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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3장.
은룡(銀龍) 아이로에메의 전수자(傳受者)


바다의 은룡 아이로에메와 함께 지내게 된 승현은 새로운 삶에 곧 적응하게 되었다.
비록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 몇 억 광년을 떨어진지 모를, 아니, 어쩌면 전혀 다른 우주에서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지만, 이전 생에 대한 미련이 없는 그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확실히 삼십여 년이 넘게 살아온 승현의 자아는, 기억을 잃은 채로 겨우 1년 남짓 돌아다녔던 에넬륀의 자아보다 강했다.
에넬륀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승현 스스로는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예전 지구에서의 자아를 지니고 있는 상태였다.
3만 8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아이로에메에게도 다른 세상에서 온 승현의 독특하고 기발한 생각들은 놀랍고도 신기한 것이었다.
다른 용들의 네 배 가까운 수명을 누리면서 어쩌면 마지막 남은 용이 되어 언젠가는 올 인연을 안배에 따라 기다려 왔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내며, 놀라운 지혜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는 힘을 가지게 된, 아이로에메에게도 승현은 몹시 흥미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신의 은총을 입은 신성한 육체에 먼 별들 바깥에서 온 자아.
이 독특하고 우월하게 결합된 새로운 존재와의 만남은 이제 세월의 무게로 짓눌러 왔던 사명이 곧 끝난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함께 순수한 호기심 그 자체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이로에메는 처음에 승현에게 신들의 힘으로 축성(祝聖)된 육체인 그의 몸을 다루는 법부터 가르쳤다.
그것은 일반적인 몸과는 다른, 순수하게 어머니의 태를 빌리지 않고 의지 자체만으로 태어난 육체이며, 거의 반신(半神)과도 같은 힘이 들어 있는 몸이었다.
“왜 대체 이렇게 무서운 몸을 제게 준 거죠?”
한참 의지만으로 몸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을 때 승현이 그렇게 물어 왔을 때 아이로에메는 선뜻 답할 수 없었다.
늘 그래 왔지만 신들―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는 그조차 알 수 없었지만―의 섭리라는 것은 감히 땅 위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인 그조차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3만 8천 년을 살아오며 숨결마저도 지혜롭게 된 아이로에메였다.
“내 생각에는 예전의 권세 있던 종족들이 사라져 가고 마법의 힘이 약해진 지금, 세상을 규율할 다른 힘을 신들이 필요로 하게 된 것 같네. 수만 년에 걸쳐 우리 용족들은 마법의 전성기를 누리며 압도적인 힘과 현명한 두뇌로 세상의 흐름을 관장해 오고 세상에 중도를 가져오기 위해 애썼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는 법. 누구나 태어나고 번성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듯, 용족 전체가 이제 전성기를 지나 하나둘 숨을 거두기 시작했지. 용들은 그동안 세상에 흐르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을 엉키거나 너무 흩어지지 않게 관리해 왔었네. 그러나 그 마나를 지배할―나는 다룬다고 하지 않겠네. 땅 위의 마법사들은 마나를 ‘다룰’ 뿐 ‘지배하’지는 못하지―권속들이 사라지면서 마나는 엉키고, 흩어져서, 결국 마나를 다루기가 까다로워지고 어려워졌네. 용과 마법의 시대는 지나갔으니, 이제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셈이네. 나로서는 아직, 별의 아들, 그대가 용들의 권세를 이어받아 마나의 지배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방법으로 세상의 질서를 세울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아직도 마도시대의 폐허나 다름없는 세상에 새로운 번영을 가져오는 것으로 족할지 알 수가 없네.”
아이로에메는 눈동자를 빛내며 승현에게 말했다.
아이로에메는 승현이 땅 위로 나가 어떤 일이든 행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이세계의 학문에 통달했던 승현을 신화 이래로 수만 년을 강림한 적이 없던 반신의 육체에 거하게 한 것이나,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통달하고 용족의 마지막 후예로서 가진 모든 지혜를 승현에게 전수하게 한 것은, 승현에게 새로운 신적 존재로서 세상을 관장할 힘을 부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용은 생각했다.
아이로에메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느끼는 신들의 의지라 봐야 고작 이 정도고, 그대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느냐는 그대에게 달렸다고 봐야지. 신들은 그저 우주를 지배하는 섭리일 뿐 존재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다네. 사실 그저 이 우주의 규칙들을 ‘신’이라 칭할 뿐,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지. 그대를 불러들인 것도 새로운 ‘균형’을 위해서일 뿐,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저 존재해 주는 것일지도 몰라. 그대가 무엇을 행하든 신들, 혹은 규칙들은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그대가 무엇을 행하든 그대의 존재만으로도 새로운 우주의 ‘균형’이 창출될지 모르는 일이지.”
“솔직히 저는 이 힘이 두렵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제 것이 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조금 남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을 뿐, 감정을 가진 인간입니다. 저에게는 ‘중도’나 ‘균형’ 같은 것을 행할 자격도, 자신도 없습니다.”
승현은 정말로 두렵다는 듯이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는 말로도 들릴 수 있었다.
아이로에메는 현명한 눈동자를 승현에게 가까이 내려 조그맣지만 탁월한 존재를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별의 아들이여. 그대는 그대가 마음이 가는 곳으로 행하면 될 것이네. 아까도 말했지만 신들은 그대에게 의무를 지우지 않을 것이네. 그대가 이리로 불려 와 존재하게 된 것이 그대의 의무가 되었고, 그대는 존재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네.”
그 뒤로 승현은 그가 갖게 된 힘에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된 것처럼 보였다.
아이로에메는 그에게 그가 할 수 있는 가능한의 모든 것을 전수해 주려 했다.
4만 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아이로에메는, 옛 신화의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창조의 말들의 편린도 알고 있었고, 마나를 구속하고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말인 용언(龍言)을 말하는 존재였다. 거기에 만여 년 전까지 용과 다른 종족들이 소통하던 말이자, 용들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이 마법을 다루는 수단이 되었던 고대어, 그리고 용들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되고 빛나는 존재들이었던 엘프들의 말, 땅을 파고 광물을 캐는 드워프들의 말뿐만 아니라, 인세(人世)에 명멸했던 모든 언어들을 제 말처럼 다룰 줄 알았다.
말은 힘을 부여하고, 한때 마법의 대종(大宗)이나 다름없었던 용들의 지혜를 고스란히 가진 아이로에메는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방대한 마나의 길들과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승현에게 알려 줄 수 있었다.
겨우 불이나 붙이고, 바람이나 불러오는 천박한 수준밖에 남아 있지 않은 땅 위의 마법에 비해, 인간들에게는 예전에 실전된 방대한 고대 마법들과 그 위에 있는 용족의 마법들까지 가르쳐야 할 것은 차고도 넘쳤다.

반신의 육체를 가진 승현의 마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아이로에메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아이로에메가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마나를 몸으로 흐르게 해서 몸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게 해 주는 방법이었는데, 승현은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마나를 느끼는 데만 두 달이 넘게 걸렸다.
“스승님, 도무지 어떻게 해야 마나를 느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승현은 하루 종일 마나를 느끼려고 시도해 보아도 결과가 나오지 않자, 아이로에메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이제는 편하게 아이로에메를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있었고, 아이로에메도 승현을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 줄 제자나 아니면 아들처럼 여기며 대하고 있었다.
“마나가 늘 꿈틀대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 중 대부분이 마나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거기에 마나조차 없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네가 쉽게 느끼는 것은 무리겠지. 하지만 네 몸을 알다시피 신들이 지어 준 몸이다. 마나를 느껴야 몸을 최대한으로 다룰 수 있으니 네 몸이 알아서 도와줄 게다.”
아이로에메는 승현에게 단지 이 정도로만 일러두었다.
그러나 원체 머리가 좋았던 승현은 느끼는 바가 많았고, 바로 마나를 느끼는 것에 몰입했다.
정신적으로 어떻게 느껴 보려고 시도하지 않고, 그저 몰입 상태로 자기를 잊은 채 몸에 오는 자연의 느낌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승현은 어느새 몸에 흐르는 시원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마치 전에 아이로에메가 승현의 정신을 읽을 때 느껴졌던 그런 시원한 기운과 똑같은 것이었다.
“아, 이게 마나의 기운이로구나!”
승현이 마나를 느끼게 된 것을 알자 아이로에메는 이제 마법을 조금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먼저 마나를 몸에 축적하는 법과 마나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마나를 다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제 비록 네가 마나를 느끼기 시작한 상태지만, 마나를 다루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이로에메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방법은 인간들이 사용했던 가장 하급의 방법으로, 마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친화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지. 몸으로 들어온 마나를 심장에서 단전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마나홀에 각각 세 개까지의 마나서클을 만들어 저장하는 방법인데, 가장 마나홀에 서클을 만들기 쉬운 배꼽 부위의 마나홀에 1부터 3서클까지, 그 위에 4에서 6서클까지, 그리고 마지막 마나홀에 9서클까지의 서클을 만들어 마력을 늘리는 방법이다. 9서클까지 올리게 되면 땅 위에 남아 있는 마법을 거의 전부 쓸 수 있지만, 이 서클을 활용한 마법은 매우 복잡한 수식 계산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 9서클에 다다른 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수학적 계산이 필요하단 말씀이십니까?”
“서클이 올라갈수록 마나를 배열하는 방법이 복잡해지고, 이것을 그나마 간편하게 하기 위해서 수학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매우 빠른 암산이 필요하고,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공식들을 만들어 내고 외우기 시작했지. 그러나 이 체계가 잡힌 것은 겨우 대수와 방정식의 개념을 알고 나서라, 네 기억 속에 있는 것과 같은 고급 수학의 개념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따라서 확실하게 공식적으로 정리된 마법만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지. 이것이 인간의 마법이 가진 한계다.”
“저는 인간이니 이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승현의 물음에 아이로에메는 고개를 저었다.
“너의 몸은 신이 직접 지은 몸. 나조차도 가지지 못한 거대한 마나홀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좋다. 아니, 신체 전체가 마나가 저장되고 지나갈 수 있는 훌륭한 집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야. 네가 하기 따라서 이제는 사라진 용언마법은 물론이거니와 창조의 힘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 하책이 아닌 중책과 상책에는 뭐가 있습니까?”
“인간의 마법이 하책이라면, 엘프들의 마법이나 이제는 실전된 고대마법은 중책이다. 이것은 말에 담긴 언령(言靈)으로 마나를 부리는 것이다. 이것을 사용할 때는 마나를 ‘다룬다’라고 하지 않고, 마나를 ‘부린다’라고 한다. 내 이름은 신성한 용의 말로는 아이로에메이지만, 고대어로는 아압―레―임이라고도 하고, 엘프의 말로는 엘레이온이라고 하지. 이것들은 죄다 말에 권능을 실어 부리는 것들이다. 어떤 대상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그를 통해 그 대상을 다룰 힘을 얻는 것이지. 세상 모든 만물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것을 다루는 것은 마나로 각인된 그 자체만의 이름을 알아야 부릴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그러나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이름이 다르듯이, 마법을 부리려면 돌을 돌이라 해서는 안 된다. 저 산천에 수 조 개는 흩어져 있는 돌덩어리 각자마다 이름이 붙어 있는 셈이지. 그러나 고대어나 엘프의 말로는 그걸 알아서 다룰 재간이 없어. 그래서 큰 범주를 놓고 그 이름으로 물질들을 부린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종의 편법이 필요하지. 이 힘의 모든 것을 깨닫는다면, 자신이 아무런 마나의 힘을 축적하지 않고도, 그것을 보고 아는 것만으로 그 모든 물질들을 부릴 수 있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축적한 마나를 때에 따라 공명, 혹은 간섭시켜서 마나를 부리게 하는 것이다. 일종의 이름들을 불러 마나를 보낼 길을 열고, 그 길을 따라 마나를 보내 물체를 부린다고 생각하면 쉽다. 인간들이 복잡하게 수식을 계산해서 해야 하는 일을 간단히 이름을 앎으로 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라고 봐야지.”
“그럼 고대어나 엘프어를 사용하는 마법사들은 서클을 채우지 않습니까? 어쨌든 스스로 지닌 마나의 힘이 커야 그것들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옛 인간들이나 엘프들은 서클을 쌓지 않았다. 축기(縮氣)라고 불렸던 방법을 사용했었지. 지금은 엘프들도 세상에 흐르는 마나의 양이 줄어, 이것으로 큰 도움을 못 받고 있지만, 서클이 특정한 부분에 마나의 응집된 고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이 방법은 그냥 육신을 그릇 삼아서, 강력한 말의 힘으로 꼼짝 못하게 마나를 묶어 둔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마나를 꾸준히 서클을 따라 회전시킬 필요도 없고, 한 번 들어온 마나는 그저 몸 안에 머물게 되는 것이지.”
“그럼 상책의 마법은 용언의 마법입니까?”
“그 전에 고대어나 엘프들의 마법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다. 드워프들의 엘람마법이나, 예전에 신관들이 다루던 신성력이란 것도 있지. 이 외에도 실전된 마법이 부지기수다. 여력이 된다면 이런 것들도 너에게 가르쳐 주겠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면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마나를 봉사시키는 가지들이라고 봐도 좋다. 먼저 줄기를 알아야겠지.”
아이로에메는 숨을 고르고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우리 용들이 다뤘던 용언 마법이다. 우리는 신들로부터 마나를 ‘다스리’도록 부음받은 존재들이기에, 마나란 것은 우리가 육체로 느끼는 감각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마법을 따로 모으지도 않고 그저 자연에 자유롭게 다니는 마나를 마음껏 다룰 뿐이다. 말의 힘을 빌리기에 용언 마법이라 하지만, 그것은 엘프들이 이름에 담긴 지배력을 빌어 사용하는 것과 다르게, 그저 명령하고 지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 날개와 다리들을 자유롭게 다루듯이 마나를 다루는 것은 용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마나의 흐름을 관장하게 되었고, 우리가 마나의 흐름을 흩어 놓거나 모아 놓지 않고 마치 대기에 흐르는 바람의 길처럼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다스리고 있었기에, 예전엔 마법이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용들도 떠나게 되었고, 마나의 흐름이 고착되면서 마법도 자연스럽게 쇠퇴하게 되었지. 그러나 나는 다른 용들과 다르게 4만 년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왔고, 너를 기다리면서 지나온 그 많은 세월들을 마나의 흐름을 다시 복원시키는 데에 투자해 왔다.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전수하고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시기가 다가왔을 때, 나는 이 모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이 은룡해에 끌어 두었던 마나를 모두 풀어 예전의 마나의 길을 다시 되돌릴 것이다. 이 마나의 길을 통해 네가 옛 용들처럼 마나를 ‘다스리며’ 사용하든, 아니면 다시 이것을 막아 마법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든, 그건 네 뜻에 달리게 되겠지.”
“그럼 저는 바로 용언의 힘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까?”
아이로에메는 어이없다는 듯이 승현을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이놈 보게, 너는 오늘 이제 겨우 마나를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어차피 하책이라고 해서 위로 올라서는 길을 막는 것은 아니니 인간들의 마법부터 가르쳐 주도록 하겠다. 산수를 하려면 먼저 손가락 굽힐 줄도 알아야지. 숫자 개념이 없는 놈한테는 먼저 손가락으로 열까지 세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게 약효다.”
아이로에메의 말에 승현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다음 날부터 승현은 인간의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육체의 능력이 탁월했기에, 마나를 모으고 서클을 돌리는 방법을 배우자마자, 마나는 열흘 만에 4서클에 가까운 양이 모였다.
이것은 세상에 존재하던 마나의 절반 이상이 은룡해 주변에 모여 있어 그 농도가 매우 짙은 탓도 있었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마법에 통달한 아이로에메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승현의 탁월한 두뇌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전생에서도 머리 하나로는 지지 않았던 승현이지만, 새로운 육체에서는 뇌의 기능 또한 현저히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마나의 도움을 받아 항상 최상의 상태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너는 4서클의 마나를 쌓았지만,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마 3서클의 마나까지일 것이다. 여기까지 사용하는 마법 이래에 기껏 대수학(代數學)을 조금 응용하는 수준이니 이제 마나를 다뤄 마법을 발현시켜 보아라.”
아이로에메의 말에 승현은 아침에 메모라이즈 해 놓았던 땅 파는 마법(디그:Dig)와 비행마법(플라이:Fly)를 시전해 보았다.
아이로에메의 레어는 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화염계 마법인 파이어볼 등을 시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리하면 시전을 할 수는 있었지만, 더욱 막대한 마나가 들어갈뿐더러, 효능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법을 사용하여 물속을 비행(?)해 아이로에메의 주변을 승현이 날아다니자, 아이로에메는 콧방귀를 뀌며 승현을 다시 바닥으로 떨어트린 뒤 말했다.
“네가 지금 사용한 마법들은 다 인간들이 공식으로 정리해 놓아 사용하는 마법들이다. 그래서 매우 정형화 되어 있고, 지금도 인간들은 그것이 마법의 전부인 줄 알고 공식만 외어 이놈이 쓰는 마법이 저놈이 쓰는 마법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러나 너는 머리가 좋으니 네 멋대로 수식을 다뤄 마법을 사용해 봐도 좋다. 꼭 정해진 마법만을 쓸 필요는 없어.”
아이로에메의 말은 승현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