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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법사 1권(8화)
제4장 달면 삼키고 써도 일단 삼킨다(4)
챠릉!
옆에서 휘령이 도를 뽑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서 싸웠다간 또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르는 일이다. 틸러는 팔을 들어 휘령을 저지했다. 그리고 애써 웃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 소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우선 말로 해결하심이… 히익!”
쒜엑! 파악!
틸러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자신의 발 바로 앞에 단도가 와 박히지 않는가. 갈색 단발의 여자아이는 다음번에는 머리통을 박살내 놓겠다는 듯 팔을 뒤로 젖히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당장 나가!”
“그, 그런 자세로 그렇게 말해도…….”
틸러는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단도를 던져 버릴 것 같은 자세였다.
“별수 없군. 령, 부탁하네.”
저런 위험한 상대는 일단 힘으로 제압한 후 말을 해야 대화가 통한다. 그런 것은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친개처럼 전장을 누비던 기사들도, 소드 마스터들도 팔다리 하나를 잘라 놓거나 몸을 제압한 후 목숨으로 협박을 하면 술술 말을 털어놓기 마련인 것이다. 물론 지금은 저들뿐 아니라 연랑과 휘령까지 속이고 있으니, 그렇게 험악한 방법은 쓰지 못하겠지만 일단 저 양팔만 어떻게 봉인해 두어도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았다.
타탓!
휘령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날렸다. 여자아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단도를 내던졌다. 하지만 그 단도는 이내 휘령의 손가락 사이에 꽂혀 있었다.
“아니……!”
여자아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갔다. 지금까지 이 마을을 지나간 여행자들 중에 자신이 던진 단도를 맨손으로 잡아낼 정도의 고수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휘령의 보법은 신기하기만 했다.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자신에게 달려온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피할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우득!
“꺄악!”
휘령이 여자아이의 뒤로 돌아가 팔을 꺾어 올린 것은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녀는 팔을 잡힌 채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놔라! 놓으란 말이다! 꺄앗!”
틸러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음 같아서는 이 선머슴 같은 여자아이의 뺨이라도 올려붙이고 싶었지만, 이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애써 너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소저, 어찌하여 이리 무서운 물건을 다루는 것이오?”
“이익!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네 녀석들이 포가장(怖訶場)의 앞잡이란 것은 다 알고 있다!”
포가장? 이 여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틸러는 휘령에게 눈짓을 하여 그녀의 팔을 놓아주게 한 후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군요. 저희는 포가장이란 곳을 모를뿐더러, 앞잡이 또한 아닙니다.”
이쯤 하면 말이 통하련만 그녀는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어디서 뽑아 들었는지 서슬 퍼런 단도가 그녀의 손에 다시 쥐어져 있었고,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초리로 틸러를 노려보았다.
“닥쳐라! 내가 그런 말을 믿을 것 같으냐!”
“그만두어라, 은유(銀愉)야. 그분들은 포가장에서 오신 분들이 아닌 것 같구나.”
그녀가 단도를 휘두르려는 찰나, 저만치에서 그녀를 저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40세 정도의 중년 사내로 끝이 처진 눈썹과 실눈, 그리고 약간 얇은 입술이 인자해 보이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어째서 막으시는 거지요? 이자들의 행색을 보세요, 수상하다구요!”
‘이자’라 지칭된 틸러와 연랑, 그리고 휘령은 자신들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황금색의 자수가 놓인 고풍스러운 도복, 약간 헤진 회색의 승복, 그리고 곳곳이 헤진 갈색의 단복. 확실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하지만 중년 사내는 그녀의 팔을 스윽 밀어 단도를 검집에 넣게 한 후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저들을 보거라. 너를 충분히 해할 힘이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다. 포가장에서 보낸 자들이었다면 네가 공격을 한 순간 바로 본색을 드러내었을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느냐?”
“그, 그건 그렇지만…….”
은유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중년 사내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고는 셋에게 포권을 취했다.
“이거 귀하신 손님 분들께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저는 이 덕양에서 자그맣게 옷 장사를 하고 있는 가호(假好)라 합니다.”
말이야 자그맣다고는 하지만,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닐 정도면 꽤 큰 가게를 열고 있을 것이다. 틸러는 왠지 돈 냄새가 풍겨 오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과천이라 합니다. 이 아이는 연랑, 그리고 이 사내는 저의 호위를 맡고 있는 휘령이라 합니다. 그런데 저 아가씨는……?”
은유는 틸러가 자신을 가리키자 화들짝 놀랐다. 게다가 얼굴까지 붉어진다. 아마 자신이 방금 전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아, 저 아이는 은유라 합니다.”
“아니… 그것이 궁금한 것이 아니오라 저희들에게 어째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셨는지가 궁금해서 그럽니다.”
가호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은유라 불린 소녀도 그 말을 듣자 어디론가 훌쩍 몸을 날려 사라졌다.
“사실… 저희 마을 근처에는 포가장이라는 무뢰배들의 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근처 마을에서 돈을 거두어 가는 것으로 생활을 하고 있지요. 처음에는 그 금액이 미미했습니다만… 갈수록 커졌습니다.”
틸러는 뻔한 이야기군 하며 고개를 돌렸다. 분명 돈이 커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나섰을 테고, 그 녀석들에게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하여 저 아이의 오라버니가 죽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 아이는 지금은 멸문한 점창파의 마지막 후손입니다. 저 아이의 오라버니가 죽게 되면서 점창의 규칙 중 하나인 점창쌍검을 지킬 수 없게 된 데다 점창의 기보인 사일검(射日劍)까지 빼앗겨 버렸습니다.”
‘사일검?’
틸러는 아까부터 풍겨 오던 돈 냄새의 정체가 이 사일검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일검…이라니요?”
가호는 그것에 관심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왠지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았다. 사기꾼의 본능 같은 것이 저자는 무언가 꾸미고 있다고 일러주는 듯했다.
“사일검은 점창의 기보입니다. 사일검은 사일검법을 펼칠 때, 그것도 남녀 한 쌍이 함께 펼칠 때에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합니다만…….”
“그것의 가치는… 분명 크겠지요?”
틸러가 조심스럽게 묻자 가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늠하듯 꼼지락거리더니 말했다.
“무림의 문파에 가져다 판다고 하면 적어도 오백 냥… 많게는 칠백 냥까지 받아 낼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 무림의 기보 하나와 바꿀 수도 있겠군요.”
오백 냥에서 칠백 냥. 척 들어도 엄청난 양의 돈이다. 가호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기대라도 하듯 재차 입을 열었다.
“여하튼 그때부터 저 아이는 마을에 들어온 이방인들을 모두 공격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요. 게다가… 더 이상은 검을 잡을 수 없게 되었기에 단도를 사용하게 된 것이구요.”
“더 이상 검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니요?”
연랑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가호는 안타깝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점창쌍검. 점창의 검법은 남녀가 짝을 지어 다니며 검법을 펼쳐야 한다는 법칙이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사일검의 전수자들에게는요. 사일검법은 말씀드렸다시피 둘이서 쌍을 이루고 펼쳤을 때만이 최강의 힘을 발휘합니다. 게다가 이 검법은 서로 간의 호흡도 중요하기에 한번 짝을 이루면 평생 바꿀 수 없습니다. 만약 한 짝을 다른 한 짝이 지켜 주지 못했다거나 하면 다시는 검을 잡을 수 없는 것이 점창의 규칙이라더군요.”
‘복잡한 규칙이군. 하지만 결국 결론은 간단하잖아. 내가 사일검을 가져도 아까 그 아이는 빼앗아 갈 권리가 없다는 거네.’
“흐음, 그 이야기들을 조금 더 자세히 해 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틸러가 조심스레 말하자 가호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가게로 가시지요.”
‘뭔가 이상해. 처음 보는 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저 녀석……!’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뒤를 따르는 틸러와 연랑, 그리고 가호의 납득되지 않는 행동들을 보며 의심의 싹을 키워 가고 있는 휘령이었다.
가호가 경영하고 있다는 옷가게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큰 곳이었다. 어째서 이리 작은 마을에 이렇게 큰 옷가게가 있는지 의심스럽긴 했지만.
“저희 옷가게는 덕양의 명물입니다. 사천뿐 아니라 섬서, 감숙, 중경과 귀주에서까지 저희 옷을 사러 오고 있습니다. 허허!”
“네에,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 큰 가게를 유지하실 수 없었을 테지요.”
틸러는 능청스럽게 말하며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분명 이 옷가게는 위화감이 있다. 이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이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틸러뿐 아니라 휘령도 끝없이 드는 의문에 스스로 어떻게든 납득해 보면서 그를 따라 안채로 들어섰다. 가호는 하인들에게 손짓을 하며 무엇인가를 지시했다. 이내 하인들이 틸러와 연랑, 그리고 휘령이 입을 수 있는 옷을 가져왔다. 가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지금 입고 계신 옷과 가장 비슷한 색상과 모습을 지닌 것들로 골라 봤습니다. 옷감은 저희 가게에서만 생산되는 최고급 비단을 사용했구요. 입어 보시지요.”
“아,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이런 것에서 빚을 지게 되면 앞으로 저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제대로 거절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것이 세상 이치이니, 틸러는 이자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호는 막무가내였다.
“입으십시오. 저희는 손님을 그리 섭섭하게 대하고는 넘어가지 못합니다. 어서요, 어서. 자, 이리 드시지요.”
거의 떠밀려 가다시피 탈의실로 들어간 셋.
잠시 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비단옷을 갖춰 입은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대단합니다그려!”
과연 옷이 날개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황금실로 자수를 놓은 흰 도포를 입은 틸러는 오른손에 든 황금잔과 황금빛 눈, 머리칼이 고루 어울려 그야말로 금빛으로 빛나는 성자 같은 모습이었다. 한편 연랑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짧은 치마가 적응이 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검은색의 치마는 연랑의 허리까지 오는 장발과 함께 아름다운 몸매와 조화를 이루어 그녀를 빛내 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걸어 나온 휘령. 갈색의 헐렁한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굴곡진 탄탄한 몸매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정작 그 옷을 입은 당사자들은 어색하기만 했다. 틸러는 내색은 안 했지만 옷이 온몸을 다 덮고 있어 답답함을 느끼는 듯했고, 연랑은 끊임없이 치마를 잡아 내리고 있었다. 휘령은 자신이 계속 입어 오던 단복이 아쉬운 듯 연신 눈길을 돌리고 있었고 말이다.
가호는 그런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에서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는 뜻일 게다. 틸러는 짐짓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저 녀석의 꿍꿍이가 무엇일지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 챈 듯한 휘령과 눈빛을 교환하면서.
“아까 보니 저분은 무공이 아주 고강하시더이다.”
“허허, 저의 호위무사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 사람이 조금 강하긴 합니다. 정작 저는 아무런 힘이 없는데 말이지요, 허허.”
가호와 틸러는 함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쥐어짜 낸 듯한 웃음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이내 가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드디어 왔군. 녀석들을 퇴치해 달라는 것이겠지.’
이 녀석의 꿍꿍이가 이것 하나로 끝이면 좋으련만. 틸러는 작게 중얼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가호는 그것이 긍정의 의미라고 판단했는지 한번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포가장의 무리들을 퇴치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역시나. 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고작 셋이서 몇백은 될 녀석들을 어찌 퇴치한단 말인가.
“하나… 저희들의 능력이 될지……. 허허.”
틸러는 말을 돌리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가호는 그런 것쯤은 예상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포가장의 무리들은 숲 속에 그들의 거주지를 지어 놓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원래 산적들이 모인 곳인지라 그들의 우두머리만 처리하면 조무래기들은 알아서 흩어지거나 도망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산적이라는 자들의 특성이니까요.”
“허허, 하나 어찌 우두머리를……?”
“그 점도 걱정 마십시오. 후우.”
가호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하려는 찰나, 휘령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대는 어찌 포가장의 무리들을 척결하려 하는가? 척결하고 싶다면 관가에 연통을 넣거나 혹은 이 근처의 다른 문파에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는가?”
옳은 말이다. 어째서 출신 성분도 알 수 없는 자신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려는 것인가. 하지만 가호는 고개를 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관가에 부탁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군, 포졸들의 힘으론 어림도 없더군요. 그 산적들 중에는 무공을 익힌 자들도 있는지라……. 게다가 문파들은 그런 하찮은 일에는 관심 없다며 딱 잘라 이야기하더군요. 별수 없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있던 도중 대협들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나보다 더 능구렁이 같은 놈이군. 칫!’
오랫동안 장사를 해 왔다는 것부터가 화술과 행동이 숙련되어 있다는 증거. 교묘하게 빠져나갈 틈을 메워 나가고 있었다.
“하나, 어찌 우두머리의 목만을 벨 수 있겠소?”
“그 점을 이제 이야기하려 합니다. 포가장의 우두머리는 한 달에 한 번 마음에 드는 여자를 데리고 자신만의 구역으로 들어갑니다.”
‘일종의 별장이라, 이 말이군.’
“그곳은 포가장의 최고수들이 경호를 맡고 있습니다만, 그 숫자는 고작 셋입니다. 대협들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이겨 내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희를 그 마수에서 구해 주십시오.”
가호는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절을 했다. 이렇게 되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산적들과 거래를 해서 사일검을 빼앗아 오려 했건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자의 부탁을 거절할 명분도 없게 되어 버렸지 않은가.
“아, 알았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만 확실하게 알려 주십시오.”
‘우라질! 능구렁이 같은 늙은이 때문에 귀찮게 되어 버렸구만.’
속으로 연신 투덜대는 틸러였다.
가호는 그날이 바로 내일이고 게다가 완전히 날이 어두워지고서야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길 안내로 아이를 하나 붙여 줄 것이라는 말까지 잊지 않은 그는 큰 방을 내주며 밖으로 나갔다.
“저 녀석, 아무래도 무언가 뒤가 구리군.”
휘령이 무뚝뚝하게 말하자 틸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게지. 뭐, 알 바 아니지 않은가. 부탁을 받았으니 들어줄 수밖에.”
하지만 속으로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틸러였다. 어째서 이런 일을 자신들에게 맡긴 것일까. 아까 들었던 설명으로도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몇 군데나 있다. 게다가 저자는 포가장이란 곳의 내부 사정을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