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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Part 3 아르바이트 (2)
이틀이 흘렀다.
“안녕하세요∼”
우체부 아저씨다!
나는 평소에 얼굴이 창피해 제대로 마주해 본 적도 없는 우체부 아저씨를 반갑게 맞이하며 우리 집으로 온 편지를 받았다. 내가 보낸 편지와 그 외에는 세금명세서 같은 것들이었다.
“휴, 다행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보고를 위해 영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컬러링도 없는 무미건조한 신호음, 무슨 여자애가 이런…….
―야! 치사하게 너부터 받았어?!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 없이 바로 내뱉는 영희의 말에 난 상념을 끊어 내며 대답했다.
“뭐가 치사해. 여기 왔으니까 곧 거기도 갈 거야.”
―야, 근데 너 뭐라고 썼냐?
“왜 그게 궁금한데?”
―우리 집 와서 보여 줘. 나도 도착하면 보여 줄게!
교환일기를 쓴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유언장을 교환해서 읽는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본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나 초대받은 건가? 여자애 집에?
꿀꺽―
“너, 너무 진도가 빠, 빠른 게…….”
―무슨 소리야? 발정 났냐?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빨리 와!
뚝―
얼굴 안 보고 전화로만 듣고 보니 진짜 영희의 입은 참 여자애 입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 부드러운 입술에서 어떻게 이런 말들이…… 그, 입술…… 촉촉하고…… 달콤한…….
화악―
주륵―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며 코피가 새어 나왔다. 오, 맙소사, 상상만 했는데 이럴 수가.
“못살겠군.”
난 중얼거리면서 집으로 들어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 젖혔다. 샤워하고, 면도하고, 비비크림 바르고, 왁스 바르고, 옷은 뭘 입어야 되지? 으, 옷 좀 사놓을 걸!
……아앗, 따, 딱히 영희네 집 가는 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나갈 때는 이 정도 준비는 당연한 거니까.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한다거나 그런 게…….
후우. 누구한테 변명하고 있는 거지.
30분 뒤, 나는 영희네 집 앞에 서 있었다.
걸어서 20분 거리라지만 영희네 집이 어딘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30분 만에 왔으면 날아서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아까 그 상황에서 30분이라니.
하지만 샤워를 다 하고 나서 옷을 고르는데 영희가 전화를 해서,
‘너 옷 고르고 머리에 막 쳐 바른다고 늦게 오기만 해 봐!’
하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여자한테 완전 쥐여 사는 줄 알겠네. 하하, 하, 하…… 보이는 그대롭니다. 여러분.
“늦었어!”
“웃기지 마! 나 샤워했는데 뛰어오느라 다시 땀범벅이 된 거 안 보여?!”
“으이구, 우리 집 온다고 샤워까지 했어요? 에고, 잘했어요.”
영희가 애들 어르는 말투로 키득거렸다. 난 여기서 부정하면 더 창피해진다는 생각에 얼굴만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근데, 가로챘어?”
“아, 응!”
“잘됐네.”
“그치?”
영희는 씩 웃더니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무튼 들어와.”
“으응.”
나는 두근대는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발걸음을 옮겼다.
영희네 집은 한약방이었다.
집 근처만 와도 구수한 한약 냄새가 풍겨 오는 전통 한옥집이었는데, 이 근처에 이런 집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멋있어 보였다.
“너희 집 멋있다. 한약 냄새도 구수하고.”
“난 한약 냄새 싫어하거든?”
영희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나를 대문 안쪽으로 이끌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이 보이고 사극에서나 봤던 것 같은 기와집이 보였다. 집 말고 별채로 지어진 건물에서 한약 냄새가 흘러나오는 걸 보니 그쪽이 한약방인 모양이었다.
“으잉? 손님인가?”
영희랑 내 목소리를 듣고 나오셨는지 꼬부랑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쥐고 한약방에서 나오셨다. 키가 내 허리 정도밖에 안 올 정도로 작으신데다 허리까지 굽으셔서 굉장히 자그마한 할아버지였는데, 주름이 얼굴을 온통 뒤덮어서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할아버지, 내 남자 친구예요.”
“응? 뭐? 남자 친구!”
섬뜩―
순간 할아버지의 눈이 퍼렇게 빛나며 날 노려보는데, 나는 오싹한 기분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무, 무섭다. 저 할아버지.
“철수! 인사 안 하고 뭐해?”
“아, 응!”
나는 영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할아버지 앞으로 뛰어가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혔다.
“아,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저는 영희의 남, 남, 남자, 치, 치…….”
남자 친구라는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할아버지의 눈이 퍼런 광망을 뿜어내는 것 같고, 할아버지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 같은 환상이 다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야, 이 할아버지 무슨 요괴 같은 거야?
“아우! 답답해! 말 좀 또박또박하게 해! 우리 할아버지는 연세가 백삼십 살이나 되셔서 그렇게 작게 말하면 안 들리신단 말이야!”
뭐? 백삼십?!
정말 요괴가 아닐까 의심이 되는 상황에서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그 요괴 할아버지가 가늘게 뜬 눈으로 내게 다가와 내 얼굴을 살피더니 씹어뱉듯 툭 말씀하셨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구나. 얼굴 뜯어먹고 살 거냐?”
엥? 이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었나?
나는 지금까지 괴물이나, 더럽다, 뭐 그런 류의 험담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단연코 기생오라비라는 단어로 깎아 내려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보통 예쁘장하게 생겼거나 잘생긴 사람을 보고 얼굴밖에 볼 데가 없다고 깎아 내리는 표현이 아닌가.
“쯧쯧, 근데 피부가 이래서야.”
“그래서 말인데, 할아버지…….”
“안 돼! 싫어! 이놈에겐 안 된다!”
할아버지는 왠지 토라진 모습으로 팩 고개를 돌리더니, 지팡이를 짚고 총총걸음으로 약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왠지 이 집안사람들은 날 혼란스럽게 하는 데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저, 저기, 영희야.”
“아, 왜!”
영희는 뭔가 일이 꼬였는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 나, 기생오라비같이 생겼어?”
“뭐?”
“아, 아냐. 아무것도…….”
난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영희는 속이 터지는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으이구, 내가 말 좀 똑바로 하랬지? 우리 할아버지한테 점수 좀 따란 말이야. 제발.”
“아, 알겠다.”
“알겠다고 한 거지?”
“으응.”
“좋았어.”
영희의 눈이 아까 할아버지의 눈동자처럼 퍼렇게 빛났다.
‘정말로 이 할아버지와 손녀, 피가 안 섞인 게 맞는 거야?’
영희의 집을 방문한 다음 날, 나는 영희의 권유―라고 쓰고 강요라 읽는다.―에 따라 영희네 한약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출근 첫날. 아침까지 챙겨 먹고 양치도 했다. 샤워는 아까 했고, 문제는 없다.
“철수야, 정말로 괜찮겠니?”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별일도 아닌데요, 뭐. 엄마도 그렇게 말했었고.”
그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 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얼마나 불효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남들은 고등학교 때도 하는 아르바이트인데, 그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에 이렇게 걱정을 표현하시니 말이다.
“그, 한약방이라고 했었지?”
“네,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는 아직 잘 몰라요.”
“당연하지. 오늘 첫 출근이잖니? 아무쪼록 가르쳐 주는 거 열심히 배우고, 게으름 피지 말고 시키는 거 잘하고 그러면 돼. 알았지? 손님 오면 웃으면서 인사 잘하고.”
“횡단보도 건널 때는 초록 불에서 건너고,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면 안 되고요. 맞죠?”
내 대답에 엄마는 만족하셨는지 웃으면서 내 궁둥이를 한 번 때리며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래, 요 녀석아. 돈 많이 벌어 와서 엄마 호강이나 시켜 줘라.”
“알겠어요, 엄마.”
“잘 갔다 와, 아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현관문을 나섰다.
“후우―”
현관문을 등진 내 입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내 생애 첫 아르바이트.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다. 엄마가 평생 내 뒷바라지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일하는 것보다 영희네 한약방에서 일을 하는 게 부담도 적고 마음이 편했다.
‘영희를 만나서 다행이야.’
물론 그 요괴 할아버지가 조금 무섭긴 하지만. 아니,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많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건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하쿠나 마타타. 아주 끝내주는 말인 것 같다.
“자, 가 보자.”
영희네 집 앞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나 다 왔어.”
―뭐해, 들어와
“그냥 문 열고 들어가?
―담 넘어서 오든지.
아주 배려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구나.
나는 투덜거리며 대문을 열고 빼꼼 안을 살펴보다가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요괴 할아버지 눈에 벌써 띄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만나야 되겠지만 그래도 영희랑 같이 있는 상태에서 만나는 게…….
“도둑놈같이 왜 살금거리고 있는 게냐?”
“히익!”
기척도 없었는데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난 요괴 할아버지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았다. 요괴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지? 어디서 들려온 목소리야?
“무례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구나. 에잉, 영희는 왜 이런 녀석을, 쯧.”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내 바로 앞, 그러니까 아래쪽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요괴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차더니 홱 몸을 돌려선 한약방 쪽으로 걸어가셨다. 지팡이를 짚고 계시긴 한데, 지팡이가 그다지 필요해 보이진 않았다. 노인의 걸음이라고 하기엔 걸음이 몹시 빠르셨다. 저분 연세가 정말로 백삼십이라고?
“뭐하는 게냐! 안 따라올 거야?!”
“아, 넵!”
“쯧쯧, 얼굴값도 못 하는 놈.”
역시 걸음걸이는 정정해도 나이는 못 속이시는 모양이다. 노망이 나신 건지 눈이 많이 안 좋으신 건지……. 하긴 노망이 나면 이런 한약방을 운영할 수는 없겠지. 그럼 눈이 안 좋으신 건가.
나는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와―”
한약방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넓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의 구분이 특별히 없는 원룸 형식에, 칸막이로 약제실과 치료실, 대기실만 간단하게 나눠 둔 모양이었는데, 약제실 벽면 전체가 약재를 보관하는 나무 선반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다. 안에 들어서자 한약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며 냄새만 맡아도 몸이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한약방 알바는 무슨 일을 하면 되는 거지?
“저, 저기, 할아버님?”
“뭐냐!”
나를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모양인지 할아버지의 대답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영희 이 계집애는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얼굴도 안 비추다니, 이 배신자! 나는 우물우물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서 어떤 일을 하면 될까요……?”
“모른다! 네놈 하고 싶은 거 해! 어차피 쓸데도 없는 놈, 왜 데려와서는. 영희 이것, 손녀라고 하나 있는 것이, 중얼중얼―”
제대로 미움을 산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목소리로 중얼중얼거리며 약제실이 있는 곳으로 가 버리셨다. 나는 그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대기실 쪽의 의자로 가 앉았다. 어색해. 어색해. 어색해…….
―야, 헬프, 헬프. 좀 도와줘.
나는 주변을 힐끔거리다가 핸드폰을 꺼내 영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띠링―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알아서 해.
으득―
오냐, 내가 다 알아서 하마.
점수 따라고 아르바이트까지 시켜 놓고 이 무책임한 태도라니. 얼굴만 예쁘고 성격은 개차반인 이 여자 친구님의 간결하고 명료한 문자를 바라보며 이를 간 나는, 당장이라도 집으로 도망쳐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잘 갔다 와, 아들.’
하지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엄마의 얼굴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르바이트 간다고 말하고 나온 지 한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본 엄마 얼굴이 어떨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호언을 하고 나왔는데 못 하겠다고 집으로 도망가기엔 자존심도 상했다.
“뭐라도 하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