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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포 마델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흘렸다. 마나홀이 닫혀 있음에도 느낄 수 있는 이 강대한 힘. 마치 아이로에메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너, 너는 용의 후예로구나. 비록 용신을 타고 나지 않았을지언정 그 힘과 지혜만은 그대로 물려받은 존재가 되었구나.”
포 마델의 감탄에 에딜린은 힘을 다시 갈무리했다.
“차츰차츰 정확히 보게 되실 거예요. 아직 저도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시험해 보지 않았어요.”
“그래… 휴, 정말 대단한 힘이로구나. 내가 용의 후예를 손자로 삼다니. 하긴 원래 신의 안배받은 자였으니 그거보다 더 대단한 존재였나.”
“대단한 손주 두셨다고 생각하세요.”
“그 위대한 아이로에메에게 감사할진저. 그가 내 말년에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구나.”
포 마델의 표정은 정말로 즐거워보였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마나홀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복구시켜줄 수 있느냐?”
“물론이죠, 어렵지 않아요.”
에딜린은 어차피 할아버지가 된 포 마델에게 더 숨길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단히 용언 마법을 사용해 포 마델의 몸 안의 폐쇄된 마법의 길을 열기 시작했다.
마나홀을 두드려 깨우고 부서진 마나의 용기를 쉽사리 복구시켰다. 혈도를 열어 기맥(氣脈)이 자유롭게 통행하게 하자, 부서진 서클이 차츰차츰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 서클들은 고리를 형성하며 포 마델의 마나홀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얼마지나지 않아 포 마델이 평생 쌓아 왔었던 다섯 개의 서클이 그의 마나홀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 이런!”
다시 마나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거기에 자신이 평생 쌓아 왔었던 5개의 마나홀이 복구된 것이 느껴지자 포 마델은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어, 어흑, 내 평생… 내 평생 이 서클을 다시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 못했는데. 흑! 에딜린, 정말 고맙다.”
“앞으로 할아버지가 좀 많이 도와주셔야죠, 절.”
“그래, 그래.”
포 마델은 그저 이 젊고 잘생긴 손자를 감사하며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제7장.
백작을 수술하다


“자, 작은 할아버님…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일어나지 못하는… 쿨럭…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테실 남작의 성을 출발해 하루 만에 닿은 루비외넨 백작의 거성. 역시나 듣던 대로 현 루비외넨 백작가의 당주인 갈렙 가쉬엘레딘의 몸은 좋지 않아 보였다.
이제 40대 중반. 영주로서 막 그 힘과 추진력으로 살아갈 나이에 혈색 없이 비쩍 마른 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는 살아 있으되 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포 마델은 그런 조카 손주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인사하거라. 네 육촌 형님 되는 루비외넨 백작이시다.”
“영명하신 백작 각하를 처음 뵙겠습니다. 가쉬엘레딘의 혈통을 이은 에딜린 마델이라고 합니다.”
“그래… 정말 뛰어나게 생긴 아이로구나. 쿨럭! ……잠시 내게 얼굴을 가까이 보여 줄 수 있겠느냐?”
백작의 말에 에딜린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 그의 침대 앞에 꿇어앉았다. 백작은 에딜린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으며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를 얼마 보지 못할 듯하다. 흡!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안 좋아지고 있어.”
에딜린은 가까이 앉은 김에 백작의 몸을 훑어보았다. 백작의 병도 원인이 있을 것이고, 용언으로 고치지 못할 병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기에 에딜린은 전생에 의과대학에 다닌 적도 있지 않은가!
‘독이로구나! 천천히 폐세포를 죽이는 헤데바 초(草)를 장기간 복용했음에 틀림없다.’
에딜린은 결심하고서 백작에게 물었다.
“처음 뵙는 자리에 황망된 말씀이오나, 각하께옵서 최근에 꾸준히 드신 음식이 있으신지요.”
“……알뵈스 공작께서 보내신, 쿨럭, 정신이 맑아지는 로쉠 찻잎을 꾸준히 마시긴 했다만… 흡. 어째서 묻느냐?”
“에딜린, 무언가 알아냈느냐?”
포 마델이 옆에서 물어 왔다. 그도 뭔가 눈치챈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5서클의 마나를 회복한 마법사인 그도 백작의 몸이 단순한 병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헤데바 풀을 장기 복용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헤데바 잎에는 독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이것은 폐를 공격해 심신을 지치게 만들다, 종래는 그 기능을 다하게 만들어 질식하여 죽게 만드는 풀입니다. 그 증상이 매우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이것을 복용하는 중에도 그 원인을 분명히 하지 못합니다. 헤데바는 로쉠과는 그 잎을 말리면 거의 맛과 향, 모양을 구분하지 못하나, 해안가에 흔히 잘하는 로쉠과는 달리 아뎀데나펜에서는 자라지 않아 국경을 넘어 들여와야 합니다. 거기에 독성을 지닌 풀이라 이런 곳에만 사용되니 그 정체를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로쉠 차라 생각하여 복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딜린, 정말이냐, 쿨럭. 고, 공작께서… 대체 왜, 왕위를 되찾게 될 때까지 가신으로서 지내겠노라 서약한 우리 가문에 왜? 쿨럭… 으윽.”
백작이 이야기를 듣고선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제 그 중독이 많이 진행되 의술로는 손을 쓰기 힘든 지경임에 분명해 보였다. 예전 신관들에게 신성마법의 힘이 살아 있을 때면 조금 손이라도 써 볼 수 있었겠지만, 마나의 힘이 고갈됨에 따라 덩달아 그 힘을 잃은 신관들도 백작의 증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했다.
“고칠 수 있겠느냐?”
포 마델이 물었다.
“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에딜린의 대답에 주변에 시립해 있던 몇 명의 가신들과 기사들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의사들도, 신관들도 손대지 못하고 정체도 밝혀내지 못했었다. 이제 그 원인을 알았다고는 하나, 겨우 십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젊은 자가 그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옆에 있는 포 마델은 드디어 5서클의 힘을 찾았고, 그가 옆에 있는 한 저 젊은이도 믿어 볼 수밖에 없었다.
“해, 해 주게. 이, 이대로 죽을 순 없네. 이렇게 이용당하다 왕실 선조들에게 누를 끼치고… 죽을 순 없어.”
백작의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에딜린은 잠시 고민했다. 용언마법으로 하면 간단히 고칠 수는 있다. 하지만 포 마델을 제외한 존재에게 능력을 온전히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은 그것까지는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성마법을 사용하더라도 그 오의가 죽기 직전인 환자에게까지 통하지는 않았다. 백작의 폐는 이미 자생력을 잃었기에, 그것을 복구시킬 수는 없어 보였다.
“수술을 하겠습니다.”
“수술이라니, 마법이 아니라?”
포 마델이 의아하다는 듯 물어 왔다. 에딜린은 고개를 저었다.
“5서클 마법사이신 할아버지께서도 정체를 짐작하기 힘들었던 병입니다. 마법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포 마델은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힘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용언마법으로 고치면 되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본 것이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에딜린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수술이라면 직접 백작님의 몸에 손을 대겠다는 것입니까?!”
옆에 서 있던 가신 중 한 명인 케레빌 자작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확실히 이 시대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기는 했다. 물론 이발사나 유랑 의사들이 외과의를 겸해서 썩은 이를 발치(拔齒)도 하고, 화살에 맞은 곳의 화살을 뽑아내고 썩은 살을 도려내는 정도의 수술은 널리 이뤄지고 있었지만, 가슴을 찢고 폐를 수술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이내 백작의 침실은 웅성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육촌인 친척이라지만 이건 용납하기 힘들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백작 각하의 목숨이라도 위험하다면 어떻게 책임질 거요?”
“포 마델 경. 종친으로서 손자에게 적법한 승계자이신 백작 각하에 대해 그런 일을 시킬 수 있으십니까?”
비난의 화살은 포 마델에게까지 돌아갔다. 하지만 포 마델 자신도 에딜린이 확실히 어떤 방법으로 하겠다는 건지 납득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그만들 하게. 에딜린, 내 혈족아. 어떻게든 할 수 있다면 해 주게.”
백작은 어차피 곧 죽게 될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망설이는 눈길 없이 물었다. 에딜린은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하게 끓인 물을 넉넉히 준비해 주시고, 잘 벼려진 조그만 칼을 준비해 주십시오. 그리고 매우 독한 술과 실과 바늘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에딜린은 전생에 서울대 의대에 있을 때 수없이 들었던 외과의의 지식을 다시 떠올려 보기 시작했다.
그것을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수술대에 한 번 올라 보지 못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식은 온전히 머릿속에 있었고 수술이 설사 부족할지라도 어차피 마법이 매꾸어 줄 수 있었다. 용언마법을 쓰지 않는 이상, 둘 중 하나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수술과 신성마법을 동시에 병행한다면 분명히 길이 있었다. 에딜린의 눈에는 그 길이 보였다.
“손자야, 정말 괜찮겠느냐?”
“지켜만 봐 주십시오.”
가신들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백작이 스스로 수술을 청한 이상, 그들도 이제는 이 길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수술이 준비된 것은 네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끓인 물을 구하는 것은 쉬었지만, 의료용 메스 대용으로 쓸 만한 칼을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턱수염을 다듬는데 쓰는 면도용 칼을 가져다가 에딜린이 직접 마법으로 벼리는 수밖에 없었다.
독한 술의 알코올로 한 번 소독한 뒤 깨끗한 물에 씻고서, 의료 도구가 준비되자 에딜린은 슬립 마법을 영창했다. 슬립은 겨우 4서클의 마법이었지만, 에딜린은 자연의 마나를 끌어 써 가수면 상태에서 오래도록 깨어나지 않게 백작을 재웠다.
“오! 할아버님에 이어 손자도 마법사이신가!”
“그런데 마법사가 왜 수술을 하겠다고?”
뒤에서 수술 중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답시고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가신과 기사들의 목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에딜린은 자기 할 일을 시작했다.
이 슬립 마법에 취해 있는 동안은 마취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어 백작은 어떤 고통에도 깰 수 없을 것이었다. 따로 마취제를 마련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 마법만큼 유용한 것이 없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에딜린은 깨끗한 흰 옷으로 머리와 몸을 모두 감싸고 마스크까지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수술 중인 환부에 오염 물질이 떨어지거나 닿아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2차 감염이 발생해 더욱 지독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바로 반대편에서 반쯤 호기심과 불안함이 뒤섞여 에딜린을 돕기를 자청한 포 마델이 에딜린과 똑같은 복장으로 서 있었다.
포 마델은 에딜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에딜린은 먼저 메스를 집어 들고서 조심스레 흉곽을 따라 피부를 절개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가슴 근육을 절개하고 갈비뼈까지 드러냈다. 그 흉측한 모습에 에딜린은 잠시 침을 삼켰다.
폐는 많이 상해 있었다. 마치 폐암에 걸려 폐낭이 모두 죽어 버린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쿵!
어떤 방식으로 폐를 되살릴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침실 문이 격하게 열리며 어떤 여자애 한 명이 뛰어들어 왔다.
금발의 긴 머리가 하얗고 귀여운 얼굴 위에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은 헐떡이고 있었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아, 아버지! 여러분, 이게 뭣하는 짓입니까, 지금?!”
루이나가 하나뿐인 아버지를 수술한다기에 걱정되는 마음으로 달려왔더니, 그녀의 눈앞에 보인 것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종증조부와 처음 보는 남자가 아버지의 가슴을 모두 갈라 놓았던 것이다.
사람 몸의 안쪽을 보는 것이 처음인 루이나는 현기증이 일어났다. 게다가 근육까지 찢어 놓고 뼈까지 뽑아낸 것을 보자 그녀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
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지만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는 선을 넘어선 것 같았다. 어떤 신이라도 이렇게 몸이 모두 찢겨진 자를 살려 둘 것 같지 않았다.
가슴팍에서는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마치 폭발 직전의 분위기가 백작의 침실을 휘감아 오고 있었다.
“아, 아버지. 흑! 작은 증조부님, 왜 이런 일을 하신 거예요, 예?”
루이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가 수술대 전용이 된 침대 앞에 서 있는 포 마델에게 화살을 돌렸다. 왜 그런 걸까. 도대체, 폐병이라고 가슴을 찢어서 고친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꼬맹아, 가만히 있어라.”
그러나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반대편이었다. 나이도 많지 않아 보이는 소년이 아버지의 가슴을 헤집어 놓은 것이 분명한 칼을 손에 쥐고서는 마스크 사이로 드러난 유일한 부분인 눈을 번득이면서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야, 뭐?! 너, 너야? 아버지를 이렇게 참혹하게 찢어 놓은 게?”
“할아버님. 이 아일 일단 수술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포 마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 마델이 조심스럽게 루이나가 수술대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얘야, 저 아이는 네 아버지와 육촌 되는 아이이다. 네가 생각지도 못하게 뛰어난 아이야. 내 손주지만 나조차도 쫓아갈 수가 없는 놈이란다. 분명히 해결책이 있어서 이렇게 해 놓은 것인지 잠시 걱정하지 말고 지켜보렴.”
“사람 몸을 저렇게 해집어 놓는 게 어떻게 고치는 방법이 된다는 거죠?!”
“휴……. 그건 솔직히 나로서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5서클의 마법사도 알지 못하는 일이니 그만큼 확실한 치료법이 될 것이야.”
루이나는 그저 눈물만 흘리며 포 마델의 늙은 몸에 매달려 있었다.
‘너, 지켜볼 거야. 아버지를 못 살려 내기만 해 봐!’

에딜린은 갑작스런 루이나의 난입에 잡시 정신이 흐트려지긴 했지만, 이내 계집애의 징징거리는 소리를 포 마델을 통해 막아 내고서는 다시 백작의 몸에 집중했다.
갈비뼈까지 치우자 드러난 폐는 그 조직이 매우 상해 있었다. 수술은 빠른 시간 내에 끝내야만 했다. 절개 부위가 매우 넓어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수혈할 피와 도구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혈액의 과중한 손실은 죽음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폐 두 쪽을 동시에 제거해 버릴 수는 없었다. 사람은 수면 중에도 호흡을 한다. 지금 백작의 신진대사가 마법을 통해 가장 안정된 수면 상태에 들어가 깨어나지 않고 있지만, 폐를 통해 조금이나마 산소가 공급이 되어야 그것이 심장을 통해 혈액에 섞여 들어가 전신으로 공급되어 생명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이다.
‘딱 3분이다.’
그 이상은 위험했다. 결심이 서자 에딜린은 메스로 재빠르게 오른쪽 폐부터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폐 사이로는 심장이 위치하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대동맥과 대정맥이 지나가는 위치였다.
우선 폐와 심장이 연결되는 관을 묶은 뒤 절개하고서는, 아래쪽의 횡경막이 손상을 입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폐를 떼어 냈다. 그러고는 폐에서 가장, 그나마 멀쩡한 부위의 조직을 떼어 냈다.
창조의 힘을 아직 다스릴 수 없는 에딜린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일부 조직을 건사할 수 있다면 굳이 용언마법이 아니더라도, 고급 신성마법으로 허파를 재건할 수 있었다.
‘피를 더 이상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위험하더라도 힐 마법으로 혈관의 끝을 막아 버리는 수밖에 없다.’
조심스레 5서클의 힐 마법을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시전했다. 흘러넘치는 피가 조금 잦아들고 있었다. 루이나를 제지한 포 마델만이 흘낏 그 힘에 이쪽을 보고선 놀랍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 한쪽의 폐도 재빠르게 걷어 낸 에딜린은 재빠르게 적출해 둔 조직의 일부로 양쪽 폐의 재건을 시도하기로 했다. 3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 완전히 떨어진 신체 기능에 호흡까지 더 이상 공급되지 않음으로서 정말로 백작의 신체는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 분명했다.
3분 안에 조직을 제건하기 위해서는 최고급의 신성마법이 필요했다. 우선 재건되는 조직과 연결될 수 있게 힐 마법으로 막아 두었던 혈관을 다시 풀었다. 그러자 미친 듯이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백작님!”
“아버지! 이 나쁜 개새끼! 아버지를 죽이려고!”
“어허!”
피가 솟구쳐 나오자 주변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에딜린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마나를 모아 최고급 신성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전능하신 자비와 치료의 신 라카르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씨앗은 열매로 돋을 것이오, 새싹은 숲으로 자라날 것이라. 마치 베어진 그루터기 위에 새로운 나무가 돋아나듯이 영원하신 신의 이름으로 다시 네 힘을 찾아 스스로를 일으키라.”
피가 쏟아져 나오는 사이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성한 힘을 가진 빛은 이내 침실 안으로 뻗어져 나갔다.
주변에서 조금 전까지 솟구치는 피를 보며 고함을 지르고 탄식하던 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마치 신이 이 자리에 강림한 것과도 같은 느낌. 이것이 지난 천 년간 이 대륙에서 시전된 적이 없었던 최고급 신성마법의 힘이었다.
“오, 신이시여!”
“사라졌던 신성마법이다!”
“위대하신 치료의 신 라카르시여, 라카르시여. 백작을 구하셨나이다!”
마법의 힘으로 폐의 조직은 이내 그곳에 담겨진 유전 정보대로 매우 빠른 속도로 세포분열을 하고 있었다.
에딜린은 마지막 순간까지 혹시나 적출해 둔 외부 조직에서 폐포가 형성이 되지 않거나 혈관이 제자리를 찾아 연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 없이 마법이 펼쳐진 1분 사이에 양쪽 폐는 정상적으로 재건되어 횡경막의 움직임에 따라 심장과 함께 뛰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쉽다.’
적출해 둔 갈비뼈를 제자리에 간단한 힐 마법으로 접합시키고, 근육 조직을 위에 덮어 다시 붙인 다음, 마지막으로 피부 조직을 덮어서 힐 마법으로 봉합했다.
에딜린처럼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지 못하는 이상 이렇게 대규모의 신성마법을 시전하고 연달아 힐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에딜린에게 만큼은 가능했다.
칼을 댄 부위를 모두 치료해 봉합해 두었으니, 이제 슬립마법에서 깨기만 하면 백작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새 몸을 찾을 것이었다.
“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