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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Part 2 자살 여행 (3)


“나만 내리면 되지 누나는 왜 내렸어요? 돈 아깝게.”
“어차피 난 공짜지롱. 이제 좀 괜찮은 거 같아?”
“방금 내렸는데 벌써 괜찮을 리가.”
“시끄럿. 이럴 땐 감사합니다, 하는 거야.”
“네네, 감사 감사요.”
건성으로 대답하자 영희 누나는 내 머리에 살짝 꿀밤을 놓고는 말했다.
“야, 가자.”
“어디를요?”
“여기 둘러보자고. 여기 유원지잖아.”
“아니, 알긴 아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씩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펴며 말했다.
“보상 2탄이야.”
“그런 건 없는데요.”
“나랑 유원지 가고 싶어서 자유 이용권 끊고 기다리는 사내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너 로또 1등 당첨되면 버릴 거야, 안 버릴 거야?”
“안 버리죠. 그리고 여긴 그런 놀이공원이 아니잖아요.”
“아무튼! 너 지금 1등짜리 로또 복권 버리고 있는 거야! 너한테 그거랑 비견될 정도의 행운을 버릴 거야?”
아주 뻔뻔하기 짝이 없는 말인데 그녀의 얼굴을 보다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영희 누나는 진짜 예뻤으니 말이다.
“로또는 돈이 들어오고, 두 번째 거는 돈이 안 되는데요. 전혀 다른 거 아니에요?”
“아무튼! 가자고! 어차피 놀러 온 거잖아.”
“아휴.”
위풍당당한 그녀의 뒷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못 이기는 척 그녀의 뒤를 따랐다.
“으, 괜히 내렸어.”
벌써부터 후회하는 영희 누나.
“그러게 왜 내렸어요. 유람선 타고 다 구경하고, 여기 들러서 태종대랑 영도등대 구경하고, 전망대 쪽으로 다누비를 타든 해서 내려가는 게 정석인데.”
“시끄럿, 너 죽어 가는데 내가 재미가 있겠냐?”
“아―”
누나의 말에 순간 좀 찡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뭐, 알겠으니까 태종대나 가요.”
그렇게 누나와 나는 태종대 곳곳을 누볐다. 등대를 보려고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해안의 절경이 참 멋있었다. 산책로도 멋졌고, 무엇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오늘따라 사람이 없는 건가. 여하튼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영희 누나는 나보다 체력이 좋았다. 힘들어 헉헉거리는 날 끌고 빙글거리는 등대 계단 끝까지 올라갔으니 말이다. 절경이었다.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어때, 좀 답답함이 풀려?”
“아, 네. 오, 역시 부산에 오면 태종대를 가야 된다더니.”
“그치? 그럼, 전망대 보러 가자!”
그렇게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전망대로 결정. 우리는 전망대로 향했다. 다누비 열차가 있긴 했지만 우리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난 기진맥진이었지만 영희 누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으어어, 힘들어요.”
“남자가 여자보다 체력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 다 왔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 너머로 넓은 바다와 암석들이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전망대 앞에는 모자상이라는 석상이 하나 있었다. 모자상은 남자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여자아이를 감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조각된 석상으로, 그 아래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모자상은 세상을 비관하여 전망대에서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진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여 삶의 안식과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1976년에 설치하였음.]
과연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었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많이 죽었으면 이런 석상까지 설치하여 사람들의 자살을 막으려 했을까? 하지만 이런 것을 설치한다 한들 죽는 사람은 계속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안에 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 되게 많이 죽었나 봐요.”
“응…….”
누나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아니, 불쌍하게 여기는 건가.
“도대체 왜 죽을까요, 사람들은?”
살아간다 한들 더 나아질 게 없기 때문이다.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누나의 목소리가 아까와 달리 날이 섰다. 다소 민감한 주제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난 얘기하고 싶었다. 난 정말 죽고 싶은 걸까? 다른 죽은 사람들은 왜 죽었던 걸까? 궁금하고 두려웠다. 점점 죽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답답해져서 누구에게든지 얘기하고 싶었다. 정말 죽으면 편해지는 걸까. 난 편해질 수 있을까.
“왜 죽을까요? 살아 봐야 나아질 게 없어서? 정말…… 정말 죽으면 편해질까요?”
“몰라, 모른다고! 왜 자꾸 그걸 나한테 물어봐? 죽은 사람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
왜, 어째서 화를 내지? 죽는 게 나쁜 건가? 누나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상했다. 난 그냥 알고 싶은 것뿐이다. 정말 편해질 수 있을지. 그런데 사람들은 자살하는 사람들을 욕한다.
“왜 자살하면 안 돼요? 왜요?”
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죽게 놔두지 않는 걸까. 세상은 날 못살게 구는 주제에, 죽겠다고 하면 못 죽게 하는구나. 화가 났다.
“죽고 싶어서 죽는 건데 왜 그렇게 못 죽게 할까요? 그냥 죽게 놔두면 안 돼요?”
“너 그만 안 해?”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왜 못 죽게 해요? 사는 게 더 힘들어서 죽겠다는 사람을 왜 못 죽게 해요. 안 힘들게 해 줄 것도 아니면서, 왜 죽지도 못하게 하냐고요!”
나답지 않게 흥분했다. 어째서였을까. 그 말에 누나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 질렀다.
“너는, 너는 남겨진 사람은 생각해 봤어?”
아, 식상하다. 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푸훗, 남겨진 사람이요? 자기 몫도 제대로 못 챙겨서 남한테 이리저리 치이다 못 살겠다고 죽는 사람한테 아쉬울 게 뭐가 있다고요? 남겨진 사람한테는 오히려 좋은 거잖아요, 아니에요?”
그래, 우리 엄마한테는 그게 좋을 것이다. 아니, 좋다. 분명히.
그때였다.
짜악―!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가 천천히 시야가 돌아왔다. 볼 있는 곳에 화끈한 감촉과 함께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그만하라고 했지?”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다.
“왜요? 내가 틀린 말을 했어요? 지 인생도 간수 못 해서 죽는데, 남는 사람이 뭐가 불쌍해요! 잘된 거 아니에요? 나 같으면 춤이라도 추겠네? 잘 죽었네, 잘 죽었어!”
휘익―
그녀가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감정이 격해질 만큼 격해진 나는 가만히 맞아 줄 생각이 없었다. 난 누나의 손을 허공에서 가로채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주르륵―
누나의 눈가에 흐르는 물방울. 울렸다, 울려 버렸다. 그 얼굴을 본 순간 격해진 감정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리고 가슴을 가득 채웠던‘화’라는 감정이 사그라지고, 그 자리를 온통 당황이라는 감정이 차지했다.
“……이거 놔.”
나는 그대로 멈춰 서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소매로 살짝 눈가를 훔치며 아예 돌아서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난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모자상을 보고 정신이 나갔던 걸까.
“저, 저기, 누나? 미안해요……. 정말, 제가 저,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네? 그, 안 울면 안 돼요? 아니, 이게 아니라, 으으…….”
사람을 달래는 건 익숙하지 않다.
그녀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뒤돌아서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나는 머쓱해져서 얻어맞은 볼을 만지다가 중얼거렸다.
“여드름이 좀 터진 거 같은데. 손 닦으러 화장실 간 건가.”
따귀는 처음 맞아 본 것 같다. 애들한테 맞더라도 손으로 얼굴을 맞는 일은 드물었는데 말이다. 더럽다고 얼굴은 안 때렸으니. 얼굴을 맞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었다. 이 색다른 기분에 조금 더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 돼.”
나는 모자상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를 위해서다. 엄마를 위해서. 불쌍한 우리 엄마를 위해서 내가 죽는 거다. 나는 전망대 아래로 보이는 자살바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곳이 내 마지막, 마지막 장소다.

누나는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 저녁이 되었으니 아마 화가 나서 알아서 돌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됐다. 누나 덕분에 처음으로 남과 여행이란 걸 한 번 해 봤다. 이 추억은 죽어서도 안 잊을 것이다.
밤이 되고 유원지는 폐장했지만 나는 아주 늦은 밤까지 숨어 있다가 사람이 다 빠지고 나서야 자살바위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새벽이라서 자살바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살바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칠흑 같은 바다에서 파도가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떨어지면 분명히 죽을 테지.
나는 조금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아까 보았던 모자상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죽는 거다. 날 위해 희생한 엄마에게 인생을 돌려주는 거다.
나는 천천히 신발을 벗어서 옆에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다. 그냥 신발을 신고 뛰어들어도 상관없지만 누군가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그냥 사라진 게 아니라, 여기에 뛰어들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내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른 자살한 사람들도 이랬을까?
“후욱― 후우― 후욱― 후욱―”
숨이 가빠 왔다. 밤이 되면서 매서워진 바닷바람과 함께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가, 가자. 하나…… 둘, 셋!”
내가 막 뛰어들려는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거기 가만히 안 있어!?”
“여, 영희 누나?”
난 순간 휘청하는 걸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주저앉아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영희 누나가 헉헉거리며 서 있었다.
“왜 여기에…….”
“너 죽으려고 그러지?”
“네, 네?”
죽으려고 한 것 맞다. 하지만 당장 물어보는데‘그래요, 죽으려고 그래요.’라고 바로 대답이 나오겠는가. 그 말에 영희 누나는 성큼성큼 걸어와 내 얼굴 앞에 얼굴을 들이댔다.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영희 누나의 커다란 눈동자가 내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새까만 동공이 날 꿰뚫어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이렇게까지…… 아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난 순간 화가 났는지, 부끄러운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각이 울컥 치솟는 걸 느꼈다.
“도, 도대체 무슨 상관이에요!”
빽 소리를 지르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영희 누나가 내 얼굴을 덥썩 붙잡았다. 여드름투성이인 더러운 내 얼굴을, 나도 손대기 싫은 그 얼굴을 말이다.
“왜 상관이 없어?”
영희 누나는 내 더러운 얼굴에 손을 대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고 숨 쉬기가 괴로워졌다.
“후우, 후우, 네, 네?”
“나한테는 네가 죽는 게 상관이 있어.”
두근…… 두근…….
가슴이 뛰었다. 뭐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내가…….”
내,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먼저…….”
먼저…….
“……죽을 거거든.”
죽을…… 응?
“뭐, 뭐라고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뭐, 죽는다고? 왜? 어째서? 아니, 자, 잘못 들은 건가? 귀가 이상해진 건…….
“나도 자살하러 왔다고!”
“이런 미친…….”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험한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뭐, 인마?”
영희 누나의 반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가 아직도 내 얼굴에 올라가 있는 영희 누나의 손목을 양손으로 꽉 잡으며 물었다.
“누나, 미쳤어요? 자살?”
“그래! 자살하러 왔다! 너처럼 자살하러 왔다고!”
자살…… 자살…… 어째서?
“누나가 왜 죽어요? 네? 도대체…… 아니, 어차피 죽을 거면서 왜 난 말렸어요?”
“말했잖아, 내가 먼저 죽을 거라고! 누가 나보다 먼저 뛰어내리는 거 보고 죽을 맛이 나겠냐! 아니, 넌 죽지 마! 누가 보면 동반자살한 줄 알 거 아냐!”
죽는 마당에 신경 쓸 것도 많다. 아니, 그것보다 왜, 어째서? 당신처럼 뭐 하나 안 빠지게 생긴 미인이 죽긴 왜 죽는다는 거야.
“도대체 왜…… 왜…… 죽으려고 해요? 나처럼 더럽게 생겼어요? 아니면 나처럼 기생충 같은 인간이에요? 아님, 뭐예요?”
내 물음에 그녀가 내 손목을 확 뿌리치면서 소리쳤다.
“네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나 좀 내버려 둬!”
울컥.
순간 화가 치밀었다. 무슨 이유일까. 실연? 아니면 사는 게 힘들어서?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저렇게 빌어먹을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 여자가 왜 죽는단 말인가. 세상한테 투정이라도 부리려고?
“내버려 두길 바랐으면 처음부터 날 말리지 말았어야지!”
“그래, 죽어 버려!”
이 여자가 자기 일 아니라고!
“안 죽어! 그리고 당신도 못 죽어!”
난 소리치면서 영희 누나의 손목을 다시 움켜쥐었다. 손목이 으스러져라 세게 꽉 쥔 날 보며 인상을 찡그린 영희 누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