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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궁본병무는 고양이처럼 품을 파고드는 공녀의 기척에 눈을 떴다.
비대한 자신의 몸에 비해 절반도 채 안 될 것처럼 가녀린 공녀는 아직도 잠에 취해 있었다.
한데 그녀의 눈가는 붉었으며, 입에서는 가느다란 침을 흘리고 있었다.
간밤에 벌어진 열락의 흔적이 아닌, 마약에 취해서였다.
궁본병무의 손이 드러난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등 쪽으로 내려갔다. 유지를 바른 것 같은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이 궁본병무를 금세 흥분시켰다.
하지만 궁본병무는 미친 듯한 어젯밤처럼 그녀를 덮치지 않았다.
어젯밤에 세 번이나 양기를 소모해서 더 이상은 무리였다.
공녀는 이제 마약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했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녀는 마약에 미쳐 있었고, 자신은 공녀라는 마약에 빠져 있었다.
궁본병무가 엉덩이를 만지자 공녀가 더욱 달라붙으며 목을 감아 왔다.
“으음!”
온몸이 연체동물의 흡반 같은 공녀의 몸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아!”
순간, 공녀의 손이 그의 가슴을 쓸었다.
그 단순한 동작에 궁본병무는 자지러질 것만 같은 자극을 받았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굳게 마음먹은 궁본병무의 결심이 자극이라는 희열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눈을 뜬 공녀의 눈은 몽롱했다.
공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쾌락으로 몰고 가는 마약과 절정으로 이르게 하는 궁본병무의 거친 몸짓이었다.
궁본병무도 마찬가지였다.
마약을 이용하여 공녀를 중독시키고 노리개로 삼았으나 이젠 그 자신이 이 쾌락의 난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허억!”
공녀의 손이 그의 하체를 스치자 궁본병무가 허리를 들썩거렸다. 참을 수 없는 자극이 척추를 관통한 것이다.
마침내 견디지 못한 궁본병무가 거친 동작으로 공녀의 몸에 올라탔다.
달아오른 궁본병무의 눈동자는 어느 순간 뻘겋게 충혈되었다.
격렬하게 하체를 움직이던 궁본병무가 어느 순간 사지를 늘어뜨렸다.
그의 몸에 눌린 공녀는 성이 차지 않은지 그를 거칠게 흔들며 다그쳤다. 그러나 궁본병무의 눈은 풀려 있었다.

*
*
*

마루는 색색들이 물든 빛깔 나는 과자를 포장했다.
그런 다음 달콤한 향기를 내는 연양갱을 이제 막 솥에서 건져 내 틀에 붓고 굳기를 기다렸다.
연양갱이 어느 정도 굳어지자 조심스럽게 꺼내어 포장했다.
포장을 하고 모든 준비를 마친 마루는 남조문웅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접니다.”
“들어오너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코밑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조문웅이 침대에 기대앉아 마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흠칫한 마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인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마루야, 내가 아무래도 몸살이 난 것 같다.”
남조문웅은 단둘만 있을 때는 직책이 아닌 이름을 불렀다.
마루도 그렇게 불리는 것이 좋았다.
“주인님, 상태가 심해지기 전에 법의에게 진료를 받는 것이 어떠한지요?”
“아, 법의까지 부를 정도는 아니야.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몸살이 났다는 남조문웅의 음성은 여전히 밝고 시원했다. 오히려 걱정하는 마루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떠서 누가 보면 그를 환자로 여길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니다.”
남조문웅이 손을 들어 올리는 바람에 마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보다…… 이번 일도 아주 잘했다. 한데 왜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느냐?”
“여자들이 귀속술법에 걸려 있었습니다.”
“여자들? 몇이나?”
“10명이라 하더군요.”
남조문웅은 마루의 말에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미친놈이군.”
“갈수록 경계가 심해집니다. 대비도 만만치 않고요.”
“저항군의 소행으로 알 테니 그럴 수밖에.”
“저항군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요?”
“비록 강도질이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저항군을 돕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반드시 피해라고 볼 수는 없겠지.”
남조문웅은 제과점을 운영하지만 밤에는 도둑이 된다. 그리고 때로는 강도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그 밑에서 일하는 마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군요.”
강도질을 교묘하게 저항군의 일로 포장하는 남조문웅의 말에 마루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이번 일은 제법 괜찮았습니다.”
“그래?”
“광산석태의 숨겨진 금고를 발견했는데, 보석과 금막대는 물론이고, 갖은 금은보화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털어 왔습니다.”
“얼마나 되는데?”
“배낭에 가득 찰 정도입니다.”
“도둑놈!”
술법 배낭은 방 하나 정도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
한데 그 공간을 다 채우려면 얼마나 많은 보화가 들어가야 할까?
“그리고 이참에 술법구를 좀 더 다양하게 구입했으면 합니다.”
경계가 심해 갈수록 담을 넘기가 어렵다. 특히 술법으로 경계하고 있는 저택은 침입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따라서 거의 필수라 할 수 있는 술법을 중화시키는 술법구와 그밖에 침투와 은신에 관한 술법구가 필요했다.
“안 그래도 중화 술법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술법구를 주문해 놓았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나머지는?”
“지금까지처럼 주인님이 알아서 하시기 바랍니다.”
남조문웅은 마루가 털어 온 재물을 전부 취하지 않았다.
일부는 마루의 몫으로 떼어 주었고, 일부는 처지가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사용했다. 어떻게 돕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설사 남조문웅이 전부 취한다 하더라도 마루로서는 큰 불만이 없었다.
마루는 이미 남조문웅으로부터 삶에 있어 커다란 은혜를 받은 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음, 네 말대로 저항군이 우리로 인해 피해를 보았으니 사죄하는 의미로 일부를 그들에게 보낼까?”
“좋은 생각입니다.”
“아깝지 않으냐?”
“어차피 쉽게 얻은 재물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한이 서린 재물들입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도둑질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의 노력과 투자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목표에 대한 조사와 정보, 그리고 소모적인 장비의 구입 등등이 다 돈이다.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자.”
그렇게 결정을 내린 남조문웅이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몸이 좋지가 않으니 경기장에 갈 수가 없겠구나. 하지만 네가 만든 과자와 연양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오늘은 네가 내 대신 과자를 가지고 가야 되겠다.”
원래 오늘은 남조문웅이 검투사 경기장에 가는 날이다.
검투사 경기는 원형 경기장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과 괴수, 인간과 인간의 목숨 건 싸움을 말한다.
경기장의 회원인 남조문웅의 관람석은 경기장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 50개의 귀빈실 중 하나다.
이 귀빈실은 몇 명의 귀족들이 하나의 계를 이루어 경기장 측에서 회원권을 분양받아 사용한다.
말하자면 회원이 아닌 사람은 귀빈실에 출입할 수조차 없다는 뜻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회원이 동반한 사람과 경기장에서 임시로 발급한 출입증이 있는 사람은 출입을 할 수가 있다.
이른바 특권층만의 사교 장소인 셈이다.
하나의 귀빈실은 보통 5명에서 10명 정도의 귀족과 관리들이 유지한다. 초대하고 동반되어 가는 사람까지 많게는 30명까지 귀빈실 안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과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몇 시간의 경기 관람을 즐기기 위해 귀빈실에는 전용 요리사가 대기하고 있고, 각종 술과 과실주를 기호에 맞게 구비하여 경기 관람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경기 관람을 위한 목적보다는 사교와 친분을 맺기 위한 장소라 할 수 있다.
그 친분을 이용한 이해타산의 거래와 암중모색의 이전투구가 물밑으로 치열하게 오가는 장소 중 하나임은 금미달의 귀족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살 수 없는 게 원형 경기장의 회원권이었다.
수요는 많지만 회원권은 한정이 되어 있는지라 한두 장의 회원권이 분양될 때면 그것을 구하기 위한 시도는 치열한 경쟁이 된다.
때문에 뇌물과 회유, 협박은 물론 급기야 유혈극까지 불러오는 참상도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그렇게 해서 회원권을 차지한 사람은 비로소 귀빈실에 출입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검투사 경기장의 회원이야말로 금미달의 당당한 귀족으로 행세할 수 있는 보증서와도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남조문웅은 이러한 검투사 경기장의 회원이었으며, 경기장에 제과점에서 만든 물건들을 대주는 일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
그래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귀빈실에 가지고 갈 과자와 연양갱을 잘 포장하여 준비해 놓는 것은 언제나 마루가 했다.
물론 남조문웅의 귀빈실에 가지고 갈 것만 말이다. 다른 귀빈실에 들어갈 것은 경기장 측의 주문에 맞춰 일괄적으로 납품한다.
“귀족분들께서 우리 제과점의 과자와 연양갱을 기다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후후후, 네가 개발한 과자와 연양갱들 덕분에 우리 제과점의 매출이 날로 늘어나고 있지 않느냐. 특히 연양갱은 귀족들이 선물로 이용하기엔 그만이잖아. 이참에 경기장도 구경할 겸해서 갔다 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물건만 전달하고 바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이왕 간 김에 경기도 즐기면서 천천히 구경하다 오도록 해.”
“그래도 되나요?”
“마루, 너는 다 좋은데 너무 건조해서 탈이야. 잔말 말고 오늘 하루는 경기를 다 보고 와서 나에게 설명해. 이건 명령이야.”
편안하고 부드러운 남조문웅의 얼굴이 일순 근엄해졌다. 하지만 마루는 그가 일부러 근엄한 척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3장 검투사 경기장



마루는 직접 포장한 과자와 들고 두 마리의 하얀 백마가 끄는 고급스러운 마차에 올라 경기장으로 출발하였다.
따그닥!
왕도 금미달의 대로는 마차가 일정한 속도를 낼 만큼 충분히 넓었다.
적당한 승차감이 느껴지는 마차에서 내려다본 대로의 거리는 암담한 나파 치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마부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말들을 이끌었다.
1시간쯤 지나 마차는 왕도인 금미달을 감싸고 흐르는 한산강의 둔치에 위치한 경기장에 도착했다.
원형의 검투사 경기장은 거대하고 웅장한 기세를 뿜어내는 건축물로, 왕궁를 비롯한 총독부 건물과 함께 금미달의 3대 건축물로 손꼽힌다.
마부는 회원들만 출입하는 전용 출입구에 마차를 세웠다.
마루는 마부가 열어 주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지배인님, 저는 여기까지밖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마루는 그런 마부에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경기 시간에 맞추어 출발한 터라 출입구에는 화려한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사람들이 많군. 전부 귀족이겠지?’
사람들 대부분은 나파인과 나파 관료들과 줄이 닿아 있는 대선의 귀족, 그리고 친나파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