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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제2화 마교비사(魔敎悲史)


“그만 고개를 드시오.”
사마우의 말에 비로소 혁련광을 비롯한 사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혁련광이 다소 걱정스런 표정으로 사마우에게 물었다.
“이제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갑자기 앞으로의 일을 묻는 혁련광을 보며 사마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으로 어찌하다니?”
그러자 혁련광이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지존께서는 이미 모든 병력을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이대로 무당산의 본대로 돌아간다면 그 책임 추궁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혁련광의 말에 사마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병력을 잃어버린 것이 어찌 사마우의 책임이겠는가? 하지만 혁련광은 마치 그것이 모두 그의 책임인 양 이야기하고 있었다.
순간 사마우가 천천히 얼굴의 철면으로 손을 가져갔다. 처음 착용한 것이라 다소 답답함을 느꼈기에 철면을 벗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철면은 좀처럼 그의 얼굴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마우가 적잖이 당황하며 혁련광을 바라보았다.
혁련광이 그런 사마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철혈지기를 손으로 운용해 보십시오.”
사마우는 혁련광의 말대로 천천히 체내의 철혈지기를 손으로 이동시켰다. 그러자 철면이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에서 손으로 옮겨 갔다. 마치 철이 자석에 반응하듯 철면이 사마우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그런 철면을 바라보며 사마우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철이 자석에 반응하듯 철면은 좀 더 강한 철혈지기에 반응하는 듯했다. 그래서 철혈지기가 좀 더 충만한 손으로 자연스레 옮겨 간 것이었다.
이어서 사마우가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철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몸 안의 철혈지기를 버리지 않는 이상, 앞으로 철면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철면을 계속 손에 붙이고 있자니 왠지 어색했다. 그에 사마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철면을 얼굴로 가져갔다. 혁련광이 그런 사마우를 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철마님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저희 네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자리의 저희 네 명만이 철마님의 진면목을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혁련광은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사실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혁련광은 다른 삼마를 훑어보았다. 삼마들 역시 그렇게 말하는 혁련광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에는, 철면이야말로 철마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사마우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
비록 이번 일전의 책임이 죽은 전대 철마 담대비우의 몫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모든 책임은 사마우가 질 수밖에는 없다는 사실 또한 강조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사마우가 곧 철마라는 뜻이었다.
사마우가 다시 씁쓸한 표정으로 혁련광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에 혁련광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희들은 그저 철마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어찌 감히…….”
혁련광의 과장된 반응에 적지 않게 당황한 사마우가 다른 삼 인을 둘러보았다. 그들 역시 혁련광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저희는 그저 철마님의 의견을 따를 뿐입니다’라고…….
그야말로 절대적인 경외심과 복종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마우는 한동안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음 순간 담대비우의 시신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일단은 담대비우 님의 시신을 안치하도록 하지.”
사마우의 말에 사 인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존명.”
짤막한 대답과 함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륜마 적륜과 도마 헌원풍이 서둘러 어디론가 몸을 움직였다. 그들이 사라진 동안 창마 혁련광과 극마 용골대가 조심스레 담대비우의 시신을 수습했다.
잠시 후 도마 헌원풍이 먼저 어깨에 관을 메고 그곳에 도착했다. 담대비우의 시신을 관에 안치한 후 그들은 다시 륜마 적륜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뒤이어 륜마가 헐레벌떡 모습을 드러냈다.
그사이 적당한 묏자리를 찾아 온 것이었다. 그렇게 적륜의 안내를 받아 사 인은 양지바른 장소에 담대비우의 시신을 안치했다.
사마는 잠시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사마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이렇게 신속하게 담대비우의 묏자리까지 확보해 왔다. 하지만 정작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바로 비석이었다. 사마우의 의아한 표정에 혁련광이 이를 눈치 채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대로 철마의 후예는 비석을 세우지 않습니다. 초대 철마님 이래로 무림지존이 되지 못한 철마는 비석을 세우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혁련광의 말에 사마우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철마는 죽지 않는다. 이런 의미인가?”
사마우의 중얼거림에 사마가 공히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사마우가 나직이 말했다.
“허면 이제 대충 정리가 끝난 셈인가?”
사 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마우가 그런 사 인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들이 진정 내가 철마임을 인정한다면 작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 설명을 좀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결정을 해도 할 것이 아니겠는가?”
사마우의 말에 혁련광이 당연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설명을 드리자면 조금 깁니다. 허니 일단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요.”
사마우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담대비우의 묘 앞이다. 그런 자리에서 차후의 일을 의논한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양새가 아닌 듯했다. 때문에 오 인은 서둘러 각자의 말에 올라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오 인이 떠나고 일각 후, 놀랍게도 담대비우의 묘가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묘를 덮고 있던 흙이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죽은 줄 알았던 철마 담대비우, 그가 묘 안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 숲 속에서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음마 모용백이었다. 모용백이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담대비우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음마 모용백이 천면비마 우문량 님을 뵙습니다.”
모용백의 인사를 받은 담대비우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동시에 그의 모습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 모습은 늙은 담대비우에서 오십 대 훤칠한 중년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실제로 담대비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진정한 신분은 바로 마교 서열 오 위 천면비마(天面飛魔) 우문량(尤文梁)이었다. 십마의 일인인 동시에, 말 그대로 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다.
“너의 말대로 철혈지기를 그에게 전했다. 애써 철마에게서 흡수한 철혈지기를 그에게 전해 주라니, 이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조금 떨떠름한 표정의 우문량을 향해 모용백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차피 혁련광은 지존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의심이 풀리지 않는 한 그들의 숨겨진 세력을 끌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혀 다른 인물을 철마로 만들어 그들의 숨겨 둔 세력을 끌어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일단 그들이 움직여야 숨어 있는 다른 십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습니까?”
모용백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문량은 여전히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따위 애송이가 과연 그들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모용백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명색이 철마가 아닙니까? 일단 그들이 철마로 인정하기만 한다면 그들 세력 역시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비록 애송이의 실력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그들의 세력은 결코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행여나 철마의 부활을 걱정하는 십마들도 결코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철마의 무게가 그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우문량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상대가 철마라면 놈들이 결코 좌시하고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아쉽군.”
우문량의 말에 모용백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이 아쉽다는 것입니까?”
우문량이 씁쓸한 표정으로 모용백을 바라보았다.
“진정 몰라서 묻는 것인가? 수천 년 마교사 최고의 무공인 철마의 무공이 이대로 사장되었으니 어찌 그것이 아쉽지 않겠는가? 고작 흉내 내기에 불과한 담대비우의 철마이십사절도 본좌의 절기 못지않았는데, 그것을 완성한다면 그 위력은 과연 어떨지…….”
모용백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철마이십사절은 사장된 게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철혈지기 역시 어차피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기운이지요.”
우문량이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놈에게 철혈지기를 주었겠는가?”
모용백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처럼 욕심 많은 놈이 그런 것을 타인에게 양보할 까닭이 있겠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모용백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실제로 철마 담대비우는 무영지독에 중독된 상황에서도 천면비마 우문량과 백여 초를 겨룬 인물이었다. 그런 담대비우 역시 제대로 된 철마의 진전을 잇지는 못했다. 단지 지금까지 그의 선대들이 복원해 온 철마이십사절을 익힌 것에 불과했다.
불완전한 철마이십사절, 그 위력만으로도 무영지독에 중독된 상황에서 십마의 일인인 우문량을 상대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우문량이 철마의 절기를 파악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철마의 절기였다면 설사 담대비우가 무영지독에 중독되었다 할지라도, 그리고 우문량이 전력을 다했다 할지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철마의, 아니 철마이십사절의 존재는 마교 내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우문량이 모용백을 향해 씩 미소를 머금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로서는 이제 놈이 분전해 주기를 기대해야겠군.”
모용백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량이 그런 모용백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건 덕분에 금불마가 소림에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이번 행보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군.”
모용백은 여전히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운현을 벗어난 사마우 일행은 격전지인 무당산을 우회해 무당에서 다소 떨어진 호북성 의창(宜昌) 지역에 있는 객점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여장을 풀었다. 객점에 도착하자 사마우가 쓰고 있던 철면을 벗어 왼손으로 옮겼다. 이런 사마우의 모습에 사마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객점에 들어선 그들은 두 개의 방을 잡고 간단한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그리고 일단 모두가 한 방에 모여 술과 음식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점소이가 술과 음식을 가져왔다. 잠시 후 점소이가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혁련광이 다른 삼 인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다른 삼마가 기다렸다는 듯 사마우에게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밖으로 나간 그들은 문밖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섰다.
혁련광은 그들이 밖으로 나간 이후에도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비로소 혁련광이 조용히 사마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는 이전에 돌아가신 철마님을 뵌 적이 있으십니까?”
사마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날 객점에서 그분을 처음 뵈었네.”
혁련광이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외람되오나 혹시 주군께서는 왜 전대 철마님께서 주군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마우 역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진규를 언급하던 담대비우의 말이 떠올랐다.
“글쎄, 내가 진규 노인의 전인이기 때문일까?”
혁련광의 표정이 다소 묘하게 변했다.
“지존께서 노사의 진전을 얻으셨습니까?”
노사는 아마도 진규를 지칭하는 듯했다. 결국 혁련광 역시 진규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혁련광이 진규를 아는 것은 과거 담대비우가 중원을 둘러볼 당시 옆에서 담대비우를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사마우가 이를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혁련광의 표정이 밝아졌다.
“주군의 성함을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혁련광은 사마우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사마우가 조금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마우라고 하네.”
혁련광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사신 사마우?”
사마우가 조금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철모르던 시절, 한때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린 적이 있었지.”
이에 혁련광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마우가 여전히 어색한 표정으로 혁련광을 바라보았다. 철모르던 시절이라는 자신의 말에 그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혁련광이 그런 사마우의 표정을 확인하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속하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내 사마우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혁련광에게 말했다.
“이제 대충 신상 조사가 끝났다면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혁련광이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우선은 간략하게 마교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혁련광의 이야기는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수천 년 마교 역사 속에서도 천 년 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절이었다. 마교 천하, 대륙 전역이 마교의 깃발 아래 숨을 죽이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영광의 시간은 결코 길지 못했다. 마교 천하는 고작 이십 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말 못할 사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정사를 막론한 강호의 은거고수들과 전 무림의 고수들이 힘을 모아 마교를 몰아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조금 달랐던 것이다.
마교 패망의 가장 큰 요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그 하나는 마교의 자중지란이요, 다른 하나는 바로 황실의 개입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요인은 바로 마교 내의 자중지란, 바로 십마대전이었다. 혹자는 그것을 철마대란이라고도 했다.
당시 마교에도 십마와 백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과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마교를 지탱하는 열 개의 하늘 십마, 그것은 단순히 사람을 지칭함이 아니었다. 바로 마교의 중심을 이루는 열 개의 가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백마 중 서열 십일 위에서 백 위까지는 수시로 그 위치가 바뀌었지만 그 중심인 십마는 오랜 세월 그 위치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천마의 가문은 마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항상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마교의 율법은 이른바 강자존(强者尊)이었다. 강자가 군림하는 마교의 율법 속에서도 천마의 가문을 비롯한 열 개의 가문은 꾸준히 절대강자로 군림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구도가 무너지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 바로 철마 담대멸명이 서 있었다.
천 년 전 마교가 중원 공략을 시작할 당시 담대멸명은 백마 중 서열 백 위에 불과했다. 그리고 중원 공략과 동시에 그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그는 중원 점령의 과정에서 압도적인 무위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놀라운 신위에 은연중 곳곳에서 그의 추종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마침내 마교가 천하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마교 천하를 이룩할 당시 철마의 나이 사십 세, 그리고 어느 틈에 그는 백마 중 열한 번째 서열을 차지하고 있었다.
백마 중 서열 십일 위, 그것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자리였다. 언제라도 십마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위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제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강자존의 율법을 지켜 주는 제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제도하에서 아직 십마에게 도전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십마는 열 개 가문의 최강자이며 동시에 그 가문들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키운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뛰어넘을 만한 존재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철마의 경우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의 실력이 다른 십마와 비슷하거나 그다지 차이가 없는 정도였다면 아마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천마를 비롯한 다른 구마 모두를 압도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교의 율법대로라면 의당 그가 지존의 자리에 올라야만 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 마교는 이미 중원무림을 점령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철마 담대멸명이 교주의 자리에 오른다면 말 그대로 중원은 그의 것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의 나이 고작 사십 세, 누구나 쉽게 철마의 장기집권을 예상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십마를 제외한 대부분의 백마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마교 내에서도 그는 이미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바닥부터 치고 올라온 그에 대한 동경은 거의 광적이었다.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마교의 율법, 그것을 실제로 증명하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그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런 담대멸명에게 가장 큰 반감을 가진 자는 천마 나후뢰와 십마의 마지막인 독마 갈이파였다. 왜냐하면 천마는 지존의 자리를, 독마는 십마의 자리를 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둘이 중심이 되어 다른 십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십마 중 몇몇은 철마의 제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 가운데는 마교의 율법은 언제나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주의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강자존의 원칙, 그것이야말로 마교의 진정한 힘이라는 것이다. 결국 반대하는 오마를 제외한 나머지 오 인이 철마 담대멸명을 은밀히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독마가 은밀히 담대멸명에게 무영지독을 주입했다. 그리고 그를 유인해 오마가 합공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오마 모두 서열에 걸맞은 절정의 반열에 이른 고수들. 그들 오마의 합공은 천하의 철마라 할지라도 당해 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독마의 무영지독에 당한 상황이라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철마는 그들 오마의 합공에 생을 마감했다. 오마는 일단 다급한 나머지 철마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뒤이어 닥쳐올 일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철마의 죽음이 알려지자 암습을 반대하던 십마 중의 나머지 다섯 가문과 백마 대다수가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른바 십마대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중원무림의 은거기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무림사에 방관만 하던 황실에서도 은밀히 마교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내란에 휩싸인 마교로서는 그런 그들의 반격을 막아 낼 수 없었다.
결국 마교 천하는 그렇게 끝이 났다.
천마 역시 너무 서둘러 철마를 제거했음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때늦은 후회였다. 이후 마교는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만큼 철마의 그림자는 마교를 짙게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마교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마교는 어둠 속에서 다시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교의 내전이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내전이 계속되는 와중에 천마의 가문이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마교 내의 대결은 훗날 중원 정벌이 끝난 이후에 재개하자는 것이었다. 일단은 힘을 키우자는 말이다.
그렇게 천 년의 세월,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힘을 키워 왔다. 경쟁은 이제 오히려 성장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렇게 경쟁 속에서 그들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