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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그 시각, 소년 사마우는 자신의 방에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사마우는 혁련천세의 손에 이끌려 제왕성으로 들어왔다. 그런 사마우에게 혁련천세는 직접 한 권의 무공비급을 전해 주었다. 그 비급이 바로 반야심공이었다.
글을 모르는 사마우로서는 딱히 그것을 익힐 방법이 없었다. 결국 글을 배울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선 사마우는 모용백에게 글을 배웠다. 그리고 나름대로 반야심공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방 배운 재주로 반야심공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음과 뜻을 안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내용까지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더구나 책에 나와 있는 운기조식이라는 것, 그것은 지금까지 자유분방하던 그에게는 너무나 따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괜한 헛걸음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부모를 여읜 것은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그 후 그는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의 손에 이끌려 회강현의 어부에게 팔렸다.
그러나 어부의 살림은 넉넉한 편이 못 되었다. 다행히 어부에게는 자식이 없었기에 그를 양자라는 명목으로 거둬들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름만 양자일 뿐 실제로는 그들의 노후를 위한 일종의 보험일 뿐이었다. 당연히 아이에 대한 애정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당시 사마우는 어부가 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때문에 그들은 사마우에게 땔감을 해 오는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다. 물론 교육이라는 것에도 무관심했다. 덕분에 사마우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자유 시간을 함께할 친구조차 없었다. 그것은 물론 아이답지 않은 살벌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내야 했고, 낚시가 그의 여가생활에 중요한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혁련천세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일단 어부의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자신들의 노후를 위해 혁련천세에게서 적지 않은 돈을 뜯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사마우에게 그 선택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였다.
혼자서 지내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과거 그에게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제왕성에 들어온 이후에는 그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연공을 위한 연공관, 글공부를 할 수 있는 서재, 잠을 잘 수 있는 침실이 전부였다.
게다가 은밀하게 자신을 감시하는 모용백까지, 한마디로 적응하기 힘든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바닷가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당시가 너무나 그리웠다. 그런 곳에서 사마우는 장장 삼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혁련천세의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너의 눈에 이글거리는 그 욕망을 내가 질리도록 충족시켜 주마.’

“욕망을 질리도록 채워 준다고? 개뿔, 욕망은 무슨. 어쨌든 질리긴 질렸지. 젠장.”
돌이켜 보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욕망을 어떻게 타인이 채워 줄 수 있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었다. 그런 말을 믿고 무조건 따라온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확실한 두 가지 욕망이 생겼다.
일단 음흉한 시선으로 자신을 감시하는 모용백을 죽이고 싶다는 것, 그리고 빌어먹을 약속으로 자신을 속인 혁련천세를 죽이고 싶다는 것, 이 두 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마우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늘도 연공을 위해 연공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 빌어먹을 심공인지 지랄인지 하는 것은 그저 머리에서만 빙빙 맴돌 뿐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연공을 멈출 수는 없었다. 대충 눈치를 보아하니 이것을 끝내야 이곳에서 풀어 줄 심산인 듯했다. 때문에 그의 마음은 더욱더 조급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인가부터 단전에 희미한 기운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책에서 말하는 내공인지 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또한 느껴지는 게 고작일 뿐 더 이상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그의 두 가지 욕망은 끊임없이 증폭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바탕 지랄 같은 운기조식을 끝내자 눈앞에 재수 없는 인물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사마우는 대뜸 그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주먹을 감쌌다. 이내 그 알 수 없는 기운에 밀려 쾅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음흉한 모용백의 얼굴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사마우는 그런 모용백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실제로 모용백은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조금 전 보여 준 사마우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누가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마우의 동작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맨주먹이 아니라 손에 검이라도 쥐고 있었다면, 그리고 조금만 내공이 받쳐 주었더라면, 조금 전 그 한 수에 누워 있는 것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용백이 씁쓸한 표정으로 사마우의 손을 잡았다.
“가자.”
사마우의 손을 잡은 모용백의 얼굴은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손에 쥔 사람의 표정을 연상케 했다. 사마우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뭐 씹은 표정으로 모용백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왠지 재수 없는 면상이었다.

모용백이 그를 데려간 곳은 바로 옆 건물이었다. 그곳에서는 한 명의 노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용백이 노인을 향해 다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로 영감, 오늘부터 자네가 이 아이를 맡아 주어야겠네.”
노인 자로가 의아한 표정으로 모용백을 바라보았다.
모용백이 그런 자로를 향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은 성주의 명령일세.”
그제야 자로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모용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자로에게 사마우를 인계하자 모용백은 한시도 그곳에 있기 싫은 듯 재빨리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로는 그런 모용백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용백의 모습이 밖으로 사라지자 비로소 사마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노인이란 다 이런 느낌일까? 자로의 눈빛은 지금까지 봐 온 사람들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마치 자신의 내면을 송두리째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런 눈빛이 사마우에게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마우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어렸다. 순간 자로의 눈동자가 묘하게 꿈틀거렸다. 자로는 자신을 노려보는 소년의 살기가 전신을 휘감는 것처럼 느꼈다. 이내 자로가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제법 좋은 검이로군.”
자로의 말에 사마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주변에서 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후 악몽은 시작되었다. 지난 삼 년, 분명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나날이었다. 적어도 그런 지루함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일상에서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루함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바로 지독한 고통이었다. 그 지독한 고통은 차라리 지루함이 행복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노인 자로, 그는 분명 화원지기였다. 그가 하는 일은 제왕성의 모든 꽃과 나무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늦은 밤까지, 노인은 쉬지 않고 꽃과 나무를 보살폈다. 사마우는 그런 자로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적어도 처음 엿새는 그렇게 그를 따라다니기만 했다. 여전히 지루하기는 했지만 제왕성 곳곳을 마음껏 돌아다닌 덕분에 답답함은 조금 사라진 상태였다.
악몽의 시작은 한 자루의 검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히 칠 일째 되는 날 아침, 모처럼 자로가 사마우의 거처를 직접 찾아왔다. 그리고 한 자루의 검을 가만히 그에게 건넸다.
검이라고 해서 무인들이 사용하는 장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꽃과 나무를 가꾸는 데 사용하는 작은 소검이었다. 사마우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검을 받아 들면서 자로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사마우의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사마우가 놀란 표정으로 다시 자로를 바라보는 순간 다시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처음 자로를 보았던 느낌이 현실로 다가왔다.
자로는 한마디로 재수 없는 늙은이였다. 우락부락한 늙은이의 얼굴은 도무지 꽃과 나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늙은이는 지금까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때때로 그가 벙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그가 벙어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을 처음 본 순간 그가 내뱉었던 말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좋은 검이로군.’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자로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마우의 본능은 이 늙은이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 말하고 있었다. 때때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로의 은은한 눈빛, 거기에서 예사롭지 않은 신비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 눈빛은 처음 느낌 그대로 마치 자신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물론 여전히 그 눈빛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빌어먹을 늙은이로군.’
그런 생각이 들자 사마우는 손에 든 검을 본능적으로 꽉 움켜쥐었다. 재수 없는 늙은이를 검으로 확 쑤셔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눈앞에 다시 별이 번쩍였다. 그리고 비로소 그 별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별을 만든 것은 바로 노인 자로의 손에 들린 지팡이였다. 그것이 지팡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대체 몇 번이나 별이 번쩍였는지 모른다. 그 순간 또다시 지팡이가 사마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사마우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살짝 움직여 지팡이를 피했다. 순간 지팡이가 머리 대신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깨가 부러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손에 든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마우가 죽일 듯이 자로를 노려보았다. 순간 자로의 손에 들린 지팡이가 다시 불을 뿜었다.
“끄응∼.”
사마우는 이를 악물고 입에서 나오려는 신음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늙은이 따위에게 맞아서 신음성을 낸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자로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사마우와 바닥에 떨어진 소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시 손에 쥐라는 뜻일까?’
사마우는 조심스레 바닥의 소검을 집어 들었다. 순간 자로의 지팡이가 다시 그의 손등을 강타했다. 사마우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로를 바라보았다. 단순한 늙은이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 증거로, 늙은이의 지팡이를 도무지 피할 재간이 없었다.
‘늙은 생강이 맵다는 뜻인가?’
사마우는 다시 바닥에 떨어진 소검과 자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로는 그런 사마우를 그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사마우는 별로 좋지도 않은 짱돌을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못마땅한 것인가?’
비록 말은 안 했지만 이 늙은이가 아무 이유 없이 자기를 때리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늙은이의 눈은 분명 무언가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다시 검을 줍기 전에 사마우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자로는 그런 사마우를 홀로 남겨 둔 채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재수 없는 늙은이.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할 것이지, 입은 뒀다 어디에 쓰려고.’
그런 생각으로 다시 소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로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자로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꽃과 나무를 다듬고 있었다. 검을 손에 든 사마우는 은근한 시선으로 자로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늙은이, 그냥 죽여 버릴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시 별이 반짝였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몸의 곳곳에서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별과 고통의 정체는 바로 재수 없는 늙은이의 지팡이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조금 전 그와 늙은이의 거리는 칠 장(丈) 정도 떨어져 있었다. 단지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 대체 언제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것일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마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자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물론 그런 그의 눈에는 이글거리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자로는 그런 사마우를 계속해서 내리치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맞은 걸까? 고통이 사마우의 전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오기라는 것이 있었다. 두드려 맞을 때 맞더라도 늙은이 따위에게 기세에서 질 수는 없었다. 때문에 사마우는 그런 와중에도 마음속으로는 계속해서 빌어먹을 늙은이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각여가 지났다. 결국 사마우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 버렸다. 자로는 그런 사마우를 바라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독종이로군.”
자로의 놀라움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기절할 때까지 두드려 맞으면서도 사마우는 단 한 번의 신음성조차 내지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이내 자로는 측은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안아 들었다.
자로는 혼절한 사마우를 그의 침상으로 옮겨 눕혔다. 그리고 한동안 침상에 쪼그리고 앉아, 이를 악문 채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후가 되어서야 사마우는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침상임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오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 죽어 가는 늙은이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 것일까? 자신을 후려치는 자로의 지팡이가 떠오르자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고개가 저절로 흔들렸다.
자로의 지팡이질은 지금까지 그가 본 누구보다도 빠르고 강했다.
이미 지난 칠 일간 자로와 함께 제왕성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런 와중에 제왕성 내의 무인들이 검을 휘두르는 광경을 심심찮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로의 지팡이질을 따를 수는 없었다.
‘대체 이 늙은이의 정체는 뭔가? 귀신인가? 사람인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당면한 문제는 자로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늙은이의 지팡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것은 자로가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천천히 자신의 침상 옆에 놓인 소검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대체 그 늙은이는 왜 나를 때리는 것일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 소검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로의 구타는 분명 자신이 이 소검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그때의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자로가 자신에게 소검을 주었고, 자신은 그가 준 소검을 집어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왜 내게 소검을 건네준 것일까? 설마 이것을 빌미로 나를 때리기 위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대체 그 꿍꿍이가 무엇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음음.”
밖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 사마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튼 이놈이나 저놈이나 편하게 쉬는 꼴을 못 보는군.’
그 헛기침의 주인공이 자로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어났으면 어서 밖으로 나오라는 독촉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사마우는 소검을 집어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여는 순간 사마우는 흠칫 놀라며 문 앞에 선 상대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빌어먹을 늙은이였다. 자로가 문 앞에서 도끼눈을 뜨고 사마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귀신같은 늙은이.’
사마우는 조금 전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자신이 깨어난 것을 어떻게 알고 이토록 빨리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사마우는 그런 자로의 모습에서, 그가 분명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늙은이임을 확신했다.
사마우가 조심스레 자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따라오라는 것이 분명했다.
사마우는 조심스레 그런 자로의 뒤를 따랐다. 그의 눈에, 자그마한 자로의 등판이 보였다. 이미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늙은이, 그 허약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의 자그마한 등판이 오히려 널찍해 보였고, 그 널찍한 등판에 쑥 하고 소검을 꽂아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손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건대 너무나 신속 정확한 동작이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등을 내놓고 있는 늙은이를 상대로 실패한다면 내가 성을 간다, 성을 갈아 하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레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성공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별이 번쩍였다.
뒤이어 손등에서 느껴지는 뭔가의 차가운 감촉, 바닥에 떨어지는 소검, 손등 위에 떨어져 있는 자로의 지팡이, 그리고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 자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한 줄기 식은땀.
자로의 표정은 그 모든 것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지극히 담담했다. 그리고 천천히 사마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너무나 담담히 자신을 두들기는 자로의 모습, 그 모습에 사마우는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다.
상대는 다 늙어 비틀어진 늙은이, 그런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이 심지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이미 한번 경험한 매질이다. 더 이상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다 썼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자존심, 아니 오기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자로의 매질이 멈췄다.
그토록 두드렸으면 지칠 법도 하건만 자로의 호흡은 그야말로 평온했다. 그리고 그 평온한 시선으로 사마우와 소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마우는 자로의 뜻을 알겠다는 듯 조심스레 다시 소검을 집어 들었다.
자로가 곧장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사마우는 그런 자로를 따라갈 수 없었다. 어디를 잘못 맞았는지 몸이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대체 하루 동안 얼마나 두드려 맞은 것일까? 어느 한 곳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앞서 가던 자로가 몸을 돌려 사마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사마우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사마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런 자로를 올려다보았다. 자로는 그런 사마우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그를 질질 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끌려가는 동안, 이대로 가다가는 저 늙은이에게 맞아 죽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들고 있었다.
자로의 매질을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죽을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방법은 늙은이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때문에 다시 한 번 곰곰이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이켜 보았다.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늙은이의 구타는 그가 처음 소검을 잡은 순간에 시작되었다. 그는 당시 자로를 마음속으로 빌어먹을 늙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타가 이어질 때마다 늙은이를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뻔했다. 늙은이는 귀신이었다. 아니, 귀신은 아니더라도 귀신처럼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독심술,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사마우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찌 사람이 다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에 불과했다.
다음날에도 별은 번쩍였다.
늙은이의 가혹한 지팡이가 여지없이 그의 사지육신을 두드렸다. 그리고 결국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늙은이는 귀신이 분명했다. 분명히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맞지 않을 방법이 있었다. 바로 늙은이에게 나쁜 마음을 먹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날도 별은 반짝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재수 없는 늙은이를 좋아할 마음이 털끝만큼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밤, 사마우는 한밤중에 조용히 짐을 꾸렸다.
‘속았다.’
혁련천세인지 제왕성주인지 그 빌어먹을 놈에게 속은 것이다.
그는 분명 자신의 욕망을 채워 준다고 말했다. 그 말에 속아서 지난 삼 년의 세월을 허비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빌어먹을 늙은이의 매질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삼 년 전, 혁련천세를 만날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제왕 혁련천세, 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를 따라가면 무언가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기를 당한 것이 분명했다. 별의별 상상을 다 했지만 사기 이상의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맞아 죽을 게 분명했다. 남은 방법은 탈출, 그것밖에는 없었다.
비록 지난 삼 년의 시간이 조금 억울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앞으로 많은 날들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일단 탈출을 결심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마치 탈출에 성공이라도 한 듯 사마우는 실없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탈출 경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난 칠 일 동안 자로를 따라다닌 덕분에 제왕성 안의 지리는 빠삭했다. 당당히 그냥 걸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어린 자신에게 신경 쓸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