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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연화란 백작은 사상 최초의 여성 백작이다.
이는 아주 특이한 경우였는데, 이는 나파의 정책적인 결정과 호국 가문인 연 공작가에 대한 대선 국민들의 흠모와 애정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였다.
호국 가문인 연가는 대대로 대선 왕국의 자랑이자 국검인 성검을 배출했다.
성검은 완성된 검이라는 뜻이다.
성검은 왕국의 근위기사단의 단장이 되어 대선 왕가에 충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항복을 거부하고 나파군의 왕도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맞섰다가 연가의 남자는 모두 전사하고 연화란은 체포가 되어 옥에 갇혔다.
그 뒤 나파의 강점 기간이 길어지면서 폭정과 점령군들의 횡포가 무분별하게 행해지면서 금미달 시민들의 불만과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그에 따라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총독부는 강경하게 대응하며 몇 번의 무력진압을 했지만, 시위는 더욱 과격해졌고 그치질 않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다 못한 친나파인들이 연가를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특별한 규정을 만들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연화란에게 연가를 잇게 만들었고, 백작위를 내린 것이다.
놀랍게도 그 뒤 왕도 금미달에서의 시위가 잦아들었다.
이것만 보아도 연가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전설적인 가문이 사라지는 것이 마치 국민 개개인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면 공감이 되겠는가.
대선 국민들은 언젠가 반드시 연가에서 국검인 성검이 나와 조국을 나파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의 염원을 이루어 주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겠어요. 안 그래도 매달 적지 않은 돈을 희사하여 후원해 주시는 분인데, 법의를 보내는 게 당연한 도리겠지요. 잠깐 실례해요.”
명화의 분홍빛 입술이 열리자 새하얀 치아 안에서 맑고 투명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는 마음 씀씀이도 남다른 모양이다.
그러나 매우…… 위험한 여자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신정영효 후작의 외동딸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마루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명화 아가씨. 그리고 연 백작님도 감사합니다.”
“오호라, 날 아는군?”
그녀가 푹신한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풍성한 가슴의 살들이 융기를 했다.
마루는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억지로 외면하며 대답했다.
“금미달에서 가장 현명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연화란 백작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이런! 여기서 또 욕을 얻어먹네. 소문은 그게 아닐 텐데?”
아직 미혼인 연화란 백작은 사교계는 물론이고, 금미달에서 가장 많은 소문을 만들고 다니는 여인이다.
그 대부분이 어느 누구와 잠자리를 했다는 저질스러운 소문이었고, 그 소문은 그녀를 희대의 색녀로 만들었다.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묘한 색기와 끈끈한 말투를 보자면 아주 아닌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마루는 생각했다.
“다른 소문은 안 들어 봐서 모르겠습니다. 만약 듣게 된다면 반드시 백작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호호호, 조만간 그 대답을 기대하지.”
끈적한 웃음은 그녀의 입술 옆에 붙어 있는 점을 떨게 하였다.
명화는 밖의 기사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들어왔다.
명화의 부친인 신정영효 후작은 그동안 두 번의 습격을 받았으나 운이 좋은지 아직까지 목숨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저항군을 극도로 증오했고, 저항군의 체포에 그 누구보다 열성이었다.
그러나 명화는 신정영효와는 달랐다.
나파 제국이 강점하여 식민 통치를 한 지 11년이 되었다. 식민지 수탈은 점점 도를 더해 갔고 더불어 국민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무수한 고아들이다.
고아들은 왕도의 보이지 않는 뒷골목에 가면 하루에도 수십 명씩 버려져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어 노예로 팔려가거나 설사 그러한 손길을 피한다 하더라도 종내는 굶주리고 병이 들어 죽기 마련이었다.
명화는 그런 고아들을 데려다가 돌봐 주었다.
처음 한두 명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 200여 명이 넘어가자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주변 귀족가를 돌아다니며 지원을 호소하고 협조를 구해 재정을 충당했다.
그중에서 연화란 백작과 남조문웅은 명화의 가장 큰 후원자라 할 수 있었다.
딸의 구걸과도 같은 행태를 못마땅해한 신정영효는 몇 번이나 혼을 내었으나, 그럼에도 명화의 귀족가 방문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신정영효는 그녀에게 들어가는 가문 내 모든 자금의 지급을 중단하고 압박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을 바꾸지는 못했다.
“젊은 나이인데 지배인이라니, 남다른 능력이 있는 모양이네?”
“맛 좋은 과자를 파는 일은 누구라도 가능합니다.”
약간 꼬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모나지 않은, 적절한 대답이었다.
“호호호, 그것이 능력이지.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거든.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밖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바보들이 그것을 알겠어? 남조문웅 님은 역시 사람을 볼 줄 아는 분이야. 그런 분의 눈에 띈 당신도 대단하고 말이야.”
“…….”
색녀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외의 말이었다. 이어질 대화가 궁색해진 마루가 물러갈 뜻을 비쳤다.
“그러면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머, 그냥 가시면 되나?”
연화란이 콧잔등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왕 왔는데 구경이라도 하고 가지. 보다시피 여자만 둘이서 구경하기엔 여긴 너무 넓고 시시하거든. 아무래도 젊고 잘생긴 남자가 있어야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 않겠어? 설마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가 말하는데도 그냥 가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리한다면 굉장히 섭섭해할 거야.”
비꼬는 말투에서 약간의 호의를 비추었다가 이젠 강요까지 한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명령이겠지만, 듣는 마루로서는 난처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었다.
“마루 님이 없다고 설마 제과점이 문을 닫지는 않겠지요?”
결국 보다 못한 명화마저 한 팔을 거들고 나섰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잠시 구경하다 가겠습니다.”
남조문웅이 걱정되긴 하였지만 마루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검투사와 괴수의 대결을 한 번쯤은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다정하게 느껴지는 명화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상대지만, 지금은 그녀의 얼굴을 더 보고 싶었다.
그때, 기사 하나가 귀빈실 안으로 들어왔다.
“명화 아가씨, 자택과 통신을 하여 남조문웅 님에게 법의를 보내 주라는 지시를 전달했습니다.”
명화는 기사를 통해 경기장 내 통신 기구인 수정판을 통해 신정 가문의 법의를 남조문웅에게 보낸 것이다.
“수고했어요.”
보고를 마친 기사가 나가자 연화란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참, 어제 경비대 형사부장인 광산석태 남작의 저택에 강도가 들었다고 하더군. 광산석태 남작은 중상을 입고 저택이 홀랑 타 버렸다고 하더라고.”
“저런! 그래도 광산석태 남작이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푸훗, 살아남긴 했는데 두 눈이 터지고 성기까지 잘렸대. 게다가 팔도 하나 잘려서 더 이상 사람 구실하긴 어려울 거야.”
연화란은 말하면서 내내 마루를 주시했다. 그것은 명화도 마찬가지였다.
마루는 문득 등줄기가 써늘해졌다.
‘이 표정은 무슨 뜻이지?’
하지만 마루는 이내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이 한 일은 오직 남조문웅밖에 모른다.
금미달에서 가장 위험한 두 여인.
남조문웅이 이 여인들에게 그런 내용을 말할 리가 없다. 따라서 이 여인들이 알고 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마루 지배인은 뭐 아는 소식 없어?”
“저도 지금에서야 들은 말입니다. 당연히 알고 있을 리가 없지요.”
“그래?”
순간, 연화란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마루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어쩐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빠아아아!
둥둥둥둥!
그때, 어디선가 나팔 소리가 길게 울리고 급박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시작하나 보네.”
연화란이 창가의 의자에 앉자 창문의 유리가 위로 올라가며 터질 것 같은 함성이 울려 왔다.
“지배인, 이쪽으로.”
마루는 연화란의 손짓에 그녀 옆에 앉았다. 그러자 명화가 그의 옆쪽에 자리를 잡았다.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연화란과 명화가 앉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지배인은 검투사 경기에 대해서 아나?”
“전 처음입니다.”
“규칙과 방식을 알고 나면 더욱 재밌게 경기를 즐길 수가 있어.”
그러는 동안 요리사와 직원이 음식과 술을 날라 왔다.
그중에는 과자와 연양갱도 있었다.
명화의 것인지 연화란의 향수 냄새인지, 은근한 과일 향이 음식 냄새에 묻혀 사라졌다가 간간이 마루의 후각을 자극하였다.
그때, 수천 명의 사람들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나팔과 북소리에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꽈앙!
경기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북소리와 함께 진행자의 증폭된 음성이 경기장을 울렸다.
점점 고조되어 가는 진행자의 음성이 커질수록 장내의 분위기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화로처럼 뜨거워져 갔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귀빈실에서는 경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윽고 오늘 싸울 검투사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입장했는데, 그들의 복장은 참으로 다양했다.
단단한 철갑으로 무장한 검투사가 있는 반면,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흉갑을 걸친 이들도 있고, 그저 가벼운 경갑주만을 걸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다시 한 번 장내가 뜨거워졌다.
“와아아야!”
터질 것 같은 장내의 함성만으로도 검투사들의 인기가 어떠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경기는 인간과 괴수의 대결이었다.
소와 같은 몸을 가진, 그러나 톱니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4개의 뿔이 달리고 빨간 각질의 몸으로 이루어진 육식 괴수 적린괴우(赤鱗怪牛)와 통상적으로 검투사라고 불리는 자들과의 목숨을 건 대결.
“이제 검투사와 싸울 적린괴우가 나올 거야.”
그녀의 말대로 곧 경기장 한쪽에서 황소의 세 배가 될 것 같은 거대한 몸체의 붉은 몸을 가진 적린괴우가 미친 듯이 달려 나왔다.
“지금 나온 적린괴우는 경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빛이 차단된 어두운 방에 집어넣고 굶겼어. 그래서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진데다 흉악한 야성이 골수까지 치민 상태야. 이런 상태로 방출하면 어떻게 되겠어?”
신경이 곤두서고 먹이에 굶주린 적린괴우는 움직이는 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미친 듯이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이다.
연화란은 마치 자기가 적린괴우를 굶긴 것처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명화는 말없이 경기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날카로운 작살창 몇 개를 등에 멘 채 말에 탄 검투사가 나타나자 적린괴우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육중한 적린괴우의 붉은 시선이 한순간 말과 검투사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발로 바닥을 긁으며 콧김을 거칠게 뿜었다.
그러다 한순간 미친 듯이 말에게 달려들었다.
두두두두!
말에 비해 서너 배는 커다란 적린괴우의 몸놀림은 마치 산악이 덮치는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말과 검투사는 금방이라도 적린괴우의 발밑에 깔려 짓이겨질 것만 같았다.
네 개의 길고 짧은 날카로운 뿔의 활용을 매우 잘 아는 듯 적린괴우가 말 앞에서 고개를 숙여 뿔을 눕혔다.
“아아악!”
“와아아아!”
여자들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와 함성소리로 인해 경기장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적린괴우의 정면에 선 말은 매우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린괴우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을 이용하여 몸을 틀었다.
너무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장면이라 마음이 약한 여자들은 차마 볼 수가 없어 눈을 가리기도 했다.
그사이 검투사는 적린괴우의 옆구리에 작살창을 꽂아 넣었다.
적린괴우의 몸체를 덮은 비늘은 검으로도 벨 수가 없으며, 화살도 뚫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방호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검투사의 작살창은 단단한 비늘을 뚫고 옆구리에 박혔다.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 소리쳤다.
“기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