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8화
Part 3 아르바이트 (3)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서서는 벽 쪽에 있는 빗자루로 향했다. 청소라도 할 셈이었다. 그런 나를 할아버지는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본인 할 일에 다시 몰두하셨다. 그래 보든 말든 상관없다. 어차피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셨으니까 마음대로 할 테다.
그렇게 나는 한 시간 반 동안 한약방 내부를 쓸고, 털고, 닦아 댔다. 손님이 별로 없는지 그동안 손님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아니,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약방 청소를 끝낸 나는 또 할 것 없이 앉아 있는 게 싫어서 마당 청소라도 할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까 들어오면서 싸리비가 있는 걸 봤지.”
밖으로 나가 아까 봐 두었던 싸리비를 챙긴 나는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마당은 황토로, 대문부터 건물로 이어지는 길은 평평한 돌들이 박혀 있는 돌길이었다. 나는 일단 돌길부터 천천히 쓸어 나갔다.
“어이, 철수. 잘하고 있어?”
한창 마당 쓸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뒤에서 영희의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못 들은 척 마당 쓸기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씹겠다 이거지? 이래도?”
내가 무시하자 영희는 아주 불량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내 등을 콱 껴안아 버렸다.
뭉클―
그리고 난 등에서 느껴지는 따뜻하면서도 말캉거리는 감각에 얼어붙어 버렸다. 헉, 자극이, 자극이 너무 심……해…….
푸슛―
“꺄악! 넌 피가 남아도냐!”
영희는 내 코에서 솟구친 피에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뿜어낸 코피만큼이나 새빨개진 얼굴을 앞으로 쭉 잡아 빼며 영희를 노려보았다.
“크윽, 남아도는 것처럼 보이냐. 휴지나 갖다 줘.”
“너 이러다 나중에 같이 자자고 그러면 출혈과다로 죽겠다?”
뭐, 같이 잔다고?
푸슛―
“꺄아악! 그만하지 못해?”
영희는 다시 솟구치는 내 코피를 보며 비명을 지르더니 휴지를 구하러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바닥에 피를 뚝뚝 흘리며 휴지를 기다리다 약방 쪽에서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요괴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쯧쯧.”
요괴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차며 뒤돌아 약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젠장, 이 집안사람들이랑은 안 맞는 거 같아.”
뭐, 지금껏 맞는 사람은 우리 엄마를 빼고는 없었다만.
잠시 후, 영희가 가져온 휴지로 코 주변을 닦고 돌돌 말아 쌍으로 틀어막은 나는 한심하다는 영희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뒤돌아서 다시 마당 쓸기에 열중했다. 영희는 그런 내 앞으로 돌아와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원래 좀 까칠하니까, 열심히 좀 해 봐.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무슨 좋은 일이 있다는 거야, 망할.”
“분명히 있어, 좋은 일이 말이야. 알겠지?”
날 보며 묘한 웃음을 짓는 영희. 좋은 일이라니…… 무슨 좋은 일이…… 설마?!
푸슛―
“꺄아아악! 그만 좀 하라고! 무슨 상상을 한 거야, 이 변태 자식아!”
아님 말고.
영희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그 뒤이어서 마당 청소까지 죄다 끝낸 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무엇을 해야 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거, 집에 들어가서 집 청소까지 해 버려?”
생각의 범위가 청소를 벗어나질 못하는 모양이다. 여하튼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고민은 금세 해결이 되었다.
“아, 어, 어서 오세요!”
손님이 온 것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쥔 꼬부랑 할머니가 대문으로 들어서자 당황하면서도 재빨리 다가가 빗자루를 쥔 채로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내 모습을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히죽 웃으면서 말하셨다.
“총각, 참 잘생겼구먼. 먼저 간 우리 영감 젊었을 때 같구먼.”
“네?”
이 할머니도 노망이 나셨나. 아니면 눈이? 그것도 아니면 의외로 내 얼굴이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먹히는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혐오감을 주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씩 웃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한약방 손님이시죠?”
“암, 그렇지. 어제는 안 보였는데, 오늘부터 일하는 거야?”
“네.”
그 말에 할머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 노인네 성격에 잘도 여기서 일하게 했구먼. 홀홀홀, 그 노인네 등쌀을 버텨 내려면 열심히 일해야 돼. 아주 심보가 고약한 늙은이거든. 홀홀홀홀.”
“이 여편네야! 침 맞으러 왔으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침이나 맞아!”
어느새 나타났는지 약방 앞에서 할아버지가 빽 역정을 내며 소리치셨다.
“알겠다, 이 노인네야! 총각, 힘내!”
“네, 할머니.”
나는 푸근한 웃음을 짓는 할머니를 보며 웃어 보이곤 기지개를 한 번 쫙 폈다. 다른 사람과 이렇게 편안하게 대화를 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조금 약방일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말이다.
그 뒤로 이어서 손님이 대여섯 분 정도 더 왔는데, 역시나 대부분, 아니 전부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그것도 다들 꼬부랑거리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었는데, 날 보고 못마땅해하는 분도 있고, 예뻐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공통적인 특징이 날 보고 잘생겼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지.”
이런 걸 집단 환각이라고 부르는 건가? 아니 조금 다른가.
나는 혹시나 싶어 내 얼굴에 손을 올려보았다.
쩌억―
“으악―”
내가 만져도 별로 좋지 않은 끈적임과 함께 손을 댄 것만으로도 여드름이 몇 개 터져서 손에 달라붙었다. 오늘따라 피부 상태가 엄청 좋은가 싶어 만져 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집단 환각 아니면―
“역시 나 할아버지, 할머니들한테 먹히는 얼굴인가 봐.”
짜잔.
마당에서 요상한 몸짓을 해 보인 나는 누가 볼까 두려워 얼른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러곤 나를 잘생겼다고 칭찬해 주는 집단 환각 노인들을 접대하러 한약방 쪽으로 향했다. 들어오는 사람한테 인사하는 것도 역시 돈값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접수 받고 그런 건 할 줄 모르는데.’
그래도 정 모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 어깨라도 주물러 드리자.
“그래.”
오늘따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깨라도 주물러 드리면 내 손맛(?)에 다음번에 한 번이라도 더 찾을 게 아닌가. 오오, 그래.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서비스지.
“잘했어, 철수.”
나는 자기 자신을 칭찬해 주고는 한약방의 문을 빼꼼 열었다. 역시 아직 버릇이 남아 사람 많은 곳에서 주목받는 게 무서워 문을 살짝 열고 안의 동태를 살피는데, 문 바로 앞에 있는 대기실 쪽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 있는 총각, 여기서 일하는 모양이지?”
“아이고, 어쩜 그렇게 기집같이 예쁘게 생겼대?”
“에잉! 누님, 무슨 사내놈 얼굴 뜯어먹고 살 거야?”
“왜! 예쁘기만 하던데! 아이고, 영희 걔가 보는 눈이 있지.”
이 집 마당에 총각은 나밖에 없으니 날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들으면서도 내 얘기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는 내용에 이거 혹시 몰래 카메라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몰래 카메라면 진짜 비참할 것 같다. 지금 나는 입꼬리가 자꾸 귀 쪽으로 올라가려는 걸 참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으니 말이다.
“이 영감아, 그 총각, 손녀사위 맞지?”
“뭐, 손녀사위? 이 여편네가 노망이 들었나.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자꾸 그러면 침놓다가 손 떨리는 수가 있어!”
“아이구, 아니면 그만이지 왜 승질이야! 손님한테 협박까지?”
진료실 구역 쪽에서 영희네 할아버지와 아까 먼저 들어간 할머니가 얘기를 하는지 역정 가득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삼십이나 되는 할아버지랑 저렇게 터울 없이 말하는 걸 보니, 역시 나중엔 몇 십 살도 그냥 친구 먹고 하는 모양이다.
‘여기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백 살 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그건 좀 무섭잖아.’
난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며 나도 나이 먹으면 저렇게 망년지교를 맺을 수 있겠구나, 하며 내가 나이 들었을 때 모습을 잠깐 상상해 보았다.
‘난 어째 상상 속에서도 여드름을 못 지우냐.’
상상 속의 나는 늙어서도 여드름이 있었다. 아, 이런.
나는 상상도 때려치워 버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신 곳의 문을 좀 더 열어 건물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나름 조용하게 들어왔다고 했는데 내가 들어가자 대기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 이 시선 부담스럽다. 아하하, 하, 하.’
나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도로 몸을 돌려 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억지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웃음이 실제로 환한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내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아이고, 총각! 잠깐 이리로 와 봐!”
“아, 네!”
어떤 할머니가 환히 웃으며 이리 오라고 손짓하셨다. 할머니의 손짓에 나는 쪼르르 달려갔다. 그러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날 위아래로 훑어보며 제각기 반응들을 보이셨다.
“아이고, 잘생겼다, 잘생겼어!”
“에잉, 사내놈은 모름지기 듬직하고 부리부리한 눈에 야성미가 있어야지. 쯧.”
“요즘은 그, 아이돌이냐 뭐시기, 못 봤수? 좀 야리야리하고 이쁘장하게, 그렇게 생겨야지 좋아한대잖어, 이 영감아! 사람 앞에 두고 자꾸 툴툴거리지 좀 말어!”
“에잉, 누님, 그래도 칫.”
누님이라고 불린 할머니가 날 못마땅해하는 할아버지를 저지하셨다. 아직도 이분들이 내 얼굴을 예쁘다고 하는 게 이해는 안 가지만, 그냥 내 얼굴이 진짜로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먹히는 얼굴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마귀같이 생긴 놈아, 저리 가! 라고 안 하는 게 어딘가. 게다가 잘해 주기까지 하니 말이다.
“아이고, 이쁘다. 이뻐.”
하지만 좀 부담스럽게 예뻐해 주셔서 조금 난감하다고 할까. 하하, 엉덩이를 토닥토닥 쳐 주시는데, 이거 혹시 성희롱 아닌가요, 할머니. 하하, 하……하. 농담이에요.
“그, 그런데 여기서 할머님이 연세가 제일 많으신가 봐요. 하하, 되게 젊어 보이시는데요.”
나는 슬쩍 엉덩이를 할머니 손에서 빼며 말을 돌렸다. 서비스로 성인 넘긴 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한다는‘어려 보이세요’ 기술을 시전해 보였다.
“그렇지? 이쁘게 생긴 총각이 보는 눈이 있구먼. 그래도 내가 제일 고참이여. 히히히, 저기 약방 늙은이도 나보다 어려.”
“아, 그렇구나. 약방 할아버지도…… 아? 네? 뭐, 뭐라고요?”
나는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말에 호응하다가 절대 호응할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얘기에 눈을 부릅뜨며 반문했다. 할머니는 그걸 오버액션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깔깔거리며 좋아하셨다.
“왜, 내가 그렇게 어려 보여? 히히힛, 아직 나 안 죽었어!”
“아이고, 누님. 거울 좀 보쇼.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당연히 아부지!”
“뭐야, 이놈아! 그러는 너는 안 자글자글하냐!”
두 분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 나는 혼이 빠져 있었다. 여기 평균 연령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맙소사. 그럼 다른 분들도 다 비슷한 거 아냐? 나는 눈앞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요괴로 보이기 시작했다.
‘끄응. 나도 알바 끝나더라도 이 한약방 다녀야겠다. 우리 엄마도 소개시켜 드려야지.’
나는 굳게 다짐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 장수 군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의 수발과 희롱을 견디며 간신히 오전을 버텨 낸 것이었다. 자랑스럽구나, 김철수. 훌륭하다, 김철수. 밥 먹는 시간은 쉬는 시간. 나는 드디어 쉬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특별히 시키는 일은 없지만 일하는 시간에 놀 수 없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아무 일을 안 하고 있어도 쉰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것이다.
“근데 밥은 어떻게 먹는 거지?”
그때, 내 뒤쪽에서‘쯧’ 하는 못마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무슨 소리지?”
“여전히 무례한 녀석이구나.”
으악, 또 실수했다.
고개를 내려 보니 못마땅한 기색이 1.5배 정도 더 강해진 할아버지가 날 매섭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움찔해서 한 걸음 뒷걸음질 친 자세로 할아버지를 내려다보다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죄, 죄송합니다.”
“흥!”
할아버지는 몸을 홱 돌리더니 그대로 집 쪽으로 향하셨다. 으아,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따, 따라가야 되나. 아니지, 그래도 집은 사적인 공간인데, 외부인인 내가 마음대로 가면…… 아니, 그래도 밥은 먹어야 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는 어떻게야 할지 몰라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섣불리 따라가지 못하고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 생각했다.
‘나가서 사 먹자.’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이라도 두어 개 먹는 거다. 생각해 보니 집에 따라 들어가 설사 같이 먹게 된다고 해도 저 할아버지랑 겸상해서 먹으면 밥을 콧구멍으로 쑤셔 넣는지 귓구멍으로 쑤셔 넣는지 알게 뭐냐는 심정이 될 게 분명하다. 그럴 바에야 삼각김밥을 먹더라도 마음 편한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