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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그녀의 본능은 그녀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냉상아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어느새 일행 중에 그녀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사마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냉상아를 바라보았다. 냉상아는 그런 그의 눈빛이 마치 자신의 심장을 꿰뚫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사마우의 물음에 냉상아는 무심코 대답했다.
“북쪽으로…….”
기다렸다는 듯 사마우가 소리를 질렀다.
“적상∼!”
사마우의 목소리에 반응한 듯,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 적상은 주인의 부름을 받고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의 부름이었다. 오랜 전장을 헤치며 살아온 적상에게는 그만큼 지루한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상은 믿고 있었다. 언젠가 주인이 자신을 불러 주리라는 것을. 그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가 아는 한 그의 주인은 전장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적상이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자 사마우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적상의 등에 올라탔다. 적상이 그런 주인을 환영하듯 앞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히∼잉!
사마우가 적상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냉상아를 바라보았다. 냉상아가 그런 사마우를 보며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어째서 자신을 죽이지 않는지, 그리고 어째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사마우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빙마라……. 너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별호로군. 내가 보기에 너는 겉으로는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냉상아는 부지중에 피식 미소 지으면서 왼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옮겼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
그것은 언젠가 자신이 사마우에게 했던 말이었다. 이내 냉상아는 멍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태어나면서 마교도였다. 그녀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어디서나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마교에서 그것은 신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부모 역시 약했기 때문에 어린 그녀를 남겨 두고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세상에 혼자 남은 그녀는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운이 좋았다. 과거 마교 서열 삼십 위까지 올라갔던 빙마의 유전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고작 칠성의 경지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충분히 굳힐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손에 죽어 갔다. 마교가 전면에 나선 지 삼 년, 그녀의 손에 죽어 간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빙마의 무공이었기 때문일까? 점차 차가워지는 몸처럼 그녀의 마음도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사마우의 한마디가 얼어붙은 그녀의 심장을 쿵, 쿵, 쿵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사마우는 그런 그녀를 남겨 둔 채 북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냉상아가 그를 향해 외쳤다.
“가지 말아요! 그들을 쫓아간 것은 검마란 말이에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왜 사마우를 염려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이 온통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한 검마는 무적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자신이 본 사람 중에는 최고의 고수였다. 아마도 사마우는 살아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이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마우가 떠난 이후에 그녀는 대장간 앞의 시체들을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흔적을 지우려는 듯 수하들의 시체를 화덕 속에 넣어 소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그렇게 그와 마교도들 사이에 있었던 결전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군마현을 벗어난 사마우는 정신없이 북으로 말을 몰았다.
이제 와서 새삼 누구를 걱정하는 것일까? 남용은 지금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다. 함께하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 그의 뒤를 돌봐 줄 수는 없었다. 검후를 걱정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찾을 수 없었다.
검후는 최초로 사마우에게 패배를 안겨 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돕기 위해 굳이 이렇게 바삐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과거 그녀와의 대결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마장전과 이수연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조급한 것일까?
북상하는 와중에 사마우 스스로도 자신의 이런 행동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말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소동(邵東) 지역을 지나 악록산(岳麓山) 입구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산의 초입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마우는 일단 그곳에 멈추고 말에서 내렸다. 평지가 아닌 산,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전투에 말을 끌고 가는 것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 적상을 세워 두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귀에 어디선가 검 부딪치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예상대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뒤덮고 있는 장소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사마우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검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백여 명의 사람들이 은밀하게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선명한 마(魔) 자, 그것은 그들이 마교의 인물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마우는 잠영신법을 펼쳐 그중 가장 가까이 은신한 마교도의 뒤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접근한 순간 망설임 없이 상대의 아혈을 제압하고 가만히 그 등 뒤에 창을 꽂았다. 그리고 이내 죽은 상대의 시선이 향한 방향으로 자신의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일남 일녀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바로 그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마우 역시 흥미가 동한 듯 잠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사마우의 흥미가 동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검후와 검마의 대결, 바로 당대에 검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인물들의 대결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검후를 확인한 이상, 그녀를 상대하는 인물이 검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냉상아의 마지막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우는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문득 과거 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검마 이진중, 이전에는 그를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그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무당 공략의 총지휘자 격인 인물이었다. 또한 마교 서열 십칠 위, 그 서열이 말해 주듯 검마는 과거 전마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대결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미 싸움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지금 검후는 가까스로 검마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단지 막아 내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이변이 없는 한 승부는 이미 검마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대결을 지켜보던 사마우의 눈에, 검후의 뒤쪽에 서 있는 남용과 마장전, 이수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역시 검후의 패배를 직감한 듯 절망적인 시선으로 막바지로 치닫는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검후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히 달아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일대를 마교도들이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대를 포위하고 있는 자들, 그들은 바로 검마 휘하 백 인 친위대인 마검대였다. 환영마의 환영대, 음마의 마혼대처럼 검마 역시 일백의 마검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렇게 백마 중 서열 십일 위에서 백 위까지는 독자적으로 친위대를 거느릴 자격이 주어져 있었다.
실제로 백마 중 친위대가 없는 유일한 인물은 전마였다. 전마는 워낙 호전적인 성품에 혼자 다니기를 좋아했기에 따로 친위대를 거느리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혼자 먹을 것도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전마를 제외한 다른 백마들은 모두 정확히 일백 명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친위대의 무위는 일반적인 마교도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백마에게는 마교도 내에서 마음대로 친위대원을 선택할 자격이 일종의 특권처럼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강한 수하를 거느리고 싶어 하는 것 아니겠는가? 때문에 백마에게 선택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마교의 정예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아직까지 백마 중 서열 십 위 내의 인물들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들에 관해서는 그저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음에도 마교는 중원의 절반을 장악할 만큼 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만약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향후의 전황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런 대략적인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남용과 마장전, 이수연 등은 감히 달아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검후가 아니고서는 이곳의 포위망을 뚫을 방법이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용 혼자라면 이곳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용은 검후와 나머지 사람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달아날 만큼 모진 인물이 아니었다. 아마도 마검대의 사냥은 검후와 검마의 대결이 끝난 이후에 곧바로 시작될 것이다.
사마우는 그렇게 달아나지 않고 서 있는 남용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차피 그들과 남용이 가야 할 길은 달랐다. 남용은 얼마 전 사마우에게 막붕을 찾아갈 거라고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지금 이들과 동행한 것은 마교의 세력권 밖까지만 함께 움직일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틀어진 지금, 굳이 저들과의 동행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착잡한 시선으로 검마와 검후의 대결을 지켜보는 남용의 옆에서 이수연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 위급한 와중에도 마장전은 남용 옆에 붙어 있는 그녀를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검후가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지금처럼 단순히 막는 것만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검후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결국 모험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일격에 그녀의 모든 것을 쏟아 낼 심산이었다. 그것은 검후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때마침 검마의 공격에 검후가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렇게 어느 정도 간격이 벌어지자 검마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또 달아날 생각인가?’
하지만 그런 검마의 생각을 일축하듯, 검후는 지금까지 빠르게 움직이던 자신의 검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느린 움직임은 바로 그녀의 독문검법인 천지무애검법 최후 초식 천지붕멸(天地崩滅)을 펼치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다. 검후의 입장에서는 최후의 수단이었지만 검마의 입장에서는 최후의 발악으로 보일 뿐이었다.
검후가 달아나지 않고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하자 검마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 역시 방심하지 않고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한순간 인근 숲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잠깐의 정적. 싸움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 일격에 승부가 갈리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누구 하나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두 사람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점차 두 사람의 기운만이 주변 숲의 대기를 팽창시키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검후였다. 점차 강해지는 검마의 기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제대로 공격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신을 다한 검후의 일검에 검마 역시 혼신의 힘을 검 끝에 모았다.
오늘날의 검마가 있도록 만들어 준 그의 독문절예 천살검인(天殺劍印)이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중원 출도 이후 지금까지 검마는 단 한 번도 이것을 펼친 적이 없었다. 아직까지 적수다운 적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이것을 펼쳤다는 것은, 비록 자신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만큼 검후의 출중한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백의 수하를 뒤로 물리고 굳이 검후와 일대일의 승부를 결한 것 역시 나름대로 그녀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검후는 이를 악물고 검을 움켜쥐었다.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검후는 맹렬하게 검마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살검인의 강렬한 기세에 그녀 스스로도 이미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까지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적은 찾아온다고 했던가?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검마가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흠칫 놀라며 다른 곳으로 힐끗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그 순간 검마의 검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검후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검마의 검에 부딪쳐 갔다.
잠깐이지만 최후의 순간에 한눈을 판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불완전한 천살검인으로는 혼신을 다한 검후의 천지붕멸을 막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듯 검마는 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이내 울컥 한 사발의 피를 토해 냈다.
승리한 당사자인 검후 역시 적지 않게 놀란 표정으로 그런 검마를 바라보았다. 검후는 도저히 자신에게 승산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검마의 검 끝이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가 보이는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검마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검후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더러운 계집. 내 그토록 너를 정중하게 대했거늘 이따위 치졸한 암수를 사용하다니.”
예상치 못한 사태에 놀란 마검대의 고수들이 서둘러 검마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주변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검후와 삼 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우욱∼.”
검마가 다시 한 사발의 피를 토해 냈다. 상황이 위급하다는 것을 느낀 마검대의 일인이 황급히 검마를 부축했다. 검마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앞에서 검을 움켜쥐고 서 있는 검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검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 역시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일체의 가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검후의 태도에 검마는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검마는 서둘러 마검대의 수하들을 확인했다. 검마의 예상대로 마검대의 인원 중 한 명이 부족했다.
“누구냐!”
검마가 숲을 향해 일갈을 터트렸다. 그의 목소리가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동시에 다시 한 번 한 사발의 피를 토해 냈다. 분노한 나머지 무리해서 일갈을 터트린 것이다.
숲은 고요했고,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검후는 그렇게 분노하는 검마의 모습에 비로소 두 사람의 대결 중에 누군가 모종의 암계를 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검마에게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뜻하지 않은 방해꾼이 있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검후의 태도에서 한 치의 거짓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검마는 검후를 노려보면서 그대로 혼절했다.
“아버님!”
지금까지 검마를 부축하다가 혼절하는 검마를 받쳐 든 것은 바로 마검대의 부대주이자 검마의 아들인 이자겸이었다. 이자겸은 씁쓸한 표정으로 검후와 남용 일행을 훑어보았다. 검후는 이미 검마를 상대하느라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있는 떨거지들은 어차피 마검대의 적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검마의 내상이 심상치 않았기에 이자겸은 그들을 남겨 두고 퇴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암중에서 검후를 도와준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자겸은 그렇게 후일을 기약하며 검마를 등에 업고 마검대와 함께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내 검후가 씁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인(高人)은 그만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검후의 말에도, 숲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검후는 굳이 고마움을 표하지는 않았다. 분명 일대일의 정당한 대결이었다. 그 대결을 위해 검마가 얼마나 자신을 배려해 주었는지는 그녀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대결의 와중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고맙기는커녕 오히려 불쾌한 일이었다.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검후는 곧장 시선을 돌려 남용과 이 인을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건 일단 한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마교의 추격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길을 재촉해야 했다.
동정호를 지나 호북성의 군산에 이르는 동안 계속되는 마교의 추격을 받았지만 검마와 같은 강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사마우는 그들이 군산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 발길을 돌렸다.

검마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익양(益陽)에 주둔한 마교의 분타에서였다. 정신이 든 검마는 몸을 추스르며 차분하게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결전의 순간 그는 대결에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등 뒤에서 무언가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최후의 순간, 고작 외부의 기운에 자신의 신경이 분산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검에 몰입한 자신의 신경을 사로잡는 기운이라니, 그로서도 좀처럼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