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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법사 1권(13화)
제5장 북어랑 공갈은 쳐야 제 맛(3)
자연검. 자연과 의지가 완벽히 동화되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검이라도 의지대로 다루고, 또 어떠한 것으로도 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극상승의 경지. 태초에 정사의 대전에서 정이 무림의 세력을 잡는 데 결정적인 공훈을 했던 후극검제(后克劍帝) 이후, 아무도 이룬 이가 없다고 알려진 그 자연검의 경지가 몇천 년이 지난 지금, 어느 날 불쑥 무림에 나타난 청년에 의해 발현되었다. 그러니 그것이 무림에 가져온 파동은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입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 수천 명이 보고 무림인들 수십 명이 직접 몸으로 경험했다. 이야기꾼들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 이야기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들이 있었다.
“그분께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셨을 때, 나는 그분 손에 들린 황금잔을 볼 수 있었지. 캬아! 그래, 그것은 그분의 의지. 고통 받고 핍박받는 서민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천존(天尊)이셨던 게야. 그분의 의지 앞에 수백 명 무림 고수들의 검이 주인의 손을 떠났지. 그래, 그 고결하다는 매화검수의 손에 들려 있던 보검도 그분의 의지를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게야. 그분의 의지에 따라 검들은 그분의 주위를 감싸 안았고, 하늘은 움직임을 멈추고 대지는 숨을 죽였지. 그리고 그분은 자신은 권력이란 것에 관심이 없다, 다만 썩어빠진 무림을 바로잡기 위해 이곳에 내려오셨다,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지셨지. 캬아! 그분은 곧 무림의 태양으로 떠오르실 게야. 암, 그러고도 남을 분이시지!”
양 노인은 이야깃거리의 삯으로 받은 막걸리를 한 잔 죽 들이켜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객잔 손님들에게 연신 말을 토해 냈다. 그 틈을 채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손님 중 하나가 소리쳤다.
“거,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고 있소, 그 천존이란 분은?”
양 노인은 끝내 트림을 내뱉고는 입가를 옷으로 스윽 닦아 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참, 조급하네. 지금 그분은 섬서에 계신다고 하네! 천존께는 세 명의 호위가 있는데 그분들을 가리켜 삼합(三盒)이라 한다네.”
“삼합? 거, 홍어 먹을 때 말하는 그거 아니오?”
잠시 객잔이 떠나갈 듯 웃음바다가 된다. 양 노인도 그 농담이 재미있었는지 껄껄대며 웃다가 짐짓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예끼, 이 사람아! 천존께서 그 말을 들으시면 자네 목이 달아날지도 모를 일일 게야! 여하튼 그 삼합의 대장인 사내는 우리들 사이에선 일합이라 부르는데, 등에 보도를 메고 다니지. 바로 오백여 년 전에 사라졌다던 파마적룡도라네.”
“오오! 파마적룡도라면 그 화선도의 정기가 담겨 있다는……?”
“그렇지! 아, 거참! 자네는 말을 자꾸 끊어 먹는구먼. 막걸리 한 병 값으로는 부족한데 이거 오늘 크게 선심 쓰는 줄 알게.”
“하하! 아이고, 고맙수다, 영감.”
짐짓 너스레를 떠는 청년을 보자 양 노인도 다시 흥이 오른 듯했다. 그는 창을 하듯 이야기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거, 그래서 그 일합의 도법이 어느 정도 성취인고 하니, 단칼에 산을 가르고 바다를 일으켜 세울 정도라 하네. 그저 이름뿐인 후기지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말일세! 아, 그리고 이합은 갈색 단발의 여자아이인데, 허리춤에 흰색의 보검, 멸문한 점창의 보검인 사일검이라 하더구먼, 그 여자아이는 점창의 후손인데, 그 사일검 외에 두 개의 단도를 더 가지고 다닌다네. 평소에는 그 단도만을 가지고 싸우지. 그럼 그 사일검을 언제 뽑아 드느냐!”
양 노인이 말을 뚝 멈춘다. 주위 청년들은 다음 말이 이어지길 애를 태우며 기다린다. 노인은 목이 칼칼해진 듯 짐짓 헛기침을 내뱉는다. 청년들은 그제야 앞 다투어 노인에게 자신들의 술을 건네준다. 양 노인은 껄껄 웃으며 술을 입에 털어 넣은 후 말을 이어갔다.
“그것은 말일세, 점창의 원수가 나타났을 때뿐이라 하네. 자네들도 소문을 들어 알지 않는가? 점창은 다른 정파들의 마수 때문에 멸문했다는 것을 말일세. 그래서 그녀의 검에는 항상 짙은 살의와 슬픔이 배어 있다 하더구먼.”
청년들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여인이건만 왠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것이 능숙한 이야기꾼인 양 노인에게는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노인은 자신의 앞에 놓인 청주를 한 잔 더 주욱 들이켜고는 흥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삼합! 이 또한 여자아이인데, 미모가 이합보다 출중하다네. 물론 이합도 전혀 떨어지는 미모가 아니야. 둘 다 천하절색이지. 하나, 이합이 뭔가 당차다면 삼합은 그야말로 조강지처로서 딱인 종갓집 아낙 같은 여인이란 말이야!”
“캬아, 죽이누만!”
청년들이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린다는 듯 술을 들이켜며 소리치자, 노인은 또다시 껄껄 웃었다.
“그런데 말이지, 이 여자아이가 주먹을 휘둘렀다 하면 또 고것이 이야기가 달라진단 말이지. 나머지 일합, 이합과는 달리 손속이 잔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약하냐? 고건 절대 아니란 말씀. 그녀가 내지른 주먹에 천존께서도 쓰러진 적이 있다 할 정도니 말은 다 했지?”
“크어! 그야말로 죽음의 주먹이겠구먼!”
한 청년이 소리치자 이내 객잔 안은 맞아 맞아 하는 소리들로 가득해진다.
“아, 그렇게 강한 셋을 호위로 두고 있으니, 그 천존님의 내공은 도대체 얼마나 심후하단 말씀인 게야? 아, 그러니 문파들이 긴장을 하지 않겠어? 그런데 이제 그 긴장을 풀 곳도 없어진 게지. 왜냐? 문파들이 시민들을 건드리면 천존께서 가만두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하셨거든!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천존님만 믿으면 되는 게야. 알겠는가?”
짤랑!
한창 이야기를 하는 노인의 앞에 엽전 두 냥이 떨어진다. 양 노인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재빨리 품 안으로 동전을 챙겨 넣는다.
“노인장 이야기 덕에 재미있었구려. 앞으로도 재미있는 이야기 부탁하오.”
“아, 뭐 나야 항상 재미있지… 어라?”
양 노인은 시시덕거리며 고개를 들어 밖으로 나가는 네 명의 남녀들을 바라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선두에 선 훤칠한 키의 사내는 금발에 황금색의 도포를 입고 있고, 그 뒤의 또 다른 사내는 근육질의 등에 커다란 도를, 한 여인은 허리춤에 백색의 검과 두개의 단도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여인은 주먹에 면포를 두르고 있지 않은가.
“에이, 설마! 천존께서 이런 작은 객잔에 들르실 리가 있나! 하하하하!”
“그렇지? 와하하하! 그 이야기를 들었더니 이젠 아무나 다 천존님으로 보이네그려!”
잠시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청년들은 다시 호쾌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들의 밤은 이제 흥겨울 대로 흥겨워지고 있었다.
“이야기꾼들의 과장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네요. 천하절색이라니.”
연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이 아이는 아직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각이 없다.’
틸러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마을 중앙의 대청에 엉덩이를 걸쳤다.
“세상은 참으로 좁구나. 입을 타고 전해지는 소문이란 것이 이리도 빠르니, 내 어찌 사명을 다하지 않겠느냐.”
연랑은 우수가 묻어나는 틸러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앞으로 이분은 어떤 일을 하시려는 것일까.’
휘령도 틸러의 한쪽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소문이 벌써 이리도 번지고 있으니, 정파건 사파건 긴장을 할 것이 분명하고 틈만 나면 황금진인, 아니 천존에게 온갖 술수를 걸려 할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넘어갈 천존은 아닐 테지만, 자신의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는 휘령이었다.
한편, 은유는 그녀답지 않게 침울한 상태였다. 그녀는 잠시 슬픔에 젖은 눈빛으로 틸러를 바라보다가 마을 어딘가로 몸을 날렸다.
“아까 이야기꾼이 한 이야기 때문인가?”
“그런 것 같아요. 언니는… 점창의 마지막 후손일 테니까요.”
연랑은 은유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듯했다. 그녀는 이내 은유의 뒤를 따라가려는 듯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휘령이 그녀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가지 마라.”
“네? 하지만…….”
“그래, 가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가끔은 혼자 생각을 정리하도록 두자꾸나. 그런데 령, 자네는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데?”
틸러가 날카롭게 묻자 휘령의 몸이 움찔 굳었다. 그의 눈빛은 그런 것을 어찌 알았느냐 하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틸러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 녀석은 어떤 일을 하며 살아왔기에 그런 것에도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인가. 아까 객잔에서 점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도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움찔거리며 음식을 떨어뜨리지 않나, 그 후로 은유 근처에는 다가가지도 않는 것이 더더욱 의심 가게 했다. 하지만 슬쩍 찔러 보는 것 정도로 이렇게 반응을 보일 줄은 그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터놓고 이야기해 보게나.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 용서함세.”
사실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상대는 본능적으로 경계를 늦추기 마련이다. 어떤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와도 틸러와 연랑이 휘령에게 반감을 품거나 할 일이 없지 않은가. 아니, 연랑은 몰라도 적어도 틸러는 그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건 상관이 없었다.
휘령의 눈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동공이 풀린 그의 눈은 그야말로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섬뜩했다. 그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나는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했소. 언제나 내 뒤를 쫓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를 뿌리치려 한 것인지도 모르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도를 휘두르는 것뿐.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살수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소.”
휘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굳건한 얼굴이 죄책감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임무가 들어왔소.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소. 점창을 멸문시키라는 지시였으니까. 하지만 상부에서는 확고했소. 엄청난 양의 보물과 비급을 받은 것 같더구려. 나는 당시에 살문의 살수단 단장을 맡고 있었기에 그들을 볼 수밖에 없었소. 정파의 가면을 쓴 위선자들. 결국 우리는 점창을 멸문시켰소. 무엇 하나 살려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연랑은 휘령의 등을 토닥였다. 점창을 멸문시킨 것은 분명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휘령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 어쩌면 이 사내는 항상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죽인 것, 해한 것들에게 끝없는 죄책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군. 그럼 그것을 지시했던 문파는……?”
틸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뜸 물었다. 휘령은 그런 틸러의 반응이 조금 의외인 듯했다. 틸러가 자신을 추궁하고 질책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틸러의 눈빛은 평소와 별다른 점이 없다. 그저 예전에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군 하는 정도의 반응만 보이지 않는가. 휘령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곳은… 화산, 화산파의 장문인이었소.”
그의 대답은 마치 폭탄 같은 것이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폭탄. 연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화산…이라구요? 그럴 리가! 무림맹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화산이 어째서?”
휘령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기억이 틀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 가는 점창이 눈엣가시였을 테지. 게다가 점창파는 화산파의 비리들을 파헤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리?”
연랑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감을 잡은 쪽은 오히려 무림의 정세를 잘 알지 못하는 틸러였다.
“흐음, 내가 아직 세상에 출타하기 전에 연랑이가 읽어 주었던 무림의 역사가 생각나는군.”
“아, 그 책이요?”
연랑은 의문의 연속이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틸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넌지시 말을 던졌다.
“지난 이십 년간 화산파는 급속도로 번창했고, 무림맹의 최고 자리에 군림하게 된 것은 십오 년 전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 기억나는구나. 그리고 그 전에 사존이라 불리는 검존, 도존, 권존, 그리고 독존이 연달아 실종되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구나. 그렇지 않느냐?”
“아, 네. 설마……?”
연랑의 시선이 재빨리 휘령에게로 돌아갔다. 휘령의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살문은 돈을 받으면 무엇이든 하오. 상대가 엄청난 무공의 소유 자이든 혹은 이름이 높은 자이든 상관없이. 검존은 엄청나게 강했소. 오백 명이 달려들어 삼백 명이 죽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도존부터는 살문의 비기라 하는 무색무취의 독을 사용했소. 권존을 죽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소. 정의감이 넘치는 권존이기에 변장술의 달인 네 명을 붙여 놓았더니 온몸이 벌집이 되더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소 천화난추(天花亂墜)의 단계에 올랐다던 그들이 겨우 살문이라는 하나의 집단에 줄줄이 당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연랑뿐 아니라 틸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경험한 바로는 무공이 고강한 자들을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소. 검존이라 불리는 자는 정말 강했소. 인간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검은 빠르고 무겁고 현란했소. 하지만 도존, 권존, 독존은 소문난 것처럼 그리 높은 단계의 성취를 이루고 있지는 않았소.”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존(尊)이란 호칭을……?”
연랑이 반쯤 넋이 나가 되물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강호에 대한 환상과 정파에 대한 믿음들이 산산이 깨져 나가고 있었다.
“존이란 호칭을 달 자격이 있었던 것은 검존뿐. 나머지는 검존을 믿고 모여든 자들이었소. 물론 도존, 권존, 독존 세 사람 다 일반 무림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고, 문파의 장문인과 겨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무림맹의 기둥이었던 사존이 사라지자 대세는 자연히 화산파 쪽으로 기울었소. 그런데 점창이 그것을 다 알아냈던 거요. 예부터 점창의 경공과 잠입술은 매우 유명하지 않았소?”
틸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전에 연랑이 읽어 주었던 책들 중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 다음 내용은 들으나마나 한 것이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점창은 분명 화산의 실체를 까발리겠다고 했을 것이고, 그것을 보다 못한 화산파가 높은 보수를 주고 점창을 멸문시키라 했을 것이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점창을 멸문시키게 되었소. 그런데 어쭙잖은 내 과거 이야기를 어디에 쓰려고 들은 것이오, 천존?”
말을 마친 휘령이 슬쩍 의문을 던졌다. 틸러의 입에는 어느새 사악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화산을 바보로 만들어 놓아야지.”
살문(殺門), 그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자들은 살문에 속했던 자들뿐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은밀한 문파. 하나의 문파로 인정받을 때도 있지만, 보통 정파의 무림인들은 돈이나 진귀한 것들을 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하는 그들을 문파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문의 힘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살문은 구대, 현재는 팔대정파로 줄어든 문파들에게서 얻은 비급들과 수많은 보물들, 그리고 살수들의 엄격한 훈련으로 팔대정파 혹은 오대사파에 언제든 끼어들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 살문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온 자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어떤 강호인이라 할지라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절대 믿을 수 없다. 살문에서 자신들 문파의 위치를 아는 자를 살려 둘 리가 없었다.
하지만 휘령이라 불리는 이 사내는 살아 있다. 죽었어도 이상치 않을 수많은 상처들을 온몸에 안고 있어도 그는 살아 있다.
“살문의 위치가 분명 기억이 나겠지?”
“그렇소. 살문은 섬서와 감숙의 경계에 있소. 무림의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은 몽고인들과 회족, 묘족 등이 자주 출입하는 통로 근처의 산맥에 틀어박혀 있기 때문이오. 무림인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을 혐오하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