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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법사 1권(16화)
제5장 북어랑 공갈은 쳐야 제 맛(6)


“그대들의 무공은 자율적인 경쟁으로 성취하도록 하려 하오. 이 무공 비급을 저마다 한두 권씩 가져가 스스로 수련하도록 하시오. 한 달에 한 번 비무를 통해 각 단의 대장을 정할 것이오. 단, 비무에서 상대를 죽인다면 그자는 두 번 다시 비무를 통해 대장이 될 자격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오. 그리고 이 비급에 적힌 그대로 무공을 익히는 자들에게도 대장이 될 자격을 박탈할 것이오. 지금까지 그대들이 배워 온 무공들과 그대들이 새로 익힐 무공이 자연스레 묻어 나와야 하오. 알겠소?”
살수들의 얼굴에 난감함이 번진다. 하나의 무공을 익히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천존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수행에 썼던 무공들과 조합하여 익히라 하지 않는가.
“다시 말하겠소. 우리 천문의 무공은 결코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소.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허울과 위선을 그대들도 잘 알 것이라 믿소.”
살수들뿐 아니라 혈련, 은유, 연랑, 휘령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의 화려한 무공 뒤에 감추어진 그들의 추악한 일면은 그들을 질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살수들 중 일부는 그제야 틸러의 말을 이해한 듯한 눈치였다. 물론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한 살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해한 살수들은 벌써 앞에 늘어서 있는 무공 비급들을 번뜩이는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무공의 초식을 배우되 필요 없는 허초와 지나치게 화려한 초식을 배제한, 오로지 적을 죽이고 베기 위한 무공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천존이 그들에게 원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잠시 이곳을 맡기고 떠나려 하오. 얼마가 걸리리라 장담은 하지 못하겠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오. 내가 그대들을 불렀을 때, 그대들은 중원의 모든 이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을 것이며, 더 이상 정파의 아류 무리들이 아닌 당당한 무림 최고의 문도들로 대우 받을 것이오.”
기간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그들이 무공의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끝의 말은 그들의 사기를 증진시켜 주기 위함이다. 살수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씩의 무공 비급을 챙겼다. 하나의 비급에 뜻이 맞는 두세 명이 뭉치기도 했다.
“이곳의 지휘는 당분간 혈련이 맞을 것이오. 혈련, 그대를 천문의 사합(四合) 중 하나로 임명하오. 이곳에 머물다 첫 부대장들이 뽑히면 곧장 나를 따르시오.”
혈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틸러의 옷깃에 슬쩍 가져다 대었다. 향이 천 리 밖까지도 퍼진다는 흑사향(?팊香)이다. 한 번 묻히면 일 년은 가는 데다 그 냄새는 그녀와 몇몇 살수들밖에는 맡을 수 없었다.
틸러는 살수들에게 다시금 일장 연설을 하고는 혈련에게 몸을 돌렸다. 이제 아까 말했던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것’을 부탁할 차례였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혈련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살문의 문주였을 때라면 절대 보여 줄 수 없었을 테지만, 이제는 살문이 아니라 천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사내가 천문의 일대 문주 천존이니 거절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혈련은 잠시 숲 속으로 사라졌다가 작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수납함이다.
“이 안에… 있단 말인가?”
혈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안에 들어 있다. 정파들이 살문에게 주었던 모든 살수행에 대한 정보들이. 이것만 있으면 정파들을 끌어내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화산, 무림맹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장악하고 있는 화산파를 몰락시키는 것이었다.
“우선은 화산에 대한 것이 필요하니 화산에 대한 것부터 찾아 주게.”
혈련은 함을 열었다. 이내 수많은 문서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내부가 모두에게 드러난다. 혈련은 그 사이에서 두 장의 문서를 꺼내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틸러는 문서를 받아 들자마자 연랑에게 넘겨주었다. 틸러는 글을 읽지 못하지 않는가. 문서를 받아 든 연랑은 문서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경악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이, 이런! 공공수검(孔孔修劍), 와룡봉수(臥龍奉手), 능파선자(凌杷仙子), 부용미검(剖勇美劍), 검존, 도존, 권존, 독존, 점창… 해남……!”
읽어 내려가는 연랑뿐 아니라 은유의 얼굴에도 경악의 빛이 스친다. 모두 무림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다 실종된 협객들이 아닌가.
“정말 이들 모두를 살문에서……?”
연랑이 묻자 혈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살문의 치부라 할 수 있건만 그녀는 당당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의 그런 태도가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돈을 받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들이 어떤 명망 있는 자들을 암살했다 한들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것이면 충분하군. 내일 바로 떠나도록 하세.”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틸러의 얼굴에서 사악한 빛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제6장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는 나더라(1)


화산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네 개의 마을을 거쳐 가야 하고 섬서의 성도인 서안(西安)도 거치지 않으면 갈 수 없었다.
“오라버니, 저 살수들이 정말 과거의 습관들을 버리고 천문의 무인들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연랑은 며칠째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틸러에게 연신 물어 왔다. 하지만 틸러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올려다보던 눈빛에는 거짓이 없었던 것이다.
“걱정 말거라. 장차 그들은 무림 최고의 무인들이 될 테니.”
하지만 정작 틸러의 걱정은 그것이 아니었다. 불편한 잠자리와 요 며칠 계속된 무리가 화근인 듯했다. 마력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몸속에 미약하게나마 흐르던 마력의 줄기가 완전히 고갈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 잠을 푸욱 자고 일어나야 할 텐데,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이거, 이럴 때 공격받으면 위험할 텐데…….’
휘령도 있고 은유와 연랑도 있다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무림이란 곳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이 아니던가.
화산으로 가는 길목 중 처음으로 들른 마을은 한중. 사천과 감숙, 멀리는 중경까지의 길목을 담당하는 중요한 마을이다. 틸러는 이 마을에서부터 계획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사 왔소?”
“응. 근데 개똥, 이건 뭐에다 쓰려고?”
은유는 종이와 먹, 붓을 들고 방의 탁자로 다가왔다. 틸러는 살문에서 가져온 명부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 쓰인 대로 적어 주십시오. 그리고 밑에 ‘화산의 비리’라고 쓰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아참! ‘천존’이라고도 써 주세요.”
“알았어. 쳇! 여러모로 귀찮게 한다니까.”
은유의 글씨는 아름다웠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 나라의 글씨는 한 획 한 획을 그어 갈 때마다 쓰는 이의 기백이 느껴지는 듯했다. 글자들은 매우 복잡하고 뜻을 알기도 어려웠지만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은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은유의 글씨도 그런 것이어서 한 자 한 자 힘 있게 그어 가는 모습은 아름다움과 강함을 두루 겸비한 모습이었다.
한참 만에 열 장이 넘는 글을 모두 써 낸 은유. 그녀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을 스윽 닦으며 틸러를 바라보았다.
“다 했어.”
“역시 은유 소저로군요. 글씨도 이렇게 아름다우니.”
은유는 실소를 내뱉으며 틸러를 밀쳐 냈다. 그래도 틸러의 칭찬이 싫지 않은 듯 아까보단 행동이 더욱 나긋나긋해졌다. 그런데 연랑이 조금 토라진 것 같아 보이는 것은 틸러의 착각이었을까?
“오늘 밤까진 푹 쉬도록 하세요. 오늘 밤에 볼일을 보고 바로 출발하도록 할 테니.”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오는 듯 재빨리 말을 뱉어 낸 틸러.
이내 그의 숨소리가 잦아들자 다른 이들도 저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눈을 붙였다.
밤이 되자 틸러와 나머지 일행들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다른 이들은 무공을 수련했기에 두 시간, 그러니까 한 시진 정도만 수면을 취해도 충분히 피로를 풀어낼 수 있었지만 틸러는 그것이 아닌 듯하다. 평소보다 더 피곤해 보인다. 게다가 틸러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마력이 모이지 않아, 젠장!’
그야말로 큰일이다. 마력이 모이지 않는다면 도검에 대한 방어책도 세울 수가 없고, 마법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혹시나 해서 몰래 황금잔에 물을 부어 마셔 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왠지 몸 안에 흐르는 무언가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왼쪽 가슴의 심장 부근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인 것이, 무엇인가 마력의 흐름을 막고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마력을 무리하게 사용한 탓인 듯하다.
“왜 그러세요, 오라버니?”
틸러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자 연랑이 물어 왔다. 하지만 틸러는 능청스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어섰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 마을에 대자보를 붙일 만한 곳이라든가 게시판 같은 곳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네. 아까 보니 마을 곳곳에 붙일 만한 데가 있던데요? 그것은 왜……?”
틸러는 씩 웃으며 밖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밥그릇이 의미심장한 빛을 발했다.
“저, 정말 이래도 될까요?”
틸러는 게시판에 아까 작성한 문서를 붙이고 있었다. 밥풀을 종이 뒤에 으깨 붙이니 나름대로 모양이 났다.
“걱정 말거라. 곧 섬서뿐 아니라 무림의 모든 이야기꾼들이 이 일을 알게 될 테니.”
대자보를 곳곳에 붙이는 틸러의 뒷모습을 보며 여러모로 감탄하는 은유와 연랑, 휘령이었다. 천존은 지금 군중의 힘을 등에 업으려 하고 있는 것이니, 어찌 대단해 보이지 않겠는가.

다음 날. 마을은 각 지역에서 온 장사치들과 무림인들, 그리고 시민들의 웅성임으로 떠들썩했다. 그들은 마을 곳곳에 붙어 있는 대자보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비리를 지금까지 화산이 저질러 왔소. 그에 대한 죗값을 물으려 하오. ―천존.’

글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은 대자보 끝에 붙은 ‘천존’이라는 글자에 놀라워하고 있었고,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은 천존이라는 이름을 전해 듣고 감탄했다. 그만큼 그들에게 천존이란 존재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천존이 화산을 멸할 것이다!’
한중에서 시작된 이 소문은 천천히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오라버니, 정말 괜찮으세요?”
“아? 그래, 괜찮다.”
연랑은 틸러가 몹시 걱정스러운 듯했다. 까만 눈 가득 걱정을 품고 틸러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자 틸러는 애써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 여자아이를 보고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랑이 열여덟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틸러였으니, 언제나 연랑의 첫 번째는 틸러가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천존, 정말 이렇게 해서 괜찮겠소? 앞으로 가는 마을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꼬리를 밟히기 마련이오.”
틸러는 걱정 없다는 듯 휘령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꼬리가 밟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장안, 혹은 서안에 그들이 도착했을 즈음에야 화산의 무리들이 그들을 따라올 것이다. 서안에 있을 때 화산의 무리들을 만난다면 더욱 환영이다. 몇천, 몇만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힘을 보여 줄 수 있지 않은가.
“에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틸러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때까지 마력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정말 큰일이다. 천존이라는 자신의 이름은 땅으로 떨어지고 타지에서 개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은 최대한 몸의 이상을 찾아내는 것에 주력하자.’
틸러는 화산을 향해 길을 가는 틈틈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운기조식이라 부르는 무림인들의 그것과 형태는 비슷하나, 실상 내용은 전혀 다른 마법사들만의 정신 수양법. 틸러가 그것을 할 때는 주위 누구도 그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운기조식을 할 때도 그렇지만, 명상 중에 육체적인 자극을 가했다가는 심마, 혹은 주화입마라 하는 것에 걸리기 마련이다. 그것은 운기조식과 정신 수양법 둘의 공통적인 폐해였다.
‘분명히 자연의 기운은 내 주위를 돌고 있는데 말이지. 염병할! 왜 안 되는 거냐고!’
틸러는 속으로 연신 욕을 내뱉었다.
분명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몸 주위를 돌고 있는 마력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것들이 전처럼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전에는 심장, 머리, 손바닥 등으로 조금씩 흘러들어 오던 것들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조금 더 정신을 집중해 보니 오른손 쪽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황금잔의 기운? 아니, 조금 다르다. 황금잔의 기운인 것은 맞지만 지금까지의 느낌과 조금 다르다.
황금잔의 기운은 끝없이 자신의 몸속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온몸을 감싸 안고 있어 다른 마력들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있다.
‘이 황금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마력을 막아 버리면 어떡하자는 것이냐!’
틸러는 다시 불만을 토로하며 조금 더 내면의 세계로 들어왔다. 그러자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황금잔의 기운은 자신의 머리와 복부, 다리를 지나 심장을 지나려고 하는데, 심장 쪽에서 자꾸 막히고 있었다. 기운이 막힌다. 그것은 곧 자신의 혈맥이나 마력이 이동하는 혈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 심장 쪽에서 막히는 것이 문제로군, 제길! 이 황금잔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마력과 성질이 비슷한데 마력으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단 말이야. 존재감은 더 미약하고.’
황금잔의 기운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인 듯했다. 그동안은 틸러의 마력에 밀려 황금잔 안에만 갇혀 있다가 그가 마력을 무리하게 사용하여 마력의 흐름이 약해지자 틸러의 몸을 점거해 버린 것이리라.
“으음…….”
상념에 빠지자 이내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미약해지더니 끝내는 아예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틸러는 숨이 조금 가빠 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은유와 연랑이 그의 양옆에 앉아 그를 걱정스럽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찌 보면 행복한 광경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이 자신을 반짝이는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두 미녀라니.
“개똥, 요 며칠 새 조금 이상해?”
은유가 그녀답지 않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을 건네자 옆에서 연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틸러는 그런 그녀들의 시선을 스윽 피하며 뒤로 몸을 눕혔다.
“괜찮소. 하암! 피곤하니 오늘은 이만 자야겠구려.”
“네에.”
“응.”
틸러는 양팔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은유가 그의 오른팔에, 연랑이 그의 왼팔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지 않은가!
‘캬아! 여기가 침상이었다면 천국이었을 텐데!’
순식간에 두 여자아이와 함께 눕게 된 틸러는 몇 년 후면 이루어질 행복한 상상을 하며 왼쪽에 기댄 연랑의 볼을 간지럽혔다. 이내 연랑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두 여자아이는 경쟁이라도 하듯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든다. 어느새 침낭까지 위로 슬금슬금 올라온다.
‘뭐, 이대로 있는 것도 괜찮나?’
행복하다는 듯 자신의 팔을 베고 있는 두 여자아이들을 보며 음흉함 반 흐뭇함 반이 섞인 미소를 짓는 틸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