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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법사 1권(18화)
제6장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는 나더라(3)
“으음, 이상하게 귀가 간지럽네.”
틸러는 풍문객잔(楓門客?)의 숙소에서 귀를 파고 있었다. 자신들을 보며 웅성거리는 시민들 사이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바로 객잔으로 피신한 것이다.
“그런데 오라버니, 아까는 어떻게 된 것인가요?”
연랑은 은유의 머리를 빗질해 주다가 물었다. 틸러는 그제야 아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혈맥이 다 뚫리고, 터져 버릴 듯 마력이 가득 차올랐었다. 말을 들어보니 온몸에서 황금빛 광채까지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어째서 마력의 양은 늘어나지 않은 걸까. 게다가 이 황금잔의 마력은 밖으로 뿜어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이거 원. 쩝!’
온몸의 혈맥이 타통되어 마력의 저장소가 늘어났다고 해서 그의 마력량이 늘어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미미하게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방대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전에는 존재감도 희미했던 그 황금잔의 마력이었다. 이것들은 온몸을 빠른 속도로 순환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몸의 신진대사를 상당히 빠르게 해 주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게다가 발산하면 극한의 살기로 돌변하니 이 또한 좋지 않은가. 다만 그뿐이다. 그 외에는 쓸모가 없다. 그저 두 가지 용도로 혈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마력은 왜 늘어나지 않는 것일까. 이리도 마력 저장고가 늘어났는데도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바로 틸러의 자연 친화력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었다. 자연과의 친화력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고 남을 속이려 하지 않는 것. 무위자연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가장 간단한 방법이 틸러에게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욕심을 버리고 속이지 말라니, 턱도 없는 소리다.
‘옌장!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력을 조금이라도 더 저장할 수 있는 거냐고.’
“제길……!”
틸러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으려다가 간신히 입을 수습했다. 도무지 틸러의 머릿속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 답답해 미칠 지경인 것이다. 결국 틸러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죽을 뻔했는데 살아나고 몇 가지 능력도 얻었으니, 그게 어디겠어. 옌장, 이렇게라도 생각하자!’
하지만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틸러만이 아니었다. 휘령은 진지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천존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인데, 벌써 이번 일만 해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했다. 고작 일류고수 여섯, 일곱을 당해 내지 못해서야 천존의 호위라 할 수 있겠는가. 그 탓에 이번에도 천존 본신의 힘으로 적들을 물리치지 않았는가.
‘강해져야 한다, 더욱더! 지금보다 더욱더 강해져서 천존의 호위임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파마적룡도의 날을 다듬는 그의 눈빛이 단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은유는 머리 정돈을 끝내고 연랑의 머리를 땋아 주고 있었다. 이미 둘은 자매와 같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서로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나름의 방법으로 서로를 아껴 준다. 물론 틸러에 관한 한 둘은 연적이라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들이 이리도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내일 화산에 오르기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천존이 있다고는 하나 고작 넷이서 화산으로 간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틸러는 화산에서 암수를 쓸 수 없게 할 방도를 조금 생각해 둔 터였다.
그 열쇠는 바로 지금 객잔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시민들이었다.
다음 날 아침, 틸러는 창문을 열어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부터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객잔 앞에 죽치고 있던 시민들이 여전히 객잔 앞에서 아침을 먹고 있지 않은가. 점소이는 이렇게 장사가 잘되었던 적이 없었다는 듯 밝은 얼굴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틸러는 위풍당당하게 소리쳤다. 시민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순식간에 돌아간다. 그들은 천하의 천존이 자신들을 이렇게 자연스레 대할 줄은 몰랐던 듯하다.
“예! 좋은 아침입니다!”
몇몇 시민들이 손을 흔들며 답하자 틸러도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눈에 붙은 눈곱을 떼어 내며 소리쳤다.
“화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큰일을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듯 가벼이 말하는 틸러.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선 화산이 자신에게는 별것 아니며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과연 시민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다가 불만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아, 거 니미럴! 화산인지 화성인지 어찌나 거들먹거리는지.”
“맞소! 어깨에 힘주고 지나다니는 시민들이나 툭툭 치고 다니는 게 한량과 다를 바 무어요?”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니, 평소 화산파 문도들의 행실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이들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
“그럼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순간, 떠들어대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뚝 멈추었다. 그들의 눈에는 감히 우리 따위가 화산파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의 눈빛이 담겨 있었다.
“제 뒤를 따르십시오. 아무도 여러분의 앞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시민들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틸러를 올려 보고 있었다. 하지만 틸러의 눈빛은 완고하다. 진실되게 빛나고 있다.
“에이, 씨펄! 그래, 뭐. 그 화산인가 하는 놈들이 무릎 꿇는 걸 보여준다는데 뭐가 무섭겠소!”
“그래! 내 화산 장문이 설설 기는 모습을 보면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갈 것 같네그려!”
한두 명이 못 참겠다는 듯 일어서자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일어나 천존을 연호했다. 틸러는 그런 그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는 다시 방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 일어났는지 휘령과 은유, 연랑이 저마다 채비를 하고 있었다.
“…….”
휘령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이번에는 제 역할을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오라버니, 어서 가요.”
연랑은 틸러의 왼팔을 껴안으며 소리쳤다. 그녀의 손에는 천이 두툼하게 칭칭 감겨 있었다. 그녀는 오늘만큼은 진지하게 싸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은유, 휘령과 비교했을 때 가장 무공의 수위가 낮은 연랑이기에 조신하게 말하는 가운데에서도 눈빛에서 강함에 대한 열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은유는 그야말로 복수의 화신. 눈에서 금방이라도 이글대는 불길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소저, 가실까요?”
틸러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은유는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듯했다.
“그래, 가자! 개똥.”
그녀는 사일검이 자신의 허리춤에 제대로 차여 있는지 다시금 확인하며 일어섰다. 틸러는 자신의 도포를 매만지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객잔 밖으로 나서자 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그를 반긴다.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금빛 장발과 금빛의 눈, 새하얀 얼굴과 남자다운 이목구비. 천자(天子)의 모습이 이렇지 아니하다면 그 누가 하늘의 자식이며 지상의 지존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는 따스한 웃음을 지으며 도시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뒤로 은유, 연랑, 휘령이 뒤따르고, 또 그들의 뒤를 시민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저마다 하루 이틀 치의 식량을 짊어진 채로 말이다.
서안에서 화산까지는 도보로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하는 고된 길이었다. 경공을 쓰면 두 시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이지만 시민들을 달고 있으니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오라버니, 정말 괜찮을까요? 이리 많은 군중들을 데리고…….”
연랑은 자신들의 뒤를 따르는 시민들에게 혹여 피해가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심성이 참으로 고운 아이다. 틸러는 그런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 말거라. 내 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마.”
연랑은 그제야 안심된다는 듯 웃었다. 틸러의 한마디 한마디는 연랑에게 법과 같은 것이었다. 몇 달간 함께 다니면서 연랑은 틸러를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물론 과정이 어찌 되었건 그 의도가 어떻건 틸러는 연랑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않은가.
화산에서는 그들이 도시를 떠나 화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쯤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방책을 세우건 틸러로서는 상관이 없었다. 화산파도 일단 정도의 길을 걷는 문파인 이상, 이렇게 많은 시민이 함께하는 틸러 일행의 앞에 함정을 설치할 수도 없을 것이며, 또 살상력과 범위가 매우 큰 무공이나 혹은 벽력탄 같은 것들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이들 중 첩자가 섞여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상관없었다. 몸 안의 황금잔의 마력이 자신을 어느 정도 보호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밤이 되어 휴식을 취할 때가 되자 휘령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운기를 하고 있다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는 지금 마음속으로 일곱의 적과 싸우고 있다. 한결같이 화산의 일대제자들이다. 각자 일곱 방위를 점하고 공격해 올 때 자신은 어찌 대처할 것인가.
심무결(心武結). 마음을 갈고닦는 무공. 이는 외적인 근력의 증가보다는 간접적인 경험과 내공, 그리고 위기 시의 대처 능력 같은 실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직접적으로 키워 주는 명상법이었다. 수련하는 방법이 까다로워 많은 이들이 사용하지는 못하나, 일단 의지대로 무의식을 조종할 수 있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련 방법이 된다.
틸러도 알게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화산파가 검의 명가라고는 해도 권법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전혀 발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 그런 점에선 항상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조금 걱정되는 것은 화산파 장문인에게 자신의 살기가 통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 황금잔의 기운을 사방으로 발출하는 것은 극상의 살기를 분출해 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매우 진한 살기는 혈맥을 진탕시키고 내공을 상쇄시킨다. 그렇다면 상대는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몸을 가누는 것조차도 힘들게 되어 버린다.
틸러는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화산파 장문인의 내공이 심후할수록, 혈맥이 더욱 잘 타통되어 있을수록 살기의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우!”
어느새 틸러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자연의 기운을 느낀다. 주위 사람들의 기운들도 느껴진다. 저마다 특색이 있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품은 것, 강함으로 부드러움을 보호하는 것들, 그저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들……. 저마다의 인생살이에 따라 풍기는 기운의 느낌도 다르다. 하지만 자연의 것은 똑같다. 어디서건, 이 세계에서건, 자신이 속했던 세계에서건 자연의 느낌은 똑 같았다. 언제나 한결같은 것, 그것이 자연이다.
온몸에 자연의 기운이 충만해진다. 그것이 스스로의 진기와 어우러지면서 마력으로 환원되는 것이 느껴진다. 비록 그 양은 많지 않으나 기분이 서서히 좋아진다. 그 자연의 마력이 황금잔의 마력과 함께 온몸 구석구석을 순환하기 시작한다. 길이 넓어진 탓인지 전보다 한층 거침이 없다. 예전에는 갈 수 없었던 몸속 깊숙한 곳까지 마력이 스며든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높지 않은데도 이 정도의 느낌이 오는데 친화력이 극대화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굉장한 것일까.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마치 우주를 떠다니는 것 같다고 하셨다. 마력을 받아들이고 자연의 기운을 느낄 때는 그야말로 한 마리 새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다닌다 했으니, 그 경지가 어떤 것일지 그저 상상으로나마 즐기는 틸러였다.
마력이 모여들자 겁날 것이 없어졌다. 아무리 미약하다 하나 자신의 마력이다. 자신이 운용할 수 있는 자연의 힘이고, 스스로의 진기다. 어찌 뿌듯하지 않겠는가.
틸러는 기필코 화산을 끌어내리고 무림맹에 혼란을 가져다주겠다고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반나절을 꼬박 걸어야 하는 고된 행군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밝은 얼굴로 틸러의 뒤를 따랐다. 가장 앞에서 걸어가는 천존이 아무런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데, 그들이 힘든 내색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생각한 듯했다.
틸러는 품속에 들어 있는 1클래스 마법서를 쓰다듬었다. 잘 부탁한다, 녀석. 이번에는 어떤 마법이 쓰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녀석이 꼭 한 번은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다.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르자 저 멀리서 화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원오악 중 서악이라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다.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 있는 산들이 그 험준함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화산은 선인, 낙안, 연화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이 올라야 할 곳은 연화봉. 연화봉은 화산파의 본문이 있다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독야청청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나머지 두 봉우리와 달리 작은 봉우리들이 마치 상전을 떠받들 듯 솟아 있었다. 그런 만큼 오르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 다들 힘냅시다!”
틸러는 시민들을 격려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의 마력과 황금잔의 마력이 순환하는 몸이기에 쉽사리 피로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황금잔의 마력이 몸의 움직임을 도왔다. 이런 면에서 이 마력은 매우 쓸 만했다.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연화봉은 산세가 특히 험악하다고 했어요.”
연랑이 틸러를 걱정하듯 말했다. 틸러는 도리어 연랑이 걱정이라는 듯 그녀의 팔을 꽉 감아쥐었다.
산 위로 한 걸음씩 내딛는 그들의 뒷모습이 유달리 늠름해 보였다.
“산 아래에 와 있단 말이오?”
임호충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영환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조심스레 화산파 장문인의 동태를 살폈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차라리 잘되었구려. 이참에 만인이 보는 앞에서 내 그 천존이란 자를 끝장내리다. 진인을 사칭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하늘의 제왕임을 칭하다니. 게다가 근거 없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도 용서할 수 없소!”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닐 텐데.’
영환중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깍듯이 모시라던 그 천존이건만, 돌아서자 완전히 없애 버릴 계획을 짜고 있는 저 늙은이가 역겨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 늙은이의 무공 수위는 상당했기에 반감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결국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온 영환중.
“어쩌면 오늘이 화산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뭐, 그게 아니라면 천존이라는 희대의 사기꾼 하나가 죽은 날밖에는 되지 않겠지만, 후후.”
자조와 혐오가 섞인 웃음을 지으며 복도를 가로질러 사라지는 영환중의 뒷모습이 몹시 초라해 보일 따름이었다.
틸러와 시민들은 기어코 화산파의 정문 앞까지 걸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산 위에 이런 고풍스러운 집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내 틸러 일행의 앞을 두 명의 문지기가 가로막았다.
“멈추시오.”
“천존이 왔소. 이미 장문께는 통보를 했으니 길을 비켜 주시오.”
틸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화산파의 문지기들은 도리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뱉어냈다.
“이곳이 어딘지는 알고 하는 말이오?”
“알고 있으니 이 험한 길을 돌아 이곳까지 오지 않았겠소. 그대야말로 천존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소?”
오히려 틸러가 되물었다. 이 주객이 전도된 듯한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던 문지기들은 이내 손에 든 검을 굳건히 고쳐 쥐었다.
“지나갈 수 없소. 문주님의 허락이 떨어진 적이 없소.”
“그래요?”
틸러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 순간, 휘령과 은유, 연랑은 틸러의 뒤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틸러의 앞에는 절대 서 있으면 안 된다.
화아악!
“히이익!!”
마치 주위가 물결치는 듯한 엄청난 살기가 틸러의 고개가 돌아가는 범위로 퍼져 나갔다. 그렇기에 그의 뒤를 따르는 시민들에게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문지기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비켜 주시오.”
틸러는 여전히 조용하게 말했다. 하지만 문지기들은 이미 그의 말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