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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개는 사람을 잘 따르고 충성심이 강합니다. 그리고 주인을 잘 지키는 습성이 있어 이것 한 마리만 있으면 열 기사 부럽지가 않습니다.”
“어디 기사를 짐승과 비교를 하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것보다는 잠자리에서나 쓸모가 있겠어!”
“짐승하고 관계를 해도 되나?”
그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확성기를 든 사내가 손을 들어 웃음을 제지했다.
“물론 잠자리에서도 쓸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자, 고객들께 본모습을 보이도록 해라.”
채찍을 든 사내가 목의 구속 목걸이는 풀고는 견인 여자에게 뭐라 지시를 했다. 그러자 견인 여자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자, 놀라지 마십시오! 이게 견인족의 참모습입니다!”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름다운 견인의 얼굴이 앞으로 돌출이 되며 개의 얼굴로 변하면서 동시에 하얀 피부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드러난 피부가 자잘한 털로 뒤덮이면서 이빨과 손톱이 길게 자라났다. 더불어 키도 자라나 2미터를 훌쩍 넘어 버렸다.
“아아!”
“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귀족들이 환호하고 열광했다.
“이 견인족이 비록 암컷이지만 이렇게 본모습으로 변하였을 시 전투력은 경검의 기사 10명과 상대해도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번 주인으로 인식하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충성을 다합니다. 또한 잠자리까지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쓰임새가 아주 다양합니다.”
견인 여자는 이내 다시 인간형으로 변했다.
“수인족도 귀속술법을 걸 수가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귀속술법을 거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영원히 주인에게 복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 경우 노예는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주인에게 귀속되며 주인이 죽을 시 노예도 죽게 된다. 이는 불복종이나 주인을 해치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귀속술법은 술법사마다 제각기의 암호를 걸어 놓아 상위의 술법사라도 쉽게 풀지 못한다.
그러나 귀속술법은 정신이 분열되고 미칠 수가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대부분 신체만을 통제하는 구속술법을 건다.
“저 암컷은 처녀요?”
“당연합니다.”
“수컷은 없소?”
“수컷은 워낙 흉포하여 사로잡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암컷 견인이 경검사 10명과 전투력이 맞먹는다면 수컷은 그보다 서너 배는 강하다. 달리 말하면 수컷 견인 하나가 경검사 수십 명의 전투력을 상회한다는 뜻이다.
그런 수컷 견인을 생포하려면 치러야 할 대가가 막대할 것이다.
“자,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최초 금액은 100금화입니다.”
“뭐야?”
“100금화라니, 말도 안 돼!”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평민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은화 한 개이고, 은화 20개가 1금화다. 그리고 일반 노예들, 특히 미모가 받쳐 주는 여자 노예들의 가격이 10금화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가격인 것이다.
“이 견인 하나로 인해 집안의 경비는 물론이고, 호위에 잠자리까지 해결됩니다. 거기다 이곳 금미달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희귀한 종족인 수인임을 감안하면 절대로 비싼 값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 110금화!”
“자, 110금화 나왔습니다.”
“120금화!”
일단 경매가 시작되자 귀족들이 앞 다투어 참여하여 값을 올렸다. 순식간에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하지만 같은 귀족이라도 잘살고 못사는 귀족이 있는 만큼 값이 올라갈수록 소란은 줄어들었다.
300금화가 넘어가자 손을 든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졌다. 암컷 견인은 결국 400금화를 부른 귀족에게 낙찰이 되었다.
‘노예 하나를 사려고 400금화를 쓰다니…….’
마루에게는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낙찰된 귀족이 의기양양하게 단상에 올라 쇠사슬을 넘겨받아 아래로 내려왔다.
“다음 수인족은 묘인입니다.”
다시 한 명의 수인족이 끌려 올라왔다. 이번에도 여성형이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고양이는 밤눈이 밝고 귀가 좋아 집 안에 놓으면 도둑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을 잘 듣고 귀염성이 많아 견인과는 다른 특별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마루는 거기까지 듣고는 다시 수레를 몰았다.
인간이 노예가 되는 상황에서 수인족이라고 하여 특별하게 안타깝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다 같은 생명일진대 단지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렇게 극단적으로 살아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마루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러한 굴욕적이고 노예적인 삶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또 비인간적인 상황들이 이어지는 비극적인 악조건들을 헤치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감옥에 갇힌 것만이 자유를 구속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것 자체가 감옥인지도 모른다.
마루는 눈에 보이는 암담한 상황을 피하려는 듯 햇빛대로를 벗어나 상점과 상점 사이의 골목으로 늙은 말을 몰았다.
따그닥! 따그닥!
그렇게 마루는 한참을 골목을 따라 쭉 들어갔다.
골목은 갈수록 좁아졌고 어두웠다. 그에 따라 오가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와 오물이 곳곳에 쌓여 있어 악취가 심하게 풍겼다. 늙은 말도 악취가 싫은 듯 가볍게 투레질을 했다.
하지만 마루에겐 차라리 이런 골목의 어두운 답답함이 편안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유리걸식을 하는 부랑자들이다.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부랑자들의 모습은 찌들 대로 찌든 절망의 산물이었고, 하나같이 삶의 의지를 상실한 모습들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삶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 골목이었고, 마루 역시 이들처럼 살았다.
낡고 때에 절은 옷을 걸쳐 입은 부랑자들의 눈빛은 경계와 적의로 가득 차 있어 마루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골목에서 마루는 익숙한 얼굴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랑자들은 한 번 얼핏 시선을 주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양쪽으로 이어진 낡은 건물을 사이를 지나면서 마루는 가능하면 부랑자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늙은 말을 몰았다.
이곳에 올 적에는 비교적 평범하고 낡은 옷을 골라 입고는 했지만, 부랑자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화려했다.
가슴 안에 맹목적인 적개심을 담고 있는 이들이 상대적인 박탈감과 열등감이 휩싸여 분별을 잃을 때는 그 누구도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부랑자들은 가진 자들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루가 마차를 멈춘 곳은 건장하게 보이는 사내 10여 명이 제멋대로 앉아 있는 건물의 앞이었다.
그 사내들 중 얼굴에 수염이 무성한 사내가 마루를 보고 반색을 하였다.
“하하하! 마루야, 어서 오너라!”
가까이 다가온 사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마루를 반겼다.
“봉만 아저씨, 오랜만입니다.”
“그래, 벌써 한 달이 되었구나. 근데 어째 얼굴이 좀 안되어 보인다. 혹시 오다가 어떤 놈이 시비라도 걸더냐?”
오래전 한쪽 귀가 잘리는 바람에 짝귀라는 별명이 있는 박봉만은 도방의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다.
“시비는요? 그냥 몸이 좋지 않아 그리 보이는 걸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한가람 제과점의 지배인 자리가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몸 축나게 일하지는 말아라.”
“예.”
그때, 건물에서 젊은 사내가 나타났다.
“왔냐?”
젊은 사내는 건장한 체격에다 몸짓이 거칠었다. 하지만 마루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친근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우야, 그동안 별일은 없었느냐?”
“짜식아, 이곳에서는 별일 없는 것이 별일이다.”
“이제 네놈도 배가 부른 모양이구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밀가루냐?”
석대는 수레 위를 덮은 천을 들어 올렸다.
그는 마루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다.
어릴 때부터 사이좋게 좀도둑질과 소매치기를 하며 살다가 마루가 남조문웅을 따라가자 석대는 도방에 들었다.
그리고 도방의 방주인 송한승에게 성을 받아 이제 송석대가 되었다.
“응. 밀가루하고 이번에 새로 만든 빵을 가져왔다. 그리고 아래는 저번에 말한 의약품들이다.”
도방에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은 없었지만, 그래도 병자를 치료하기 위한 효과가 좋은 의약품들은 통제가 심하여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어디선가 눈과 귀를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을 방첩대의 눈을 피해 어렵게 구한 물건들이다.
밀가루와 빵을 헤치고 수레의 바닥에 깔린 상자를 들어 올린 송석대가 약품을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수고했다.”
“짜식아, 말로만 하지 말고 수고한 이 형님에게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대접해라.”
마루가 짐짓 건들거리는 행동으로 송석대의 어깨를 쳤다.
그의 행동과 말투는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오랜 친구인 송석대를 대하자 다분히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풀어지고 기분이 절로 흥겨워져 자기도 모르게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이 드러난 것이다.
“오냐, 이 형님이 오늘 원없이 마시게 해 주마.”
“형님 좋아하네. 코 질질 흘리며 내 바지춤을 잡고 쫓아다니던 놈이 이제 대가리 좀 컸다고 형님 행세를 하려고 해? 이 도둑놈아!”
“허허, 한가람 제과점의 점잖은 지배인 입이 이리 험해서는 안 되지. 그리고 순진한 나를 가지고 코 질질 흘려야 한다고 내내 꾄 놈이 누구냐?”
“이 자식이 좀 귀여워해 줬더니 그사이에 버릇이 없어졌네. 이제는 코 질질 흘리는 것까지 내 탓으로 돌리려고 해?”
“그럼 아니냐?”
“웃기고 있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박봉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니들은 지치지도 않냐? 어찌 만나기만 하면 매번 같은 내용으로 말싸움이냐? 차라리 남자답게 한바탕 주먹질을 해라. 이제 구경하는 것도 지겹다.”
박봉만의 말에 송석대가 피식 웃었다.
“이런 약골에게 주먹을 쓰라고요? 내 주먹이 웁니다.”
“지랄하네. 네가 얼마나 처맞고 싶어서 까부냐?”
“아아, 싸우는 것은 나중에 하고 어서 밀가루나 옮기자. 하늘을 보니 곧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다.”
봉만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말다툼을 가로막고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마루와 송석대가 동시에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마루와 송석대가 약품 상자를 안으로 옮기자 밖에 있던 사내들이 박봉만의 지시에 따라 밀가루를 창고로 옮겼다.
건물 안은 아무런 치장도 없이 책상과 의자만이 실내를 차지하고 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였다.
“방주 아저씨는?”
“외출하셨어.”
약품 상자를 들고 들어오던 마루는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 밑에 쭈그려 앉은 두 명의 아이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아이들은 누구야?”
두 명의 아이는 열 살 안팎의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였다. 하지만 둘 다 도방에 들이기에는 너무 어렸다.
“오늘 아침에 뒷골목에서 쓰러져 있기에 데리고 왔다. 그냥 두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말이야.”
계집아이는 사내아이의 손을 붙든 채 겁먹은 눈으로 마루의 시선을 피했다. 반면, 사내아이는 마루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한데 이상한 것이, 아이의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눈이 왜 이래?”
“그게 말이야…….”
송석대가 난처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그에 마루가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