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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군사의 위치가 말하듯 그는 머리가 좋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그의 능력으로는 이런 일련의 상황을 연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었다. 제왕전을 에워싼 마교도들은 옷만 바꿔 입었을 뿐 분명 모용백의 수하들이었다.
너 따위라는 말에 자존심이라도 상한 것일까?
모용백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공손히 사마우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마교 서열 이십팔 위 음마(淫魔) 모용백이 제왕성의 소성주를 뵙습니다.”
그의 음흉함은 과거에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음성은 분명 과거의 그것보다 훨씬 더 음침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음침한 음성에 제왕전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순간 사마우가 피식 고소를 머금었다.
“음마라, 당신과 제법 잘 어울리는 별호로군.”
사마우는 진심으로 음마라는 별호가 모용백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다소 놀란 표정으로 모용백을 바라보았다. 모용백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 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기도는 한층 더 강력하게 느껴졌고, 또한 한층 더 음침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철저히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감춰 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야 비로소 본연의 모습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신분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제왕전의 문이 열리고 제왕성주 혁련천세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혁련천세는 그야말로 병색이 완연한 노인 그 자체였다. 너무나 초췌한 그의 모습에 사마우의 눈망울에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그런 혁련천세의 뒤를 환사가 보좌하듯 따르고 있었다. 사마우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혁련천세를 향해 미소 지었다. 반대로 혁련천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런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바보 같은 놈, 왜 돌아온 것이냐?”
사마우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성주, 정말 꼴이 말이 아니시군요.”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사마우의 말에 혁련천세는 그저 씁쓸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그래, 이 못난 꼴을 확인하고 싶어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냐?”
사마우가 조금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그래도 지난 십 년 세월 키워 주고 먹여 주신 분인데 마지막 가는 길쯤은 지켜보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사마우의 여유로운 태도에 혁련천세 역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녀석.”
그리고 그 역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제왕 혁련천세, 병색이 완연한 그의 몸에서 결코 상상 못한, 좌중을 압도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혁련천세가 담담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 따위에 의지할 만큼 나약한 인물로 보이더냐?”
사마우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진즉에 그렇게 나오셨어야죠.”
혁련천세가 고개를 돌려 환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환사, 길을 열어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환사의 환영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혁련천세를 바라보았다.
“성주.”
환사의 걱정스런 음성에 혁련천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직 나 혁련천세는 죽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환사의 검이 빠르게 혁련천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혁련천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환사를 바라보았다.
“……환사, 너마저 마교의 끄나풀이었더냐?”
환사가 씁쓸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지난 이십 년 당신을 주군으로 모시면서 실로 행복했습니다. 마교의 수천 년 염원이 아니었다면 진정으로 당신을 주군으로 섬기고 따랐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마교 서열 삼십 위 환영마가 바로 접니다.”
가슴이 꿰뚫린 채로 혁련천세는 웃고 있었다.
“그랬느냐?”
동시에 혁련천세의 우수가 환사의 머리를 꽉 움켜쥐었다. 환사가 피하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능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사는 굳이 혁련천세의 우수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 환사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혁련천세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환사의 머리통을 그대로 으스러트렸다. 그리고 쓰러지는 환사를 뒤로하고 가슴에 검을 꽂은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기다렸다는 듯 환영대가 혁련천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제왕성의 환영대가 아니라 마교의 환영대였다.
혁련천세의 가슴에 꽂힌 검 끝으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혁련천세가 천천히 모용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모용백은 차마 그의 눈을 정면으로 대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음마라고 했던가?”
모용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천세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내가 품 안에 마교를 키우고 있었단 말이지.”
지난 이십 년을 함께해 온 동료들이다. 그런 동료들이 마교인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십 년 전 무영지독을 확인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말 그대로 혹시나였을 뿐, 굳이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혹시나 했던 생각들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마교의 뿌리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이었다. 혁련천세가 검을 움켜쥐고 천천히 아래로 걸어 내려오는 순간, 사마우가 적상을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적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음마의 마혼대가 그런 그의 앞을 막았다. 순간 모용백이 손을 높이 들며 외쳤다.
“물러서라!”
마혼대가 물러서자 환영대 역시 길을 비켜 주었다. 혁련천세의 앞에 도착한 사마우가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혁련천세가 그런 사마우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분명 오지 말라고 했거늘, 너란 녀석의 고집도 어지간하구나.”
사마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내 혁련천세가 모용백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 아이는 살려 줄 수 없겠는가?”
사마우가 그런 혁련천세를 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모용백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실 이번 거사의 목적은 혁련천세가 아니었다. 그는 어차피 무영지독으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는 굳이 검을 들이댈 필요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 일의 진짜 목적은 바로 사마우였던 것이다.
혁련천세가 천천히 자신의 애검을 빼 들었다. 신검 백상(白象), 흔히 사람들은 그것을 제왕검이라고 불렀다. 백상을 손에 든 혁련천세가 천천히 적상을 향해 다가갔다. 이전 주인의 뜻을 읽은 듯 적상은 그가 타기 편하도록 무릎을 낮추었다. 그렇게 백상과 적상이 오랜만에 하나가 되었다.
적상이 몸을 일으키자 마상의 혁련천세가 당당히 가슴을 폈다.
“나이 스물에 대륙을 품고, 나이 마흔에 무영지독으로 그 꿈을 잃었다. 이제 내 나이 쉰하나, 나이 쉰 살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던가?”
말과 동시에 혁련천세가 사마우의 손을 잡고 그대로 그를 등 뒤에 태웠다. 적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혁련천세를 있게 한 백상검결이 그의 우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흔히 사람들은 사자를 백수의 제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 역시 거대한 코끼리의 움직임은 피하기에 급급할 따름이었다. 하물며 승냥이 따위가 코끼리의 기세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신검 백상이 뿜어내는 거대한 코끼리의 환영, 백상검결의 진수에, 그들을 향해 달려들던 승냥이 몇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모용백은 그런 일단의 상황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제왕성의 성문 앞에 도착한 혁련천세는 홀로 적상에서 뛰어내렸다. 적상 위에 남겨진 사마우가 놀란 표정으로 혁련천세를 바라보았다.
혁련천세는 다시 돌아서서, 뒤를 쫓아오는 환영대와 마혼대를 비롯한 마교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성문을 막아선 그의 기도에 압도된 듯 환영대와 마혼대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혁련천세는 뒤돌아보지 않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가거라.”
혁련천세의 말에도 사마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상에서 창을 고쳐 잡고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만 가거라. 대체 나를 얼마나 더 비참하게 만들 셈이냐.”
혁련천세를 바라보는 사마우의 표정이 움찔했다. 혁련천세가 그런 사마우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나의 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이야말로 내게 어울리는 무덤이 아니겠느냐. 내가 살던 곳, 내가 꿈을 키웠던 곳, 내가 이룩한 곳. 내 어찌 마지막 순간에 이곳을 떠날 수 있겠느냐? 하지만 너는 다르지 않느냐? 이곳은 나의 집, 너의 집이 아니다. 너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 앞으로 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사마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창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 사마우를 보며 혁련천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동안 즐거웠느냐?”
사마우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사마우는 굳이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느끼면서 동시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동안 진정으로 감사했습니다.”
사마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말머리를 돌렸다. 달아나는 것, 그것이 지금 자신이 혁련천세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마우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혁련천세는 조심스레 다가오는 마교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오라, 아직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제왕과 마교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미 승패는 정해진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그는 결코 호락호락 죽어 주지는 않았다. 당시 제왕성에 있었던 마교도의 숫자는 삼천, 그러나 혁련천세가 숨을 거두는 순간 그곳에 있는 마교도의 숫자는 일천오백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혁련천세가 쓰러지자 모용백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그의 시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는 일말의 가식도 찾을 수 없었다.
“잘 가십시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마혼대의 부대주 야율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애송이의 추격을 시작하겠습니다.”
모용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은 제왕께서 숨을 거두신 날이다. 오늘부터 사흘간, 제왕의 장례식을 치른다. 환영대와 마혼대는 제왕의 장례식이 끝나는 그때까지 결코 제왕성을 벗어나지 말도록.”
야율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주, 이대로 그를 놓아줄 생각이십니까?”
모용백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그는 전마(戰魔) 철위명 님의 몫이다.”
야율이 흠칫 놀라 모용백을 바라보았다.
“전마 님께서 드디어 출관하셨습니까?”
모용백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왕성을 벗어난 사마우, 그는 굳이 서둘러 달아나지 않았다.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적상의 등에 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딱히 달아난다 해도 달아날 곳이 없었다.
지금껏 그는 혁련천세의 좋은 검으로서 나름 최선을 다해 왔다. 검에는 생각이 없다. 아니, 적어도 사마우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혁련천세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나름대로 즐거움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였다. 막상 혼자가 되고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또한 어디로 가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곳도 없었다. 문득 혁련천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의 길?”
지금까지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혁련천세의 길이 곧 자신의 길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지금쯤 맹추격을 하고 있어야 할 마교의 무리들이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그다지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들이 추격해 왔다면 이런 잡념들이 떠오르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을 누군가가 떡하니 막아섰다. 막아선 인물은 육중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체구에 걸맞게 한 손에는 언월도를 들고 있었고 등에는 검을 차고 있었다. 흡사 관운장을 연상시키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는 강철 같은 기운과 더불어 흉흉한 마기가 깃들어 있었다.
“네놈이 사마우냐?”
그의 질문에 사마우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없는 사마우의 반응에 그가 실망스런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모용백, 그 빌어먹을 놈이 내게 고작 이따위 쓰레기의 처리를 맡기는 것인가?”
순간 사마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쓰레기?”
동시에 상대의 언월도가 한쪽 옆 수풀을 향해 바람을 뿌렸다. 그 순간 숲 속에 숨어 있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확인한 사마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혼대?”
분명 남용 휘하의 참혼대였다. 거구의 상대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쥐새끼들.”
비로소 눈앞의 상대에 호기심이 생겼다. 상대는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며 오백의 참혼대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당신은 누군가?”
사마우의 물음에 상대는 기가 찬 듯 어이없는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 너 따위 애송이가 건방지게 본좌를 당신이라고 부른단 말이지? 하긴 염라대왕이 물으면 누가 보냈는지는 대답을 해야겠지. 본좌는 마교 서열 이십 위 전마 철위명이다.”
사마우가 입가에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또 마교인가?”
돌아온 반응이 너무나 무덤덤하자 전마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이죽거렸다.
“제왕성주를 상대하러 왔건만 고작 이따위 애송이라는 말인가?”
순간 사마우가 적상의 위에서 빠르게 몸을 날려 전마를 향해 창을 뻗었다. 전마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섬뜩한 살기에 적잖이 놀란 듯 언월도로 사마우의 창을 막아 가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호, 너 따위 애송이에게서 나를 위협할 만한 살기라?”
제법 흥미가 동한 듯 그의 얼굴에는 묘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전마 철위명, 그는 한마디로 전쟁에 미친 인물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는 변방의 일개 수비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변방은 언제나 시끄러운 곳이다. 그는 그 시끄러움, 바로 전쟁이 좋았다.
살육, 약탈, 강간, 그런 것들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싸움이 좋았다. 무림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직은 무림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변방의 전쟁터를 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비로소 명령이 떨어졌다. 강호 출도, 그 첫 재물이 바로 제왕 혁련천세였다. 하지만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일은 끝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모용백이 부탁한 상대가 바로 사마우였다.
그가 모용백 따위의 부탁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당분간 그의 지시를 따르라는 것이 상부의 명령이었기에 할 수 없이 사마우의 뒤를 쫓았다. 아니, 굳이 쫓을 필요도 없었다. 멍청한 표정으로 넋을 놓고 말을 타고 가는 병신 같은 애송이가 바로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빨을 드러낸 애송이는 왜 모용백이 자신에게 부탁했는지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이답지 않은 절도 있는 동작, 그리고 생각 이상의 빠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장에서조차 쉽게 접해 보지 못한 짙은 살기,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마교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만한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교전에서 또 한 가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여러 가지 장점을 칭찬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애송이였다. 힘, 기술, 내공, 어떤 면에서도 자신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좀처럼 포기를 모르고 있었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런 것을 애송이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를 내뿜으면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투쟁심, 그것이야말로 향후 놈의 최대 무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위명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어 보였다. 향후라는 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도 놈은 이곳에서 자신의 손에 숨이 끊어질 것이었다. 실제로 사마우는 이미 움직이기 힘든 내, 외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역꾸역 창을 움켜쥐고 자신을 향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사마우 역시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우선은 상대의 강함에 놀랐다. 그 압도적인 힘, 그리고 검후를 능가하는 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눈앞의 상대가 고작 마교 서열 이십 위라는 것이었다.
‘고작 이십 위 따위가…….’
물론 이전 검후에게 당한 상처가 완벽히 치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는 그가 설사 완벽한 몸 상태라 하더라도 결코 대적할 수 없는 존재였다. 사마우는 웃었다. 이전 검후를 상대할 때처럼 그는 웃고 있었다. 당시에는 자신이 왜 웃는지를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왜 웃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검후와 만나기 전까지 살인은 그에게 낚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끼를 물면 무는 대로 그저 죽이면 그만이었다. 그 대상이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바뀐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검후와 상대할 때는 달랐다.
단순한 인간이 아닌 강한 인간이었다. 자신을 압도하는 무위와 기도, 그 속에 느껴지는 짜릿함, 목숨을 건 승부, 검을 든 자라면 누구나 그런 대결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우가 바라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그런 자들을 자신의 창으로 꿰뚫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또 다른 즐거움은, 대결이 아닌 승리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이었다.
그런 즐거움을 상상하는 그에게 두려움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단지 펄떡이는 적의 심장에 창을 박아 넣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자신은 그런 즐거움을 맛볼 자격이 없다는 것을, 그것은 오직 강자만이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 할 그 길이 어떤 것인지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이 그 길을 갈 수 없다는 것 또한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퍼덕거리는 놈의 심장이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나 분통 터질 따름이었다. 완벽한 패배를 떠올리는 순간 마침내 그의 살기가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전마 철위명의 움직임도 멈췄다. 그렇게 일단 승부가 끝났음에도 철위명은 무언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실제로 그는 아쉬웠다. 지금 사마우를 죽이는 것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토록 짜릿하게 오감을 자극하는 상대를 앞으로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창을 움켜쥔 사마우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놓아줄 수는 없었다. 그는 단순한 무인이 아닌 마교의 일원이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인가?”
전마는 마지막으로 사마우를 향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천천히 언월도를 들어 누워 있는 사마우를 겨냥했다. 순간 그 두 사람에게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던 참혼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용이 그들의 선두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용의 움직임에 전마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한눈에 그가 저들의 우두머리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는 쥐새끼임도 잘 알고 있었다. 전마의 미소는 곧 여유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전마의 언월도가 움직일 때마다 참혼대 대원들은 하나 둘씩 목숨을 잃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마는 또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들은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자신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자 하고 있었다. 특히 대장으로 보이는 놈은 아예 교전을 회피하고 자신의 대원들을 방패로 삼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마우, 바로 그 애송이를 구하려는 것이었다. 전마는 문득 생각했다.
‘다음의 기쁨을 위해서 지금 놈을 놓아주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의 몸이 사마우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남용은 이를 놓칠세라 재빨리 사마우에게 다가가 그를 등에 업었다. 그때 전마의 언월도 도기가 남용을 향해 날아들었다.
남용은 사마우를 보호하기 위해 전마의 도기를 가슴으로 받았다. 전마의 도기가 그의 호신강기를 뚫고 가슴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남용은 이를 악물고, 달아나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그리고 실제로 곧장 몸을 움직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나머지 참혼대원들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육탄으로 전마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전마는 그렇게 달려드는 참혼대원들과 달아나는 남용을 바라보면서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용의 등에 업힌 사마우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머금었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전마는 남용이 숨어 있던 적상을 타고 달아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새롭게 사냥을 시작했다. 가능한 느긋하게, 가능한 천천히, 그렇게 전마의 손에 참혼대는 몰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