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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법사 1권(9화)
제4장 달면 삼키고 써도 일단 삼킨다(5)


“진인, 왠지 이번 일은 느낌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시오.”
“허허! 걱정 말고 자네 몸이나 잘 추스르게.”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심증일 뿐 물증은 없다. 모든 것은 내일이 되면 자연히 밝혀질 터이니, 우선은 만약의 경우에 대한 방법을 강구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적들의 무기가 철로 된 것들이라면 내가 조금 힘을 발휘하면 될 것이고, 으음… 파마적룡도까지 붙어 올 위험이 있으니 저 녀석에겐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해야겠구먼. 연랑은 어쩐다? 이 아이의 무공이 뛰어나긴 하나……. 흐음!’
연랑이 걱정이다. 아미에서 수련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하다. 게다가 실전의 경험도 부족하다.
“오라버니, 무엇을 그리 생각하세요? 얼굴에 그늘이 져 있으시네요.”
연랑은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빙긋 웃으며 말을 걸어 왔다.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아이다. 게다가 훗날 자신의 첩으로 삼아야 할 아이다.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자고로 옛말에 돈과 여자는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별수 없이 휘령 녀석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하나? 뭐, 저 녀석이 다 해치워 줘도 좋은 일이고… 저 녀석이 죽으면 파마적룡도는 내 것이 되니… 가만, 저 녀석이 죽으면 산적들을 막아 낼 상대가 없잖아. 음, 마법과 이 잔의 힘으로 어찌어찌 사기를 쳐 보면 될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진인, 이 아이는 어쩌시겠소?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소? 이 아이는 진인처럼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지닌 것도 아니고 나처럼 무공의 수위가 높지도 않소.”
휘령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먼저 입을 연 것은 틸러가 아닌 연랑이었다.
“아니에요. 저도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답니다. 또 옆에 오라버니들이 계신데 무슨 걱정이겠어요.”
말은 그리하지만 실은 틸러와 휘령이 걱정되는 것이 분명하다. 자신도 아미의 절기들을 익혔으니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틸러와 휘령이 조용히 연랑을 내려다보고만 있자 그녀는 이내 눈물을 흘릴 듯 울상이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 또한 매정하게 놓고 갈 수도 없는 터.
“후우, 그 대신 절대 위험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 너는 이 오라버니와 저기 령 오라버니가 책임지고 지킬 테니.”
“네!”
눈물을 닦아 내고는 다시 해맑게 웃는 연랑. 이 아이를 어찌 미워한단 말인가. 틸러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고는 자리에 누웠다. 수면을 취해서 몸에 빈약한 마력이나마 충만하게 해 두어야 한다. 1클래스 마법이라 해도 자신의 마력으로는 남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날, 그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게의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호가 말했던 대로 곳곳의 상인들이 이곳의 옷을 대량으로 구매해 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타지에서 온 부잣집 아낙네들도 삼삼오오 모여 이곳의 옷을 사고 있었으니, 이곳의 옷이 얼마나 유명한지를 짐작하게 했다.
“……!”
그 틈새에서 어제 만났던 은유라는 아이를 발견한 틸러. 은유도 마침 그를 발견했는지 그를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눈이 마주치게 된 둘. 은유는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틸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너!”
그녀는 틸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 서더니 소리쳤다. 틸러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말씀이십니까, 소저?”
가게 안의 시선이 모두 틸러와 은유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은유란 여자아이는 그런 것은 상관도 없다는 듯 대차게 소리쳤다.
“너, 진짜 포가장의 앞잡이가 아니냐?”
‘아! 뭐, 이딴 계집이 다 있어? 젠장!’
생긴 것은 곱상하니 예쁜데 하는 행동은 완전 남자다. 여자다운 귀여운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이를 어찌하란 말인가.
“아, 아니라 하지 않습니까? 소저, 제가 그렇게 험악해 보입니까?”
틸러는 짐짓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하지만 은유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응, 무지 험악해 보여. 게다가 머리카락도 눈도 개똥 색이고.”
‘개, 개똥!’
도대체 이 여자아이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틸러는 세상이 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잠시 비틀거리던 틸러는 끊어져 버리려는 인내심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하, 하하!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하하하!”
그러나 그녀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툭 던지듯 내뱉었다.
“그래, 언제 떠나냐?”
“네? 아, 오늘 밤이라더군요.”
“오늘 밤 몇 시?”
“자정일 듯합니다만, 그것은 왜……?”
틸러가 그제야 의문을 던지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윽박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알아서 뭐 하게! 그전에 허튼짓하면 목이 달아날 줄 알아!”
타탓!
그녀는 엄포를 놓고는 이내 몸을 날렸다. 그녀의 나이 또래에 성취하기 힘든 뛰어난 경공술이다. 하지만 틸러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계집이 입만 걸어 가지곤……. 생긴 게 귀엽긴 하지만 저래선 시집도 못 갈 게다.
그들은 밤이 될 때까지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가호는 자정에 그들의 침소로 은밀히 길잡이를 보내 준다고 했다. 물론 은밀한 일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도 했고 말이다. 그러니 밤까지 그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적적한 시간을 달래야 했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은 모두 틸러의 황금빛 눈과 머리칼, 그리고 오른손에 든 황금잔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동네 남자아이들은 연랑과 휘령에게 자주 눈길을 주었다. 아마 연랑의 귀여운 외모와 휘령의 다부진 몸이 그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듯싶었다.
“하아―. 조금 긴장이 되긴 하네요.”
“위험할지도 모르니 조심해라.”
연랑이 침대에서 데굴거리며 말하자 휘령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는 파마적룡도의 날을 조심스레 다듬고 있었다. 사실 말이 다듬는다는 것이지, 어디서 구해 왔는지 돌로 날을 슥슥 밀고 있었다. 날을 한 번 밀 때마다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가 반으로 잘려져 나갔지만, 그런 것이 휘령에게는 오히려 자랑스러운 듯했다.
틸러는 몸속의 마력을 조금씩 운용하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미약한 마력이나마 온몸으로 순환시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장해 놓는 것이다.
“후우!”
한참 만에 눈을 뜬 틸러. 그는 마력과의 친화도가 예전보다 조금은 높아졌다는 것에 만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를 쳐다보는 휘령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진인의 내공은 무언가 이상하오. 자연의 것인 듯하나 그것과도 성질이 다르고, 진기 같으나 그것과도 조금 다르구려. 게다가 아주 미약하게 느껴지오.”
틸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은 자연의 것을 끌어들여 자신의 몸에 흐르는 기운과 융합하는 것. 그러니 그 둘과 성격이 같아 보이면서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는 듯 말하는 것을 보니, 이곳에서는 마력의 개념이 조금 다른 듯했다.
“후우! 그대들이 수련하는 내공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몸속에 쌓아 둔다오. 여기 배꼽 밑의 단전이란 곳에.”
그는 자신의 복부를 가리켰다. 틸러는 호오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내공이란 것을 진기와 융합시킬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는가?”
“그게 가능하단 말이오?”
휘령이 처음으로 놀랐다는 듯 말했다. 이 녀석도 감정이 있긴 한 녀석이군.
“가능하네. 그대는 처음에 내공이란 것을 수련할 때 어찌했는가?”
“호흡을 통해 자연의 기운을 몸속으로 축적시켰소.”
그러니 당연히 자연의 기운만 모일 수밖에. 틸러는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자신이 살던 대륙에서는 마법사의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하는 것을 이들은 모른단 말인가. 육체적인 능력이나 마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훨씬 더 능숙하면서 말이다.
“그리하면 아니 되네. 먼저 호흡을 하기 전에 명상으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자연의 기운을 느끼도록 하게.”
“기운을… 느낀다?”
휘령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틸러이기에 재미도 있고 약간은 우쭐해진 기분에 입을 열었다. 하나 그 순간,
와장창!
한지와 나뭇조각들로 만들어 놓은 창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지더니, 검은 인영 하나가 안으로 떨어져 들어왔다. 연랑과 휘령은 본능적으로 일어나 기수식을 취했다. 하지만 그 검은 인영은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나서 몸에 묻은 조각들을 툭툭 털어 내고 있었다.
“으, 은유 소저?”
틸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은유는 당황한 듯 흠칫 몸을 떨었다.
“시, 시끄러!”
가장 시끄러웠던 것은 은유 자신이라고 말할 힘도 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하지만 은유는 상관없다는 듯 성큼성큼 틸러에게 다가왔다.
“설마, 은유 소저가 길잡이?”
‘아니길 바란다. 아니기를.’
이런 선머슴 같은 계집은 줘도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은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의 기대를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음, 이 몸이 해 주려고. 가호 아저씨가 보낸 녀석은 내가 잠재워 놓긴 했지만, 헤에!”
“그, 그럼 허락받고 오신 것이 아닙니까?”
틸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기회가 있다! 돌려보낼 기회가! 하지만 은유란 여자아이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이 몸이 특별히 호위 겸 길잡이 역할을 해 줄까 하는데.”
“아, 그것이 아니라 소저…….”
“뭐? 알았어. 특별히 이번만 해 주지, 뭐.”
“소, 소저……!”
“알았다니깐. 자, 어서 가자고!”
‘젠장! 뭐 이딴 계집이 다 있어?’
그녀는 말 그대로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연랑과 휘령은 의외로 별 불만 없는 듯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틸러는 절망한 표정을 짓다가 그들이 나가려는 곳이 창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또다시 경악했다.
“이보게, 휘령.”
“음? 왜 그러시오?”
틸러는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갈을 치려면 상대에게 자신이 진지하다는 것을 내비쳐 줄 필요가 있었다.
“검을 뽑게.”
“검을 뽑으라니?”
휘령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지만, 억양은 분명히 되물어 오고 있었다. 틸러는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연의 기운과 그대의 선천진기를 하나로 뭉치는 수련의 기초라네. 먼저 자연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라네. 검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절대 앞으로 향하는 걸음을 놓아선 아니 되네. 알겠는가?”
“음, 알았소.”
챠랑!
휘령은 조심스레 파마적룡도를 뽑아 들었다. 날이 잘 갈린 탓인지 평소보다 훨씬 날카롭게 예기를 뿌려 대고 있었다. 틸러는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은유 소저.”
은유는 창문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자세를 잡고 있다가 김이 빠진 듯 고개를 돌렸다. 틸러는 그녀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두 개의 단도를 가리켰다.
“그것은 빼 놓고 가시오. 이번에 은유 소저는 길잡이의 역할만 수행하면 되오.”
“어째서? 싫어. 내가 왜 너 따위의 말을 들어야 하지?”
은유는 톡 쏘아붙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어느새 그녀에게로 다가온 틸러가 그녀의 허리춤에서 단도를 검집째 휙 뽑아 가지 않는가.
“무, 무슨 짓이냐?”
그녀는 마치 추행을 당한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하지만 틸러는 그답지 않게 냉랭할 뿐이었다.
“안내하시지요.”
평소 같지 않은 그의 눈빛에 은유는 기세가 한풀 꺾인 듯했다. 그녀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앞으로 눈을 돌렸다.
“그럼 간다!”
타타탓!
은유가 달려 나가자 바로 연랑과 휘령이 뒤따랐다. 휘령은 이렇게 도를 뽑아 들고 달리는 것이 수련에 어떤 효과가 있을까 의문을 가지면서도 틸러를 믿어 보기로 한 듯 손에 파마적룡도를 굳게 쥐고 있었다. 틸러는 곧장 오른손에 든 황금잔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피유웅!
“흐갸악!”
짧은 신음성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들 중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다. 게다가 어느새 선반 위에 올려놓았던 단도도 잔에 철커덕 붙어 있었다. 틸러는 자신의 오른손에 의지한 채 대롱대롱 옆으로 매달린 자태로 허공을 갈랐다. 그런가 하면 휘령은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크게 놀랐다. 달리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부터 파마적룡도가 천근만근은 되는 것처럼 무거워지지 않는가! 그는 양팔에 진기를 운용해 근력을 극대화시키면서 뒤를 힐끔 보았다.
‘역시!’
그의 눈빛이 빛난다. 진인은 그의 뒤를 ‘날아’오고 있었다. 게다가 앞으로 쭈욱 뻗은 저 황금잔에서 은은히 진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 저것이 자신의 잠재력을 키워 주는 것일 게다.
하지만 틸러는 자신의 공갈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는 것에 기뻐할 새도 없었다. 도대체 저 인간들은 헤이스트 마법을 쓴 것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지 않은가. 주위의 풍경이 볼 새도 없이 휙휙 지나간다. 게다가 공기의 저항 또한 장난이 아니어서 얼굴 가죽이 다 벗겨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 인간들의 마력 운용은 그야말로 신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틸러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목을 간신히 부여잡아 자세를 다잡으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타탓!
산새 소리가 음산하게 퍼지는 숲 속에 세 개의 인영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후와아앙! 철퍼덕!
“하, 하아! 미안하네. 조절이 잘되지 않았구먼.”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날아와 땅에 아무렇게나 처박힌 틸러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 은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쪽이야. 이쪽으로 가면 그 별장이 나온다구.”
그녀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휘령은 틸러에게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와 봤던 길을 다시 되밟는 것처럼 풀숲을 헤치고 나무들 사이사이를 걸으면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갔다.
“소저는 전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소?”
틸러는 휘령과 연랑의 사이에서 연신 주위를 살피며 걷다가 문득 깨달은 듯 물었다. 은유의 몸이 순간 뚝 멈추었다. 그 때문에 틸러는 은유의 등에 몸을 부딪칠 뻔했다. 은유는 잠시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긴 말이야, 내 오라버니와 함께 왔던 길이야.”
“그, 그렇군요.”
그녀의 오라버니는 죽었다고 했던가. 약점을 찔렀군. 틸러는 내심 안타까운 척을 하며 말을 흐렸다. 속으로는 그것 참 쌤통이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오라버니는 이쯤에서 나에게 기다리라고 말했지.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고. 그리고 달려 나갔어. 낌새가 이상해서 금방 뒤따라가긴 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딴 걸 알아서 뭐 하게! 보면 되잖아! 오라버니는……!”
은유는 자신들이 잠행 중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내 바로 입을 막긴 했지만, 그 뜻이 모두에게 확실하게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