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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법사 1권(23화)
제7장 꼬리가 길어도 안 밟힌다(4)


좌중에서 비난의 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그럴 것이 공동파라 하여 도를 수련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검을 들고 거들먹거리며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었던 것을 시민들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천존은 이미 하늘이 내려 준 기인으로 정평이 나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틀린 점이 없으니, 자연히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틸러는 좌중이 자신의 편인 지금, 몇 마디로 더 도발을 하면 확실히 공동이 자신의 적이 되리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호탕하게 웃고는 외쳤다.
“마도의 무리? 마도의 무리라 하시었소? 그럼 사람을 시켜 물건을 훔쳐 오게 하는 것은 정도의 무리가 해야 할 행동이구려?”
“이, 이익……!”
도사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듯 신음을 내뱉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기수식을 취하며 소리쳤다.
“마도의 무리를 용서하는 것은 도사로서의 도의가 허락하지 않을 터! 각오하시오!”
이쯤 되면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도사들은 어딘가 절박함이 느껴지는 몸놀림으로 틸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틸러에게 달려들기도 전에 붉은 도를 든 사내가 그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탈혼격!”
휘령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내 파마적룡도에 맺힌 불길이 도사들에게 떨어져 내렸다. 도사들은 검을 들어 막아 내려 했지만 도에 실린 힘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쩌어엉!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도사들은 부러진 검을 망연자실한 듯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붉은 도를 볼 수 있었다.
“히이익!”
도사들은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날려 도를 피해 냈다. 하지만 그 탓에 땅바닥을 구르는 망측한 자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도사들은 재빨리 다시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라지면서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두고 보시오!”
틸러는 의기양양하게 군중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이렇게 만인 앞에 공표했으니, 이제 공동파에서도 긴장을 하고 자신에 대한 대비를 시작할 것이다. 공동파를 뒤엎을 결정적인 하나. 틸러는 어떻게든 그 하나를 찾아내겠다고 다짐하며 감숙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무어라? 천존의 뒤를 캐내려다 실패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많은 군중들 앞에서 개망신까지 당했단 말이오?”
구천도장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다섯 도사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소식이 아닌가. 이제 중원에서 천존의 다음 목표는 공동이라는 소문이 퍼질 테고, 또 공동의 치부라 할 수 있는 나쁜 소문들까지도 흉흉히 돌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일합과 검을 겨루고 도망 왔다, 이 말이오?”
“며, 면목이 없습니다.”
구천도장은 뒷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사라는 자들이 이리도 멍청해서야 도대체 어디에 써먹는단 말인가.
“알았소. 나가 보시오. 용화도장 들라 하시오.”
“예, 예에.”
다섯 도사들이 문을 열고 나가자, 이내 수려한 용모의 도사 한 명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우윳빛 피부가 여간 미남이 아니다.
구천도장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는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부드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준비는 잘되어 가오?”
용화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합팔괘진(六合八掛鎭)의 설치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제 천존이 오더라도 쉽게 본관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구천도장은 믿음직스럽다는 듯 용화도장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하지만 아직 뭔가 꺼림칙하다. 상대는 천존이지 않은가.
“혹시 모르니 삼절검진(三絶劍鎭)의 수련도 게을리 하지 말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용화도장은 공동에서 알아주는 후기지수였다. 검의 경지는 이미 상당한 위치에 올라 있었고, 단정한 용모와 깨끗한 행동은 주위 도사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구천도장이 아니기에 항상 일이 있을 때면 용화도장과 이야기를 하곤 했다.
“천존 녀석, 공동이 네 무덤이 될 것이다!”
천존을 죽이고 무림맹의 맹주 자리에 오르는 것은 자신이다. 구천도장은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망상에 잠겨 있었다.

한편, 장삼은 틸러와 함께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왜 이러십니까요! 저도 함께 따르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틸러는 그의 부탁을 한사코 거절했다. 그가 따라다닌다 해서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부탁하고픈 일이 있지 않은가.
“자네는 객잔으로 돌아가게. 그리고 내 긴히 부탁할 일이 있으니 걱정 말게.”
“일이요?”
장삼은 그제야 틸러가 자신을 버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을 반짝였다. 그는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듯 틸러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이 길로 객잔으로 돌아가 정보를 수집해 주게. 점소이의 기본 아닌가? 여기저기서 정보를 수집해서 내가, 혹은 우리 문파의 무인들이 그곳에 들를 때마다 수집한 정보를 전해 주게나.”
점소이는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무림인들의 은밀한 이야기는 객잔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쯤은 장삼에게 들러 무인들의 관심사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장삼은 고개를 끄덕이곤 갈림길의 왼편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은 감숙과 사천으로 가는 교차로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것이다. 장삼의 모습이 저만치로 사라져 가자 은유가 그제야 속이 시원하다는 듯 소리쳤다.
“도둑놈이 없어지니 이제야 맘이 놓이는군. 끈질기기는 또 얼마나 거머리처럼 끈질긴지. 흥! 야, 개똥! 넌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난리냐?”
틸러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은유는 그런 틸러의 시선을 받자 얼굴을 붉히며 슬쩍 얼굴을 돌렸다.
“자, 이제 가 보실까요?”
든든한 정보통도 생겼겠다, 공동으로 가는 틸러의 발걸음엔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나의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하긴 했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 아니었던가.
한중에서 감숙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길이 구불구불하고, 때때로 끊어져 있어서 길을 잃어버리기 쉬웠던 것이다. 전에 한 번 왔었던 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일도 이런 식이라면 쓰러져 버릴지도 몰라.”
은유는 몇 년간 할 고생을 하루 동안 다 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힘겹게 자리에 누웠다. 연랑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주물렀다. 자신도 힘들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한편, 휘령과 틸러는 또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눌러 보게.”
“…….”
틸러는 황금잔의 마력을 어느 정도 억제했을 때부터 자신의 신체가 강해지는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씩 마력의 순환을 막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를 살펴보았다. 휘령도 여러모로 신비한 체험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신체가 갈수록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는 게 쉬운 일인가. 보통 무림인들은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신체를 단련시키는데 말이다. 몇 시진에 걸친 실험 끝에, 틸러는 마력의 순환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 느려지면 그때부터 몸이 단단해지며, 완전히 멈추었을 때는 검이나 도라 하더라도 상처를 입힐 수 없게 됨을 알아냈다. 이제 상대에 따라 그때그때 확실한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휘령은 멀리서 느껴지는 살기를 감지하고는 재빨리 일어섰다. 은유와 연랑도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살기를 느꼈는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순수한 살기. 이내 저 멀리에서 붉은 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늑대.”
연랑이 긴장한 듯 중얼거렸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에 가까운 늑대들이다.
“어째서 늑대들이 이런 곳에……?”
휘령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늑대들은 보통 산을 타고 다니지 않던가. 게다가 이렇게 주위에 어떤 엄폐물도 없는 곳을 마구 돌아다니고, 대놓고 살기를 뿜으며 무리 지어 다니는 동물이 아니었다.
은유는 예리한 눈빛으로 늑대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내 은빛으로 털이 빛나고 다른 늑대들보다 덩치가 큰 늑대가 은유의 눈에 들어왔다.
“이 녀석들, 어딘가에서 사육되고 훈련된 녀석들이야.”
은유는 틸러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틸러는 그제야 은유가 가리키는 은빛 늑대를 바라보았다. 귀에 작게 고리가 매여 있고 그 끝에 붉은색의 종이가 달려 있다. 게다가 늑대의 발톱과 이빨은 마치 갈아 놓은 듯 날카롭게 빛났다.
“하지만 누가 늑대들을 길들일 수 있단 말입니까?”
늑대는 야성이 강하다. 개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개와는 차원이 다른 힘과 속도, 그리고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늑대들이 인간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녹림이마(綠林二魔)…….”
휘령이 짚이는 데가 있는 듯 중얼거렸다. 녹림이마. 오대사파 중 한 축을 차지하는 녹림채의 우두머리들로, 형은 거도(巨刀)를 사용하는 패도적인 무공을, 동생은 늑대와 여우, 호랑이, 코끼리 등을 조련해서 수족처럼 부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정파들에 의해 령하(寧夏)로 물러나 지금은 조용히 세력을 키우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녹림이마가 기르는 늑대들인 것이 확실했다. 저 귀의 고리는 녹림채의 무리들이 모두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이 키우는 늑대가 이곳에?”
연랑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휘령은 도에 내기를 불어넣으며 말했다.
“녹림의 이마(二魔)는 짐승들의 정신을 조종하여 그 짐승이 본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늑대들을 풀어 무림의 정세를 살피기 위함이겠지.”
하지만 그리 말하는 휘령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듯했다. 틸러는 녹림채라는 무리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현재 정파들에게 수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왜 무림의 정세를 살피는 것일까.
크르릉!
은랑은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그들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무리를 이끌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후우……!”
은유와 연랑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야생의 살기란 것은 사람의 진을 빼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휘령은 틸러에게 은밀히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잘하시었소. 앞으로 사파의 정탐이라 생각되면 절대 아무런 힘도 보여선 아니 되오.”
“어째서?”
틸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사파와 정파로 나누어서 무엇을 하자는 이야기인가. 게다가 지금까지 자신이 본 바로는 정파와 사파로 나눈 것이 별 의미가 없었다. 정파라 하여 정의로운 행동만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 않았는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소. 그뿐이오.”
휘령은 말을 마치고는 다시 자리를 잡고 누웠다. 이번에는 어떤 불의의 기습에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적룡도를 품에 안은 채로 말이다.
틸러는 왠지 무림맹주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길이 지금보다 험난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그들은 무도에 들어섰다. 그리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채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내일은 공동산을 오를 예정이니 말이다.
마을에 들어서 객잔으로 향하던 틸러는 게시판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웅성거리는 시민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
사람들 틈으로 들어선 틸러는 어이가 없다는 듯 게시물을 바라보았다. 먹으로 얼기설기 그려 놓은 그림은 자신의 얼굴이 분명했다. 그 옆에 쓰인 글씨는 읽지 못하겠지만 결코 좋은 뜻은 아닐 것이다.
“천하의 사기꾼 천존, 공동이 정파의 이름으로 심판하리라.”
연랑이 작은 소리로 읽어 주었다. 틸러는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정말 도사란 자들이 이리도 머리가 나빠서야. 이는 마치 자신에게 쳐들어와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만 같지 않은가. 게다가 사람들의 반응도 매우 좋지 않았다. 그들은 사기꾼은 천존이 아니라 공동이라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또 말을 들어보니 이런 대자보가 붙어 있는 곳은 이곳뿐만이 아닌 듯했다. 감숙의 모든 마을에 하나씩 붙어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았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편이라면 이런 짓을 해도 되겠지만 모두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뒤가 구리니 어떻게든 발악하는 것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천존인 자신은 지금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 명망을 얻었으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충분하군. 채비를 하고 내일 출발하겠네.”
시민들의 사이를 빠져나오며 이미 승리를 확신하듯 말하는 틸러였다.

마교들의 본부 마도전(魔度殿). 한때나마 찬란했던 사파의 역사를 보여 주듯 마도전의 모습은 웅장하기만 했다. 비록 흑룡강(黑龍江)이라는 변방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아직도 사파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그들을 한데로 묶어 주는 구심점이었다.
이 마도전의 대전(大殿)에 여섯 명의 무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용모를 지니고 있다. 그중 상좌에 앉아 있던 청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교의 교인들은 여전히 수련에 매진하고 있소. 무림의 정세는 어떠하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청년의 용모는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크고 또렷한 눈망울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고, 피부는 햇빛이라곤 본 적 없는 것처럼 희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청년의 양손만은 불에 달구어진 듯 갈색으로 익어 있었다. 이 청년이 바로 명교의 교주 화문익(火文益). 오대사파를 이끄는 거대 세력이자 마교라 불리기도 하는 이 명교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사악한 무리도, 사람을 산 채로 태우는 광신도들의 집단도 아니었다. 이들은 오로지 불을 숭배하고 불에 모든 것의 근원이 있음을 믿고 있는 종교일 뿐이었다. 그러면 이들이 왜 사악하고 간악한 사파로 이름이 알려졌느냐 하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사파와 정파라는 두 무리로 갈라진 것은 정사대전이라 회고되는 큰 전투가 있은 후부터였다.
당시 무림은 두 개의 무리로 갈라져 있었다. 현재 정파라 불리는 협과 의를 중시하는 문파들과 현재 사파라 불리는 힘과 무의를 추구하는 문파들. 이 두 부류의 문파는 서로 추구하는 바가 극히 달랐기에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치르게 된다. 결국 사파의 무리들은 전투에 패배해 무림의 외곽으로 밀려나고 현 무림의 정세를 정파라 불리는 이들이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파라 불리게 된 문파들은 사파들에 대해 좋지 않은 풍문을 흘려 그들에 대한 명망을 떨어뜨렸다.
사파의 무리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정파에게 복수하고 무림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힘을 모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화문익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녀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마가 무림의 정세를 둘러보고 왔다 하더이다.”
가녀린 여인이다. 한쪽 벽에 기댄 몸은 가냘파 보이기만 하고, 작은 얼굴에 교태가 있어 보이는 눈빛은 마치 남성들을 유혹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꽃은 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꽃의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가시 때문이다.
이 여인의 이름은 라빈(캟彬). 현 보타문의 유일한 계승자이자 문주였다. 보타문은 단 한 명의 무인으로 이루어지고 한 번에 한 명에게만 무공을 전수해 주는 신비한 문파였는데, 그 무공은 그야말로 극상승의 검법인지라 그를 막으려면 일류고수 수백이 달려들어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