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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사마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벽면의 비밀 통로를 바라보았다. 남용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움직일 수는 없었다. 마지막에 냉상아가 보였던 의미심장한 표정은 분명 자신에 대한 의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마도 냉상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주변 어디선가 이곳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비밀 통로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사마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비밀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검후나 다른 인물이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고개를 내민 것은 바로 사라진 남용이었다.
그랬다.
비밀 통로는 이곳 말고도 다른 입구가 있었다. 만약에 발각될 경우를 대비해 다른 곳으로 퇴로를 확보해 둔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남용이 사마우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남용을 사마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는가?”
사마우 역시 남용의 심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이를 확인하듯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하긴 마교의 표적이 된 이상 여기에 머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에 남용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우가 조금 섭섭한 표정으로 남용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그런 사마우의 표정에 남용은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남용이 아는 한 사마우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섭섭한 표정을 드러냈다는 것에서 그래도 이 사람이 나를 조금은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강소성에 있는 막붕 어르신께 갈 생각입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사마우의 옆에 궤짝 한 개를 내려놓았다. 사마우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남용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이 무엇인가?”
사마우의 물음에 남용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받아 두시지요. 앞으로 생활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마우가 천천히 궤짝을 열어 보았다. 궤짝 안에는 번쩍이는 금화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내 사마우가 궤짝과 남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것은 길을 떠나는 자네에게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남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몫은 따로 충분히 챙겨 두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받아 두십시오.”
그러고는 천천히 사마우를 향해 큰절을 했다. 사마우는 굳이 그 절을 사양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용이 자신의 수하로서 마지막으로 올리는 인사였기 때문이다.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남용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곧장 비밀 통로로 다시 몸을 감추었다. 그렇게 남용이 사라진 뒤 사마우는 다시 검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옆에는 금화가 가득 담긴 궤짝이 열린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비밀 통로로 돌아간 남용은 비밀 통로 안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비밀 통로는 그의 집 창고와 연결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과거 비밀 통로 위의 땅을 남용이 사들여 그 위에 창고를 지었던 것이다. 덕분에 비록 반찬은 구할 수 없었지만 창고의 쌀로 허기는 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십여 일의 시간이 흘렀다. 대장간은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로 붐비고 있었다. 하지만 사마우는 정확히 과거의 절반 정도의 손님만 받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한 명 줄었기 때문에 그만큼 일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용이 실제로 대장장이의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손이 줄어든 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식사는 물론 대장장이 일을 제외한 여러 가지 일을 남용이 담담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사마우가 직접 해야만 했던 것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나간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남용의 빈자리가 사마우에게는 생각 이상으로 크고 허전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사마우는 남용과 함께하면서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혼자가 되었다는 허전함은 사마우에게 생각 이상으로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남용이 정파의 첩자였다는 소문은 이미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그런 소문을 접한 몇몇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대장간을 찾았다. 하지만 사마우는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곳 사람들에게 사마우는 거의 동떨어진 존재였다. 그는 지난 삼 년 동안 한시도 대장간을 떠나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새로운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에게 귀찮은 일이었다.
실제로 직접 일용품을 사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 이것저것 마구 물건을 권하는 상인들, 괜히 친한 척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과거에는 이 모든 것이 남용의 몫이었다. 하지만 남용이 사라진 지금, 비록 귀찮긴 해도 이런 일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날도 음식을 사 갖고 대장간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음이 허전해서였을까? 지금까지 입에도 대지 않았던 술까지 한 병 샀다. 그렇게 대장간 앞에서 텅 빈 대장간을 바라보면서, 사마우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혼자라는 건가?”
어린 시절부터 그는 혼자였다. 그의 지독한 살기 때문에 아이들은 좀처럼 그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당시에는 혼자라는 사실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혁련천세를 따라 제왕성에 온 뒤로 사정은 바뀌었다. 처음 삼 년을 제외하고는 혼자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처음에는 자로와 함께했었고, 자로가 사라진 뒤에는 진규와 함께했으며, 그 이후에는 사신대와 함께했고, 제왕전과 함께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남용과 함께 있었다. 어느새 혼자 있는 것이 그에게는 낯선 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대장간에 들어선 사마우는 다시 화덕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시장에서 사 온 음식과 술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음식 맛은 분명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이전과는 달리 맛이 없었다. 사마우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재미있군.”
같은 음식이라도 맛이 다르다는 것, 참 이상한 일이었다. 사마우의 시선이 부지중에 비밀 통로 쪽으로 향했다.
“오늘쯤은 떠날 생각일까?”
아직 남용이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마우는 알고 있었다. 분명 아직은 떠날 수 없었다. 마교 인물들이 아직 이 일대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용의 집 창고에 연결된 반대편 통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그곳 역시 아직까지 마교가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남용도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결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이르면 오늘, 아니면 몇 주를 더 머무를지는 사마우로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끼이익 소리를 내며 대장간 문이 열렸다. 이미 대장간은 문을 닫은 뒤였다. 그렇다면 결국, 지금 찾아온 사람은 고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마우가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대장간으로 들어선 인물은 바로 빙마 냉상아였다.
사마우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그는 한 치도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님, 영업은 끝났습니다.”
말을 내뱉은 사마우는 스스로 놀랐다. 상대가 손님든 누구든 자신이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는 것,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대뜸 영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사마우를 향해 냉상아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냉상아는 지금까지 꾸준히 멀리서 사마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오늘은 지금까지의 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냉상아는 이미 사마우에 대해 자세한 보고를 들은 뒤였다.
삼 년 전 이 마을에 정착. 당시 용의자 남용과 함께 대장간을 개업. 세상사에 무관심한 전형적인 장인. 평소 결코 먼저 말을 하는 법이 없음. 세간의 사람들에게는 남용이 주로 대장간 업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모든 검은 그의 손을 거쳐서 제련됨.
보고의 내용은 대체로 이러했다. 그리고 평소 외부와는 일체의 접촉이 없던 그가 직접 바깥으로 나선다는 것은 남용이 이미 이곳을 벗어났다는 이야기였다. 남용이 첩자일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와 일체의 접촉도 갖지 않은 사마우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냉상아가 사마우의 곁으로 다가가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 사마우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지역 최고의 장인이라고 하더군.”
냉상아의 말에 사마우가 다시 화덕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업은 이미 끝났소.”
냉상아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금화 한 냥을 자신의 검 위에 올려놓았다.
“예외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갈 길이 급하니 우선 이것부터 손질해 주시게.”
냉상아의 말에 사마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외로운가?”
갑작스런 냉상아의 질문에 사마우가 비로소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시오?”
냉상아가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음식을 많이 남겼더군. 혼자 먹자니 잘 넘어가지 않던가?”
사마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를 어디에 숨겨 두었는가?”
냉상아의 말에 사마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이오?”
냉상아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겉으로는 차가운 듯 보이지만 가슴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 그럼에도 일주일 동안 아무런 동요도 없이 일을 계속하고, 음식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는 것은 아마도 그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냉상아의 말에 사마우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 하!”
그 웃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진정 그녀의 말이 우스웠던 것이다. 가슴속이 따뜻한 사람이라니, 그런 말을 살아생전에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것도 마교의 인물에게…….
그런 사마우의 웃음에 냉상아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는가?”
냉상아가 입가의 미소를 지우면서 차가운 시선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호쾌하게 웃고 난 뒤 사마우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냉상아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란 말인가?”
사마우의 말투가 어느새 하대로 바뀌었다. 냉상아는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우가 조용히 그녀의 검을 받아 들었다.
“당신의 검을 먼저 손질해 주도록 하지.”
그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냉상아를 쓰윽 훑어보았다.
“내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 큭큭큭.”
그렇게 웃는 사마우의 모습에서 냉상아는 일체의 가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내 사마우가 냉상아의 검을 불에 달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담금질을 계속했다. 냉상아는 그런 사마우의 옆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잠시 후 검의 손질이 끝나자 사마우가 그녀에게 검을 내밀었다.
“소문대로 솜씨 하나는 훌륭하군.”
그녀의 말에 사마우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냉상아는 그런 사마우에게서 더 이상 어떠한 사실도 알아낼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이 문제로 사마우를 더 이상 괴롭히고 싶지도 않았다. 때문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검을 검집에 넣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든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시오.”
냉상아의 말에 사마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냉상아는 곧장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대장간의 문턱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사마우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아직 젊은 것 같은데 매일 똑같은 그런 일상이 재미있나요?”
그녀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존대였다. 그런 일, 아마도 대장장이의 일을 말하는 듯했다. 사마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냉상아가 힐끗 시선을 돌려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사마우의 모습은 마치 불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나름 재미있는 모양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냉상아는 대장간을 벗어났다. 그렇게 냉상아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사마우는 불을 바라보면서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마교의 계집이라. 제법 재미있는 인물이군.”
그러고는 다시 또 다른 검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냉상아의 말처럼 따분한 일상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녀의 말이 사마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는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마우는 그날도 화덕 앞에 앉아 검을 두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밀실로 통하는 문이 스르륵 열렸다. 사마우는 혹시나 남용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서 등장한 사람은 남용이 아닌 빙마 냉상아였다.
“역시 이곳으로 통하는 통로였는가?”
그렇게 말하면서 냉상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를 따라 십여 명의 마교도들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냉상아가 사마우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사마우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너무나 선선히 그 사실을 시인하자 냉상아는 오히려 착잡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냉상아는 사마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라면 모를까 수하들과 함께라면 그를 마음대로 놓아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냉상아가 망설이는 눈치를 보이자 장삼이 나서며 말했다.
“썩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장삼의 외침에 사마우는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사마우의 모습에 장삼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면서 단숨에 그를 베어 버리려는 듯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검은 괜히 죄 없는 의자만을 베고 말았다.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갑자기 모습이 사라진 사마우를 찾았다. 대체 언제 움직인 것일까? 그곳의 누구도 사마우의 움직임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사마우는 보란 듯 당당히 그들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그렇게 사마우의 잠영신법은 그들 모두의 눈을 따돌릴 만큼 충분히 빨랐다. 냉상아 역시 적잖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고수.”
냉상아의 중얼거림에 사마우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흑색 창을 집어 들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눈앞의 마교도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사마우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유 있는 표정으로, 오히려 떠나간 남용과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감이라는 것을 냉상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달아난 일행, 그 속에는 검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냉상아는 자신이 검후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잔챙이를 쫓다가 대어를 만난 셈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굳이 무리하게 검후를 상대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미행을 붙이는 한편 황급히 상부에 연락을 취했다.
아마도 지금쯤 검마 이진중이 직접 그녀를 쫓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추격은 검마 이진중에게 맡기고 그녀는 곧장 비밀 통로를 통해 이곳으로 왔다. 행여나 수하들이 사마우를 해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한데 평범한 장인으로 알았던 사마우가 오히려 그녀의 앞에서 달아난 정파 첩자들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 첩자들 중에는 분명 검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후가 있음에도 그들의 안위를 염려한다는 것, 그것은 마치 사마우가 검후를 능가하는 무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사마우는 이제 많아야 스물 대여섯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이에 그런 무위를 가졌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냉상아는 사마우를 차분히 훑어보았다. 조금 전 움직임으로 보아 분명 범상치 않은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대장장이가 아닌 무인으로서의 근골 역시 범상치 않았다.
그의 손에 박인 굳은살, 지금까지는 단순히 대장장이 일을 하면서 생긴 굳은살이라고 생각했었다. 과거 그녀는 그의 굳은살을 확인했지만 그것이 무인들 못지않게 많은 검을 다루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오판이었음을 지금에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관찰하는 냉상아를 향해 사마우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냉상아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사마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아났다는 표현과 내 손을 떠났다는 표현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었다. 결국 냉상아의 표현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쫓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리석은. 조금 더 참을 수 없었는가?”
냉상아는 사마우의 말이 자신에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달아난 첩자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이삼 일만 늦게 출발했다면 비교적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냉상아는 내일쯤 이 주변에 잠복한 마교의 인원들을 철수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상아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오늘 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잠복한 사람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물론 잠복했던 인원들은 대부분 검후의 손에 죽음을 당했지만 그들의 종적이 이미 발각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저항할 생각인가?”
냉상아의 말에 사마우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만약 내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나를 살려 보내 줄 생각인가?”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냉상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향해 말했다.
“아쉽군. 오랜만에 좋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냉상아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마우는 기다렸다는 듯 검을 피하면서 대장간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달아나려는 것인가?”
예상치 못한 사마우의 움직임에 냉상아는 서둘러 그 뒤를 쫓아 대장간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밖으로 나간 사마우는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달아나지 않고 우뚝 멈춰 서서 오히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냉상아는 그런 사마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좁은 대장간의 안이라면 수적인 우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넓은 곳에서의 대결이라면 충분히 수적인 우위를 활용할 수 있었다. 사마우는 굳이 자신이 불리한 싸움을 택한 것이었다. 굳이 불리한 싸움을 하려는 것은 그의 자만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인가? 냉상아는 그런 사마우의 저의가 궁금했다.
창을 든 채 우뚝 선 사마우, 그는 그야말로 고요한 표정으로 냉상아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에게서는 일체의 살기도, 심지어 그 어떤 기도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존재감 없는 인물이라니.’
냉상아의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마우의 모습에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삼을 비롯한 십 인의 수하들도 조심스레 검을 고쳐 잡았다. 그들 역시 눈앞의 사내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님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갈까?”
사마우의 말에 냉상아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동시에 사마우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움직였다 싶은 순간 사마우는 이미 그들의 사이로 뛰어들고 있었다. 냉상아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사마우의 창을 재빨리 검으로 막아 냈다. 순간 사마우의 창은 그 반탄력을 이용해,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던 장삼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냉상아가 흠칫 놀란 기색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냉상아가 놀라는 그 짧은 시간에 사마우의 창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수하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나 매끄러운 그의 동작에서 냉상아는 또다시 섬뜩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런 섬뜩한 느낌은 결코 그의 뛰어난 무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의 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압도적인 기도를 선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처음 대하는 막연한 그 무언가가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