붉은 눈을 깜빡이며 딱딱하게 말했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이내 울그락불그락 터질 듯한 얼굴의 황엽도장이 일갈을 내질렀다.
“네 이놈! 우리 청성의 도사를 죽이고도 뻔뻔하게 성도에 남아 있다는 것은 내 목을 베어 줍쇼 하고 기다린 것이렷다!”
“아니, 전혀.”
하지만 살인자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황엽도장의 인내심을 끊어 놓기에 충분했다. 주위 사제들도 그것을 눈치 챘는지 검을 뽑아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제1장 풍뢰비진(風雷砒搢)!”
촤아아악!
부드럽게 스윽 뻗어 나가던 검이 일순간 번개처럼 찔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검식의 사이사이로 다른 사제들의 검들이 찔러 들어오니 살인자가 피해 낼 공간은 없어 보였다. 오랜 시간 수련했음이 분명해 보이는 완벽한 합격기였다. 하지만 살인자는 침착하게 손을 뻗었다.
투쾅! 타탓!
사내의 손이 찔러 들어오는 검의 면을 쳐내자 황엽도장의 몸이 핑그르 돌아갔다. 그 탓에 검은 오히려 주위 도사들에게로 향하게 되었고, 도사들은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겉멋만 잔뜩 들었군.”
살인자는 비웃듯, 그러나 여전히 딱딱한 말투로 말하고는 권세를 취했다. 황엽도장은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는 그를 죽일 듯 쏘아보았다.
“이, 이……! 내 오늘 네 녀석과 사생결단을 내겠다! 감히 청성의 도사를 죽이고 객잔에서 태평하게 음식이나 처먹고 있다니!”
“그 녀석이 내 도를 부러뜨렸다. 그것이면 이유는 충분할 텐데?”
황엽도장의 몸이 움찔 굳었다. 무림인의 무기를 부러뜨린다는 것은 곧 그 무림인에 대한 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엄청난 모욕이니 충분히 살인을 저지르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황엽도장은 다시 괴성에 가까운 일갈을 내질렀다.
“닥쳐라! 네 이놈!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제2장 운무관신(雲舞貫身)!”
솨악! 솨아악!
황엽도장의 검이 다시 살인자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까는 흐름이 단순한 공격이었다면 이번의 공격은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듯 검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저곳으로 휘둘러지는 검이 살인자의 퇴로를 막았고, 이번에는 살인자의 얼굴도 조금 굳었다. 애병인 도가 있다면 쉽게 벗어나고 이 다섯의 목을 따는 것은 일도 아닐 터였지만, 주먹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확실히 무리였다.
하지만 이내 살인자의 얼굴에 무모한 웃음이 번져 나갔다. 죽음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투였다.
“흐아압!!”
살인자는 자신을 향해 다가드는 다섯 명의 도사들에게 호기롭게 달려들었다.

장삼은 이래저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림의 고수들이 항시 출입하는 용문객잔의 점소이를 꽤 오래하고 있었던 터라,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 본 그가 아니다. 그는 마치 미꾸라지같이 몸을 놀리며 격전이 일어나는 곳 주위의 탁자며 의자, 식기들을 쾌속하게 치워 갔다. 사실 모두가 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어 장삼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지금 장삼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면 어떤 고수라 할지라도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용문객잔의 내부는 매우 컸고, 이들이 싸우는 2층도 수십 평에 달하는 넓이였는데, 이 일류고수들의 움직임보다 한 보 빠르게 달려 나가 가게의 물건들을 옮기는 것은 가히 신기에 가까웠다.
“후아, 겨우 다 치웠군. 이제 나도 싸움 구경을 해 볼까?”
장삼은 주머니에서 한지와 붓을 꺼내 들며 싸움이 한창인 곳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살인자와 다섯 도사들의 싸움은 거의 절정으로 치달아 있었다. 객잔의 물건들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어 실내는 싸움을 하기에 매우 이상적인 곳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주위 상황이 이상적으로 변해 갈수록 전세는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몇십 년을 함께 수련한 도사들의 합격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드럽게 또 날카롭게 공격을 해 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살인자는 원래부터 권법을 쓰던 자는 아닌 듯 본신 내력의 절반 정도의 힘밖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압! 적운청하검 제5장! 운신풍뢰(雲迅風雷)!”
어느새 살인자는 2층의 난간이 있는 곳까지 밀려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에는 죽음 따위는 초월한 무언가가 담겨 있는 듯했다. 이내 사방을 막아선 검 사이로 운신풍뢰의 검격이 작렬했다. 얼핏 보아서는 검들이 구름처럼 흐르는 듯하지만, 사실은 번개 같은 빠르기로 검을 찌르고 있어 그리 보일 뿐이었다. 황엽도장의 검에서 뿜어 나온 검기는 그대로 살인자의 몸을 꿰뚫었다.
“큭……!”
콰당! 털썩!
이내 살인자는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오른쪽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채 몇십 초를 살지 못할 듯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살인자뿐만이 아니었다.
“점소이가 쓰러졌소!”
“어서어서 상처 부위를 막게!”
전투를 기록하던 장삼의 복부로 마지막 검기 한 줄기가 박혀 들어왔던 것이다. 덕분에 장삼은 배에서 피를 뭉실뭉실 뿜어내며 죽어 가고 있었다.
“아, 저, 저는 괜찮습니다. 손님 여러분들은 어서 자리에서 시, 식사를…….”
투철한 직업 정신이다. 장삼은 자신의 주위에 모여든 무림인들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서서히 얼굴빛이 창백해지는 것으로 보아 죽음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편, 틸러는 그런 주위의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음식을 먹어 대고 있었다. 연랑은 자신의 옆에 떨어져 내린 살인자를 보며 작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직 고작 십육 세의 아이다. 저런 고수들 간의 결투를 견식하는 것도 놀랍고 무서운 일이었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간다는 것은 더욱 충격임에 분명했다.
“오, 오라버니…….”
“왜?”
연랑이 떨리는 목소리로 틸러를 부르자, 틸러는 왜 부르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지는 몰라도 소드 마스터 급 검사들 간의 결투에 끼어들고픈 생각이 전혀 없는 데다 자신에게 이득이 될 법한 것도 전혀 없어 보였다.
“사, 사람이 죽어 가요.”
“허어! 사람이 오고감은 하늘의 뜻인 법.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먹어라.”
연랑은 틸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틸러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때, 그들의 탁자 위로 피 묻은 손이 턱 걸쳐 올라왔다.
“꺄악!”
“후우……. 죽을 때가 되니 목이 칼칼하군. 물이라도 한 잔 주겠나?”
연랑은 비명을 내지르며 의자를 재빨리 뒤로 물렸다. 하지만 틸러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연신 젓가락을 놀리다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살인자는 상당량의 땀을 흘린 데다 출혈까지 있었으니 꽤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틸러는 아까 자신의 황금잔에 있던 물을 옮겨 담은 그 잔을 살인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다소 먼지가 섞여 있을 테지만, 죽어 가는 자에게 그런 것은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꿀꺽! 꿀꺽!
“하아! 시원하군. 음? 으윽! 크읏!”
물을 모두 비운 살인자는 시원하다는 듯 가쁜 숨을 내쉬다가 이내 온몸을 덮쳐 오는 고통에 몸을 숙였다.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자 틸러는 먹는 것을 멈추고 살인자를 바라보았다. 살인자의 온몸의 혈관이 꿈틀꿈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살인자의 입에서 새까만 죽은피가 뭉실뭉실 흘러나왔다. 살인자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아예 대자로 뻗어 버린 채 신음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옷 안으로 비치는 오른쪽 가슴의 상처가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새살이 돋아나는 게 아닌가. 이윽고 마지막 한 방울의 죽은피까지 다 뿜어내고 상처가 완전히 아물자 살인자의 몸이 뚝 멈추었다. 몇 초간 눈을 깜빡이던 살인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당신… 뭐지?”
살인자는 틸러를 올려다보았다. 살인자의 눈은 진심으로 신비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한편 틸러는 틸러대로 쇼크를 받은 상태였다.
‘저 물을 마시더니 갑자기 상처가 나아 버렸어? 설마?’
새로운 실험체가 필요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틸러는 이내 다음 실험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만치에 무림인들이 모여 점소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한번 해 볼까? 잘만 된다면… 여기서도 한탕 하는 거다!’
틸러의 눈이 다시 번뜩였다. 그러고 보니 아소왕은 자신의 황금잔으로 수많은 병자들을 구했다고 했다. 그 전설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틸러는 다른 잔에 있는 물을 황금잔에 벌컥 쏟아 부은 후, 무림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비켜 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지금 사람이 죽어 가고 있소!”
점소이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던 노 검객이 사람들을 밀치며 다가오는 틸러를 보고 소리쳤다. 하지만 틸러는 인자하고 따스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숙일 따름이었다.
“아, 아니, 당신은……!”
태현도장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허공섭물의 경지에 이른 그때 그 고수가 아닌가! 크게 당황한 태현도장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