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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난 칠 년간 혁련천세는 더 이상 세력을 넓히지 않았다. 막붕은 그야말로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타고난 무인이었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은 전장이라고 말해 왔다.
지난 칠 년여의 세월, 그런 막붕에게는 정말 참기 힘든 인내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기나긴 인내의 시간은 끝났다. 막붕에게 떨어진 명령은 광서성을 평정하는 것이었다. 단, 조건이 붙어 있었다. 바로 눈앞의 꼬맹이를 선봉으로 내세우라는 것이었다. 혁련천세가 지난 칠 년의 시간을 기다린 것이 혹시 이 꼬맹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그런 생각을 지나친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쩔지 모르지만 아직 막붕의 눈에 사마우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붕에게는 그런 애송이의 버릇을 고쳐 줄 여유마저 지금은 없었다. 그의 마음이 이미 광서성에 가 있기 때문이었다.
일검진천(一劍振天) 이극겸(李克謙), 광서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지금 광서성의 최고 세력인 광서 이가장의 수장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실력에 비해 드물게 야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세인들의 평에 의하면 그는 광서성의 패주로 군림할 만한 실력과 세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세력을 확장할 생각이 없었다. 그 덕분에 지금 광서성에는 패주라 자처하며 군림하는 인물이나 세력이 없었다.
하지만 일검진천 이극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광서성을 대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런 그를 추종하는 여섯 개의 가문들, 사람들은 광서 이가를 포함한 이 일곱 개의 가문을 칠가연맹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실상 광서성 대부분의 군소방파들이 칠가연맹의 우월적인 지위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이극겸이 칠가연맹의 결성을 공식적으로 외부에 선언한 것은 채 십 년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겨냥한 연맹인지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북상하는 제왕성, 바로 그것에 대비하기 위한 연맹이었던 것이다.
지금 막붕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 칠가연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막붕의 눈에 애송이 사마우가 들어올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일검진천 이극겸, 그가 막붕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사마우는 결과적으로 운이 좋았다. 그런 무례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응징이 뒤로 미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해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사마우를 안내하면서 막붕은 한 가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성주가 왜 이 빌어먹을 꼬마 살성을 대동하라고 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성주는 지금까지 은밀하게 이 꼬마 살성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법 어느 정도 단련을 끝마친 상황인 듯했다.
하지만 막붕이 보기에 사마우는 아직 전장에 나가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성주답지 않게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사실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왜 굳이 자신이 직접 이 애송이를 모시러 와야 하는가였다. 성주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막붕 정도 되는 인물에게 이런 일은 결코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뜸 펼친 꼬맹이의 일수, 그것은 막붕이 감탄할 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제왕성 내에서도 이런 갑작스런 살수를 피할 인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의문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는 미리 언질을 주고 다른 누군가에게 시킬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성주의 숨겨진 의도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막붕은 자신답지 않게 너무 생각이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성주의 숨은 의도까지 파악할 필요는 없었다. 가뜩이나 지금 그의 머릿속은 다른 일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막붕은 나름대로 속 편한 인물이었다. 쓸데없는 고민은 재빨리 하늘로 날려 버리고 뒤따르는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서두르자.”
막붕은 그 한 마디와 함께 앞장서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마우는 마치 그런 막붕의 움직임을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 막붕의 말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것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마우는 그의 뒤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누군가를 앞세우고 따라다니는 것에 이골이 난 사마우였다.

잠시 후 그들은 대로변으로 들어섰다.
실제로 진규의 처소에서 대로변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다. 대로변에 도착하자 사마우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감회 어린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사마우를 막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긴 막붕이 어찌 사마우의 지금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토록 나오고자 했던 세상이다. 정확히 칠 년 하고도 칠 개월 만에 제왕성 밖으로, 그리고 두 늙은이의 품에서도 벗어난 것이었다.
사마우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고작해야 백 장(丈) 정도의 거리, 바로 거기에 세상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발밑을 확인했다. 더 이상 자신의 발목을 옭아매는 족쇄와 철퇴는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속이 후련해야만 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어딘지 모르게 쓰려 왔다. 사마우는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진규의 처소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막붕이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만 가도록 하지.”
막붕의 말에 사마우가 고개를 돌리며 씩 미소를 머금었다. 싫어하면서도 닮아 간다고 했던가? 사마우의 미소는 자로와 진규 두 늙은이의 그것처럼 재수 없는 미소였다. 적어도 막붕의 눈에는 사마우의 웃는 모습이 마치 세상을 다 산 늙은이의 모습처럼 보이고 있었다.
“칠 년여 세월, 얻은 것이라고는 두 개의 무기가 고작인가?”
사마우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왼손으로는 창을 옮기고 오른손으로는 등 뒤에 묶인 검의 손잡이를 지그시 움켜쥐었다.

막붕이 멈춰 선 곳은 대로 옆의 거대한 나무 근처였다. 그곳에 두 마리의 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붕이 먼저 나무에 묶인 고삐를 풀고 훌쩍 자신의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사마우와 남은 한 마리의 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로를 흉내 내는 것인가?
물론 자로 쪽이 훨씬 말이 없기는 했지만, 말이 없는 점은 두 사람의 태도가 조금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물론 사마우는 그 오랜 침묵의 단련으로 막붕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에 올라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마우는 혼자서 말을 타 본 적이 없었다. 과거 어린 시절 성주의 뒤에서 말을 타 본 것이 전부였다. 이내 사마우가 막붕과 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렇게 사마우가 말에 오르지 않자 참다못한 막붕이 그를 향해 말했다.
“거참, 눈치 없는 녀석일세. 그것은 이제 네놈의 말이다. 말의 이름은 적상, 영광으로 알아라. 성주께서 자신의 애마를 하사하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한눈에 보아도 좋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그스레한 갈기에 잘빠진 몸매, 성주의 애마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한 가지 흠이라면, 곳곳의 검은 반점이 외모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주의 애마답게 그 속도와 지구력은 여타의 말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사마우는 적상을 한동안 빤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태어나서 자신의 말을 처음 가져 본 것이었다. 나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내 마음을 추스른 듯 사마우는 천천히 적상의 앞으로 다가갔다.
우선 조금 전 막붕이 했던 것처럼 나무에서 고삐를 풀려고 했다. 순간 말이 갑자기 앞발을 높이 추켜올렸다. 마치 사마우가 자신의 등에 타는 것을 거부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단순히 바뀐 주인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상은 사마우의 몸에서 흐르는 은은한 살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사마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막붕을 바라보았다. 갈 길이 급한 막붕이 사마우를 향해 버럭 호통을 내질렀다.
“어서 타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막붕은 자꾸만 시간을 끄는 사마우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마음은 광서성의 이극겸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막붕의 호통이 기분 나빴던 것일까? 사마우의 몸에서 더욱더 짙은 살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순간 막붕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도로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그 살기의 대상은 막붕이 아닌 바로 적상이었다. 자신을 거부하는 말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사마우의 살기에 당황한 적상은 계속해서 앞발을 높이 올린 채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하면 나무에 묶어 둔 고삐가 끊어질 판이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막붕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전장에서 말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것이거늘 어찌 힘으로 제압하려 하느냐.”
막붕의 말에도 사마우는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적상은 계속해서 요란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막붕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순간 막붕이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마상에서 도를 움켜쥐었다. 뒤이어 그의 몸에서 패도적인 기운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진기를 끌어올리지 않고는 떨림을 멈출 수 없을 만큼 사마우의 살기는 지독했다. 문득 막붕은 과거 사마우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물고기를 잔인하게 죽이던 어린 소년, 하지만 지금 사마우가 뿜어내는 살기는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의 살기에 주변의 대기마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결국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나무에 묶어 두었던 적상의 고삐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혀 뜻밖의 상황이 막붕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아나야 할 적상이 앞발을 높이 추켜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마우는 오른손으로 창을 지그시 움켜쥔 채 적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적상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달아나는 즉시 저 인간의 창이 자신의 몸을 관통하리라는 것을. 믿기 힘든 일이지만 저 인간은 이전의 주인과는 달리 명마의 가치를 조금도 모르는 인간이었다.
적상의 느낌은 사실이었다. 어차피 탈 수 없는 말이라면, 그것이 계속해서 자신을 거부한다면, 사마우는 단숨에 적상을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한동안 둘의 시선이 그렇게 교차하고 있었다.
막붕은 비로소 흥미가 동했는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따위 말 따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사마우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못했다. 사마우의 손에 든 진혈창이 먼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적상이 위협을 느끼고 앞발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굴욕적인 복종의 자세, 적상의 마생(馬生)에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살자니 별수 없었다. 세상 살다 보면 이 꼴, 저 꼴, 못 볼 꼴 많이 본다지만 명마를 못 알아보는 무식한 인간을 만나는 상황을 맞을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순간 적상은 ‘참 더러운 주인을 만났구나’라고 생각했다.
비로소 사마우가 살기를 거뒀다. 그리고 천천히 적상의 등에 몸을 실었다. 막붕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일대일의 대결이라면 모를까, 전장에서 강렬한 살기처럼 위험한 것은 없었다. 그만큼 적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사마우는 이제 고작 십팔 세의 청년, ‘살기를 조절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네놈의 인생도 순탄치만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장에서 어느 정도의 살기는 묻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마우의 살기가 과연 전장의 살기에 묻힐지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마우가 전장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막붕으로서도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차피 사마우가 어떻게 되건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다. 사마우는 이제 일개 전투조의 조장으로서 선봉에 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적상이 몸을 일으키자 막붕이 서둘러 앞으로 말을 몰았다. 역시 아무 말도 없었지만 사마우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처음 타는 말인지라 몸이 다소 불안정했다. 하지만 적상은 명마답게 그런 어수룩한 주인의 균형을 나름 잘 맞춰 가고 있었다. 행여나 등에서 떨어지면 이 성질 더러운 주인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막붕의 성격은 과묵하면서도 다소 과격한 편이었다. 무식하다고 해야 할까, 과감하다고 해야 할까? 광서성에 들어선 막붕은 곧장 칠가연맹의 중심인 이가장으로 향했다.
손자병법 제십팔계에 보면 금적금왕(擒賊擒王)이라는 말이 있다. 적을 잡으려면 적의 우두머리부터 잡으라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중국 속담으로, 뱀을 잡으려면 머리부터 잡으라는 말이 있다. 뱀은 머리가 제압당하면 아무리 몸통이 길어도 쉽게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가장은 광서성 무림의 수장, 광서성을 차지하기 위해 먼저 이가장을 제압하는 것이 그다지 나쁜 전략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히 한 가지 전략만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다양한 전략이 생겨날 이유가 있겠는가? 전략이란 필요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해야 하는 법이었다.
우선 이런 전략에 필요한 것은 적의 진형을 뱀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적의 힘을 분산시키는 작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마 모용백이 이번 전투를 지휘했다면 칠가연맹은 자연히 분산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모용백은 철저하게 외곽을 먼저 흔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전략이라면 아마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휘를 담당하는 것은 막붕이었다. 그리고 그런 막붕의 성향을 칠가연맹 역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른바 무대포 정신, 모두가 막붕이 이가장으로 곧장 돌진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막붕이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그런 적의 허를 찔러 저들의 외곽을 뒤흔들었더라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이것은 가정에 불과했다.
실제로 막붕은 무대포로 이가장으로 향했고, 그런 무대포 정신이 뜻밖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왔다. 칠가연맹을 제외한 광소성의 다른 군소방파들이 그들의 행보를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뚜렷한 패주가 없던 광서성, 하지만 제왕성을 상대한다는 명분으로 칠가연맹이 탄생했다. 자연히 이런 칠가연맹의 행동에 불만을 품는 세력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제왕성이나 칠가연맹이나 똑같은 위협으로 보였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굳이 막붕의 앞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 그들 역시 막붕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칠가연맹으로 돌진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마리 호랑이의 싸움, 그 결과로 어느 쪽이 승리하든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그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소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사였다.
어찌 되었건 덕분에 막붕은 칠가연맹의 중심인 이가장의 턱밑까지 큰 어려움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곳에 있었다. 이가장에는 이미 이가장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식을 접한 다른 육가의 무인들이 그곳에 집결해 있는 상태였다.
칠가연맹을 대표하는 삼천의 고수들, 그들 모두가 광서성에서는 내로라하는 고수였다. 더구나 그들의 예상대로 막붕은 잔꾀를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칠가연맹 역시 그런 막붕을 상대로 굳이 잔꾀를 부릴 생각이 없었다. 아니, 굳이 잔꾀를 부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힘 대 힘의 대결이라면 그들 역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른바 정면 승부, 이것은 양쪽 모두가 바라던 바였다.
칠가연맹의 연합군은 이가장 앞에 있는 넓은 공터에서 막붕을 기다렸다. 그들이 넓은 공터를 택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막붕이 이끌고 온 제왕성의 병력은 그의 휘하 일천 폭풍대였다. 그 숫자는 정확히 칠가연맹 고수들의 삼 분의 일에 불과했다. 결국 다수로 소수의 적을 상대하는 싸움이라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넓은 평지에서 싸우는 것이 수적인 우위를 살리는 길이었다. 또한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쓸데없는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설사 칠가연맹이 이곳에서 패한다고 할지라도 그나마 식솔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가장의 내부로 적을 끌어들인다면 식솔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극겸은 이렇게 패할 경우까지도 나름대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막붕은 언덕 위에서 평지에 집결해 있는 칠가연맹군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확인하고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다.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는다는 것인가?, 과연 일검진천 이극겸이군.”
그러고는 나름대로 차분하게 적진을 훑어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 이극겸의 모습이 정확히 포착되었다. 실제로 이극겸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삼천의 칠가연맹군, 그 속에서도 이극겸의 기도는 단연 발군이었다. 길게 늘어진 수염과 주변을 아우르는 기도는 능히 일파의 종주를 자처할 만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 주듯 다른 육가의 가주들이 이극겸의 옆에서 만만치 않은 기도를 내비치고 있었다.
막붕은 그것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일 수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막붕은 단순한 인물이었다. 일단 목표가 확인되자 그에게 더 이상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었다.
막붕이 천천히 손을 올렸다. 잠시 후 시작될 전투를 위해 폭풍대 대원들이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칠가연맹군은 광서를 대표하는 무인들답게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장수에 그 수하라고 할까? 그런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폭풍대 대원들의 얼굴에서는 누구 하나 망설이는 표정을 찾을 수 없었다.
패도 막붕, 자신감을 빼면 시체인 남자, 거기에 자신감 못지않은 실력을 겸비한 남자, 깨어질지라도 물러서지 않는 남자, 그는 그렇게 자기 나름의 철학을 가진 인물이었다.
막붕이 천천히 자신의 도를 뽑아 들었다.
“돌격.”
이렇게 막붕의 우렁찬 함성이 결전의 시작을 알렸다.
선봉에서 돌격하는 막붕, 그리고 경쟁하듯 말을 타고 그의 뒤를 뒤따르는 일곱 명의 돌격조장, 그리고 그런 돌격조장의 뒤를 따라 경쟁하듯 달리는 폭풍대의 무인들. 칠가연맹의 무인들 역시 차분한 표정으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