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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모임이라구요?”
“예, 그런 특이한 힘을 우리는 SP라고 부르는데, 그 모임의 이름도 SP라고 해요. 영어로는 Singular People.”
“…….”
료코의 설명에 대해 미카가 순간 말문을 잃은 것은, 내용의 문제라기 보단 료코의 유창한 영어 발음을 미카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이한 사람들]이란 뜻이에요. 우리는 모두 사에지마 씨와 비슷한 일들을 겪었고 사회로부터 우리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임을 만든 거랍니다.”
“…….”
료코는 품 안에서 조그마한 팸플릿을 꺼내 보였다. 그것은 언젠가 현성이 보았던 SP 모임 개요서였다.
“자, 여기 보시다시피 우리 모임은…….”
“…….”
차분한 료코의 설명과는 달리, 미카는 의심과 의혹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특히 [모임]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사이비 종교]라는 단어가 미카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후후, 못 믿겠다는 얼굴이네요.”
“……물론이죠. 무슨 사이비 종교 같네요.”
“후후후,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하지만 사이비는 아니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료코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조그맣게 [쉿] 하고 소리를 냈다. 바로 료코의 SP [침묵의 숙녀]의 발동 동작이었다.
료코가 최소한으로 억제하여 SP를 발동시켰기에, SP의 범위는 료코와 미카가 앉은 테이블에 한정되었다. 즉, 그 둘이 앉은 테이블만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에게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미카가, 놀란 나머지 의자를 조금 뒤로 빼며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료코는 살며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SP를 해제시켰다. 언제나 그렇지만 역시 직접 보여 주는 게 제일이라고 료코는 생각했다.
“아셨나요? 저도 SP를 가지고 있어요.”
“어, 어, 어떻게……!”
“사에지마 씨가 창을 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명이 안 되는 특이한 힘이죠.”
미카는 의심과 경악이 버무려진 표정을 지었다.

* * *

“……왠지 엄청 놀란 것 같은데요.”
“료코 씨가 SP를 보여 줬겠죠. 그래야 이야기를 믿을 테니까.”
“아…… 그 소리를 없애는 SP 말입니까? 하지만 저는 못 느꼈는데요.”
“료코 씨의 SP는, 료코 씨가 어느 정도 범위를 조절할 수 있어요.”
“……그렇군요.”
“아무리 신입이라지만, 회원들끼리 남의 SP에 대해 그렇게 너무 놀라는 건 실례예요, 현성 씨.”
“네…….”
같은 SP 회원들끼리, 서로의 SP에 대해 너무 놀라는 건 실례라는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걸 처음 보고 안 놀라는 게 가능한가, 하고 현성은 의심했다.
“……하지만 척 보기에도 차분한 성격은 아닌 듯싶은데, 저렇게 놀래키면 그냥 도망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운데요.”
“사실 저도 현성 씨처럼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 여자의 방에 몰래 잠입해서 그냥 끌고 가자는 이야기를 했죠.”
“…….”
“저 여자의 SP가 가진 위험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해요. 언제 어디서 흉기를 꺼낼지 모르는 여자니까. 그냥 처음부터 체포하는 편이 안전하다구요.”
“그건 그렇지만…….”
“그건 그렇지만 우리 SP의 기본 방침은 비폭력이고, 더욱이 일본 지부장인 료코 씨는 부드러운 분이라 그런 방법은 쓰지 않으세요.”
“……설마 혜은 씨는 저한테도 그런 방법을 쓰실 생각이셨습니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현성 씨는 [불사신]이잖아요. 반항이라도 하면 때려눕힐 수도 없어요.”
“…….”
현성은 자신의 SP가 [이지스]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 * *

료코가 보여 준 SP에 미카는 충격을 받았고, 료코는 미카가 충격에서 벗어나기를 여유 있게 기다렸다.
미카를 미행하고 있던 마코토가, 시간을 두고 카페로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마코토를 본 마야는 자연스럽게 접객 인사를 하고, 카페 문을 살며시 잠가 버렸다.
이로써 사에지마 미카에게는 도망갈 길이 사라졌다. 카페 안에 있던, 미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조금 놓았다.
하지만 사실 SP 회원들의 계획은 여기서부터 차질을 빚기 시작한다. 방금 카페로 들어온 격투가 같은 인상의 남자 손님을 보고, 미카는 놀라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남자…… 분명 어디선가 봤었는데…….’
미카는 길거리를 다닐 때, 남자 행인들의 외모와 옷차림을 체크하는 버릇 아닌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쪽의 기억력만은 놀랄 만큼 좋은 편이었다.
‘분명 봤어, 분명 어디선가 봤어…….’
료코는 의혹에 빠진 미카의 표정을 명민하게 눈치챘으나…… 그것이 료코 자신의 SP를 보고 의혹에 빠진 것이라 오해하고 말았다.
“사에지마 씨? 이제 좀 이해가 되셨나요?”
“잠깐만요…….”
이런 중요한 순간에도 외간 남자를 생각하는 것은 사실 미카다운 행동이긴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카는 흔히 말하는 [여자의 직감]으로, 왠지 방금 들어온 남자에 대한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마코토의 외모가, 미카가 좋아하는 꽃미남 스타일이었다면 좀 더 빨리 기억해 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격투가 같은 호남형 스타일의 남자는 그리 쉽게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혹시 바에서 술이라도 같이 한잔했었나…… 아!’
그러나 [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순간, 미카는 마코토에 대해 기억해 내고 말았다. 어제 저녁, 너무나 혼란스러웠던 미카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서 술을 몇 병 사 왔던 것이다. 그때 분명 편의점에 저 남자도 있었다.
‘그래! 그때 봤었어! 그리고…… 그리고…… 아까 지하철에서도!’
일단 단서를 하나 잡자 다른 기억도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 남자는 어제 저녁뿐만 아니라, 아까 지하철 안에서도 분명 자신과 같은 칸에 있었다.
‘그, 그렇다면…… 저 남자는 나를 쫓고 있는 거야……!’

“사에지마 씨? 괜찮으세요?”
‘서, 설마 이 여자도 한패……?! 이 카페도 함정……?!’
미카는 머릿속에서 특유의 과대망상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사실과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료코는 미카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야기를 납득한 표정만은 분명히 아니었다.
“……사에지마 씨.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SP는 모두가 특이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도우는 것이 최우선 목표랍니다.”
“아…… 예.”
“그렇기 때문에 사에지마 씨의 일도, 사에지마 씨 본인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움을 드리려는 거예요.”
하지만 미카는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에, 료코의 말에 전혀 수긍하지 않았다. 다만, 일단 맞장구를 치는 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잠시 동안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차분히 설명하는 료코와 가만히 맞장구를 치는 미카는, 둘 다 머릿속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 이렇게 되면…….’
‘적당히 기회를 봐서……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그리고 마침내 료코가 결단을 내렸다.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미카의 신변을 구속하라는 신호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무래도 사에지마 씨는 제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럼…….”
‘지금이야……!’
그것도 여자의 직감이었을까. 료코가 주변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기 직전, 미카는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핸드백을 들고 카페의 문을 향해 내달렸다.

* * *

“아……!”
“……!”
“저런……!”
그 순간 카페 안의 SP 회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미카의 돌발 행동에 경악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SP 회원들의 행동은 기민하지 못했고, 이미 미카는 카페의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무, 문이……!”
그러나 미카의 기대를 배반하듯,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 문의 자물쇠는, 안쪽에서든 바깥쪽에서든 열쇠로만 잠그고 풀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여, 역시 함정……!!’
SP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경악해 버린 미카는 카페 안을 뒤돌아보았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이건 함정이었다.
그 순간, 마코토가 민첩하게 움직여 미카에게 다가갔다. 미카를 [수면 악수]로 재우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본래 마코토는, 료코의 신호를 받으면 조용히 움직여 슬며시 미카의 손을 잡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미 소동이 시작된 이상, 조금 억지로라도 미카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마코토를 보고 미카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료코가 재빠르게 [침묵의 숙녀]를 발동시킨 덕분에, 카페 안에는 비명 소리는커녕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때 아닌 대낮의 난투극, 그것도 소리 없는 난투극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