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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혁련천세가 떠나간 다음날, 자로와 마찬가지로 진규 역시 늙은이들의 공통적인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구타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구타는 삼 개월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삼 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사마우는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늙은이에게 두드려 맞던 추억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자로 때와는 매우 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두드려 맞는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침이 되면 진규는 봉을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해가 서산에 기울 때까지 시원하게 몽둥이찜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은 있었다. 어찌 되었건, 두들길 때는 두들기더라도 그나마 밥은 꼬박꼬박 준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거시기까지도 영감이 직접 치워 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이런 것에 만족을 느낀다는 자체가 실로 우스운 일이었다.
반면에 고통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로 영감은 고작해야 지팡이로 두드릴 뿐이었다. 하지만 진규 영감은 본격적으로 봉으로, 그것도 그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강철로 된 봉으로 그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 재질의 차이는 확실한 고통의 차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맞는 것에 이골이 난 사마우가 아니라면 아마 하루도 제대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삼 년간 노인에게 두드려 맞았던 몸이 아니던가? 맞는 것 하나는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맞다 보니 때때로 상쾌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너무 맞다 보니 변태성욕자라도 된 것일까? 그리고 말은 바른 말이지, 발의 족쇄가 없다면 피하지 못할 공격도 아니었다. 이미 자로의 공격을 상대하면서 맞는 것 이상으로 피하는 것에도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단순히 가정에 불과했을 뿐 족쇄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두드려 맞는 와중에 때때로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와 두드리는 철봉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진규를 향해 이를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자로에 비한다면 비겁한 늙은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삼 개월의 시간이 지나갈 무렵 사마우의 몸에 난 상처의 숫자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인간은 정말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이제 사마우는 족쇄를 찬 상태에서도 심심찮게 진규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맞는 부위도 점차 변해 갔다. 그야말로 가히 환상적인 몸놀림으로 가능한 한 고통이 적은 부위, 즉 본능적으로 급소는 교묘하게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결국 그날이 다가왔다.
노인네가 실성한 것이 분명했다. 진규가 그의 앞 땅바닥에 봉을 던져 주었던 것이다. 봉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무게 때문인지 바닥이 움푹 파였다. 때문에 들어 보지 않아도 능히 봉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봉을 들자 그 묵직한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사마우가 봉을 들면서 진규를 향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매 맞는 데 이골이 난 자신과는 달리 가만히 놔둬도 쓰러질 것 같은 노인네라면 제대로 한 방 맞는다면 웬만해서는 버티기 힘들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좋다 말았다고 해야 할까. 늙은이 역시 봉을 바꿔 들고 왔다. 그것은 이전보다 훨씬 묵직한 느낌의 강철로 된 봉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사마우는 진규가 모처럼 악수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비겁함을 모두 용서해 줄 수 있었다. 족쇄 정도의 불리함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제발 한 방만 걸려라. 이런 마음으로 사마우는 손에 쥔 봉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그리고 비로소 두 사람의 진정한 대련이 시작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구타가 아닌 대련이 시작된 것이다.
쇳덩어리가 몸에 닿는 묵직한 느낌, 정말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웅, 웅, 웅.
공기를 가르는 쇳덩어리의 파공음, 그 소리만으로도 그 가공할 위력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또한 쇳덩어리가 서로 부딪칠 때면 손이 저릴 정도의 힘이 전달되고 있었다. 쇳덩어리를 통해 전달되는 진규의 힘, 그것은 결코 늙은이의 힘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비단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사마우는 비쩍 마른 늙은이가 휘두르는 봉의 움직임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봉과 검은 분명 달랐다. 자로에게 배웠던 검을 봉에 응용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오히려 어설픈 응용은 가혹한 고통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몸 안의 뼈가 부서지는 느낌, 그런 느낌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느낌만 그러했을 뿐 실제로 뼈가 부서지지는 않았다. 너무 많이 맞아서 통뼈가 된 것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내공의 운용, 과거 손발에 따로 놀던 내공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정적인 그 순간에 충격의 부위로 내공이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지난 삼 개월간 두드려 맞은 성과였다. 두드려 맞으면서 느꼈던 그 막연한 쾌감은 본능적으로 타격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집중된 내공이 다시 주변으로 퍼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변태성욕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지난 일 년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이 내공의 자유로운 발현이었다. 마음이 일면 몸도 따라 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일면 내공이 자연스럽게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웬만해서는 맞아 죽을 일은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밤마다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늙은이가 이제 노망이 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밤마다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밖으로 나와 그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처를 입은 부위에 약을 발라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병 주고 약 주고, 그런 짓거리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 미친 짓이 은근히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저 늙은이를 찢어 죽이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조금은 살살 찢어 죽이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다시 육 개월이 지날 무렵 사마우의 자세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렇다고 늙은이를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저 늙은이가 과거 자로 늙은이처럼 팍삭 늙어 가는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이제는 찢어 죽이기보다는 고통 없이 조용히 죽여 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마음처럼 움직임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과거에는 자로의 지팡이 움직임을 응용하려 했다면 이제는 완전히 원숭이로 재탄생한 것이다. 늙은이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흉내 내기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우쳤던 것이다. 덕분에 그럭저럭 늙은이의 상대는 되는 듯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장애물이 존재했다.
바로 발을 묶고 있는 쇳덩어리였다.
늙은이의 움직임을 쫓다 보면 어느새 넘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늙은이와 상대하다 보면 때때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했고, 그럴 때마다 발목에 끔찍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움직임이 오히려 거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의 자세, 움직이지 않아도 늙은이를 상대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부동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늙은이가 교활한 움직임으로 계속해서 그를 동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늙은이에게 기필코 한 방 먹이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너무 앞서고 있었다. 한 방만 먹이면 저 가냘픈 노인네는 분명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이다. 그런 장면이 자꾸 사마우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그런 마음을 자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것 역시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하도 발목이 아프다 보니 결국 스스로 부동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늙은이에 대한 적의마저도 점차 사라져 가는 듯했다.
마음이 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할까?
마침내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드디어 늙은이에게 한 대도 맞지 않는 기적 같은 날이 오고야 말았다. 기나긴 아동 학대의 시간도 이제 끝이 난 것이었다. 그날 진규 늙은이는 말없이 한동안 사마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사마우는 도저히 늙은이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맞은 놈은 두 발 쭉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아무래도 경우가 바뀐 것 같았다. 하지만 늙은이를 보고 있자니 자꾸 자로 영감이 떠올랐다. 도무지 동정할 만한 늙은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동정심이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사마우는 도무지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를 눈치 챈 것일까? 진규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봉을 내놓으라는 뜻이다. 그렇게 손을 내미는 진규의 눈빛은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마치 자로가 죽기 전의 눈빛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렇게 빌어먹을을 연발하면서 사마우는 자신의 봉을 가만히 진규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봉을 받아 든 진규는 조용히 사마우를 끌어안았다. 할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손자의 마음이 이러할까? 무언가 뭉클한 기분이 사마우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진규의 손이 그의 등 뒤에서 혈도를 점했다.
‘윽. 당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규는 피식 짓궂은 웃음을 지으면서 사마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짓궂은 표정은 과거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던, 그리고 무자비하게 자신을 구타하던 바로 그 늙은이의 표정 그대로였다.
‘빌어먹을 늙은이.’
사마우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진규는 사마우를 그렇게 세워 둔 채 움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움막에서 나오는 진규의 손에는 무언가의 상자가 소중하게 들려 있었다. 상자가 열리자 쾨쾨한 냄새가 주변을 진동했다.
이내 진규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표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가 상자에서 쾨쾨한 냄새의 주인공인 단약을 꺼내 들었다. 냄새만으로는 분명 어떠한 독약도 능가할, 아니 어떠한 거시기도 능가할 만한 것이었다.
진규가 피식 웃으면서 사마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동안 네가 싸질러 놓은 거시기의 결정판이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 거시기의 결정판을 조용히 사마우의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입 안에 감도는 쾨쾨한 냄새와 그 냄새만큼이나 참을 수 없는 역겨운 맛. 하지만 혈도를 제압당한 상황에서 사마우에게 그것을 거부할 길은 없었다. 그런 사마우의 반응이 재미있는 듯, 진규는 마냥 웃고만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곧, 일 년 육 개월을 함께한 지겨운 족쇄가 비로소 사마우의 발에서 떨어져 나갔다.
진규는 천천히 과거 사마우가 나왔던 화덕으로 다가갔다. 대체 언제 준비해 둔 것일까? 이미 그곳에는 충분한 땔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진규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화덕에 불을 지폈다. 사마우가 그런 진규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곳은 자로가 누워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진규가 그런 사마우를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로와 진규는 과연 어떤 사이였을까? 사마우는 아직 그들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과거 진규는 분명 자로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리고 지금 진규의 눈빛에서 둘의 사이가 무척 가까웠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날부터 진규는 이제까지 지긋지긋하게 사마우를 괴롭혔던 족쇄와 쇠구슬을 화덕에 녹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화덕의 불은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쇠를 담금질하는 소리가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사마우는 그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먹은 거시기의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었다. 한 달이 다 되어 감에도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무튼 신기한 일이었다.
그 달의 마지막 날, 진규가 만들던 것이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양 끝이 뾰족한 창이었다. 쉬지 않고 화로를 지켰기 때문일까? 지난 한 달 동안 진규는 많이 늙어 있었다. 마치 생기가 모두 빠져나간 사람처럼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사마우 역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몇 번이고 쉬엄쉬엄하라며 말리고 싶었지만,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탓에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끝난 듯 진규는 조용히 자신이 만든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자신이 만든 창을 감상하던 진규는 조용히 움막으로 들어갔다. 다시 밖으로 나오는 그의 손에는 창 이외에도 한 자루의 검이 들려 있었다.
“이것은 자로의 검이다. 나와 자로는 본시 대장장이였지. 우리는 명검을 만들기 위해 검을 배워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자로와는 달리 검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경공과 창에 모든 것을 걸었지. 두 가지에 몰두한 나는 한 우물만 판 자로를 능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나는 창을, 그는 검을. 하지만 자로는 마지막 순간 너를 제련했고 나는 나의 창을 제련했다. 자로는 너에게 자신의 혼을 불어넣었고 나는 이제 이 창에 나의 혼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저 화덕은 앞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제련할 수 없을 것이다.”
화덕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다. 진규는 자로의 검을 조용히 사마우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그의 혈을 점했다.
“잠시 후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혈을 풀면서 동시에 다시 혈을 제압한 듯했다. 오랫동안 혈을 제압당한 상태에 있으면 혈이 마비되어 죽음에 이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거시기의 결정판에는 아마도 그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는 듯했다. 일단 그런 약이라고 해 두자.
진규가 천천히 화덕 앞으로 다가갔다. 화덕의 앞에 선 진규는 자신의 창으로 천천히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다. 한순간 사마우는 창이 마치 진규의 피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진규의 생명이 천천히 꺼져 가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진규의 눈이 번쩍였다. 그는 창을 가슴에 꽂은 채로 화덕으로 뛰어들었다. 사마우는 갑작스레 벌어진 일련의 상황 때문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찢어 죽여야 할 늙은이가 그것이 무서워서 지금 자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일까?
빌어먹을 늙은이는 불 속에서 산산이 분해되었고, 얼마 후 화덕의 불도 언제 타올랐냐는 듯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비로소 사마우의 혈도가 풀렸다. 혈도가 풀리자 사마우는 곧장 화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불에 달궈진 창을 한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치∼익∼
살이 타는 소리와 매캐한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 순간 사마우는 미친 사람처럼 히죽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사마우는 손에 든 창을 천천히, 옆에 준비된 물에 집어넣었다.
쉬∼익∼
물에 열을 빼앗긴 창이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모습을 드러낸 창은 분명히 흑색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사마우의 눈에는 그것이 붉은색으로만 보였다.
진혈창. 그날 이후 사마우는 그것을 진혈창이라고 불렀다. 워낙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인지라, 그 이름은 그저 진규의 피가 담긴 창이라는 뜻이었다. 좀 더 멋진 이름을 붙여도 좋으련만 사마우는 그것이 가장 멋진 이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마우가 진혈창을 들고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너희 늙은이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야. 내 그것만은 이 자리에서 약속하도록 하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마우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환각이었을까? 화덕 안에서 자로와 진규가 나란히 그런 사마우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제4화 사신전설(死神傳說)
사마우는 바닥에 있는 놓여 있는 검을 천천히 손에 쥐었다. 검집에는 ‘와룡(臥龍)’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와룡검(臥龍劍). 그 이름만으로는 언뜻 제갈공명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만든 이는 제갈공명이 아니었다. 와룡검을 만든 자는 송대의 장인 위일청이었다.
천수공명(千手孔明) 위일청, 우습지만 그의 명호는 사람들이 지어 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제갈공명을 너무나 동경한 나머지 스스로 공명이라는 호를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놓았다. 하지만 그의 실력 하나만은 그런 명호에 걸맞게 여타의 장인들을 훌쩍 능가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명호 앞에 천수(千手)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것은 그의 솜씨가 천 명의 장인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다는 뜻이었다. 대장장이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은 바로 천하제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와룡검, 그것은 천수공명 위일청의 최고 걸작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 위일청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는 자신이 만든 이 최고의 검에 와룡이라는 글자를 각인했던 것이다.
대장장이 자로는 실제로 간장이나 막사를 보지 못했다. 때문에 실질적인 그의 목표는 바로 이 와룡검을 능가하는 검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로에게 이루지 못한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사마우가 천천히 와룡검을 뽑아 들었다. 검에 반사된 태양광이 사방을 환하게 수놓았다. 단지 그 빛이 전부가 아니었다. 마치 심연을 울리는 그 무언가가 검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신검이란 이런 것일까?
실제로 사마우가 제대로 된 검을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한눈에 이것이 좋은 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번뜩이는 검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사마우의 눈에 들어왔다.
“검을 들고 있는 검이라는 것인가?”
사마우는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자로는 이 와룡검을 능가하는 검을 만드는 대신 사마우 자신을 제련했다. 곧 자로가 제련한 검이 바로 자신이라는 의미였다. 사마우가 손가락으로 와룡검의 검신을 살짝 튕겼다. 검이 청명한 소리를 내면서 부르르 검신을 떨었다.
“너 따위가 나를 능가하는 검이란 말이지.”
사마우는 자로를 떠올리며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마우는 검신을 통해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단지 누군가가 다가온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정확히 상대가 누구라는 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사마우는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던가? 그동안 당한 것을 생각한다면 사마우의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방심하지 않겠다는 그의 확고한 결의를 보여 주는 일검이었다.
사마우의 검은 빨랐다. 하지만 상대방의 대응 역시 그런 사마우의 움직임 못지않게 민첩했다. 갑작스런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예상이라도 한 듯 가볍게 그의 검을 피하고 있었다. 동시에 상대 역시 방심하지 않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가 꺼내 든 무기는 바로 도였다. 그렇게 검과 도를 손에 든 채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했다. 상대를 확인한 사마우가 먼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상대가 안면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인가?”
막붕이 그런 사마우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긴 세월이 흘렀지만 사마우는 막붕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바닷가에서 혁련천세를 만날 당시 모용백과 함께 혁련천세의 옆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패도 막붕, 군사 모용백과 함께 제왕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이었다.
사마우가 다소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막붕을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혁련천세의 그늘에 가려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도를 든 막붕의 기도에 적지 않은 위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막붕의 기도는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마우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혁련천세와 관련된 인물이라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때문에 사마우는 막붕을 향해 은은한 살기를 내비쳤다. 사마우의 몸에서 지긋한 살기가 느껴지자 이에 반응하듯 막붕의 몸에서도 패도적인 기운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그 패도적인 기운이 사마우의 살기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내 사마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막붕이 천천히 도를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막붕이 갑작스레 도를 거두자 사마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사마우를 향해 막붕이 담담히 말했다.
“준비가 되었으면 그만 가도록 하지.”
일체의 감정을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였다. 사마우는 그런 막붕의 태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책사였기 때문일까? 모용백에게서는 어딘가 구린 냄새가 났다. 하지만 막붕은 그런 모용백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굳이 말하자면 심지가 굳은, 다소 순박한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사마우는 비로소 긴장을 풀고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막붕이 그런 사마우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좋은 검이로군.”
칭찬이라는 것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특히 와룡검은 자신의 검이기도 했지만 자로가 남긴 검이었다. 그런 검을 칭찬하는 막붕에게 은근히 호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사마우는 검집에 달린 줄로 와룡검을 등 뒤에 묶었다. 그리고 물속에 담겨 있는, 이제는 열기가 가라앉은 진혈창을 오른손으로 집어 들었다. 막붕은 그런 사마우의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막붕의 눈에는 조금 전 검을 들었던 모습보다는 창을 든 모습이 사마우에게 더 잘 어울리는 듯 보였다.
사마우가 그런 막붕에게 물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러고 보니 사마우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말을 찍찍 내뱉고 있었다. 비로소 막붕이 그런 사마우를 향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제왕성에서 그것은 막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막붕은 혁련천세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또한 혁련천세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 혁련천세조차도 그에게 이렇게 무례히 행동하지는 않았다.
“건방진…….”
마음 같아서는 당장 요절을 내 버릇을 고쳐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붕은 애써 화를 참으면서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평소의 그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