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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Part 6 수련 (3)


“지금 그들이 약해졌다고 해서 그들의 조직 전체가 약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전면전이라도 벌이실 생각입니까? 애당초 그들은 포르타를 지키는 것 때문에 전력에서 제외된 존재들. 지금의 힘의 균형은, 그들이 포르타를 지키는 것 이외에는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균형이라는 걸 잊어버리셨습니까?”
“하, 하지만 지금 같은 기회는!”
“제가 한 말씀드려도 될까요?”
움찔하면서도 반박하려는 박두식 원더풀의 말을 그 옆에서 살짝 막으며 윤소희 원더풀이 말을 이었다. 신뢰를 이끌어 내는 뛰어난 언변에, 아름다운 외모까지 가진 여성으로 아래 라인이 탄탄해서 원더풀이 된 이후로 큰 노력을 하지 않고도 원더풀 중에서도 수입이 최상위인 여자였다.
“우리가 직접 나서는 건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그들과 저희는 균형을 지키며 공생하고 있는 상태이죠.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함부로 일을 벌이는 건 역시 위험해요. 그 노괴들의 지역이 충청북도 쪽이었던가요?”
그 말에 대전 지부의 김미옥 원더풀이 대답했다.
“저희 지부와 가깝긴 하지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면 이유를 불문하고 격살하기 때문에 그들의 소재나 행동반경 등,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전무한 수준입니다. 노괴들은 조직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조직 안에서도 독립된 조직이라 접선할 수 있는 수단도 전무합니다.”
그 말에 윤소희 원더풀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이 약해졌죠. 우리가 당장 얻을 것은 포르타가 아니라 정보라고 생각하는데, 다들 동의하시나요?”
그 말에 다른 원더풀들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대다수가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반박 의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윤소희가 마승철에게 매력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부하들을 좀 잃더라도 그들이 어느 정도까지 힘을 잃었는지, 어떤 이유인지, 정보가 필요합니다. 물론 발각되더라도 저희와 끈이 없는 자들을 이용해야지요.”
그 말에 마승철 원더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용……병 말인가.”
그 말에 대전 지부의 김미옥 원더풀이 손을 들며 말했다.
“저희 지부 쪽에 용역업체가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도 몇 번 이용한 적이 있는데, 보안은 확실합니다.”
“실행하시오.”
마승철 원더풀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어렸다.


* * *

엄마께서 한약방에 오신 지 벌써 세 시간째, 내 정신은 초토화 상태였다.
오늘 처음 본 엄마랑 뭐가 그렇게 죽이 잘 맞는지 영희랑 엄마는 내 얘기로 두 시간을 넘게 이야기꽃을 피우며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할아버지는 못마땅한지 연신 날 보며 헛기침을 해 댔다.
“철수가 어디가 그렇게 좋니? 우리 철수가 매달렸지? 그치?”
이런 얘기가 가끔 내 귀로 들어오면 창피하고 듣기 싫어서 마당으로 달려가 쓸 것도 없는 마당을 연신 쓸어 대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금도 그렇게 마당을 쓸며 슬퍼하고 있는데, 현태 할아버지가 슬금슬금 내게 다가왔다.
“험험, 마당 쓸고 있구나. 철수야, 어머니 오셨는데 힘들게 이게 뭐니.”
현태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다정하고 자상했다. 나는 흠칫하며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왜, 왜 그러세요.”
“허허, 왜 그러다니, 나는 원래 이렇게 자상하단다. 자 이것 좀 마시거라.”
할아버지는 평소엔 먹고 있는 것도 강제로 빼앗아 갈 정도로 좋아하는 콜라를 내게 손수 쥐어 주셨다.
도대체 이 할아버지가 왜 이러는 거야. 오늘따라 얼굴이 좀 붉은 거 같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짐작 가는 게 없어서 찝찝한 기분으로 다시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다시 다가온 현태 할아버지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연세가 어찌 되시니?”
“음, 그러니까 69년생이시니까, 마흔셋이시네요.”
“그으래?”
그러더니 현태 할아버지는 뭘 이것저것 따지시는 것 같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나에게 슬쩍 다가오셨다. 나는 마침 갈증이 나고 안 먹으면 빼앗길까 봐 얼른 콜라를 따서 마시고 있었다.
꿀꺽꿀꺽.
“읍, 목 따가워.”
“저기, 철수야∼?”
“네?”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할아버지는 푸근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라고 불러보지 않으련?”
푸하악―
내 입에서 콜라가 엄청난 속도로 뿜어져 나갔다. 뭐, 뭐라?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뭐, 뭐라구요?”
“험험, 아니, 여자 혼자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들고 나도 마침 적적하고, 선남선녀가 짝이 없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다 싶기도 하고, 게다가 평소에 자식처럼 생각하던 네 어머니시기도 하니까…….”
“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말문을 잃고 멍하니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 할아버지가 날 놀리려고 그러는 건지, 노망이 난 건지 잘 모르겠다. 제정신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하, 할아버지, 저희 엄마랑 나이 차이가 몇 살인지 아, 아시는 거죠?”
“허허, 띠동갑은 궁합도 안 본다더라!”
“크아아악!”
난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84살 차이. 그래, 띠동갑은 띠동갑이다. 갓 태어난 아기랑 환갑잔치하는 할머니도 띠동갑이니까. 근데 그거보다 심하잖아요, 할아버지.
“이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내가 한 말 아니다.
물론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이 소리를 한 건 박금자 할머니였다. 다른 할아버지들과 다르게 어디 계신지 안 보였는데 이 근처에 계셨던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현태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죄다 들으셨는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127살이나 먹은 할아버지의 귀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 누님, 아, 아파, 아파. 아니, 내가 못할 소리 한 것도 아니고. 철수야, 나 새장가 가는 것도 아니고 처음이란 말이야. 아악, 이것 좀 놔줘요, 누님. 말마따나 너희 엄마는 한 번 갔다 오고 애도 딸렸는데, 난 총각이라고! 숫총각!”
“이 자식이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너 정말 죽을래?!”
박금자 할머니는 창피하셨는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평소에 입에도 안 담는 막말까지 하셨다. 하지만 현태 할아버지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아, 맙소사. 그래도 할머니가 데려가셔서 다행이다.
타타타탓―
그때였다.
현태 할아버지가 박금자 할머니의 손에서 탈출했는지 내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셨다.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하, 할아버지, 제발 그만 좀 해 주시면…….”
내 애원에 할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서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바라보셨다.
“적이다.”
현태 할아버지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 적이요?”
적? 적? 적이라니…… 이, 이능자?!
어느새 박금자 할머니도 내게 다가와 있었다. 방금 그 일은 두 분 다 벌써 잊으셨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집 밖을 바라보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내 손을 잡으렴. 직접 보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말하고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박금자 할머니께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런 걸 살기라고 부르는 건가? 숨이 막힐 듯 두렵고 몸을 옥죄는 것처럼 답답한 기운이었다.
“으윽.”
내가 신음 소리를 흘리자 박금자 할머니가 힐끔 날 쳐다보더니, 이내 그 섬뜩한 기운이 약해졌다.
“꽉 잡으렴.”
그리고 순간 몸이 붕 떠오르며 내 몸이 할머니의 손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으, 으아아―”
“조용히!”
“우윽!”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 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무게감이 돌아오며 땅에 내려섰다.
“하아, 하아―”
“숨으렴.”
날 공터의 수풀 쪽에 내려놓은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는 내게 짧게 말하곤 길 쪽으로 걸어 나가며 서늘한 표정으로 골목 쪽을 노려보았다.
“저기서 나타나는 건가. 이, 이능자가…….”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이능자를 직접 보게 되다니, 언젠가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 이르다. 난 아직 아무런 힘도 없단 말이다.
타앗―!
순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신형이 골목 쪽으로 날아오르고, 골목 쪽에서 조폭으로 보이는 다섯 명의 깍두기 형님들이 나타났다. 저런 걸 문답무용이라고 하는 건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깍두기들과 마주치자마자 한 마디 없이 그들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끄억―”
쿨럭―
순식간에 깍두기 둘이 그 자리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크앗!”
순간 한 깍두기가 이상한 기합 소리와 함께 입으로 불을 뿜어냈다. 그냥 불이 아니라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액체와 함께 흩뿌려져 맨땅에도 불이 붙어 이글이글 타올랐다.
“흥!”
현태 할아버지는 그 불꽃을 손을 한 번 휘젓는 것으로 역전시켜 버렸다. 불꽃을 뿜은 능력자는 자신의 몸에 옮겨 붙은 불꽃을 보곤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기이하긴 했으나 현태 할아버지와 박금자 할머니가 너무 월등하게 강력해서 상대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지막!”
현태 할아버지의 기합성과 함께 마지막 능력자가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때, 내 눈에 다른 골목 쪽에 숨어 있는 덩치가 좀 작은 사내가 하나 보였다. 그 사내는 동료가 쓰러지자 지체 없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할아버지! 저기 한 명 도망쳐요!”
나는 몸을 일으키며 크게 소리쳤고, 소리치기도 전에 이미 할아버지는 엄청난 속도로 골목 쪽으로 향한 상태였다. 나는 그런 현태 할아버지를 보며 상황이 끝나 쓰러진 채로 모여 있는 깍두기 형님들을 보며 박금자 할머니께 물었다.
“대, 대단하시네요.”
하지만 박금자 할머니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오히려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어서 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무,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그 말에 박금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들은…… 혼혈이란다.”
“……혼혈?”
“이능자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녀석들이지. 보통은 태어나지 못하고 죽지만, 태어난 녀석들은 이능자의 존재감은 거의 없으면서 이능자의 능력을 타고나지. 능력은 이능자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할머니는 그 뒤에도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작은 목소리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혼혈이 이 정도란 말이야? 이능자들의 움직임은 솔직히 나로선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다만 눈으로 따라잡는 게 불가능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움직임보다 느렸기 때문에 쉽게 제압당했던 거지, 나는 한 방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혼혈이라니.
“제, 제가 이런 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네가 상대할 놈들은 이 정도가 아니란다. 이런 놈들 수백을 합쳐도 당할 수 없는 그런 놈이지. 하지만, 그래도 그런 놈들보다 네가 더욱 강해질 게다.”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나는 살짝 한숨을 쉬며 한약방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내가 영희를 무사히 지켜 낼 수 있을까.
“걱정 마렴. 오늘부터라도 당장 수련을 시작할 테니.”
“……네, 부탁드립니다.”
엄마가 와서 괜스레 들떴던 기분이 정리됐다. 그렇게 내가 마음을 다 잡고 있을 때, 박금자 할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간단히 격퇴했는데, 왜 저렇게 심각하신 거지. 역시 날 걱정하시는 건가. 하지만 나는 자신감 있는 한 마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 * *

원더풀 테크, 대전 지부.
“김미옥 원더풀님, 용역 측에서 보낸 하프들이 전멸했다고 합니다.”
김미옥 원더풀 휘하의 권영수 피디(Prime Diamond Class, PDC)의 보고를 들은 김미옥 원더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어차피 하프들의 역할은 그 정도야.”
“저희 측에서 관찰자로 보낸 하프도 도망치지 못하고 당한 모양입니다.”
그 말에 김미옥 원더풀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
“능력은 보잘것없어도 특히나‘향기’가 적어 쓸모가 있는 녀석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 노괴들이니까. 그보다 그들이 어디서 사살당했지?”
“노괴들의 본거지에서 변위로 800미터 지점입니다.”
그 말에 과할 정도로 화려하게 화장을 한 김미옥 원더풀의 새빨갛게 칠해진 입술이 쭉 찢어지며 섬뜩한 웃음을 그렸다.
“큭큭, 노괴들, 감지력이 약해졌군. 아무리 하프들에게‘향기’가 적다고 하지만 거기까지 허용했다?”
그 말에 권영수 피디가 서늘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용역 측에는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그리고 하프들을 좀 모으라고 얘기해.”
그 말에 권영수 피디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하프를 아무리 모은들, 노괴들 털끝이나 건드리겠습니까? 아무리 약해졌다 한들 말입니다.”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하프를 100개체 이상 모으라고 해.”
“하지만 용역 측 우두머리들이 하프를 다섯이나마 투입시킨 건 사용한 금액이 막대했기 때문입니다. 금액이 막대하지 않았다면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할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100개체 이상이나 투입시키려면 자금이…….”
비록 원더풀 테크와는 다른 조직이지만 노괴들의 영역에 잘못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들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노괴들의 힘이 약해진 부분도 있고, 제시한 금액이 상당했기 때문에 수락한 것이었다.
“흠, 상관없어. 내가 얘기하지. 권 사장이랑 오늘 저녁 약속 잡아.”
“알겠습니다.”
사무실을 나가는 권영수 피디를 보며 김미옥 원더풀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됐어. 흐히히힛, 흐히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