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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남궁세가, 과연 중원을 대표하는 오대세가 중의 하나였다. 명불허전, 남궁세가가 버티고 있는 안휘성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안휘성에 접어들기가 무섭게 실감할 수 있었다.
천왕전의 구천 병력이 안휘성으로 들어서는 순간 곳곳에서 암습이 시작되었다. 안휘성 일대의 군소방파, 그들이 곳곳에서 천왕전을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와중에도 남궁세가의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의 암습은 남궁세가의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단지 이들이 남궁세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천왕전의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 남궁세가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거기에는 심지어 살막의 자객들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살막은 명백한 사파 집단이었다. 반면에 남궁세가는 분명 정도를 표방하는 집단이었다. 그럼에도 살막까지 천왕전을 노린다는 사실, 그것은 안휘성 일대에 있는 모든 군소방파가 적이라는 뜻이었다. 안휘성에서의 남궁세가의 위치를 가히 짐작게 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천왕전의 진군을 막을 수 없었다. 문인호는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사마우 때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문인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실력이 사마우의 아래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미 문인호는 오도문의 오도단혼도법을 극성 가까이 익히고 있었다. 과거 그의 아버지 문극인의 경지를 훌쩍 넘어선 것이었다. 제왕성 내에서 자신의 상대는 오직 제왕 혁련천세뿐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안휘성 공략에서 그는 사마우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무위가 자신을 능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실전에 임하면 여지없이 발동되는 그의 살기의 위력만은 진정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고, 단순히 압도에서 끝나지 않고 마치 전염병처럼 주변 사람들을 전염시키고 있었다. 그 살기는 적에게는 두려움으로, 그리고 아군에게는 암습의 두려움을 떨쳐 내는 힘이 되었다. 그것 때문에 적들이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을 정도였다.
문인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사마우가 그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런 사마우의 발걸음은 계강자의 앞에서 멈춰 있었다. 이내 사마우가 지긋한 시선으로 계강자를 바라보았다. 계강자는 사마우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사마우가 그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지금부터는 등용대가 선봉에 선다. 즉시 출발하도록.”
계강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마우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뚫어지게 응시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계강자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존명.”
계강자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마우는 자신의 말에 올랐다. 그리고 계강자 쪽으로 진혈창을 내밀었다. 출발하라는 뜻이었다. 문인호는 사마우의 독촉에 당황하는 계강자의 모습에 내심 고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빛도 심각하게 바뀌었다.
등용대가 선봉에 서는 것이 고소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한 문제는 바로 앞으로 벌어질 전투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곳에 오는 동안 적지 않게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눈앞의 남궁세가는 말 그대로 오대세가 중의 하나다. 그런 남궁세가를 상대하면서 사마우는 아무런 작전도 짜지 않았다. 그저 돌격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접전으로 천왕전의 수하들은 피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돌격을 강행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체념하듯 따르면서도 문인호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사마우가 그의 앞으로 다가와 씩 미소를 머금었다. 저런 것을 미소라고 할 수 있을까? 문인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문인호를 향해 사마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그만 보잘것없는 밑천을 마저 드러내는 게 어때?”
사마우의 말에 문인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마우는 그런 그를 남겨 두고 그대로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마우의 뒤를 계강자의 등용대가 빠르게 따라갔다.
순간 문인호가 어쩐지 씁쓸한 표정으로 사마우의 등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나?”
무림인이라면 응당 삼 푼의 힘은 감추기 마련이었다. 문인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전력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아니, 전력의 삼 푼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조금 전 사마우의 말은 그가 그런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쳇, 너 따위가 나의 진짜 실력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문인호는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등용대의 뒤를 좇았다.
선두에 선 사마우의 진혈창이 빛을 뿜었다. 남궁세가의 정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두 명의 검수가 기다렸다는 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등용대의 대원들이 남궁세가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의 문 앞에 선 사마우, 그는 진혈창에 내공을 주입하면서 남궁세가의 정문을 후려쳤다.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문이 박살났다. 그런 사마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인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선전 포고 한번 요란하게 하는군.”
문인호 역시 누구 못지않게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보기에도 사마우는 정말 도가 지나쳤다. 몰래 기습을 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정면 승부라니, 하긴 몰래 기습할 만큼 남궁세가가 허술한 곳도 아니지만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때문에 문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위풍당당(威風堂堂), 그야말로 사마우는 당당하게 정문을 향해 천천히 말을 몰았다. 그렇게 사마우가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의 광경이 훤하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광장에 남궁세가의 검수들과 등용대의 대원들이 심상치 않은 기세를 뿜으며 대치하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검수들 뒷전에서 한 명의 중년인이 사마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남궁세가의 당대 가주 남궁천이었다. 사마우는 그의 시선에 답례라도 하듯이 그를 향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비웃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남궁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렇게 가벼운 눈인사가 끝나자 사마우는 적과 대치하고 있는 계강자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장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의 검수들이 무모하게 중앙으로 뛰어드는 그를 황급히 막았다. 그렇게 남궁세가와 제왕성 천왕전 간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뒤따라온 문인호가 일련의 사태를 확인하고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말이 필요 없는 놈이로군.”
그러고는 그 역시 곧바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뒤를 따라온 남용의 참혼대 역시 곧장 전장으로 달려들었다.
남궁세가 검수들의 숫자는 삼천, 그리고 이곳에 도착한 천왕전의 고수 역시 삼천. 삼천 대 삼천, 분명 수적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무림에서의 전투는 단순히 숫자로 결정되지 않았다. 남궁세가의 삼천 검수, 그들은 지금까지의 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누구 하나 쉬운 상대가 없었던 것이다.
문인호의 오도단혼도법이 곳곳에서 빛을 뿜었다. 그는 적재적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적절한 대응이 아니었다면 사신대의 대원들은 남궁세가의 검수들을 상대로 일각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동수의 대결에서 한쪽의 측면이 무너진다면 이는 곧 전장 전체가 무너짐을 뜻했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문인호였기에 그는 분주하게 곳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문인호가 보기에 이번 전투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패전의 주범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반면 참혼대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삼 대 중에서 유일하게 남궁세가의 검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남용은 그런 참혼대의 중심에서 남궁세가의 검수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분주한 와중에도 문인호는 그런 정세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남용의 모습을 확인하며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놈도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말인가?”
남용은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전장에 참여하고 있었다. 딱히 전면에 나서지도, 그렇다고 계강자처럼 몸을 사리지도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자신의 몫만은 철저하게 완수하는 인물이었다. 문인호는 왠지 씁쓸한 표정으로 남용을 바라보았다.
“역시 저런 놈들이 나중에 뒤통수를 치는 법이지.”
그러고는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등용대를 바라보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이번 교전의 패전 책임은 아마도 등용대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 따위가 남궁세가 검수들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문인호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각 문파를 대표하는 후기지수들의 모임, 겉만 번지르르할 뿐 무언가 기대할 것이 없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다.
예외는 바로 계강자였다. 계강자의 활약은 문인호가 보기에도 그야말로 눈부셨다. 진즉에 무너졌어야 할 등용대의 진영이 그 때문에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문인호가 다소 묘한 표정으로 계강자를 바라보았다.
‘대체 저놈의 목적은 무엇일까?’
지금 계강자는 무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몸 곳곳에는 적지 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필사적으로 등용대의 대원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말은 지금 그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놈은 여전히 미친 듯이 광분하고 있었다. 역시 놈은 일전을 이끌 만한 인물이 못 되는 놈이다. 시무지자준걸(時務知者俊傑, 때를 아는 자가 영웅이다)이라고 했던가? 일군의 지휘관이라면 무릇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큰 인물은 자신처럼 무게감이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문인호는 생각하고 있었다.
앞뒤 재지도 않고 저렇게 무작정 무식하게 돌진하는 인물은 본시 그리 명이 길지 못한 법이다. 애먼 놈 옆에 있다가 날벼락을 맞는다고 했던가? 재수 없으면 이번에 살아 돌아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회에 괜히 눈에 거슬리는 놈들을 제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문인호 자신은 날벼락을 맞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찌 되었건 사마우의 무위는 나름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역시 그저 일개 무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전장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만큼, 아직까지 문인호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여유도 그렇게 길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의 앞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전장에서도 쉽게 다가오는 상대의 기도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심상치 않은 상대였다.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검의 움직임, 좌중을 압도하는 기도, 지금까지 상대하던 세가의 검수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문인호는 방심하지 않고, 곧 등장한 인물의 검을 정면으로 맞받아쳐 갔다.
“이제야 진짜가 나오기 시작하는군.”
문인호의 말에 상대가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놈, 나이답지 않게 좋은 실력이로구나.”
상대의 칭찬에 답례하듯 문인호가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단 한 번의 교전으로 문인호는 어렴풋이 상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상대는 남궁세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오대 장로 중의 일인일 것이다.
두 사람이 벌인 충돌의 여파로 그 일대의 전장이 다소 넓어졌다. 이내 두 사람의 교전은 점차 요란하게 주변을 울리기 시작했다. 문인호의 예상처럼 상대는 남궁세가의 오대 장로 중에 일인인 남궁적이었다.
처음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남궁적은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상대의 저항이 생각 이상으로 거셌던 것이다. 때문에 남궁적은 계속해서 검 끝으로 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점차 남궁적 쪽으로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자 남궁적이 담담한 표정으로 문인호를 향해 물었다.
“너는 오도추혼 문극인과 어떤 관계냐?”
남궁적의 말에 문인호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남궁적을 바라보았다. 남궁적은 지금 자신의 선친을 언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문인호는 자신의 아버지가 이미 세인들에게 잊혀 버린 존재라고 생각했다.
문인호에게 아버지는 패배자였다. 그리고 그런 패배자를 기억할 사람은 무림에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상대는 고작 몇 번의 교전으로 그런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비단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궁적이 문인호를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석년의 문극인의 오도단혼도법은 고작 이런 것이 아니었거늘.”
마치 자신을 염려하는 듯한 남궁적의 말에 문인호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마치 그 말에 대꾸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자신의 도를 수직으로 바로 세웠다. 그것은 지금까지 문인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순간 남궁적이 적지 않게 감탄하면서 검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오오, 참혼세(斬魂勢). 진정 문극인의 오도단혼도법인가?”
이내 요란한 굉음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남궁적이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네가 제왕성 따위의 주구가 되어 있는 것이냐?”
순간 문인호의 도가 부르르 떨렸다. 남궁적의 말로 보아 아마도 선친과 알고 지낸 사이임이 분명했다.
‘쳇, 어차피 과거의 인연 따위.’
이내 문인호가 이를 악물면서 도를 고쳐 잡았다. 순간 삐익∼ 호각 소리가 주변을 요란하게 울렸다. 동시에 남궁세가의 검수들이 재빨리 뒤로 몸을 빼기 시작했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제 계강자의 활약으로도 등용대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때문에 계강자는 갑작스런 남궁세가의 퇴각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에 남용은 착잡한 표정으로 전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적진을 휘젓던 사마우는 물러나는 적을 쫓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문인호가 그런 사마우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남궁세가의 퇴각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의아하기는 했지만, 정작 의아한 것은 바로 사마우의 행동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달아나는 적의 뒤를 쫓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적의 뒤를 쫓기는커녕 멍청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천천히 말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애마 적상을 뒤로 물렸다.
적상이 어느 정도 물러나자 사마우는 창을 비스듬히 들어 전방을 겨냥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런 사마우에게 고정되었다. 창에 혼신의 공력을 주입하는 듯 그의 창끝이 부르르 떨렸다. 그런 사마우의 앞에 한 개의 인영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사마우는 다가오는 상대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혁련천세…….”
그는 상대를 혁련천세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상대는 놀랍게도 여인이었다. 사마우는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왕을 제외하고도 이런 기도를 내뿜을 수 있는 자가 하늘 아래 존재하고 있었다는 건가?”
등장한 여인은 사마우의 중얼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앞에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마우는 일체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여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남용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검후인가?”
남용의 말에 문인호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드넓은 강호에서도 혁련천세의 이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남용의 중얼거림에서 그런 인물 중 하나인 여인의 이름을 떠올랐다.
검후 남궁혜, 검에 관한 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문인호는 그제야 남궁혜의 성이 남궁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검후가 남궁세가의 인물이었는가?”
남궁혜는 검후라는 이름으로만 무림에 알려져 있었다. 그녀가 남궁세가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실상 남궁혜는 바로 현재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천의 누이였다.
이미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그녀는 검을 위해 결혼조차도 하지 않았다. 검에 미친 여인, 사람들은 그녀를 검후라고 부르며 그 검을 경원하고 있었다. 검을 든 무림의 여인이라면 누구나 흠모하는 무림 최고의 여검사이기도 했다.
이내 문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검후가 등장한 이상 오늘의 전투에 일말의 승산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혁련천세 본인이 직접 온다면 모를까, 사마우 따위가 남궁혜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계강자 역시 문인호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침울한 수하들과는 달리 사마우는 피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멋지군.”
무엇이 멋지다는 것일까?
사마우는 비스듬히 검을 움켜쥔 남궁혜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웃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창이 웅웅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살을 에는 듯 짙은 살기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남궁혜 역시 검을 든 자세에서 사마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살기만으로도 능히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전설의 천살성인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는 그녀의 미간에 잔주름이 드러났다. 문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검후라고 해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
그런 문인호의 말이 귀에 거슬렸던 걸까? 남궁혜가 힐끔 문인호를 바라보았다. 단지 힐끔 쳐다보았을 뿐인데 문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검후, 검후라는 것인가?’
문인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문인호를 힐끔 쳐다보는 그 짧은 순간, 남궁혜는 무언가가 자신의 빈틈을 뚫고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사마우는 분명 일체의 미동도 없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남궁혜가 얼굴에 적지 않은 놀라움을 드러냈다.
자신의 빈틈을 파고들었다고 생각했던 것, 그것은 바로 사마우의 살기였다. 단지 살기만으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상대가 고작 스무 살을 조금 넘었다는 사실이 더더욱 그녀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이제 고작 스무 살, 앞으로 눈앞의 상대가 어떻게 변할지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내 남궁혜의 몸에서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강한 기도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궁혜는 사마우의 살기를 기도로 누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