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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현성은 순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 현성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혜은이 현성에게 미카를 가리키며 뭔가 말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혜은의 몸짓을 보고서야 현성은 자신의 임무를 깨달았다. 난투극이 시작된 이상, 자신은 최대한 빨리 미카를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카는 이미 마코토와 대치하고 있었다. 난투극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모르되, 시작된 이상 원래 현성이 먼저 나섰어야 했으나, 현성의 행동이 한 박자 느렸던 데다 마코토가 민첩하여 이렇게 되고 말았다.
지금 가장 안전한 방법은 현성이 먼저 미카를 제압한 이후에 마코토가 미카의 손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현성의 행동이 조금 느렸으므로, 현성이 다가오기 전에 미카가 혹시라도 카운터에 있는 마야를 인질로 잡거나, 창문을 깨 버리고 도망갈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마코토는 현성을 기다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코토가 조금 억지로라도 완력을 써서 미카를 제압하려고 시도한 그 순간이었다. 눈 깜빡할 새도 없는 그 시간에, 이미 미카의 손에는 핸드백 대신 날카로운 일본도가 들려 있었다.
“……!”
미카를 포함하여 그 카페에 있던 전원이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미카의 SP는, 창뿐만이 아니라 일본도 같은 칼도 꺼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시퍼런 칼을 보고 마코토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미카는 옆의 카운터 쪽으로 물러났다. 거기에는 마야가 있었지만, 미카는 같은 여자에다가 조그마한 체구의 마야를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마야의 SP는, 도저히 이런 난투극에서 활용할 만한 SP가 아니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그녀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
카운터 쪽으로 물러나는 미카를 보고, 어쩌면 미카가 마야를 인질로 잡을지도 모른다고 마코토는 판단했다. 그리하여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지금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무, 물러나……! 물러나!!’
미카는 다가오는 마코토를 향해, 칼을 마치 테니스 라켓처럼 휘둘러댔다. 놀란 마야가 비명을 질렀지만(물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코토에게는 그것이 기회로 여겨졌다.
마코토는 격투가 같은 인상에 어울리게 검도와 유도에 대한 조예가 깊은 편이었고, 그래서 저렇게 엉터리처럼 칼을 휘둘러 봤자 아무것도 벨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코토는 침착하게 움직여, 칼을 휘두른 미카의 손목이 그 칼의 무게 때문에 꺾여진 틈을 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칼을 빼앗아 버렸다.
“……!!”
미카의 손을 벗어난 일본도는 다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미카의 두 손은 이미 마코토에게 잡혀 있었다. [수면 악수]는 발동됐다.
‘이제 됐다…….’
자신의 임무를 다한 마코토는 순간 안심했다. 수면 악수가 이미 발동한데다, 이렇게 두 손을 잡고 있으면 미카가 무기를 꺼내도 겁낼 게 없었다.
그리고 미카 가까이 오긴 했지만, 마코토와 미카가 얽혀 있어서 나서지 못하고 있던 현성 또한 안심했다. 현성은, 마코토의 덩치로 봐서 이제 저 여자는 반항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
그렇지만 이내 사람들은 다시 경악하게 된다. 미카의 손을 잡고 있던 마코토가, 손에서 피를 흘리며 뒷걸음질 쳤던 것이다.
* * *
‘무, 물러나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미카의 손에 단도가 들려 있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단도의 칼날이, 미카의 손을 잡고 있던 마코토의 손에 상처를 낸 것이다.
미카의 SP가 창과 일본도 같은 손잡이가 긴 무기들만 꺼낸다고 생각했던 게 치명타였다. 손만 꽉 잡으면 그런 무기들로는 아무것도 못할 거라 여겼으나, 미카는 짧고 예리한 단도를 꺼냈던 것이다. 손잡이가 짧은데다 칼날받이가 없는 단도였기에, 그 단도는 허공에서 미카의 손으로 전달되자마자 미카의 손을 맞잡고 있던 마코토의 손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마코토가 실제로 다치자, 난투극의 양상은 아까까지와는 크게 변했다. 무엇보다 공포와 흥분이 절정에 달한 미카는 말 그대로 [위험한 미친 여자]처럼 변해 버렸다.
‘다, 다들 물러나! 가까이 오지 마!!’
재차 미카는 단도를 손에 쥐고 앞으로 내밀어,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위협했다. 무거운 일본도와는 다르게, 가벼운 단도는 여자의 힘으로도 쉽게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었다.
순간 정신을 차린 현성이 미카의 앞으로 나섰다. 미카는 그런 현성에게 단도를 내밀며 위협했으나, 현성은 단도의 칼날 부분을 그냥 손으로 잡아 버렸다.
“……!”
현성의 행동에 놀란 미카는 단도를 놓쳤고, 단도는 이내 현성의 손 안에서 사라졌으며, 현성은 미카가 움직이지 못하게 그녀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잡아 버렸다.
‘이, 이거 놔! 이거 놔!!’
그러나 미카의 반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성에게 팔을 잡힌 채, 이번에는 미카가 어디선가 표창 같은 것을 꺼내 든 것이다. 게다가 그 조그마한 몸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표창을 든 미카는 격렬하게 몸부림을 쳐 현성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이런……!’
‘놔! 놓으라구!!’
하지만 아무래도 여자인 미카의 힘으로는 좀처럼 현성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미카는 현성에게 잡혀 있던 팔을 용케 빼내서, 들고 있던 표창을 내던지려 했다.
‘아……!’
자신은 다치지 않지만, 누가 행여라도 이것(표창)에 맞으면 다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한 현성은 미카가 표창을 던지려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
결국 미카가 던진 표창은 현성이 뻗은 팔에 맞고 땅바닥에 떨어져,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현성이 몸을 날린 덕분에, 미카는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지금이다…!’
‘안 돼!’
‘비켜!!’
현성을 떨쳐 내고 도망치려는 미카를, 손을 다친 마코토가 막아섰지만, 미카는 자연스럽게 다시 창을 꺼내 마코토를 위협했다. 미카는 분명히 자신의 SP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었으며, 공포와 흥분에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비키라구!!’
‘…….’
창의 길이와 자신의 부상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마코토에게, 미카는 위협적으로 창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옆에서 창 자루를 발로 차 버렸다. 혜은이었다.
‘이, 이 여자가……!’
미카는 혜은의 발차기 때문에 창을 놓치고, 이때 현성이 다가가 미카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반항하는 대신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안 돼……!’
현성과 혜은, 그리고 마코토는 미카가 카페의 창문을 깨 소동이 날까 봐 카페 바깥쪽에서 미카를 막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미카가 도망친 쪽은 카페의 안쪽,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방향이었다.
물론 2층에 있는 헬렌과 지로는 안쪽 방에서 문을 잠그고 있겠지만, 그래도 흥분한 미카가 2층으로 올라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 SP 회원들은 당황하여 미카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미카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에 다리가 걸린 듯이 철퍼덕 쓰러졌다.
‘……?!’
현성은 쓰러진 미카에게 재빨리 다가가서 팔을 붙잡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었다. 쓰러졌을 때의 충격과 서서히 시작된 [수면 악수]의 효과가 겹쳐 이미 미카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현성이 고개를 올려다보자, 2층 계단 위에서 지로가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2막 - 창을 가진 여자, 방패를 가진 남자, 4장
“휴우…….”
미카 사에지마가 쓰러지고 나서 십여 분 뒤, 난 일이 일단락 된듯하여 일단 2층 사무실 소파에 몸을 맡기고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옆에서는 료코 씨가 지로의 행동을 나무라고 있었다. 지로도 그것을 이해했는지 풀이 죽어 있었다.
“지로가 물론 잘못하긴 했지만, 막지 못한 나에게도 잘못이 있어요. 그러니 그쯤 해 주세요, 미즈 아마노.”
“아뇨, 미즈 그로닝. 자칫 잘못됐으면 지로는 정말 크게 다쳤을 거예요. 실제로 마코토가 다쳤고.”
물론 지로의 행동이 대단히 위험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지로의 [보이지 않는 손] 덕분에 저 여자를 막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게다가 애초에 작전이 틀어진 원인을 따지자면 내가 민첩하게 행동하지 못해서 아닌가. 그래서 난 모두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일어서서 료코 씨에게 다가갔다.
“미즈 아마노, 사실 제가 실수해서 이렇게 된 겁니다. 제가 잘했다면 지로가 나설 필요도 없었을 테구요.”
“미스터 윤, 실수라면 저도 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실수를 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지로가 처음 지시를 어기고 위험하게 방에서 멋대로 나왔다는 점이에요.”
료코 씨의 태도가 워낙 똑 부러져서 나는 더 이상 지로를 옹호해 줄 수 없었다. 그때 혜은 씨가 우리 곁에 다가왔다.
“미즈 아마노의 말이 맞아요. 지로, 다음부터 그러면 안 돼. 알았어? 오늘은 네가 우연히 일을 거들긴 했지만, 미즈 아마노의 지시는 중요하다구. 내 말 알아들었지?”
“예…….”
“그럼 좋아. 미즈 료코, 지로도 이만하면 알아들었을 거예요.”
혜은 씨까지 나서자 료코 씨도 그쯤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뭐…… 어쨌든 잘했어요, 현성 씨.”
“……아뇨, 솔직히 말해 정말 큰 실수를 했어요.”
“이런 일 처음이었잖아요. 실수가 없진 않았지만, 처음 치고는 잘한 거예요.”
내가 잠깐 얼을 빼고 있던 탓에 마코토 씨가 손을 다치고 말았다. 마코토 씨는 괜찮다고 했지만, 솔직히 너무 미안했다.
마코토 씨는 마야 씨와 함께 병원에 갔다. 본인은 별로 대단한 상처가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병원 치료는 필요할 성싶었다.
그나저나 평소의 혜은 씨라면 내 실수에 대해 여지없이 핀잔을 줬을 텐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날 그렇게 크게 나무라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뭐, 나도 제대로 대응 못했으니까. 현성 씨를 나무랄 자격은 없죠.”
“사실 혜은 씨가 나서는 것은 작전에 없었으니, 제대로 대응 못하셨다고 할 것까진…….”
“임기응변의 문제예요. 임기응변.”
그리고…… 위험한 여자, 미카 사에지마는 2층 안쪽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마코토 씨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두세 시간쯤은 안 일어난다고 한다.
“그나저나 저 여자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제부터 그것을 상의해 봐야죠. 하지만 먼저 마코토 씨와 마야 씨가 돌아오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