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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법사 1권(7화)
제4장 달면 삼키고 써도 일단 삼킨다(3)
틸러와 연랑은 침착하게 호흡을 조절하며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붉은빛의 도였다.
연랑은 불쑥 솟아오른 곳에 박혀 있는 거대한 붉은 도를 신비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지금은 마치 그런 상황이 아닌가,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무협지 속의 주인공이 기연을 얻을 때 같은.
게다가 그 도의 모습도 심상치 않았다. 붉은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수놓아진 손잡이 아래로 둔탁한 듯하지만 미끈하게 뻗어 나온 두터운 날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게다가 그 검에서는 마치 불길이 일어나는 듯 은은한 아지랑이와 열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틸러는 그것을 보자 약간 마비되었던 이성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어마어마하게 비싸 보인다! 뽑아서 팔면 순식간에 떼부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그때 동굴의 저편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선이 굵은 얼굴과 허리까지 흑발을 늘어뜨린 살인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럴… 수가!”
살인자는 말문이 막힌 듯 제대로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그는 약간 떨리는 발걸음으로 그 도의 앞으로 다가갔다.
“진인의 뜻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나에게 걸맞은 병장기를 찾아 주시려 하셨던 것이라니!”
이 인간, 무언가 대단히 착각을 하고 있다. 틸러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병기를 찾아 주기 위해, 황금진인에 어울리는 뛰어난 호위무사로 만들기 위해 그리 차갑게 대하며 이런 곳까지 유도했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이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
살인자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의 말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연랑도 그제야 틸러의 뜻을 알아챘다는 듯 역시 하는 눈빛으로 틸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옘병, 미치겠네. 돈 덩어리가 눈앞에 있는데……!’
도대체 이 세계의 인간들은 왜 이리 착각을 잘하는 것일까. 실리보다는 명분을, 그리고 미신을 믿는 이상한 인간들. 그것을 지금까지 잘 이용하여 살아왔지만, 이런 결정적인 곳에서 뒤통수를 맞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이름은 휘령(煇굻). 앞으로 진인을 평생 모시며 이 은혜를 갚겠소.”
콰앙!
살인자는 틸러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절을 했다. 말이 좋아 절이지 거의 땅바닥에 머리를 가져다 박는 수준이다. 틸러는 어이가 없었다. 착각도 유분수라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렇게까지 해 버리니 ‘너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거든!’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허, 허허! 고개를 들게. 도가 주인을 기다리지 않는가!”
‘우라질!’
틸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휘령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서 핏물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지만, 전혀 상관없다는 듯하다.
“후우―!”
휘령은 긴장한 듯 심호흡을 하며 파마적룡도로 다가갔다.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틸러의 혈압이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었지만, 휘령은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마적룡도의 검병(劍柄)을 쥐어 들었다.
콰르륵!!
“우왓!”
틸러는 온몸에 확 끼쳐 오는 열기에 연랑을 감싸 안고 뒤로 물러섰다. 파마적룡도를 쥔 휘령의 온몸에서 붉은 기운이 폭발하듯 분출하기 시작했다. 휘령도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파마적룡도는 땅에서 뽑혀 나왔고, 그 기운은 삽시에 검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하아―!”
휘령은 심호흡을 하며 검을 얼굴 앞까지 들어 올렸다. 신병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려는 듯 바라보던 그는 이내 도를 벽으로 던져 버렸다.
“……?!”
무슨 짓이냐며 소리를 지르려던 틸러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굳었다. 벽으로 날아간 도가 마치 두부에 박혀 들어가듯 깊숙이 박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과연!”
휘령, 그만의 무기 감별법인 듯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벽에 박힌 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검은빛의 윤기가 도는 천을 꺼내 도의 날을 칭칭 감고는 정성스럽게 등에 메었다.
“진인, 감사하오. 이 은혜는 평생 갚아 나가겠소.”
그는 틸러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틸러는 이 인간이 자신에게 따라붙으려 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와 함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그럼 이 자식이 죽으면 이 도는 내 것이란 말이잖아!’
틸러의 눈이 사악함으로 번뜩였다. 그는 근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하는 길은 험난할 것이네. 그래도 함께하겠는가?”
휘령의 눈은 굳은 의지로 번뜩였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그에게 재차 절을 하며 외쳤다.
“이 한 목숨, 불에 타 재가 된다 해도 모시겠소!”
동굴 밖으로 나오자 안개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게다가 조금 더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자 동굴과 거대한 돌산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으니 그저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틸러는 묵묵히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휘령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연랑의 뒤를 따랐다.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을 죽게 만들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불의를 보면 절대 지나가지 않는 것일 텐데……. 저자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가 없으니 그것도 문제였다. 저번에 저 녀석은 도가 아닌 수(手)로도 다섯과 비등비등하게 싸우지 않았던가. 도를 들면 얼마나 강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시야가 어스름해지자 그들은 한쪽 수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휘령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디에선가 나뭇가지를 한 아름 가지고 돌아왔다.
“흡!”
그리곤 파마적룡도를 뽑아 그 나무 더미 위로 힘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이내 나뭇가지들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연랑은 반짝이는 눈으로 휘령에게 물었다.
“그 파마적룡도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모르는 것인데…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세요?”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으니 누구와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연랑이었다. 휘령은 그런 그녀를 묵묵히 내려다보다가 도를 다시 등에 둘러메며 입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이 숲에 내려오는 전설을 알고 있나?”
연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틸러도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휘령은 여전히 감정이 결여된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장작더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은 이런 것이지. 화선도(火仙刀)라 불렸던 검객이 있었다. 그의 경지는 조화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 그의 힘을 시기하고, 그가 앞으로 자신들에게 가져다줄 여러 폐해들을 미리 감지해 낸 마도의 무리들이 선택한 곳은 이곳 귀림. 귀림에서 요괴들과 귀신들이 나온다는 소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이곳을 선택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지. 화선도가 협행을 하며 무림을 종횡무진 누빌 때도 그들은 묵묵히 기다렸다. 이 귀림을 지날 때를.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화선도가 이 귀림을 지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지. 팔백의 마도인들이 이 숲에서 기다렸다 한다. 아니, 실제론 더 많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들은 안개가 짙은 귀림에서 그를 습격했다. 하지만 화선도의 힘은 정말 강했다. 그의 도법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대여섯 명의 마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더군.”
“그, 그래서요?”
연랑이 흥미롭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휘령은 불이 붙은 나뭇가지 하나를 꺼내 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도인들 중에서도 절정고수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수십 수백의 마도인들이 죽어 나갔지만, 결국 화선도에게도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지. 화선도는 도망쳤다 한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 이미 조화지경에 이르렀던 그이기에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지. 그는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없는 동굴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검에 자신의 모든 내공을 봉인했다 한다. 영혼까지도.”
연랑은 정말 재미있었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틸러에게 고개를 돌렸다.
“역시 전설은 없는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보네요. 그런데 오라버니가 그런 곳을 어떻게 찾으신 것일까요?”
틸러는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자신에게 돌아온 화살에 화들짝 놀랐다. 휘령이란 녀석은 자신을 위해 이곳을 찾아 준 것이라 알고 있으니…….
“나는 그저… 무엇인가 부르는 것 같아 발길을 따랐을 뿐이란다. 길을 잃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누군가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해야 하나?”
“흐음, 진인… 앞으로 계속 진인이라 불러도 되겠소?”
휘령은 틸러를 진인이라 부르는 것이 조금은 어색한 듯했다. 그것은 틸러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사람들 앞에서 나를 진인이라 부르는 것은 좋지 않네. 무언가 그럴싸한 가명을 하나 붙이는 게 좋을 것 같구먼.”
확실히 그렇다. 그들끼리 있을 때 서로를 지칭할 호칭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진인이란 호칭을 남발했다간 또 어떤 골치 아픈 사건이 터질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과천(㎻天) 어때요? 별로인가요?”
연랑이 불쑥 내뱉었다. 과천. 하늘을 다스린다는 뜻이니 상당히 좋은 이름이다. 틸러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으로 하도록 하자. 사람들에게 내가 진인이라느니 여래불이라느니 하는 것을 알리고 다닐 순 없으니, 앞으론 과천이라 부르도록 하게.”
“알겠소. 그런데… 여래불이라니?”
휘령은 틸러의 입에서 튀어나온 ‘여래불’이란 말을 놓치지 않았다. 틸러와 연랑의 얼굴에 난감함이 묻어 나왔다. 틸러는 또 거짓말을 해야 하니 말의 앞뒤를 짜 맞추느라 난감했고, 연랑은 그들의 비밀을 들킨 것에 난감했다. 서로 속에 품은 뜻은 다르지만 난감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틸러와 연랑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이윽고 연랑이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는… 약사여래불의 진신이에요.”
“음, 그렇군.”
“에? 안 놀라요?”
휘령은 너무나 쉽게 수긍해 버렸다. 도리어 김이 빠져 버린 연랑이 황당하다는 듯 되묻자 휘령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편이 더 말이 되지 않나. 죽어 가는 이들을 살리고 병을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차라리 약사여래불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단번에 수긍이 가는군.”
따지고 보면 또 그렇다. 연랑은 휘령의 무표정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자리에 누웠다. 이내 연랑의 숨소리가 잦아들자 틸러는 휘령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살던 사람인가?”
무표정하던 휘령의 얼굴이 조금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그저 무를 추구하며 강호를 떠돌던 사람이었을 뿐이오.”
“흐음, 그런 것치고는 몸의 흉터들이 범상치 않구먼.”
틸러의 날카로운 지적에 휘령은 그제야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갈색의 단복이긴 하지만 곳곳이 찢긴 데다 그 사이사이로 드러난 맨몸에는 온갖 종류의 흉터들이 빽빽했다.
“별것 아니오.”
“말하기 싫으면 말게. 나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니.”
‘옘병! 사연이 엄청 많은가 보군.’
너그럽게 웃는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연신 욕을 내뱉는 틸러였다. 몸에 상처가 많은 것은 곧 많이 싸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들까지 있다는 것은 이자가 한두 번 생사를 오갔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듯 마는 듯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마력을 잘 느끼지 못하는 자신이 느끼기에도 확연한데 이 사내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인 것을 보니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도 몸에서 살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동물들이 자네를 꽤 싫어하겠구먼, 허허!”
틸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봇짐을 베개 삼아 누웠다. 휘령은 그런 그를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려 보다가 이내 자신도 잠을 청했다.
다음 날,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거리의 덕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식량도 떨어져 가고 며칠간의 노숙으로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으니, 덕양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몸을 돌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틸러의 명성도 조금씩이나마 알려 두는 것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령 오라버니.”
어느새 연랑은 휘령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휘령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해 보라는 뜻이다. 항상 무표정하고 말투도 딱딱하지만, 근본은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일 것이라 연랑은 믿고 있었다.
“오라버니는 어떤 도법을 사용하세요?”
“도법이라…….”
휘령의 눈이 순간 멍해졌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다. 틸러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궁금했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예전에 참요도법(斬妖刀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군.”
‘불렸던 것 같군’이라고? 이자는 자신이 쓰는 무공의 이름도 제대로 모른단 말인가? 틸러와 연랑은 그런 휘령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참요도법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휘령은 그때부터 멍하니 그들의 뒤를 따랐다. 자기만의 세계에 잘 빠지는 녀석이다. 저렇게 멍할 때는 주위에서 무어라 떠들어도 대꾸조차 없다.
그런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한참 만에 휘령이 겨우 묻는 말에 대꾸를 하게 되었을 때, 저 멀리에서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도만큼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이천가량의 가구가 살고 있을 법한 크기다. 틸러는 드디어 편하게 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마을로 향했다.
“헤에, 편안해 보이는 분위기네요.”
연랑이 짤막한 소감을 말했다. 확실히 그런 분위기다. 시민들의 얼굴에 근심 걱정이 없어 보이지 않는가.
“일단 묵을 곳을 찾아보자꾸나.”
틸러는 오로지 시원하게 씻고 편안하게 한숨 잤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침 이슬을 맞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정말 진저리가 나는 일이지 않은가.
“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틸러는 마을 주민 한 명을 붙잡았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여인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에, 무슨 일이시지요?”
친절한 웃음이다. 어떤 것을 물어도 다 이야기해 줄 것 같았다. 틸러는 약간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혹여, 이 근처에 하룻밤 쉬고 갈 만한 곳이 없습니까?”
“아, 여행자 분들이로군요.”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게다가 그녀의 입에서 ‘여행자’라는 말이 나오자 주위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그 아주머니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재빨리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어서 도망치세요. 저희 마을에는…….”
슈파앗!
여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엇인가가 틸러의 눈앞을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여인을 포함한 주위 시민들은 재빨리 가던 길로 몸을 돌렸다. 틸러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보다 자신의 앞을 스치고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만치의 나무에 박힌 그것은 날카로운 단도가 아닌가. 만약 5센티미터만 옆으로 날아왔다면 틸러의 머리통을 박살내 놓았을 것이다.
“……!”
틸러는 굳어 버린 목을 간신히 움직여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열일곱, 많아야 열여덟 정도로 보이는 단발머리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또 하나의 단도를 얼굴 가까이로 들어 올린 채 소리쳤다.
“이방인은 당장 이 마을에서 나가라!”
‘어, 어이! 그런 말은 던지기 전에…….’
틸러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저 여자아이는 정말로 던질 생각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자신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