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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앞서 말했다시피 선두에 선 것은 막붕과 칠 인의 돌격조장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기세 좋게 적을 향해 그대로 돌격해 갔다. 거기에는 물론 사마우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사마우는 앞장선 막붕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막붕의 이런 일련의 전술이 사마우에게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마우 역시 막붕 못지않게 직설적이고 단순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칠가연맹의 궁수들이었다. 그들은 달려오는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해 활을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화살로는 폭풍대의 전진을 막을 수 없었다. 막붕을 비롯한 전원이 창검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면서 계속해서 전진했다.
기세에서 지면 전투에서는 무조건 진다.
막붕의 신조였다.
그런 그의 신조대로 폭풍대는 무대포로 계속해서 돌격하고 있었다. 사마우 역시 날아오는 화살을 창으로 막으면서 계속해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사마우에게는 전장에서 화살을 막으면서 돌진하는 것도 나름대로 짜릿했다. 때문에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선두에 선 여덟 마리의 말 중 네 마리가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순간 적상의 눈이 번뜩였다.
‘벼엉신.’
적상은 그렇게 쓰러지는 말들을 비웃으면서, 주인이 미처 막아 내지 못한 화살을 나름대로 요리조리 잘 피하고 있었다. 쓰러진 네 마리 말의 주인들은 곧장 말을 버리고 경공을 사용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 적상의 마음을 아는 것일까?
사마우가 적상의 갈기를 칭찬하듯 쓰다듬었다. 사실 사마우도 적상의 뛰어난 능력을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 적상의 능력은 그야말로 사마우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전장에 익숙한 탓일까? 날아오는 화살을 나름 요리조리 피하면서도 기마술이 부족한 초보 주인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사마우도 자신의 기마술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상의 배려 덕분에 점차 승마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더불어 조금씩 자신감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그것 역시도 나름 괜찮은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에 취해 사마우는 신나게 적상의 엉덩이에 채찍질을 가했다. 적상도 주인의 들뜬 분위기에 호응해 콧바람을 내뿜으며 열심히 앞으로 돌진했다.
교전이 임박하자 이극겸이 검을 뽑아 들었다.
“돌격하라!”
이극겸의 외침이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기다리면서 적을 맞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는 곧, 기세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화살로 적의 기세를 일순간 저지하고 동시에 진격을 개시함으로써 돌진하는 적의 기세와 균형을 맞추자는 의도였다.
적상은 전방에서 창을 찔러 오는 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렇게 떨어진 곳은 적진의 한복판, 사마우의 창이 요란하게 원을 그리면서 다가서는 적들을 제지했다. 순간 적상이 앞발을 높이 추켜올려 적을 위협했다. 적상이 앞발을 추켜올려 몸을 일으킨 상황, 그리고 사마우는 자연스레 중심을 잡기 위해 앞으로 몸을 기울인 상황, 거기서 둘은 동시에 가까이에 위치한 서로의 눈을 힐끔 교환했다.
‘나쁘지 않은걸.’
인간과 동물이 그렇게 서로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막붕의 모습이 보였다. 막붕 역시 사마우처럼 적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적과 교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마우는 이런 광경을 처음 접했지만 폭풍대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막붕의 전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말에 탄 수장들이 먼저 돌격해 적의 전열을 흐트러트린다. 그리고 막붕은 곧장 적의 수장을 제압하기 위해 돌격한다.
하지만 사마우는 이런 전투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아니, 전투 자체가 처음이었다. 전장에 흐르는 살기, 흐르는 핏물, 무언가 자꾸만 그의 가슴을 쿵쾅쿵쾅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번 뛰기 시작한 두근거림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처음 전투에 임한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마우가 느끼는 흥분은 결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설렘이었다. 흥분된 마음과는 달리 그의 창은 냉철하게 주변에서 찔러 오는 적의 창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사마우의 본실력은 아니었다.
반면, 수많은 전투에 참여했던 성주의 애마답게 적상은 오히려 차분했다. 제법 그럴듯한 움직임으로 주변의 적을 견제하며 사마우의 시선을 확보해 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머지 폭풍대의 본대와 칠가연맹군이 격돌을 시작했다.
적의 진형을 무너트린 효과일까?
전장은 곧바로 혼전의 양상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막붕은 계속해서 적들의 틈을 헤치고 전진하고 있었다. 그가 전진하는 방향에는 바로 일검진천 이극겸이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지금 막붕의 눈에는 오로지 그만이 보이고 있었다.
막붕의 패도적인 기세 때문이었을까? 막붕의 앞으로 작은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휘두르는 일도 일도에 대여섯 명의 적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마침내 막붕은 자신을 막아서는 적들 사이로 이극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막붕은 말을 버리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경공을 이용해 단숨에 이극겸의 앞으로 날아가려는 것이었다. 육중한 몸과는 달리 그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유연했다.
순간 이극겸을 비롯한 칠가의 가주들 역시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붕은 나머지 육가의 가주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이극겸만을 노리고 맹렬한 기세로 도를 휘둘렀다.
오늘날의 그가 있도록 해 준 패도 막붕의 성명절학 오패도. 막붕의 도신에서 다섯 줄기의 도기가 이극겸을 향해 날아갔다. 이극겸 역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막붕의 도기를 향해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도기와 검기의 충돌음이 요란하게 주위를 울렸다. 이극겸의 몸이 막붕의 도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쭉 미끄러졌다. 힘에서는 단연 막붕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렇게 단 한 번의 교전에서 막붕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놓칠세라 재빨리 이극겸을 향해 돌격했다.
힘에서 막붕을 당해 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극겸은 감히 막붕의 도를 정면에서 받지 못하고 빙그르르 몸을 회전하며 도를 피했다. 그 순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머지 육가의 가주들이 재빨리 막붕을 에워쌌다.
우연일까?
아니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을까?
자연스럽게 막붕을 끌어들인 형세가 되었다. 막붕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육가 가주들의 검을 막기 위해 맹렬하게 도를 휘둘렀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결코 개인적인 비무가 아니었다. 피 튀기는 전장, 승리를 위한 연수합공이라면 그다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육가 가주들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비록 전장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때문에 이렇게 한 명을 상대로 합공을 한다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칠 인의 고수에게 둘러싸인 막붕은 일단 조심스럽게, 그리고 유심히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 일곱 명이 서 있는 위치, 그것은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익숙한 형태였다.
막붕의 머릿속에 한 가지 유명한 검진이 떠올랐다. 막붕이 흠칫 놀라며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이극겸을 바라보았다.
“무당의 칠성검진인가?”
이극겸은 친절하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인정했다. 그리고 막붕을 향해 검을 쓱 내밀었다. 이를 신호로 육가 가주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칠성검진, 그것은 북두칠성을 모태로 한 무당의 대표적인 검진이었다. 유명한 만큼 그 파훼법도 세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바로 북극성의 위치를 점한 인물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훼법이 알려져 있음에도 칠성검진은 아직까지 최고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파훼하기 힘든 검진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북극성의 위치를 점하는 인물은 언제나 검진을 이루는 인물 중 최고의 고수였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는 일검진천 이극겸이 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일대일의 대결이라면 막붕이 그를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칠성검진의 속에서 그를 제압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그만큼 무당이 자랑하는 칠성검진의 위력은 막붕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극겸이 무당과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는가?’
칠가 가주들의 검을 막으면서 막붕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칠가의 삼천 무인들, 그들은 결코 폭풍대의 하수가 아니었다. 초반 혼전의 양상을 딛고 이미 전열을 정비하며 조직적으로 폭풍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이상 폭풍대가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더구나 막붕이 칠가의 가주들에게 꽁꽁 묶여 있다면 그런 특단의 조치는 더더욱 취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이번 전투의 승자는 자신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말 완벽한 칠성검진이라면 막붕으로서도 위험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연합한 기간은 고작 십 년, 그 기간 동안 완벽한 칠성검진을 소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당에서도 십 년 이상을 함께 수련한 자들이 검진을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못한 칠성검진, 반드시 파훼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폭풍대의 수하들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수하를 모두 잃은 혼자만의 승리, 그런 승리는 결코 달갑지 않았다.
결국 그의 마음은 조급해질 수밖에는 없었다.
당초 칠가의 우두머리를 제거해 승산을 굳히려는, 누구나 알고 있는 그의 야심 찬 계획은 이미 수포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정작 당황한 것은 칠가의 가주들이었다.
무당의 칠성검진, 그것은 막붕 따위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제왕 혁련천세, 바로 그를 대비해 준비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그 휘하의 패도 막붕조차도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막붕을 제압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들은 비로소 네 개의 성을 제압한 제왕성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정상적인 대결이라면 막붕은 수백 초 이내에 칠성검진을 파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수백 초를 교환할 시간이 문제였다. 조급해진 마음 때문에 이미 막붕은 평정심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무리하게 힘으로 이극겸을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리수가 되었고,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를 놓칠세라 육가 가주들의 검이 막붕의 몸 곳곳에 검흔을 남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검흔이 문제가 아니었다. 겉으로 흐르는 피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검기에 적지 않은 내상마저 입고 있었다.
막붕은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었다.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승리는 결국 칠가연맹의 몫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전쟁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반드시 누군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그때까지도 사마우는 적들에 둘러싸여 적의 창을 막아 내는 데 급급했다.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그토록 연마했던 진규의 창법도, 내공의 운용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실전 경험의 부족이라는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실전 경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처음으로 전장에서 마주하는 집단적인 살기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것은 보통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사마우는 살기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 아닌가?
결국 사마우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흥분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런 와중에 적상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몸을 돌보기도 바쁜 상황에서 적상까지 보호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어떻게 얻은 말인데 쉽게 죽이고 싶지 않았다. 공짜로 얻은 말인데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적의 공격을 막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사마우는 적상의 몸에서 뛰어내렸다.
적상은 그야말로 영리한 말이었다. 사마우가 자신을 위해 뛰어내린 것을 대충 눈치 챈 듯했다. 적들의 시선이 사마우에게 쏠리는 사이 그는 마치 무언가에 적중된 듯 스르륵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실상 무언가에 적중된 것은 아니었다. 몸 곳곳에 상처는 있었지만 치명적인 상처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죽은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명마이긴 하지만 일개 말에 불과한 적상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상은 눈을 끔뻑이면서 오랜만에 새로운 주인의 싸움을 느긋하게 관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몇몇 흉악무도한 인간들이 그를 밟고 지나갔지만 그런대로 참을 만한 고통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마우는 계속해서 주체할 수 없는 흥분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주변에 흐르는 아군과 적군의 피가 그의 오감을 계속해서 짜릿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피식.
전장의 한복판에서 그는 웃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는 적들은 아마도 그가 공포로 미쳐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정 즐거워서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손에 들린 진혈창이 처음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진혈창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사마우의 그 어떤 움직임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진혈창이 목표한 상대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두근, 두근, 두근.
진혈창의 창끝에 꽂힌 적의 심장 고동이 창대를 타고 그의 손을 거쳐서 오감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싸악 바뀌었다. 이내 사마우의 웃음이 짙은 살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곧, 제대로 운용되지 않던 내공이 창을 든 그의 오른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눈을 뜬 것이다.
지금까지 무엇이 그렇게 그를 흥분시켰던 것일까? 그 흥분의 정체는 바로 살의(殺意)였다. 그렇게 눈을 뜬 열여덟 살 청년의 살기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주변의 무인들마저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런 살기에 압도된 것일까? 사마우의 뒤에서 누군가가 괴성을 지르며 그를 향해 돌격했다. 달려드는 자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대하는 사마우의 짙은 살기에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마우는 뒤에서 달려드는 자를 확인하고 곧장 적의 심장에 꽂았던 창을 뽑았다. 그리고 빠르게 창을 회전시켜 덤벼드는 적의 심장을 취했다. 또다시 창 끝에서 상대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두근.
부르르 전신에 전율이 일어났다. 창에 꽂힌 상대의 심장이 밖으로 붉은 피를 분출했다. 사마우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인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적의 창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사마우, 하지만 이제는 살기를 풀풀 흘리면서 인간 도살자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더불어 대도 진규의 잠영신법이 전장에서 빛을 발했다. 잠영신법은 진규가 사마우를 두드릴 때 사용하던 신법이었다. 사마우는 자신의 움직임이 잠영신법인지 뭔지조차도 알지 못했지만 진규를 흉내 낸 그 움직임은 전장을 누비는 것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사마우의 창이 한 번 빛을 번쩍일 때마다 창은 정확히 적의 심장에 꽂혀 있었다. 하지만 사마우는 결코 곧장 창을 빼는 법이 없었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음미하듯 한동안 창을 꽂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꼭 한 명씩의 적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적상은 자신의 주인이 예상대로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마우의 살기는 계속해서 증폭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이미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성은 완전히 살기에 잠식되어 사라진 상태였다. 전장은 그에게 그토록 염원하던 낙원이었다.
그런 그의 활약은 아군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고 있었다. 제왕성 폭풍대와 칠가연맹군의 격전, 그렇게 그곳에서 사신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전황은 대부분이 이극겸의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의 인물의 등장이 그의 의도를 산산이 부숴 버리고 있었다. 이제 전장을 지배하는 것은 막붕도, 칠가의 가주도 아니었다. 열여덟 살의 약관도 되지 못한 청년 사마우, 그가 바로 전장의 주역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마우의 내공 운용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동시에 잠영신법 역시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하나씩 하나씩 적의 심장을 취할 때마다 진혈창의 움직임 역시 점점 더 빨라졌다.
그리고 창끝에 흐르는 기운 역시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심장을 꿰뚫는 것만이 아니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순간 창의 기운이 상대의 내부를 산산이 부숴 버리고 있었다. 그만큼 살육의 속도가 빨라지고, 자연스럽게 주변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살기에 이성이 완전히 잠식된 상황, 하지만 다행히도 적아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사신이 눈을 뜬 이후 한 시진(약 2시간)이 흘렀다. 그 짧은 순간 전황은 이미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진혈창의 마지막 제물은 이극겸의 동생 이극인이었다. 이극인은 가슴에 창을 꽂은 채로 두 눈을 부릅뜨며 사마우를 노려보았다. 그를 마지막으로 칠가 가주들을 제외한 칠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전장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생존자들의 몸 곳곳에 남겨진 수많은 상처, 그리고 바닥에 흐르는 핏물만이 전장의 치열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남아 있는 폭풍대원의 숫자 역시 고작 이백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사마우에게 쏠려 있었다.
사마우는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듯 무언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먹이를 찾아 주변을 훑어보는 그의 시선은 폭풍대원들에게까지 공포로 다가왔다. 마침내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듯 사마우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바로 막붕과 칠가의 가주들이 격돌하는 장소였다. 폭풍대의 대원들은 행여나 그의 앞을 막을세라 서둘러 길을 열어 주었다.

그 순간 막붕과 칠가 가주들의 격돌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양자 간의 승패는 이미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초반 막붕의 조급함이 일찌감치 승패를 갈랐던 것이다. 막붕은 이미 적지 않은 내상과 외상을 입은 상황,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막붕의 패배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대결의 여파 때문에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마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혼신의 내공을 끌어올려 전신을 보호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본능이었을까?
사마우는 검진의 중심인 북극성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극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검진의 여파로 사마우의 옷이 심하게 펄럭였다. 그러나 사마우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위협하듯 짙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기가 뜻밖의 상황을 연출했다. 칠성검진에 전력을 기울이던 칠가의 가주들, 그들이 무심결에 살기에 반응해 사마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한순간의 기회를 놓칠 막붕이 아니었다. 막붕은 이내 혼신의 힘을 다해 도를 움직였다. 막붕의 도가 격렬하게 주변으로 도기를 분출했다. 그리고 한순간의 방심, 그것의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혼신을 다한 도기에 일순간 검진이 흔들렸고 막붕은 이를 놓치지 않고 이극겸을 향해 빠르게 도를 뻗어 갔다.
사마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진의 위력이 다소 약해진 틈을 타 재빨리 이극겸의 뒤로 접근했다. 이극겸은 황급히 막붕의 도를 막았지만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쓰윽 밀려났다. 바로 그 순간 사마우의 창이 등 뒤에서 이극겸의 심장을 취했다.
이극겸이 두 눈을 부릅뜨고 등 뒤에 선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칠성검진의 중심인 이극겸이 무너지자 나머지 육 인은 더 이상 막붕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의 주변으로 이백의 폭풍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막붕이 놀란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애송이.’
사마우의 도움을 받은 것이 몹시 불쾌한 듯했다. 그리고 그 분풀이는 육가의 가주들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육가의 가주들을 마지막으로 전장은 막을 내렸다.
전장의 여운을 즐기는 것인가? 아니면 이극겸이 자신의 마지막 먹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사마우는 육가의 가주들이 모두 쓰러질 때까지 이극겸의 가슴에 꽂힌 창을 뽑지 않고 있었다.
막붕이 그런 사마우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만, 일파의 수장에 대한 예우는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막붕의 말에 사마우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막붕은 그 웃음 속에서 다시 과거 그를 처음 만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사마우를 죽이려 했던 모용백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혁련천세의 선택도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전투의 결과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선택 중 어느 쪽도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막붕의 눈에 보이는 전장은 어느 때보다도 참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