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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눈을 떴을 때 화덕의 열기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사마우는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 자로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자로가 사마우를 바라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헉헉, 조금만 늦었어도 네놈을 보지 못하고 갈 뻔했구나. 성주가 반야심공을 전수해 준 이유를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다니, 나는 역시나 어리석은 늙은이로군.”
자로의 말에 사마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이란 본시 살기를 갖기 마련이지, 태생이 그런 것이니. 하지만 그런 살기를 밖으로 드러낸다면 그것을 어찌 신검이라 하겠느냐? 살기를 갈무리하고 필요할 때 밖으로 분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검이라 할 수 있겠지. 너는 그런 진정한 신검이 되어라.”
죽을 때가 되니 미친 것인가? 자로는 멀쩡한 사람을 보고 검이라 말하고 있었다. 사마우는 어쩐지 씁쓸해진 표정으로 자로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짓을 했건 그것이 결코 자신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때, 자로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면서 힘겹게 사마우를 향해 말했다.
“부디 성주의 좋은 검이 되어 주길 바란다.”
자로는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며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사마우는 왠지 반드시 대답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자로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성주의 좋은 검이 되라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더더욱 이상한 것은 지금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것도 빌어먹을 늙은이의 죽음 앞에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자신이 무척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한심한 자신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사마우는 쓸쓸한 표정으로 자로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식어 버린 화덕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아마도 자로는 그 화덕 속에서 일생을 마감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자로의 시체를 조용히 화덕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출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왠지 다시 출구로 나가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로가 이토록 은밀한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면 분명 어딘가 통로를 만들어 두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화덕의 뒤쪽에서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도착했는가?”
갑작스런 누군가의 목소리에 사마우는 흠칫 놀라며 상대를 확인했다. 상대는 늙은이였다. 이미 늙은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자로를 통해서 충분히, 그리고 뼈저리게 경험한 사마우였다. 때문에 그는 적지 않은 경계의 눈으로 늙은이를 바라보았다.
“잘 가시게. 대장장이여.”
늙은이의 말에 사마우가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아마도 상대가 자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 듯했기 때문이다. 늙은이가 그렇게 미소 짓는 사마우를 향해 말했다.
“언제까지 거기서 죽치고 있을 생각이냐, 어서 나오너라.”
늙은이의 말투는 마치 자로를 연상시켰다. 평소 말이 없는 자로였지만 가끔 한마디씩 할 때마다 저런 말투였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마우는 밖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철컥, 무언가가 발을 옭아맸다. 순간 사마우의 머릿속에 ‘당했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얼른 눈앞의 늙은이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늙은이는 빙긋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손에는 보란 듯이 열쇠가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다.
“이 정도 함정에도 이토록 쉽게 걸려들다니, 자로 늙은이가 제대로 검을 만들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군.”
늙은이의 비아냥거림에 사마우는 자신도 모르게 늙은이를 향해 살기를 발출했다. 순간 늙은이가 흠칫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법이구나.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의 살기라니.”
늙은이의 감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마우는 노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열쇠를 내놓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협박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늙은이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돌아서서 등을 보이면서 걸어갔다. 사마우는 단숨에 늙은이를 없애 버리려는 듯 그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무언가에 걸린 듯 곧장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내 사마우는 놀란 시선으로 발밑을 확인했다.
움푹 파인 바닥, 그 속에 거대한 쇳덩어리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쇳덩어리는 그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를 확인한 사마우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늙은이를 노려보았다. 늙은이는 그런 사마우를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히죽히죽 비웃음을 흘렸다.
“이제 자신의 처지를 조금은 알겠지.”
늙은이의 말에 사마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지금이라도 열쇠만 준다면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해 주지! 하지만 더 이상은 늙은이라 할지라도 용서할 수 없다.”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기어이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늙은이가 기다렸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흥, 요즘 젊은것들이란.”
그러고는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한쪽 옆의 움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마우는 늙은이가 들어간 움막을 향해 마구 살기를 뿜어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사실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3화 무서운 늙은이 진규(珍奎)


새롭게 등장한 늙은이는 자신의 이름을 진규라고 밝혔다. 늘 침묵으로 일관하던 자로와는 달리 진규는 무척이나 말이 많은 인물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주둥이만 산 늙은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 생생하게 살아 있는 주둥이에서 나오는 것은 주로 자기 자랑이었다.
대도(大盜) 진규,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대도라 칭했다. 자기 입으로는 한창 끗발을 날리던 시절에 황실을 안방처럼 드나들곤 했다고 하지만 그 말이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그가 자신의 말대로 황실을 안방처럼 드나들던 인물이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엄청난 거부가 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고작 다 쓰러져 가는 움막이 전부였다. 한창 잘나가는 제왕성 옆이라 땅값은 좀 나갈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갑부라고 하기에는 곤란했다.
그 외에도, 입고 있는 옷이나 기타 여러 가지 것들을 살펴봐도 그의 말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사마우의 눈에 비친 진규는 그저 고집 센, 그리고 심술궂은 늙은이에 불과했다.
이 늙은이에 비한다면 자로는 그야말로 양반이었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손버릇이 조금 고약한 것을 제외하면 자로는 조용한, 그리고 어찌 보면 다소 깊이가 느껴지는 노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에 이 늙은이의 경우는, 평가할 가치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굳이 평가하자면, 대충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품위 없는 방정맞은 늙은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마우가 지금 사흘을 굶었다는 것이다.
지금 사마우는 발목에 채워진 족쇄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진규는 그에게 어떠한 음식도 제공하지 않았다. 또한 쓸데없는 자기 자랑과 더불어 음식에 관한 이야기만 할 뿐, 딱히 왜 자신에게 족쇄를 채웠는지도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다.
배고프고 힘들고 지치고 피곤했다. 그렇게 단순히 사흘을 굶은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흘 동안 제대로 한숨 자지 못했고, 또한 물 한 모금 마시지도 못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사마우가 늙은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죽이네 어쩌네 하는 말뿐인 협박이었다.
물론 협박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협박 뒤로 돌아오는 것은 입만 산 늙은이의 걸쭉한 욕지거리가 전부였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귀에 거슬린 것은 아니었다. 노인네는 처음부터 스스로를 미식가라 칭하고 있었다. 그것 역시 확인할 길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를 무수히 다양한 요리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음식에 관한 일장 연설이라고나 할까?
사천에는 뭐가 유명하니, 섬서에는 뭐가 유명하니 입맛까지 쩝쩝 다시면서 생생한 묘사를 곁들이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효과가 없었던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나흘째로 접어들자 비로소 이런 음식 이야기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식욕,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 가운데 하나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인간만의 본능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지극히 당연한 본능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극하는 진규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점차 사마우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증거로 사마우는 어제부터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눈마저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그 욕구는 점차 진규에 대한 적의로 바뀌기 시작했다. 늙은이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자신을 굶긴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이제는 슬슬 악에 받치기 시작했다. 사마우의 머릿속에는 이제 어떻게 해서든 저 빌어먹을 늙은이를 때려 죽여야겠다는 일념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늙은이와의 거리는 고작 십여 보, 하지만 실제로 그 거리는 천릿길보다도 먼 거리기도 했다.
이쯤에서 진규가 사마우에게 마지막 일침을 놓았다. 굶은 지 나흘째 되는 바로 그날 오후, 진규는 지금까지 입으로 나불거리던 음식을 조용히 그의 앞으로 가져오고 있었다. 정확히 열 발자국 앞에 차려진 음식, 그것이 고문을 위한 도구임을 알았기에 사마우는 아예 보지 않으려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내 향긋한 음식 냄새가 사마우의 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진규는 그런 사마우를 앞에 두고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쓸데없이 발달한 청각은 진규가 음식 먹는 소리를 그대로 전해 주고 있었다. 뒤늦게 귀를 막아 보았지만 그 소리의 여운이 환청으로 남아 사마우를 괴롭혔다. 사마우는 계속해서 꼬르륵거리는 배를 꽉 움켜쥐었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실제로 그 시간은 일각(一刻, 대략 15분 정도)을 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사마우에게 그 시간은 마치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식사를 끝마친 늙은이는 조금의 음식을 남겨 두고 거지 소굴 같은 자신의 움막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음식을 남겼다는 것이다.
더 이상 입에 침이 고이지도 않았다. 이미 사흘간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가다가는 며칠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음식보다는 그 옆에 보란 듯 놓여 있는 물 대접이 더욱더 사마우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내 사마우가 이를 악물었다. 살기 위해서는 일단 물부터 마셔야만 했다. 묶이지 않은 왼발부터 천천히 한 발짝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쇳덩어리가 묶여 있는 오른발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쇳덩이에 묶인 오른발은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쇳덩어리의 무게는 사마우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사마우는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는 쇳덩어리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가뜩이나 배고픈 상황, 거기에 한바탕 힘까지 소모하니 더욱더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포기는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습관처럼 기도하는 심정으로 반야심공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에 힘을 주며 다시 앞으로 발을 움직였다.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아니면 배에 힘을 준 덕분일까?
운기조식 때 느껴지던 그 기운이 단전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 아주 조금씩 쇳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딛는 발에 힘을 잔뜩 실었기 때문일까?
단전에서 일어난 기운은 천천히 아래쪽 발끝으로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끝에 모이는 기운,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분명 아주 조금이었지만 쇳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비록 조금, 아주 조금이었지만 실제로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움직인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이제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끙, 끙, 끙, 끙, 끙, 끙…….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끙끙거리면서 음식을 향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저녁부터 시작된 이 처절한 노력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뜬 이후에야 비로소 그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마침내 음식 앞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손이 음식이 닿을 듯 말 듯한 순간이었다. 그것을 자칫 손끝으로 노렸다가는 물이 대접에서 쏟아질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사마우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이를 참아 내며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이후에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일단 허겁지겁 물부터 마셨다. 그리고 한 그릇의 밥과 야채를 맛있게 먹어 치웠다. 한 그릇의 밥과 채소, 이 소박한 식단이 이렇게 맛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마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음식을 먹은 탓일까? 아니면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일까? 음식을 잘못 삼켜서 사레가 들렸다. 하지만 이미 물은 다 마셔 버린 상황, 애꿎은 가슴만 손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캑, 캑, 캑!”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그의 앞에 노인 진규가 서 있었다. 진규는 그렇게 가슴을 두드리는 사마우를 한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사람처럼 그의 앞에 물병을 툭 던져 주면서 말했다.
“그놈 급하게 처먹는 꼬락서니가 꼭 사흘은 굶은 사람 같네그려.”
사흘을 굶은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사흘을 굶은 사람이었다. 사마우는 그렇게 자신을 놀리는 진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런 사마우를 거들떠볼 진규가 아니었다. 그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으면서 몸을 돌려 다시 움막으로 들어갔다.
사마우는 그런 진규의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지금 사마우에게 그것은 가히 악마의 미소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상황이 급한지라 원수 같은 늙은이가 준 물병을 집어 들었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사마우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자신이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지금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이었다. 어차피 후회해도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사마우는 남아 있는 음식을 깨끗이 비웠다. 밥과 찬을 다 비우고 거기에 묻은 양념까지 혀로 핥아 먹었다. 그리고 진규가 건넨 물병의 물마저 깨끗이 다 비웠다.
고작 한 끼 식사였다.
그런 한 끼 식사에 너무나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허기를 면하자 진규가 들어간 움막이 비로소 다시 눈에 들어왔다. 움막까지의 거리는 대략 십여 보, 더구나 지금 진규는 분명 잠이 든 상태였다. 그의 코 고는 소리가 사마우의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점심을 처먹고 낮잠이라도 한숨 붙이는 듯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늙은이를 요절내고 싶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었다.
음식이 놓인 곳까지의 거리 십 보,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각이 대략 아홉 시진(시진은 십이지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에서 의거한 것으로 하루가 24시간이니 1시진은 2시간입니다. 고로 9시진은 18시간을 의미)이 넘었다.
그렇다면 움막까지 가는 시간도 대충 그 정도라는 뜻이었다. 결국 도착하기도 전에 늙은이가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내 사마우는 다소 맥 빠진 표정으로 바닥에 몸을 뉘었다.
어느 정도 포만감이 느껴지자 스르르 잠이 찾아왔다. 일단은 힘을 비축하자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지난 나흘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웠기 때문일까? 눈을 감기가 무섭게 잠이 찾아왔다. 하지만 뜻밖의 복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나흘, 소변은 늙은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틈틈이 해결했었다. 하지만 큰 볼일은 지금까지 억지로 참아 왔다. 그 신호가 갑자기 지금 이 순간 찾아왔던 것이다. 음식에 약이라도 탄 것일까? 신호는 점차 도를 지나쳐 급박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아마도 약은 아닐 것이다. 분명 늙은이가 먹다 남은 음식이었다. 약이 들어 있었다면 지금쯤 늙은이도 뒷간에 가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긴장이 풀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갑작스레 음식을 너무 급하게 먹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까?
이내 창자가 배배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그것은 도저히 참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서둘러 주변을 확인했다. 열 발짝만 움직일 수 있다면 볼일을 볼 만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열 발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위기에 처하면 인간은 때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사마우 역시 불굴의 의지로 이를 악물고 다시 발걸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다시 힘을 준 덕분에 오히려 그것이 찔끔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허겁지겁 바지를 까 내렸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것이 밖으로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건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한바탕 소란을 떨었기 때문인지 금방 다시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잠이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 옆에서 자기에는 너무나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젠장.’
다시 억지로 힘을 내서 조금씩 발을 움직였다. 그것과는 한 발짝 남짓의 거리, 하지만 그나마 그 정도가 그것과의 거리를 나름 최대한 떨어트린 것이었다. 사마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곳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것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너무나 몸이 피곤한 탓에 그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코를 찌르는 쾨쾨한 냄새, 스멀거리는 역겨운 무언가가 입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뜬 사마우는 이미 아침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략 일곱 시진(14시간)을 꼬박 잠이 들었던 것이다.
문득 입가에 느껴지는 감촉의 존재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것은 잠이 들기 전 자신이 퍼질러 놓은 것이었다.
‘설마 내가 몸부림이라도 친 것인가?’
평소 그는 좀처럼 몸부림을 치지 않았다. 피곤했기 때문에 몸부림을 친 걸까?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비로소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의 뒤통수를 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곧바로 상대를 확인하려는 순간 상대는 뒤통수에 댄 발에 더더욱 힘을 실었다. 그런 상대의 힘에 밀려 사마우는 곧장 그곳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마당 한복판에 그것을 싸지르다니. 개도 그따위 짓은 하지 않는 법이거늘.”
사마우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찢어 죽일 듯 바라보았다. 보나마나, 그리고 예상대로 악마 같은 늙은이 진규였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행여나 그것이 입 안으로 들어올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빌어먹을, 언제고 내 이 빌어먹을 늙은이를 뼈째 아작아작 씹어 먹어 버리겠다.’
사마우는 그런 심정으로 다시 진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사마우의 짙은 살기에도 불구하고 진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전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막 잠에서 깬 얼떨떨한 상황이었는지라 정확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정신을 추스르자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겁도 없이 자신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사마우는 양손으로 빠르게 늙은이의 발을 낚아챘다. 시도는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늙은이의 움직임은 가히 사마우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름 효과는 있었다. 뜻밖의 기습에 진규 역시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진규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제법이군. 자로 늙은이의 생사일천검결을 손으로 펼친 것인가? 멍청한 머리로 자로의 진전은 그나마 제대로 이어받은 것 같구나.”
진규가 자로를 언급하자 잠시나마 사마우의 몸에서 살기가 사라졌다. 그런 사마우를 바라보던 진규가 가벼운 탄성을 내뱉었다.
“오호.”
그러고는 물 한 동이를 사마우의 앞에 내려놓았다. 사마우는 얼굴의 그것을 물로 씻어 내며 뿌드득 이를 갈았다. 그렇게 언젠가는 이 치욕을 갚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진규는 그런 그의 앞에 턱하니 빗자루를 던졌다.
“네놈이 싸지른 것이니 네놈이 치워라.”
그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풀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말인즉 그곳에다 그것을 치우라는 뜻이었다. 거기까지의 거리 역시 대략 십 보, 어제 가까스로 움직였던 바로 그 거리였다.
사마우는 자신이 싸 놓은 그것과 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뒤에서 진규가 담담하게 말했다.
“깨끗이 치우지 않으면 밥은 없다.”
사마우는 다시 멍청한 표정으로 진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진규가 그런 사마우를 향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사마우의 눈에는 여전히 그런 진규의 미소가 미소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잔인한 악마의 비아냥거림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 했다. 언젠가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살아야 했다. 언젠가는 저 웃는 늙은이의 낯짝에 그것을 처바르고야 말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면서 빗자루를 손에 쥐고 천천히 손과 발을 움직였다.
단순히 손을 움직일 뿐인데 어제보다 움직임이 더 좋지 않았다. 단전의 기운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손과 발로 나뉘고 있었던 것이다. 손으로 가는 불필요한 기운을 발로 옮기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어제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풀밭까지 그것을 이동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겨우 한숨 돌릴 때쯤 늙은이가 기다렸다는 듯 움막에서 밥상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힐끔 사마우를 쳐다보았다. 사마우는 그런 늙은이를 향해 ‘헤, 헤, 헤’ 하고 헤픈 웃음을 흘렸다. 그런 사마우를 바라보면서 진규가 담담하게 말했다.
“배알도 없는 놈. 그저 먹을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구나. 옛다.”
진규의 말에 사마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리고 진규가 내려놓은 밥상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다시 한 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밥상까지의 거리는 대략 이십 보, 눈앞이 까마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