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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Part 2 자살 여행 (4)
“이거 놔! 오늘 좀 놀아 줬다고 니가 내 뭐라도 되는 거 같아?!”
“누가 뭐래! 미친, 당신이 나 못 죽게 만들었으니까, 너도 못 죽어!”
“뭐? 너어?! 반말하냐!”
살면서 이렇게까지 격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살면서 한 번이라도 있었나. 그리고 이렇게 남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해 본 적도 있었을까?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을까? 어째서일까?
“어쨌거나…… 못 죽어요.”
“난 죽어야 돼! 죽어야 된단 말이야!”
“왜, 왜요!”
“네가 알아서 뭐하게!”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아, 씨발, 왜! 왜 죽냐고!”
내가 안 하는 욕까지 섞어 빽 소리를 지르자 누나가 움찔하더니 순간 인상을 찡그리며 되받아쳤다.
“부르니까! 부르니까 가는 거잖아―! 니가 뭔데 날 못 가게 하냐고!”
누가…… 도대체…….
순간 영희 누나의 표정이 불안하게 변하더니 내 손을 뿌리치고 절벽 쪽으로 걸어갔다.
“갈게, 지금 가, 응? 같이 가…… 엄마, 아빠…….”
“자, 잠깐만요!”
나는 놀라서 영희 누나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엄마, 아빠, 잠깐만, 금방 갈게, 응? 아냐, 나도 갈 거야, 응? 제발 두고 가지 마!”
“아악, 도대체 어디 사람이 있다고 그래요! 제발, 제발 가지 마요!”
“가지 마! 엄마! 아빠! 아아아악!”
영희 누나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던 나도 같이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는데, 영희 누나도 나도 서로 숨을 헉헉거리며 잔뜩 힘이 빠져 있었다. 영희 누나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넌…… 왜…… 날 막니…….”
그 말에 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대답했다.
“나도…… 나도 나보다 먼저 누군가 죽는 거 보고 죽을 자신이…… 없어요…….”
“흐흑, 으흐흑, 흐흐흐흑!”
누나는 주저앉은 채로 한참을 흐느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속에서는 자살에 대한 결심은 온데간데없고, 이 여자가 혹시 다시 죽으려고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과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안쓰러움만 남았다.
“흑, 흐윽, 후우…….”
한참을 울던 누나가 숨을 몰아쉬며 소매로 눈가를 닦아 내더니 고개를 들었다.
“혹시…… 궁금해……?”
“네?”
“나 이상하잖아. 막 헛소리하고…… 죽으려고 막 그러고……. 안 궁금해?”
누나의 갑작스러운 말에 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누나는 소매로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안 궁금해도…… 들어 줄래?”
그 말에 난 고개를 저을 수가 없었고, 누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 부모님은…… 사업을 하셨는데, 우리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IMF 때 쫄딱 망했거든?”
“아…….”
“그런데…… 남들은 그래도 다 열심히 사는데, 부모님은 그게 안 됐나 봐…….”
“엄마, 아빠, 어디 가아?”
엄마, 아빠가 손을 내민다. 그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는데,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같이 갈래, 영희야?”
“엄마랑…… 엄마랑 같이 가자, 응?”
아빠의 무거운 목소리. 엄마의 날 선 목소리. 무서워. 싫어. 안 갈래…….
“영희는…… 안 갈래.”
“……그래?”
순간 엄마, 아빠가 사라져 버렸다.
“……엄마? 아빠?”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시작된 비명 소리. 엄마, 아빠가 서 있던 곳으로 몰려가는 사람들. 사람들의 팔다리에 치여 밀려 넘어진 영희는 울지도 못한 채 엄마, 아빠가 서 있던 곳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아빠…… 같이…… 가……. 엄마…… 아……빠…….”
“가끔 환청이 들려. 엄마 목소리…… 아빠 목소리……. 가끔 보이기도 한다? 신기하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 여기며 살아왔던 나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창피했다. 모자상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그게…… 누나…… 저기…….”
“너도 한번 얘기해 봐. 넌 왜 자살하려고 한 건데? 응?”
사과를 하려고 억지로 입을 떼려는 내게 누나가 물었다. 눈물로 눈가가 퉁퉁 불어 있는 주제에 눈을 빛내며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풋―”
“야, 웃어? 내가 우습냐?”
짐짓 화난 표정을 짓는 영희 누나의 얼굴. 그 모습을 보자 자살까지 생각했던 괴로운 이야기라도 왠지 편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사실 저는…….”
나는 그렇게 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좋아하던 여자애의 이야기, 충격을 받았던 이야기, 자괴감,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 그리고 살아오면서 겪었던 괴로운 시간들에 대한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어머니께도 꺼내 본 적 없는, 아니 오히려 어머니라서 꺼내 놓을 수 없던 무수한 이야기를 늘어놓자 괴로웠던 마음이 점점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아…….”
눈물이 나왔다.
“왜, 왜 이러지.”
이상하게 계속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콧물까지 주체를 못 하고 질질 흐르는데, 얼굴 때문에 닦을 수가 없어 어떻게 눈가와 콧구멍만 닦아 보려고 애를 썼다.
“이게, 윽, 이게…….”
“바보야, 뭐하는 거야?”
누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웃으면서 내 눈가를 소매로 닦아 주고는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잡으며 말했다.
“자, 흥!”
“으악, 뭐, 뭐예요!”
“푸하하하하하!”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끼며 내가 뒤로 물러서자 누나는 한바탕 크게 웃더니 물러선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럼 누나가 사귀어 줄까?”
“네?”
사귄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봐도 절대 내게 해당될 일은 없다고 생각한 나는, 방금 그 말은 내가 잘못 들은 것이라고 인지하였다. 그리고 비슷한 말 중 내가 들을 수 있을 법한 말로 대체해서 재해석해 보았다.
“사과한다고요?”
“너 귀머거리니? 사귀어 준다고!”
“음, 그 사과는 받아 줄게요. 앞으로는 자살한다고 하지 말…… 허억, 지, 진짜요! 진짜로요?!”
현실도피를 하려 했지만 심장이 벌렁거려서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진짜로? 진짜로? 아, 아니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놈이랑? 아니, 자, 장난이겠지?
“자, 장난치지 마요. 이런 망할. 자꾸 그러면 그, 그냥 죽어 버릴라니까.”
“뭐어? 흑, 진짠데. 흑흑, 너도 날 안 받아 주는 거구나? 엄마, 아빠한테 가 버릴 거야.”
눈물을 짜는 시늉을 하는 영희 누나. 뭐야, 이건. 자, 장난 좀 그만 치지…….
“누나같이 예쁜 사람이랑 나 같은 사람이랑…… 사귀어도 돼요?”
“왜, 안 돼? 수갑이라도 차? 경찰이라도 와서 잡아가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내 말에 영희 누나가 씩 웃으며 내 손을 덥썩 붙잡았다.
“너 내가 말했지? 로또 맞는 행운이라고. 너 땡 잡은 거다?”
“아, 그, 그, 가, 감사합니다.”
그 말에 영희 누나가 뒷짐을 지더니 헛기침을 하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에헴, 알아서 잘 모셔라. 바람피우면 나 죽어 버린다?”
“무, 무슨 소리를…… 저, 저야말로…… 주, 죽어 버릴 거예요…….”
“뭐어? 벌써부터 날 구속하려는 거야?”
“아, 아니 그, 그게!”
버벅거리는 내게 영희 누나가 찡긋하고 윙크를 했다. 그 모습은, 눈물로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데다 머리는 산발에 옷소매는 내 여드름이 터져서 피고름이 잔뜩 묻어 흉측하고, 옷도 흙투성이로 지저분했지만 너무 예뻤고……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사랑스러웠다.
두근― 두근―
“자, 잘 부탁드립니다.”
“푸하핫, 그게 뭐야!”
그렇게 나 김철수는 박영희와 사귀게 되었다.
로또 복권 1등 당첨될 운인 여자와 사귀게 되다니, 이것도 인생역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Part 3 아르바이트 (1)
자살 여행, 아니지. 자살미수 여행이 끝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희 누나, 아니 영희는 알고 보니 나랑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서 돌아가는 길에 같은 기차를 타게 되었다. 아, 왜 누나라고 안 하고 반말을 하냐고? 이 발칙한 계집애가 나이를 속였다.
“속이긴! 내가 언제 너보다 나이 많다고 한 적 있어?”
“시끄러! 내가 누나, 누나 하는데 누나 행세하느라 수고 많으셨네?”
“그렇지, 내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면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으, 저 뻔뻔한 모습을 봐라, 저 가증스러운 표정.
“젠장, 가증스러운 표정도 예쁘잖아.”
헛소리가 실수로 튀어 나가 버렸다. 그 말에 영희는 더욱 기고만장해지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 것이다.
“당연하지.”
“으악, 취소 취소. 그 가증스러운 표정 치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저 뻔뻔한 표정까지 예쁘니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건가. 아니면……
“와, 저 여자 완전 예뻐.”
“연습생 같은 거 아냐?”
“풋, 그럼 옆에는 매니저냐?”
“아, 저 여드름 좀 봐, 완전 Shit이야.”
……진짜 예쁜 거지.
아무튼 영희가 예쁘니까, 승객들이 다들 저렇게 수군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애가 나랑 사귀게 됐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아니, 자살을 앞두고 둘 다 감정이 격양돼서 내뱉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얘도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들었지, 들었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신이 난 목소리로 말하는 영희를 보며 난 애써 속마음을 숨기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네가 말하는 미녀와 야수 효과 한번 제대로 나는구나.”
“그래도 미녀와 야수, 해피엔딩이잖아? 그치?”
“나는 마법에 걸린 게 아니거든. 키스해 줘도 왕자로는 안 돌아가. 얼굴에 여드름만 묻을 걸?”
“그래?”
그러더니 순간 영희가 내 목을 휘어 감더니 내 입술을 덮쳐 왔다.
“야, 뭐, 뭐하는 거…… 우웁!”
난생처음 닿는 여자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축축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났다. 내 첫키스가 기차 안에서 이루어지다니!
“야, 저기 저기―”
“뭐야, 남자 친구였어?”
“으악, 저 여자 비위도 좋네.”
“얼굴은 예쁜데 취향이 쪼옴―”
“남자 새끼 로또 맞았네.”
승객 여러분, 그런 얘기는 당사자 없는 데서 하든지 안 들리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만. 잠시 후, 영희의 입술이 떨어지며 내 입 주변과 영희 입 주변 사이에서 쩌억 하고 뭔가 끈적한 게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나는 그 느낌의 원인을 알고 있다.
“으엑, 퉤, 퉤! 괜히 했어!”
영희는 퉤퉤거리며 입 주변에 묻은 고름들을 닦아 냈다. 방금 쩌억 하고 떨어지던 것들이 고름이었던 것이다. 내가 말하고도 소름이 끼치는군.
두근― 두근―
하지만 나는 영희의 찡그린 얼굴과 불평에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주먹만 꽉 쥐고 있었다. 입을 열었다간 가슴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심장이 쿵덕 쿵덕 쿵 더러러러 쿵쿵 막 난동을 피우고, 평소의 10배 정도로 뛰어대는 심장 덕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다 못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야! 진짜 너 얼굴 좀 어떻게 해! 이러면 너랑 어떻게 사귀냐! 야수는 차라리 털이라서 부드럽기라도 하지!”
“누, 누, 누가, 하, 하랬냐!”
내가 더듬거리면서 답하자 영희는 물티슈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쯧쯧, 관리 좀 해라, 얼굴 좀.”
“아, 알겠어. 근데 안 하는 게 아니라고!”
주르륵―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지로 감추며 역정을 내고 있는 그때, 내 코가 뻘건 액체를 흘리기 시작했다. 으악, 망할!
“꺅, 뭐야, 코피? 이게 무슨 만화냐! 푸하하하, 너 엄청 흥분했구나?”
“시, 시끄러워. 얼른 휴지나 줘!”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도, 자기 할 말만 내뱉고 자기 뜻대로 질질 끌고 다니는 행동까지 전부 예뻐 보이니 내가 어떻게 되긴 했나 보다.
“여기, 이걸로 틀어막아라. 근데 너 첫키스지? 되게 못한다, 너. 코피나 흘리고. 푸하하, 중학생이냐?”
그래도 저 입은 아직 적응이 안 되는구나. 망할.
여하튼 그렇게 몇 시간을 타고 온 끝에 나와 영희는 출발역에 도착했다. 갈 때는 혼자였는데 올 때 함께 오는 사람이 생겨서 돌아오다니. 왠지 감회가 남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기차역에 와서 떠오른 게 하나 있었다. 정확히는 기차역을 나와서 저 길 건너편에 보이는 빨간 우체통을 보고 말이다.
“아, 젠장! 유언장 엄마한테 편지로 보냈는데!”
“뭐? 아 참, 나도 그랬는데.”
자살남녀, 우리 콤비명을 그렇게 붙여 볼까.
이런 농담할 때가 아니라 심각한 문제였다. 아직 도착은 안 했겠지. 제발, 안 했겠지. 성적표 도착하는 날에 땀 뻘뻘 흘리며 우편함 앞을 서성이는 애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그래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하겠지.
“근데 너는 부모님 안 계신데 누구한테……?”
뱉고 보니 민감한 얘기라서 나는 말을 흐렸다. 하지만 영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지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나 입양한 할아버지.”
“뭐? 그런데 자살을 하려고 했어? 남겨진 사람 어쩌구 하더니!”
“어차피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그런 거 신경 쓰냐.”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따귀를 때릴 때는 언제고, 아주 무책임한 발언을 내뱉는구나.
영희도 약간 머쓱했는지 뒤통수를 벅벅 긁어 대며 내 눈을 피했다.
“나도 힘들었단 말이야. 내가 잘못한 건 아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눈 찔러 버린다?”
“넌 진짜 찌를 것 같아서 무서우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그보다 우편 도착하는 데 며칠이나 걸리지?”
“이틀? 사흘?”
“젠장. 오늘 내일, 혹시 모르니까 모레까지는 집에 붙어 있어야겠다.”
“나도.”
그렇게 우리는 자살 여행의 뒷수습을 하기 위해 각자 집으로 향했다. 영희가 살고 있는 곳과 우리 집은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까지 마주친 적 없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것이었다.
“야! 가로채면 전화해!”
“너도!”
그렇게 우리는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