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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이십사절 2권
1화
제1화 철마(鐵魔) 담대비우(膽大飛羽)
검마는 여섯 달이 지난 후에야 완벽하게 상세를 회복했다. 그리고 검마의 회복과 때를 같이하여 마교의 주력이 조금씩 호북으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검마 이진중의 부상, 그것은 마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때문에 마교는 무당과의 일전을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급파했다. 마교 서열 십삼 위 비천마(飛天魔) 주인환, 십사 위 영마(影魔) 혼원수, 십오 위 절혼도마(切魂刀魔) 위극겸이 바로 그들이었다.
마교는 이렇게 백마 중에 상위 서열 삼 인을 새로이 무당 공략에 투입하는 한편, 검마 이진중에게 부상의 책임을 물었다. 때문에 무당 공략의 총책은 검마를 대신해 비천마 주인환에게 맡겨졌다. 그로 인해 무당의 공략이 육 개월이나 지연되었기에, 이런 일련의 조치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검마 이진중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그야말로 씻을 수 없는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단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흩어져 있는 백마 중 다수가 다시 호북성 공략을 위해 재배치되고 있었다. 그만큼 마교에서도 이번 무당과의 일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와중에 사마우는 마교의 우익(左翼)을 담당하는 마교 서열 사십오 위 철마(鐵魔) 담대비우(膽大飛羽) 휘하에 있는 철마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철마와 사마우의 만남, 그것은 단순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남용을 떠나보낸 사마우는 비로소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남용과 함께 제왕성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군마현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빙마 냉상아를 살려 둔 지금, 아마도 군마현에서는 정파의 첩자를 도운 인물로 수배되어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그곳으로 돌아가 괜한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결국 그는 과거 제왕성이 무너졌을 당시처럼 갈 곳을 잃어버렸다. 뚜렷한 목적지마저 떠올릴 수 없었기에, 결국 그는 이 참에 세상을 한번 둘러보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우선 자신이 머물고 있었던 호남성 일대부터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호남성의 북동부 지역인 평강(平江)을 지날 무렵이었다. 무당 공략이 임박한 시점에서, 평강은 호북성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그 일대는 마교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장사가 최고였다. 그리고 사마우 역시 인간인 이상 먹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때문에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때우기 위해 평강반점에 들렀다. 아무 생각도 없이 반점에 들어서고 보니, 실제로 그곳은 일반 객점치고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실 평강반점은 그 이름처럼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제법 알려진 객점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점심시간, 객점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다행히도 때마침 빈자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마우는 재빨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재빨리 자리를 차지하자 점소이가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점소이의 신속한 움직임에 사마우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사마우는 점소이에게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식을 주문 받은 점소이가 그런 사마우를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객점은 한창 바쁜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에 혼자 와서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도 모자라 싸구려 음식을 시키는 사마우가 심히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님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요식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음식 맛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맛만으로는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었다. 때문에 평강반점의 주인은 항상 청결과 친절을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무림인이었다. 사마우가 들고 있는 창이 점소이에게 그 사실을 쉽게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자칫 무림인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목이 댕강 날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점소이는 이내 표정을 고치며 사마우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주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주방으로 걸어가면서 점소이는 혼자 불만을 투덜거렸다. 그런 점소이의 모습을 본 사마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하게 변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 일반인이 이런 사마우의 표정을 보았더라면 다소 의아해 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이 칼을 찬 무인들이었다.
마교와 무당의 일전을 앞둔 상황, 앞으로 있을 결전에 대한 불안과 긴장, 그리고 공포, 거기에 더해 몇몇 사람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흉흉한 살기마저 내뿜고 있었다. 이런 객점의 분위기 속 사마우의 평온한 표정은 주변 환경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우에게는 이런 분위기야말로 정말 익숙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런 객점의 분위기에 걸맞게 사람들의 대화 역시 앞으로 있을 마교와 무당의 일전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제쯤 출발하게 될까?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기회가 돌아올까?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한몫 잡아야 할까? 그런 의욕적인 대화와 함께 수시로 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사마우는 빙긋이 미소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그다지 길지는 못했다. 뜻밖의 인물이 객점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객점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고정되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를 보냈다. 그리고 쓰윽 객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모처럼 계속되는 호황을 증명하듯 객점 내에는 딱히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내 그는 자리를 찾아 천천히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서둘러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호의를 점잖게 거절하며 빈자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마우는 단지 그를 한번 힐끗 쳐다보았을 뿐 이후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얼굴에 재수 없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였다. 그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인물로 보였다. 그렇게 사마우는 가면인에게 무관심했지만, 반대로 사마우를 확인한 가면인은 다소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사마우의 옆까지 다가온 가면인이 그를 향해 정중히 말했다.
“젊은이, 일행이 없다면 나와 합석을 해도 되겠는가?”
비로소 사마우가 고개를 돌려 다시 가면인을 바라보았다.
가면은 철로 만든 것이었다. 철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합석이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더구나 주변을 쓱 훑어보니 지금 이 객점 안에서 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유일했다. 철면인이 자신에게 합석을 하자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가볍게 허락의 의사를 밝히고 사마우는 묵묵히 다시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서둘러 달려온 점소이가 연방 사마우에게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객점 안의 몇몇 사람들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철면인에 대한 사마우의 건방진 태도가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쓸 사마우가 아니었다.
철면인은 사마우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면서 그를 향해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사마우 본인은 철면에 가려진 그 미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웃고 있다는 사실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고맙네. 나이답지 않게 꽤나 과묵한 젊은이로군. 나는 철마 담대비우라고 하네.”
철마가 직접 자신을 소개했음에도 사마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신분을 직접 밝혔음에도 사마우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철마는 다소 당혹스런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표정 역시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자네는 본교 인물이 아니로군.”
본교라 함은 마교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철마의 말에 사마우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탁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점소이가 그들의 탁자로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인사와 동시에 점소이는 재빨리 탁자 위에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마우가 주문한 음식들이었다. 음식을 모두 올려놓은 점소이가 이내 철마를 향해 넙죽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주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휩쓸려 깜빡하고 철마의 주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소이에게 철마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마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마우는 그런 철마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철저히 자신을 무시하는 사마우의 태도에 철마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더불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차분하게 사마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철마는 시선이 사마우의 창에 이르자 가볍게 입을 열었다.
“좋은 창이로군. 자네도 이번 무당과의 일전에 참여하는가?”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사마우가 살짝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무당과의 일전에 참여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철마가 그런 질문을 해 오자 오랜만에 전장을 한번 둘러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다소 모호한 사마우의 대답에 철마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
순간 사마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꼬치꼬치 캐묻는 철마의 태도가 마치 자신을 심문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마우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철마가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오해하지는 말게. 다른 뜻은 없네. 나는 그저 자네가 딱히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면 이참에 함께 전장에 가 보지 않겠냐는 뜻에서 말한 것일세. 마침 내 휘하에 자리가 하나 비어 있는데, 어떤가? 나와 함께 전장에 가 보지 않겠는가?”
철마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적잖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는 은근한 부러움마저 담겨 있었다. 사마우는 그의 제의에 제법 호기심이 동한 듯 비로소 그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대체 당신은 누구요?”
철마가 다소 난감한 시선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이미 자신이 철마라는 것을 밝혔음에도 사마우가 다시 자신의 신분을 물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철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허허. 이런, 내가 아직 내 소개를 제대로 하지 않았군. 나는 마교 서열 사십오 위 철마 담대비우라고 하네. 이번 싸움에서 마교의 우익을 책임지고 있지.”
사마우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노인장은 내게 어떤 자리를 주실 수 있소?”
철마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노인장이라…… 실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로군.”
때마침 철마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점소이는 조심스럽게 철마의 음식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사마우가 철마의 음식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돈은 제법 많은 늙은이로군.”
다소 기분이 언짢을 만한 중얼거림을 들었음에도 철마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사마우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헌데 내가 늙은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가?”
사마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철마에게 말했다.
“쪼글쪼글한 손과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보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지 않겠소.”
철마가 이를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군. 허면 내가 늙은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니면 돈이 많아서?”
사마우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철마는 여전히 의아한 눈빛으로 사마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내키지 않는가? 혹시 늙은이에게 안 좋은 기억이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던 사마우가 정곡을 찔린 듯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철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철마가 느긋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철마는 철면을 쓴 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철면을 쓴 상태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철면은 실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었다.
그런 철마를 보면서 사마우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내가 만나는 늙은이들마다 모두 귀신같은 자들이로군.”
철마가 가볍게 고개를 들어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만큼 나이를 허투루 먹지는 않았다는 뜻이겠지. 아무튼 나와 함께 간다면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을 걸세.”
철마의 말에 사마우가 무심결에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언젠가 제왕 혁련천세에게서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우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왠지 씁쓸한 표정으로 철마를 바라보았다.
철마는 서둘러 음식을 먹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마쳤으면 그만 가도록 하지.”
사마우는 분명 가부간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마는 사마우가 자신을 따를 것을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처럼 사마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 가는 철마의 뒤를 따랐다. 오랜만에 늙은이의 뒤를 쫓아 움직이는 것이 왠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 길로 사마우는 철마 휘하 철마대의 일원이 되었다. 철마의 말처럼 얼마 전 철마대 대원 중의 한 명이 때마침(?) 죽었기 때문에 그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마우는 그렇게 우연히 철마의 휘하에서 무당과의 결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런 사마우가 그야말로 행운아로 보였다. 백마 직속의 친위대원이 된다는 것, 그것은 마교 내에서 백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마교 내에서 그들의 위치는 엄청난 것이었다.
심지어 백마의 유고 시 그들 내에서 대결을 통해 백마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 또한 일종의 관행이었다. 때문에 백마의 친위대에는 백마의 제자나 자식들이 꼭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이것은 실력만 받쳐 준다면 때에 따라 언제든지 백마의 일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누구나 탐내는 그 자리를 사마우는 너무나 쉽게 차지해 버렸다. 하지만 정작 사마우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전장의 공기를 한껏 음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들떠 있기까지 했다.
마침내 마교의 호북 지역 공략이 시작되었다. 철마 휘하의 우익군은 호북성의 동쪽을 경유해 목적지인 무당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무당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그다지 큰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간혹 암습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그다지 위협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사마우는 굳이 그런 잡다한 교전까지 직접 나서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다른 철마대원도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그런 소소한 전투는 뒤따르는 마교도들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평강을 출발한 지 이십 일 만에 철마의 우익군은 무당산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도착할 무렵 마교의 본대는 이미 그곳에 도착해 진을 치고 그들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당산은 호북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철마가 이끄는 우익은 호북성의 오른쪽을 빙 둘러 왔기에 가장 늦게 본대와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때까지는 이렇다 할 교전은 벌어지지 않은 듯했다.
천년도가의 성지 무당산, 그 주변은 오랜만에 도가의 성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살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대가 피로 붉게 물들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마교가 호북성 공략을 시작한 지 이십 일 만에 무당산을 제외한 전 지역이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갖는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호북성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이곳 무당산에 집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당산에 모인 무림인들의 숫자는 물경 이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진정한 호북 공략의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 수 있었다.
이만이라는 숫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공격에 나선 마교의 숫자는 이를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마교를 따르는 군소방파들의 인원까지 합하면 족히 삼만에 육박하는 대군이었다. 도합 오만의 사람들이 이곳 무당산 일대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피가 끓는다고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 사마우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거대한 대결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기회는 사마우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결전을 지켜볼 수도, 참여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철마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철마의 임무는 마교 서열 사십육 위 창마(槍魔) 혁련광, 사십칠 위 도마(刀魔) 헌원풍, 사십팔 위 륜마(輪魔) 적륜, 사십구 위 극마(戟魔) 용골대 등을 거느리고, 북쪽에서 무당을 돕기 위해 무당산으로 남하하는 원군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사마우에게는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철마를 따르기로 한 이상 그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철마는 그렇게 도합 오천의 수하들을 이끌고 무당산을 우회해 북상을 시작했다. 그런 그의 북상을 신호로, 훗날 혈마의 변으로 일컬어지는 무당산의 혈전이 시작되었다.
북상하는 와중에 철마는 풀이 죽어 있는 듯한 사마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쉬운가?”
철마의 물음에 사마우는 씁쓸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철마가 그런 사마우를 위로하듯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자네는 아직 젊지 않은가? 앞으로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무슨 기회를 말하는 것일까? 두 사람을 지켜본 사람들은 철마가 언급한 기회란 공을 세울 기회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철마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마우를, 철마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북상하는 철마의 행보는 호북성의 운현 지방에서 멈췄다. 철마는 그곳에서 진을 치고 남하하는 상대를 기다리기로 했다.
호북성 북쪽에는 하남성이 위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철마대가 상대해야 할 적은 그곳 하남성에서 무당으로 향하는 원군인 듯했다. 그리고 하남성 하면 무림에 몸담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곳이 있었다.
바로 중원무학의 본산인 숭산의 소림사였다. 때문에 사마우는 내심 소림의 인물과 마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 그의 기대는 얼마 후 현실로 다가왔다. 실제로 위기에 처한 무당을 돕기 위해 소림이 사대금강을 위시한 십팔나한과 백팔무승을 급파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사마우는 그들을 이곳 운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잠시 후, 운현으로 들어오는 그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창마 혁련광이 헐레벌떡 철마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철마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사대금강을 위시한 소림의 백팔무승들이 지금 이곳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창마의 말에 철마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 주인환이 내게 소림을 맡겼단 말이지.”
철마의 말에 사마우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철마가 언급한 주인환은 분명 마교 서열 십삼 위의 비천마 주인환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마우가 알기로 철마의 서열은 분명 고작 사십오 위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무당 공략의 총책임자이자 마교 서열 십삼 위인 비천마 주인환의 이름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단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창마 혁련광은 마교 서열 사십육 위의 인물이었다. 철마와는 고작 한 끗발 차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마를 대하는 창마의 태도는 너무나 공손했다. 그리고 주인환을 대수롭지 않게 언급하는 철마의 발언에 조금의 거부감도 드러내지 않았다.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마교가 위계가 바로 서지 않은 콩가루 집안은 아닐 텐데 이런 저들의 태도는 사마우로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뒤이어 나오는 창마 혁련광의 말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굳이 놈의 의도에 따라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대로 저들을 통과시키는 건 어떻겠습니까?”
한마디로 엿 먹이겠다는 수작이었다. 혁련광의 말에 철마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그러고는 묘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참에 놈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 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겠지.”
철마의 말에 창마, 도마, 륜마, 극마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존명!”
그러고는 재빨리 각자의 자리로 몸을 움직였다.
상대는 고작 백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철마를 비롯한 마교도들의 대응은 무척 신중했다. 우선 상대가 지나갈 만한 길목에 오천여 명의 마교도들이 몸을 숨겼다. 이것은 곧 정면 승부가 아닌 암습을 택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암습은 성공할 수 없었다. 선두에 선 사대금강이 그들의 매복을 눈치 채고 멈춰 서서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철마가 씁쓸한 표정으로 혁련광을 바라보았다.
“제법 눈치가 빠른 놈들이군. 어쩔 수 없이 소림이 자랑하는 백팔나한진을 구경해야 한단 말인가?”
철마의 말에 혁련광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마가 그런 혁련광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 본좌가 사대금강을 상대하도록 하지. 나머지는 자네들이 해결할 수 있겠지?”
혁련광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존명.”
순간 철마 담대비우를 바라보는 사마우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혁련광을 비롯한 사마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설사 마교 교주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지 의문이었다.
반면에 조금 전 서열 십삼 위의 비천마 주인환을 언급하던 그들의 태도에서는 공경이라는 단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결국 단순히 서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1화
제1화 철마(鐵魔) 담대비우(膽大飛羽)
검마는 여섯 달이 지난 후에야 완벽하게 상세를 회복했다. 그리고 검마의 회복과 때를 같이하여 마교의 주력이 조금씩 호북으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검마 이진중의 부상, 그것은 마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때문에 마교는 무당과의 일전을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급파했다. 마교 서열 십삼 위 비천마(飛天魔) 주인환, 십사 위 영마(影魔) 혼원수, 십오 위 절혼도마(切魂刀魔) 위극겸이 바로 그들이었다.
마교는 이렇게 백마 중에 상위 서열 삼 인을 새로이 무당 공략에 투입하는 한편, 검마 이진중에게 부상의 책임을 물었다. 때문에 무당 공략의 총책은 검마를 대신해 비천마 주인환에게 맡겨졌다. 그로 인해 무당의 공략이 육 개월이나 지연되었기에, 이런 일련의 조치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검마 이진중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그야말로 씻을 수 없는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단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흩어져 있는 백마 중 다수가 다시 호북성 공략을 위해 재배치되고 있었다. 그만큼 마교에서도 이번 무당과의 일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와중에 사마우는 마교의 우익(左翼)을 담당하는 마교 서열 사십오 위 철마(鐵魔) 담대비우(膽大飛羽) 휘하에 있는 철마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철마와 사마우의 만남, 그것은 단순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남용을 떠나보낸 사마우는 비로소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남용과 함께 제왕성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군마현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빙마 냉상아를 살려 둔 지금, 아마도 군마현에서는 정파의 첩자를 도운 인물로 수배되어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그곳으로 돌아가 괜한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결국 그는 과거 제왕성이 무너졌을 당시처럼 갈 곳을 잃어버렸다. 뚜렷한 목적지마저 떠올릴 수 없었기에, 결국 그는 이 참에 세상을 한번 둘러보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우선 자신이 머물고 있었던 호남성 일대부터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호남성의 북동부 지역인 평강(平江)을 지날 무렵이었다. 무당 공략이 임박한 시점에서, 평강은 호북성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그 일대는 마교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장사가 최고였다. 그리고 사마우 역시 인간인 이상 먹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때문에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때우기 위해 평강반점에 들렀다. 아무 생각도 없이 반점에 들어서고 보니, 실제로 그곳은 일반 객점치고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실 평강반점은 그 이름처럼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제법 알려진 객점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점심시간, 객점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다행히도 때마침 빈자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마우는 재빨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재빨리 자리를 차지하자 점소이가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점소이의 신속한 움직임에 사마우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사마우는 점소이에게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식을 주문 받은 점소이가 그런 사마우를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객점은 한창 바쁜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에 혼자 와서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도 모자라 싸구려 음식을 시키는 사마우가 심히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님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요식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음식 맛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맛만으로는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었다. 때문에 평강반점의 주인은 항상 청결과 친절을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무림인이었다. 사마우가 들고 있는 창이 점소이에게 그 사실을 쉽게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자칫 무림인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목이 댕강 날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점소이는 이내 표정을 고치며 사마우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주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주방으로 걸어가면서 점소이는 혼자 불만을 투덜거렸다. 그런 점소이의 모습을 본 사마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하게 변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 일반인이 이런 사마우의 표정을 보았더라면 다소 의아해 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이 칼을 찬 무인들이었다.
마교와 무당의 일전을 앞둔 상황, 앞으로 있을 결전에 대한 불안과 긴장, 그리고 공포, 거기에 더해 몇몇 사람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흉흉한 살기마저 내뿜고 있었다. 이런 객점의 분위기 속 사마우의 평온한 표정은 주변 환경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우에게는 이런 분위기야말로 정말 익숙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런 객점의 분위기에 걸맞게 사람들의 대화 역시 앞으로 있을 마교와 무당의 일전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제쯤 출발하게 될까?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기회가 돌아올까?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한몫 잡아야 할까? 그런 의욕적인 대화와 함께 수시로 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사마우는 빙긋이 미소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그다지 길지는 못했다. 뜻밖의 인물이 객점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객점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고정되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를 보냈다. 그리고 쓰윽 객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모처럼 계속되는 호황을 증명하듯 객점 내에는 딱히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내 그는 자리를 찾아 천천히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서둘러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호의를 점잖게 거절하며 빈자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마우는 단지 그를 한번 힐끗 쳐다보았을 뿐 이후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얼굴에 재수 없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였다. 그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인물로 보였다. 그렇게 사마우는 가면인에게 무관심했지만, 반대로 사마우를 확인한 가면인은 다소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사마우의 옆까지 다가온 가면인이 그를 향해 정중히 말했다.
“젊은이, 일행이 없다면 나와 합석을 해도 되겠는가?”
비로소 사마우가 고개를 돌려 다시 가면인을 바라보았다.
가면은 철로 만든 것이었다. 철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합석이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더구나 주변을 쓱 훑어보니 지금 이 객점 안에서 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유일했다. 철면인이 자신에게 합석을 하자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가볍게 허락의 의사를 밝히고 사마우는 묵묵히 다시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서둘러 달려온 점소이가 연방 사마우에게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객점 안의 몇몇 사람들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철면인에 대한 사마우의 건방진 태도가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쓸 사마우가 아니었다.
철면인은 사마우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면서 그를 향해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사마우 본인은 철면에 가려진 그 미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웃고 있다는 사실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고맙네. 나이답지 않게 꽤나 과묵한 젊은이로군. 나는 철마 담대비우라고 하네.”
철마가 직접 자신을 소개했음에도 사마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신분을 직접 밝혔음에도 사마우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철마는 다소 당혹스런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표정 역시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자네는 본교 인물이 아니로군.”
본교라 함은 마교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철마의 말에 사마우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탁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점소이가 그들의 탁자로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인사와 동시에 점소이는 재빨리 탁자 위에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마우가 주문한 음식들이었다. 음식을 모두 올려놓은 점소이가 이내 철마를 향해 넙죽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주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휩쓸려 깜빡하고 철마의 주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소이에게 철마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마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마우는 그런 철마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철저히 자신을 무시하는 사마우의 태도에 철마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더불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차분하게 사마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철마는 시선이 사마우의 창에 이르자 가볍게 입을 열었다.
“좋은 창이로군. 자네도 이번 무당과의 일전에 참여하는가?”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사마우가 살짝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무당과의 일전에 참여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철마가 그런 질문을 해 오자 오랜만에 전장을 한번 둘러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다소 모호한 사마우의 대답에 철마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
순간 사마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꼬치꼬치 캐묻는 철마의 태도가 마치 자신을 심문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마우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철마가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오해하지는 말게. 다른 뜻은 없네. 나는 그저 자네가 딱히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면 이참에 함께 전장에 가 보지 않겠냐는 뜻에서 말한 것일세. 마침 내 휘하에 자리가 하나 비어 있는데, 어떤가? 나와 함께 전장에 가 보지 않겠는가?”
철마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적잖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는 은근한 부러움마저 담겨 있었다. 사마우는 그의 제의에 제법 호기심이 동한 듯 비로소 그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대체 당신은 누구요?”
철마가 다소 난감한 시선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이미 자신이 철마라는 것을 밝혔음에도 사마우가 다시 자신의 신분을 물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철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허허. 이런, 내가 아직 내 소개를 제대로 하지 않았군. 나는 마교 서열 사십오 위 철마 담대비우라고 하네. 이번 싸움에서 마교의 우익을 책임지고 있지.”
사마우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노인장은 내게 어떤 자리를 주실 수 있소?”
철마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노인장이라…… 실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로군.”
때마침 철마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점소이는 조심스럽게 철마의 음식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사마우가 철마의 음식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돈은 제법 많은 늙은이로군.”
다소 기분이 언짢을 만한 중얼거림을 들었음에도 철마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사마우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헌데 내가 늙은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가?”
사마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철마에게 말했다.
“쪼글쪼글한 손과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보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지 않겠소.”
철마가 이를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군. 허면 내가 늙은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니면 돈이 많아서?”
사마우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철마는 여전히 의아한 눈빛으로 사마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내키지 않는가? 혹시 늙은이에게 안 좋은 기억이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던 사마우가 정곡을 찔린 듯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철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철마가 느긋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철마는 철면을 쓴 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철면을 쓴 상태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철면은 실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었다.
그런 철마를 보면서 사마우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내가 만나는 늙은이들마다 모두 귀신같은 자들이로군.”
철마가 가볍게 고개를 들어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만큼 나이를 허투루 먹지는 않았다는 뜻이겠지. 아무튼 나와 함께 간다면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을 걸세.”
철마의 말에 사마우가 무심결에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언젠가 제왕 혁련천세에게서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우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왠지 씁쓸한 표정으로 철마를 바라보았다.
철마는 서둘러 음식을 먹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마쳤으면 그만 가도록 하지.”
사마우는 분명 가부간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마는 사마우가 자신을 따를 것을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처럼 사마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 가는 철마의 뒤를 따랐다. 오랜만에 늙은이의 뒤를 쫓아 움직이는 것이 왠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 길로 사마우는 철마 휘하 철마대의 일원이 되었다. 철마의 말처럼 얼마 전 철마대 대원 중의 한 명이 때마침(?) 죽었기 때문에 그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마우는 그렇게 우연히 철마의 휘하에서 무당과의 결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런 사마우가 그야말로 행운아로 보였다. 백마 직속의 친위대원이 된다는 것, 그것은 마교 내에서 백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마교 내에서 그들의 위치는 엄청난 것이었다.
심지어 백마의 유고 시 그들 내에서 대결을 통해 백마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 또한 일종의 관행이었다. 때문에 백마의 친위대에는 백마의 제자나 자식들이 꼭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이것은 실력만 받쳐 준다면 때에 따라 언제든지 백마의 일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누구나 탐내는 그 자리를 사마우는 너무나 쉽게 차지해 버렸다. 하지만 정작 사마우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전장의 공기를 한껏 음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들떠 있기까지 했다.
마침내 마교의 호북 지역 공략이 시작되었다. 철마 휘하의 우익군은 호북성의 동쪽을 경유해 목적지인 무당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무당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그다지 큰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간혹 암습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그다지 위협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사마우는 굳이 그런 잡다한 교전까지 직접 나서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다른 철마대원도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그런 소소한 전투는 뒤따르는 마교도들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평강을 출발한 지 이십 일 만에 철마의 우익군은 무당산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도착할 무렵 마교의 본대는 이미 그곳에 도착해 진을 치고 그들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당산은 호북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철마가 이끄는 우익은 호북성의 오른쪽을 빙 둘러 왔기에 가장 늦게 본대와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때까지는 이렇다 할 교전은 벌어지지 않은 듯했다.
천년도가의 성지 무당산, 그 주변은 오랜만에 도가의 성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살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대가 피로 붉게 물들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마교가 호북성 공략을 시작한 지 이십 일 만에 무당산을 제외한 전 지역이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갖는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호북성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이곳 무당산에 집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당산에 모인 무림인들의 숫자는 물경 이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진정한 호북 공략의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 수 있었다.
이만이라는 숫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공격에 나선 마교의 숫자는 이를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마교를 따르는 군소방파들의 인원까지 합하면 족히 삼만에 육박하는 대군이었다. 도합 오만의 사람들이 이곳 무당산 일대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피가 끓는다고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 사마우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거대한 대결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기회는 사마우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결전을 지켜볼 수도, 참여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철마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철마의 임무는 마교 서열 사십육 위 창마(槍魔) 혁련광, 사십칠 위 도마(刀魔) 헌원풍, 사십팔 위 륜마(輪魔) 적륜, 사십구 위 극마(戟魔) 용골대 등을 거느리고, 북쪽에서 무당을 돕기 위해 무당산으로 남하하는 원군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사마우에게는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철마를 따르기로 한 이상 그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철마는 그렇게 도합 오천의 수하들을 이끌고 무당산을 우회해 북상을 시작했다. 그런 그의 북상을 신호로, 훗날 혈마의 변으로 일컬어지는 무당산의 혈전이 시작되었다.
북상하는 와중에 철마는 풀이 죽어 있는 듯한 사마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쉬운가?”
철마의 물음에 사마우는 씁쓸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철마가 그런 사마우를 위로하듯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자네는 아직 젊지 않은가? 앞으로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무슨 기회를 말하는 것일까? 두 사람을 지켜본 사람들은 철마가 언급한 기회란 공을 세울 기회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철마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마우를, 철마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북상하는 철마의 행보는 호북성의 운현 지방에서 멈췄다. 철마는 그곳에서 진을 치고 남하하는 상대를 기다리기로 했다.
호북성 북쪽에는 하남성이 위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철마대가 상대해야 할 적은 그곳 하남성에서 무당으로 향하는 원군인 듯했다. 그리고 하남성 하면 무림에 몸담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곳이 있었다.
바로 중원무학의 본산인 숭산의 소림사였다. 때문에 사마우는 내심 소림의 인물과 마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 그의 기대는 얼마 후 현실로 다가왔다. 실제로 위기에 처한 무당을 돕기 위해 소림이 사대금강을 위시한 십팔나한과 백팔무승을 급파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사마우는 그들을 이곳 운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잠시 후, 운현으로 들어오는 그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창마 혁련광이 헐레벌떡 철마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철마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사대금강을 위시한 소림의 백팔무승들이 지금 이곳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창마의 말에 철마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 주인환이 내게 소림을 맡겼단 말이지.”
철마의 말에 사마우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철마가 언급한 주인환은 분명 마교 서열 십삼 위의 비천마 주인환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마우가 알기로 철마의 서열은 분명 고작 사십오 위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무당 공략의 총책임자이자 마교 서열 십삼 위인 비천마 주인환의 이름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단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창마 혁련광은 마교 서열 사십육 위의 인물이었다. 철마와는 고작 한 끗발 차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마를 대하는 창마의 태도는 너무나 공손했다. 그리고 주인환을 대수롭지 않게 언급하는 철마의 발언에 조금의 거부감도 드러내지 않았다.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마교가 위계가 바로 서지 않은 콩가루 집안은 아닐 텐데 이런 저들의 태도는 사마우로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뒤이어 나오는 창마 혁련광의 말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굳이 놈의 의도에 따라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대로 저들을 통과시키는 건 어떻겠습니까?”
한마디로 엿 먹이겠다는 수작이었다. 혁련광의 말에 철마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그러고는 묘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참에 놈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 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겠지.”
철마의 말에 창마, 도마, 륜마, 극마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존명!”
그러고는 재빨리 각자의 자리로 몸을 움직였다.
상대는 고작 백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철마를 비롯한 마교도들의 대응은 무척 신중했다. 우선 상대가 지나갈 만한 길목에 오천여 명의 마교도들이 몸을 숨겼다. 이것은 곧 정면 승부가 아닌 암습을 택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암습은 성공할 수 없었다. 선두에 선 사대금강이 그들의 매복을 눈치 채고 멈춰 서서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철마가 씁쓸한 표정으로 혁련광을 바라보았다.
“제법 눈치가 빠른 놈들이군. 어쩔 수 없이 소림이 자랑하는 백팔나한진을 구경해야 한단 말인가?”
철마의 말에 혁련광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마가 그런 혁련광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 본좌가 사대금강을 상대하도록 하지. 나머지는 자네들이 해결할 수 있겠지?”
혁련광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존명.”
순간 철마 담대비우를 바라보는 사마우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혁련광을 비롯한 사마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설사 마교 교주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지 의문이었다.
반면에 조금 전 서열 십삼 위의 비천마 주인환을 언급하던 그들의 태도에서는 공경이라는 단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결국 단순히 서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