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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그렇게 꿈처럼 즐거웠던 중학생 시절은 지나가고, 시간은 흘러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나에게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겨났다.
가장 먼저, 예주와의 관계가 확연히 멀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극히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나는 집 근처 남녀공학으로 진학했고 예주는 조금 떨어진 여고로 진학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에도 내가 조금씩 이성에 눈을 뜨면서 예주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었으나, 그래도 가끔씩 서로의 집에 놀러가 함께 만화책을 보면서 놀았었다. 다행히 우리는 부모님들끼리도 서로 친했으니까. 그러던 것이, 서로 몸과 마음이 조금 더 성숙해지고 각자 다른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뭔가 서로에게 신경 쓴다는 게 불편해지고 말았다. 가끔 어머니께서 [예주보고 놀러오라고 하렴, 왜 요즘은 같이 안 노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래도 예전처럼 예주를 편한 친구로서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예주가 멀어지자, 아무래도 나는 조금 허전했던 모양이다. 아니, 정정해서…… 아무래도 나는 확실히 허전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예주가 멀어진 탓인지, 나는 또 다른 심각한 변화를 겪는다. 그건 바로 끝 모를 외로움이었다. 비록 난 외아들로 자라긴 했으나, 언제나 아들을 우선시하는 어머니도 있었고 함께 자라 온 예주(그녀 또한 외동딸)도 있었기에 그다지 외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예주가 멀어진 후…… 나는 처음으로 외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내 그 [특이한 현상]은 그런 나의 외로움을 더욱 부추겼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는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나에게 이런 [특이한 현상]이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나의 자존심을 충족시켜 주었으나, 결국 그것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냈던 중학생 시절과는 달리,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에게도 본격적인 소위 [인생에 대한 고뇌]가 찾아왔던 모양이다. 때로는 내가 무슨 선택받은 영웅이라거나, 무슨 악마의 재림이라거나, 인간은 아닌 뭔가 괴상한 존재라거나, 인간은 아니고 악마의 재림으로 선택받은 영웅이라거나…… 아무튼 그런 식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심지어 내가 부모님의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때에는…… 무뚝뚝한 성격의 나조차도 괜히 마구 화를 내고 싶어질 정도로 예민해지기도 했었다. 그래서 하다못해 함께 자라온 예주에게라도 이 [특이한 현상]을 고백하고 싶었으나, 그녀와 나는 이미 서로 안부 전화도 하기 힘들만큼 멀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외로워진 것이다.
외로움에 시달린 끝에, 나는 그저 화풀이라는 이유로 마음에 안 드는 반 친구들, 심지어 선생님들마저 패 주고 싶어졌다. 더욱이 큰 문제는, 난 실제로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난 항상 자신을 억눌렀고, 그런 내 변화를 눈치채신 것인지 아버지께서 지나가는 말투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화풀이는 아무런 문제 해결도 되지 않는다. 그쯤은 알고 있겠지?”
물론, 나도 그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자제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만약 그날 밤의 전화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으리라.

* * *

고등학생이 된지 수개월이 지나고, 나는 부모님하고도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같이 노는 친한 친구들이 있긴 했으나,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역시나 항상 외로웠다.
나는 애써 내 그 [특이한 현상]을 머릿속에서 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잊으려고 애쓸수록 그것에 대한 생각은 더욱 떨쳐내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정신을 딴 데 팔기 위해 별의별 수를 다 썼다. 만화책 중독은 더욱 더 심해졌고 컴퓨터 게임도 이것저것 해 봤으며, 심지어 일부러 열심히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나의 고민은 절대로 풀릴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르든 늦든 결국 어느 시점에서 사고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나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가고 있었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나는 정신을 딴 데 팔기 위해 만화책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내 핸드폰이 울렸다. 생판 모르는 번호였으므로 별로 받을 생각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정신을 딴 데 팔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대었다.
“누구세요?”
“누구긴, 나야.”
“……메주 네가 내 핸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어? 통신사 바꾼 지 얼마 안 됐는데.”
“너네 어머니한테 물어봤지.”
다름 아닌 예주였다. 도대체 예주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만인지 몰라, 나는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반갑다는 티를 드러내는 것은 조금 창피했다.
“그래도 명색이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데 연락은 좀 하고 살어. 현성이 너 너무 냉랭해.”
“미안, 이것저것 하다 보니 널 깜빡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나는 하루도 예주를 잊어 본 적이 없다. 외로웠기에 더욱 더. 그리고 잠시 동안 그녀와 나는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가끔 연락해. 알았지?”
“응…….”
“심심하면 문자하고.”
“……근데 예주야……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뭔데?”
순간 나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을 누가 믿어 주겠는가. 비록 그것은 엄연히 현실이었지만,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빨리 말해 봐. 괜히 긴장하게 만들고 있어.”
“응…… 그게…….”
“현성이 너 요즘 아주 겁쟁이가 됐구나? 하여간, 예전에는 다 허세였지.”
아니, 설령 예주의 눈앞에서 실험을 통해 내 이야기를 증명한다고 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특이한 현상]을 예주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인간 취급은 해 줄까?
“성적표라도 위조했어? 너 공부 잘했잖아.”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뭔데? 고백이라도 하려구?”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예주가 왜 침묵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침묵한 이유는 간단했다. 예주의 그 말을 들은 덕분에, 나는 잠시 동안 내 [특이한 현상]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응, 맞아.”
“……뭐?”
“고백하려는 거 맞아. 나 너 좋아해.”
“…….”
그런 말을 떠올리고 내 스스로 내뱉는 순간, 놀랍게도 나는 [특이한 현상]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에게는 예주가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뭐야……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지금…….”
예주가 그 뒤로 무슨 말을 늘어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말은 상당히 횡설수설이었기 때문인데, 요약하자면 결국 [나도 네가 좋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결국 나는 예주와 사귀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예주와 통화를 하거나 같이 있는 순간만큼은 [특이한 현상]에 대한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내 성격상 겉으로 잘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만큼 예주에게 의지한 것이다.
우리들은 남의 눈(특히 부모님의 눈!)이 무서워서 그리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 가끔 한쪽의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그 집에 놀러 가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가끔 만나게 되면 나와 예주는 같은 방 안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신체적 접촉을 한 것은 아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였지만 나는 아직 순진했고, 예주 또한 그랬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대신 전화 통화는 상당히 자주 했다. 특히 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부모님 몰래 통화를 했으며, 별로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눠도 우리는 즐거웠었다.
“연애를 하려면 당당하게 해라. 숨어서 그게 무슨 짓이냐?”
갑자기 폭증한 전화 요금 때문에 아버지는 아무래도 눈치채신 모양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심약하고도 보수적인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당하게 연애를 할 순 없었다.

* * *

수학여행에서 다른 학교 양아치들하고 시비가 붙었을 때, 그 녀석들에게 맞으면서도 하품을 하며 무시했던 일을 제외하면 결국 내 고등학생 시절도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나와 예주는 2학년에 들어서서 첫 키스를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이상의 관계는 가지지 않았다. 고3이 되고 난 이후에는 수능 준비에 바빠 우리는 전화 통화도 자주하지 못했다.
수능이 끝난 뒤에야, 다행히도 기대했던 만큼의 성적을 올린 나와 예주는 당당하게 부모님들에게 사귄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미 눈치챈 분도 계셨고 깜짝 놀란 분도 계셨고, 앞일을 걱정하시는 분도 축하해 주는 분도 계셨다.
하긴 바로 옆집에 사는 만큼, 우리가 이렇게 사귀다가 헤어지면 양 가족의 관계가 전부 서먹해질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시의 우리는, 헤어진다는 생각을 쌀 한 톨만큼도 하지 않았다.

* * *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립대로, 예주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여대로 진학했다. 내심 예주가 여대로 진학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집에서 멀지 않은 사립대로 진학했기에 나는 딱히 방을 얻어 독립할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점도 만족스러웠는데, 첫째로 나는 내가 자라난 내 방이 참 좋았고 둘째로 내가 대학생이 된 후 부모님의 간섭이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내 대학 생활은 그야말로 평범한 학생 시절의 종지부이자 절정이었다. 나는 적당히 친구를 사귀고 적당히 과 활동을 하고 적당히 수업을 듣는, 그야말로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흔한 대학생이었다. 반면, 예주는 나보다는 훨씬 착실히 대학 생활을 하는 모양이었다. 가끔 예주가 장학금을 얼마를 받았네 뭐네 하면서 부모님에게 비교 당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