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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Part 1 운수 좋은 날 (3)
‘피부암은 아니라고 의사가 말했단 말이다.’
나도 의심은 했었다. 아무튼 별로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라 나는 더더욱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미영이한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투둑― 툭―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져 내 얼굴을 때렸다. 예보에는 없었는데, 비가 오려나?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아무튼 비가 더 많이 오기 전에 저 녀석들이 들어가고 나도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말이다.
“아무튼, 내기는 내가 이겼지? 내가 안 올 거라고 했잖아? 아싸, 나 회비 굳었다!”
“아, 젠장. 미영이가 부르면 올 줄 알았는데, 남자 새끼가 미녀가 부르면 얼굴이 씹창이 아니라 거시기가 두 살짜리 같아도 튀어 와야지. 아오, 속 터져.”
“푸하하하, 뭐, 뭐가 두 살짜리 같다고? 너 여자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니가 여자냐? 미영이 같은 애를 보고 여자라고 하는 거다.”
“시끄러!”
내 이야기를 화제로 러브 코미디를 찍어 대는 두 연놈의 목소리가 내 주먹을 저절로 쥐게 만들었다. 뭐, 미영이 같은 애를 보고 여자라고 한다는 그 말에는 극렬히 동의하는 바이지만.
“아, 짜증 나. 혁규, 나도 담배 줘.”
“어라, 미영아, 너도 담배 피냐?”
“팔라 없어?”
음, 미영이?
방금 그건 미영이 목소리였다. 하지만 미영이답지 않게 좀 불량한 목소리와 대사였다. 내가 착각했나? 아니, 그 혁규란 사내 녀석이 분명 미영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나 담배 펴, 몰랐어? 넌 어차피 소희랑 사귀니까 니 앞에서는 내숭 안 떨 거야.”
“뭐야, 지금까지 죄다 내숭이었어?”
혁규란 녀석의 놀란 목소리, 하지만 내 심장은 그보다 더 놀라 있었다.
‘내숭 안 떠는 미영이도 멋져!’
순결한 이미지의 미영이의 모습들만 가득했던 내 머릿속에 짝 달라붙는 가죽옷에, 입에는 담배를 물고 채찍을 손에 쥔 미영이의 모습이 추가되었다. 아, 또 코피가 나올 것 같아. 아니, 그보다 근데 미영이 기분이 역시 안 좋은 것 같다. 나 때문이겠지?
“푸훗, 몰랐지? 미영이 얘랑 나랑 룸메잖아? 진짜 장난 아냐. 애들 앞에서 막 얼굴 뒤바꾸고 호호거리는데, 나 처음에 쟤 본색 알고 학교에 같이 갔을 때 옆에 있는 애들이 나보고 입덧하냐고 그랬어. 구역질이 나서 참기가 어렵더라고, 푸하하하!”
“시끄럽고 불이나 줘 봐. 아, 그 찌질이 새끼, 내가 전화로 애교까지 떨고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는데 결국 안 왔단 말이지. 아, 짜증 나!”
……응?
“킥킥, 미영 씨, 그럼 그 향수는 내가 갖는다?”
“아, 맘대로 해. 그 찌질이 괴물 새끼 내일부터 아는 척하나 봐라.”
……뭐?
“조심해. 그런 애들한테 잘해 주면 막‘완전한 사육’ 같은 거 찍으려고 달려드는 거라니까? 너 고백이라도 받아 봐. 얼마나 쪽팔리겠어? 안 온 게 잘된 거야. 이 기회로 쌩 깔 수 있잖아.”
“야, 아무리 찌질이래도 남자는 남자야, 걔가 억지로 찍어 누르면 너 못 이긴다?”
그 말에 미영은‘음―’ 하고 고민하더니 이내 손뼉을 짝 쳤다.
“그도 그렇네. 차라리 잘됐어. 이 기회에 그냥 쌩 까는 게 좋겠다.”
아…….
“그래, 그래라. 남자인 나도 보면 토 쏠리는데, 너도 참 비위 장난 아니다. 으으, 그보다 니 내숭 나도 이제 거슬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올라가서 내숭 떠는 모습을 어떻게 다시 보냐.”
“왜 그래, 혁규야. 내숭이라니, 그런 거 난 모른단 말이야.”
“으악, 토 나와! 야, 너 짜증 나!”
“푸하하하하―”
그렇게 세 명은 깔깔 호호 하하, 하며 즐겁게 계단을 통해 2층 술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벽에 붙어서 꼼짝하지 못했다.
주르륵―
아, 진짜 참으려고 했는데, 참으려고 했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른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은 많이 썼었지만, 중요하진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미영이만은, 그렇지 않은 줄 알았다. 저 애는 겉모습에 상관없이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내기라고? 날 가지고 내기를 했다고?’
아―
죽. 고. 싶. 다.
오랜만에 진짜로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으면 엄마가 슬퍼하겠지?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가자. 이 청색 셔츠는 버릴 거야. 오늘 처음 입은 건데, 아깝네.
후두둑― 투둑― 쏴아아아―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소나기였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굵어진 빗줄기가 내 온몸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후우, 어쩐지 오늘따라 운수가 좋더라니.”
Part 2 자살 여행 (1)
방학이 되었다.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온 나는 은둔형 외톨이 모드에 돌입했다. 그렇다고 엄마한테‘이 아줌마야! 문 열지 마!’라거나‘방 앞에 놓고 가! 날 좀 내버려 둬!’라고 외치며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아니었지만, 화장실을 갈 때나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방 밖에 나서는 일이 드물었다.
“철수야, 방학인데 친구를 만나든지, 알바라도 하든지, 날씨도 좋은데 그러는 게 좋지 않겠니?”
엄마는 내게 좋은 말로 집 밖으로 나갈 것을 권유하셨다. 엄마의 걱정스러운 얼굴은 당장 나가! 하고 빽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큰 효과가 있었다.
‘아, 엄마.’
난 밥을 다 먹고 방에 드러누워 베갯잇을 또 적시고 말았다. 이미 베갯잇은 몇 번이나 젖었다 말랐다 해서 얼룩이 져 있었다. 엄마를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왔다.
‘못난 아들 때문에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등골이 휘어져라 일하는데…….’
우리 엄마는 미인이다.
그리고 아직 마흔셋밖에 되지 않으셨다. 게다가 동안이라 남들은 삼십 대 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줄 알며, 모르긴 몰라도 아직까지 대시하는 총각들이 있다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 엄마가 밥을 먹으며 자랑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우리 엄마는 스물세 살 때 나를 낳으셨다. 그러곤 스물네 살 때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고 하시니, 속도위반 결혼이었던 것 같다. 한창 놀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나이에 나를 낳고, 아버지까지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신 뒤로는 여자로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혼자 나를 기르셨다.
‘나만 없으면 더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나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허우대도 멀쩡하지가 않다. 팔다리는 다 붙어 있어서 다행이지만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로 제 방 밖도 잘 안 나가려고 하는 못난 놈이다.
‘나만 없으면 우리 엄마는 더 행복할 텐데.’
내가 없어지면 우리 엄마는 슬퍼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낳았으니까, 자식이니까 하는 책임감으로 모든 걸 희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걸 방학 직전에 배웠다.
‘나만 없으면 정말 우리 엄마는 행복해질까?’
그럴 것이다.
애 딸린 미망인보다는 애 없는 미망인이 낫지 않는가. 게다가 엄마는 얼굴도 예쁘고 어려 보이니까 분명 능력 좋고 멋있는 어린 남자를 낚아서 결혼도 하고, 나같이 괴물같이 생긴 놈 말고 진짜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만 없으면…… 돼.”
아무리 생각해도 나란 존재는 이 세상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고, 없어져도 무방한, 아니 없어져 주어야 할 그런 존재인 것 같다. 틀림없다. 잉여인간, 나를 표현하는 단어로 이처럼 적절한 게 있을까.
“사라지자. 사라져 버리자.”
나는 결정했다. 사라지기로.
“철수야, 정말 괜찮겠니?”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요, 엄마. 친구들이랑 같이 간다니까요?”
“그래도 너 외박은 처음이잖니.”
나는 짐이 든 가방을 추스르며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지만, 그 안에는 뿌듯함, 대견함 같은 감정도 서려 있었다.
“네가 친구들이랑 여행을 다 간다니, 별일이구나. 일주일이나 된다니. 에휴, 엄마가 괜히 걱정하는 건지 몰라도, 조심해서 다녀. 알겠지? 사람 조심하고. 그리고 정말 엄마가 돈 안 줘도 돼? 엄마 돈 있어!”
“아니에요. 이건 무전여행이라는 거에 의미가 있는 거라니까요?”
그 말에 엄마는 고집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요즘 무전여행이라고 진짜 땡전 한 푼 안 가져가는 사람이 어딨니? 자, 이거 가져가. 응? 이거 안 받으면 너 여행 못 가게 할 거야?”
엄마는 그러면서 꾸깃꾸깃한 오만 원짜리 두 장을 억지로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당신 물건 사실 때는 만 원짜리 한 장에도 벌벌 떠시는 분이, 내게는 아까워할 줄을 모르신다. 엄마, 그럼 마지막으로 받아 갈게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엄마, 그럼 갔다 올게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나는 등 뒤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솟아날 것 같아 이를 악물으며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태어나서 혼자 해 보는 첫 여행이네.”
그리고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
“나 기차 진짜 오랜만에 타 보네.”
기차역에 도착한 나는 생경한 기차역의 모습에 약간 움츠러들었다.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았지만 방학을 맞이해서 여행을 가려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하지만 전처럼 숨거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난 지금 청색 셔츠를 입고 있다. 버리려고 했지만, 버리지 않았다.
“부산, 부산…….”
내 여행 목적지는 부산이다.
부산 태종대.
자살바위.
자살의 명소다. 과거 한국전쟁 때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그 당시 피난민들에게 랜드마크가 되었던 곳이 영도대교였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서로 만나지 못했고, 영도대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자살바위는 그 영도대교와 맥을 같이한다고 한다. 가족을 만나지 못한 피난민들이 태종대의 이 자살바위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네이버 블로그 발췌.”
목적지를 정하기 전 잠깐 훑어본 자살바위에 대한 설명은 이러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멋진 경치와 안타까운 사연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행 명소이기도 했다. 즉, 꼭 자살을 하려고 가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난 좀 더 순수한 목적이 있지.”
그렇다. 난 그냥 구경이나 가자는 게 아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자살 여행이다. 이번 여행을 마지막으로 내 추악하고 슬픈 생을 마감할 예정이다.
‘엄마…….’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 자꾸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아까 오는 길에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 두었다. 받는 사람은 우리 엄마. 엄마한테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다. 편지가 도착하는 데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걸린다고 들었으니, 그 편지를 볼 때쯤이면 아마 난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잠시 후 부산역으로 향하는 기차가 들어오고, 나는 창가 측 좌석에 앉아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 가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처음, 처음이 참 많은 여행이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이 감겨 오는 걸 느꼈다.
‘죽는 것도 이렇게 편안한 거였으면 좋겠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부산역.
이렇게 큰 역은 처음 와 본 나는 약간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사람들 시선이 괴롭거나 숨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죽기로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게 보이긴 했지만 나름 나쁘지 않았다. 눈에 띄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죽을 건데 좀 보면 어떠냐는 심정이었다.
“태종대에 가려면 건너편 승강장에서 88번, 혹은 101번 버스…….”
나는 미리 조사해 온 정보를 기반으로 건너편으로 건너가 88번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이마에 태극기를 단 88번 버스가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난 미리 바꿔 둔 잔돈으로 요금을 계산한 뒤 맨 뒷자리로 향했다. 태종대가 종점이니 정류장을 지나칠까 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부아앙―
버스가 움직이고 나는 멀리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를 볼 수 없는 도에 살았던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보이는 바다가 신기해 보였다. 게다가 역시 중공업의 도시인지 멀리 대형 크레인들이 즐비했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20여 분쯤 달렸을까, 종점인 태종대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고 위치를 확인한 뒤 5∼10분쯤 걸어 올라가자 다누비 정류장이 나왔다.
“다누비…… 다 누비고 다녀서 다누비인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겐 자살바위로 가는 길이 어딘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배도 고프고, 날도 너무 밝았다. 자살하기엔 좋지 않은 시간이다. 좀 인적도 없고 어두컴컴해야지 말이다.
밤이 되고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우울한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절벽 위에 올라서서 칠흑 같은 바다로 뛰어들어야 좀 자살 같지, 이렇게 밝은 날 사람들 모인 데서 자살하다간 실족했는지 알 것이다.
“좀 구경 좀 해 볼까.”
난생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다. 죽기 전 추억거리로 태종대 구경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평일이라 마침 사람도 많지 않으니 말이다.
“아, 짠 냄새가 난다.”
오랜만에 맡은 바다 냄새는 제법 향긋했다. 찝찔하면서도 이유 모를 상쾌함이 느껴졌다. 태종대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답게 잘 꾸며져 있었다. 다누비라는 아기자기하게 생긴, 열차같이 생긴―큰 자동차에 객실이 기차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자동차도 있고, 안내판이나 볼거리가 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