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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에딜린은 그것이 무엇인가 의아해 포 마델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포 마델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라 에딜린의 물음에도 큰 반응 없이, 딸꾹거리며 술통 돌기를 함께 외칠 뿐이었다.
“술통 돌기를 하자! 준비하도록 하여라!”
백작 또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에딜린은 그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 포 마델이 일러 준 연회에 관한 지식에서도 이 술통 돌기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마도 이런 연회에는 으레 따라오는 놀이 비슷한 것인 듯했다.
에딜린의 궁금증 섞인 표정에 대한 대답은 의외의 곳에서 들려왔다.
“술통 돌기는 오크 나무로 짠 술통을 연회장 테두리를 따라 나란히 둘러 놓고서는, 두 사람이 짝지어 그 위를 빠르게 뛰어다니는 놀이에요. 팔은 펴고서 해야 하고, 넘어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잡히면 지는 거예요.”
루이나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괜히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앞을 바라보며 에딜린에게 술통 돌기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백작을 고쳐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부끄럽게 수술 중에 난입해 고래고래 울며 소리 지른 것을 생각하니 뭐라고 말을 건네기가 무안했었던 것이다.
때문에 뭐라고 말할 기회를 기다리다, 이내 에딜린이 포 마델에게 물어보다 지쳐 그냥 궁금한 표정만 짓고 장내를 둘러보는 것을 보고는 이때다 싶어 입을 연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진심으로 사과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속마음과는 달리, 그녀는 그냥 얼굴을 살짝 붉히고서는 딱딱하게 술통 돌기에 대해 설명만 해 줄 뿐이었다.
“고맙소. 이제 뭔지 알겠군.”
에딜린은 이 루이나가 뻔치 좋게 사과하지 못해 이렇게 에둘러 말을 터 보려 한다는 사실 정도는 눈치챘지만, 감정적인 말은 섞지 않고 예의의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만 그녀의 말에 대꾸해 주었다.
“……네.”
에딜린이 자신을 흘끔 보고서는 딱딱한 음성으로 대답하자, 루이나는 괜히 무안해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괜히 말했어’하는 생각이 루이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에딜린이 그녀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미안한 마음은 결국 전달 되지도 못했다. 사과는 커녕 혼자서 시답잖은 설명이나 늘어놓다가, 그 댓가로 시큰둥한 감사나 듣고 만 것이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내 연회장은 시동들이 술통을 둘러 놓기를 마치고 이내 우렁찬 함성에 휩싸였다.
에딜린은 흥미롭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술통 돌기라는 것은 원래 아뎀데나펜 남부에서 농민들 사이에 유행하던 것으로, 내전 이전에 풍작이 들면 한 해 동안 재어 놓았던 술을 추수제의 기간 동안 마음껏 풀어 마시게 하고, 그 빈 술통을 광장에 둘러놓고 마을의 청년들이 흥겹게 놀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이런 민중의 놀이가 내전 기간 동안 병졸들 사이에서 승전 후에 즐기는 놀이로 옮겨졌고, 그것이 같이 전쟁에 종군하여 동고동락하던 기사들 사이에서도 유행이 되면서 내전이 끝난 뒤에는 이렇게 봉건군주의 궁정 연회에서도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채 백 년 사이의 일이니, 에딜린으로서는 처음 지켜보는 흥미로운 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내 누가 올라갈지 시끄러운 대화 속에서 말이 분분한 가운데, 어디선가 큰 고함 소리가 들리며 어떤 덩치 큰 사내가 술통 위로 뛰쳐 올라갔다. 우렁찬 도움닫기로 한번에 높은 오크 술통 위로 가볍게 올라선 그는, 우람한 팔뚝을 자랑하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웃으며 그에게 손을 부딪히며 격려하는 것을 본 순간, 에딜린은 입으로 넘어가던 술을 뿜어낼 뻔했다.
가슴을 풀어헤치고 술에 불콰해진 얼굴로 술통 위에 올라 발을 구르는 사내는 바로 도뷜이었던 것이다.
정신없이 포 마델에게 급하게 연회에 대한 설명을 듣고 들어오느라 미처 도뷜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어디 가 있나 했더니, 어떻게 연회는 알고 또 들어와서 그간 실컷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흥이 돋자 또 제 기분을 못 이기고 들썩거리며 올라선 모양이었다.
“우와, 멋지다!”
“상대를 지목해라!”
주변의 함성에 도뷜은 흥이 취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벌려 주변을 진정시켰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으하, 테로이실 계곡에서 3등 훈작사 포 마델 경을 호위하여 이곳 백작 각하의 성까지 온, 아! 그리고, 이 자리의 주인공인 에딜린의 막역지우인! 내 이름! 도뷜이올시다!”
어느 순간 취조 대상에서 막역지우로 바뀐 것에 얼떨떨해하는 에딜린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뷜은 일장대성으로 소리쳤다.
“오늘의 흥을 돋구고자, 나 도뷜은, 에헴, 그러니까! 이 성스러운 술통 돌기의 상대자로 에딜린 경을 지목합니다!”
갑작스러운 도뷜의 선언에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장내는 함성에 뒤덮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에딜린은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백작을 수술하며 능력을 보인 뒤로, 당분간은 사람들의 시선에 자꾸 노출되는 것을 자제하려 하고 있었기에 어렵사리 참석한 연회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도뷜이 자신을 지목해 사람들에게 유흥거리로 제공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서 한번 나가서 겨뤄 보시게. 술통을 도는 실력도 보고 싶구만!”
약간 떫떠름 하기는 했지만 옆에서 백작까지 부추기자 에딜린은 뭐라고 거절하기가 애매해졌다.
도뷜은 이미 웃통을 완전히 벗어 던지고서는 사람들이 던져 주는 술잔을 잡아 채 목구멍으로 넘기며 에딜린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어쩔 수 없군.”
한 번 즐겨 보자 ― 에딜린은 가볍게 마음 먹고 술통 위로 올라섰다.
루비외넨 성의 연회는 밤과 함께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루비외넨 성의 내전(內殿) 뒤의 조그만 방에 몇 명의 사람이 자리를 함께한 것은 연회가 한창이던 늦은 밤의 일이었다.
한창 흥이 오른 연회장의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이들은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와 조용히 이동했다.
교묘하게 복도 사이의 벽으로 위장된 문의 걸쇠를 조심스럽게 치우고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등불만 일렁거리는 좁은 방이 있었다.
네다섯 사람이 겨우 앉을 조그만 원탁과 의자, 그리고 낡은 지도와 몇 개의 책이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있는 이 방은 흡사 연금술사의 연구실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곳은 루비외넨 백작이 혹여 모를 첩자를 방지하고 백작령의 주요 대소사를 신임할 수 있는 측근들과만 논의하기 위해 만든 방으로, 일종의 밀실(密室)이었다.
“여기서 이런 회의를 주재하는 것도 오랜만이오. 어서들 앉으시오. 밖이 연회 분위기에 흥겨운 동안 이야기를 마치도록 합시다.”
루비외넨 백작이 상석에 앉아 손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술을 받은 이후 얼굴의 혈색이 매우 좋아진 그는 붉은 얼굴 사이로 깊은 눈동자를 번득이며 원탁에 자리한 인물들을 보았다.
모두 그가 믿고 신임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것처럼 보이던 포 마델은 어느새 술 기운을 지우고 백작의 곁에 앉아 있었고, 백작이 수술받는 것을 진심으로 반대했었던 케레빌 자작, 그리고 세금 마차가 루비외넨으로 오는 길목에 들러서 환대를 받았던 테실의 남작, 넬 루바즈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백작과 서로 신임하는 사이로, 군주와 가신을 떠나서 하나의 운명 공동체처럼 믿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다른 이들의 이목을 피해 이렇게 그들만 자리한 것이었다.
“우선 에딜린 경의 덕으로 이렇게 몸이 나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겠소. 더군다나 빚을 질 것 없는 종친에게 치료받은 것이 아니오.”
백작은 깊은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믿었던 알뵈스 공작이 백작 각하를 주살하려 했다는 것을 도무지 아직도 믿기 힘듭니다.”
항상 모든 일을 의심하고 보는 성격인 케레빌 자작이 주름진 볼을 씰룩이며 말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 믿는 케레빌 자작의 성격은 그가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받게 할 수는 있었지만, 중요한 사안에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단점도 있었다.
에딜린이 백작을 수술하는 것을 반대했던 것도, 그가 가진 상식의 선에서 수술로 그런 괴병(怪病)을 치료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황을 봤을 때 이건 확실한 일입니다. 일전 포 마델 경께서 루비외넨 성으로 오시기 전에 저의 영지를 지나며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알뵈스 공이 그런 시도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테실 남작 넬 루바즈가 답답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는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포 마델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쇠락해서 왕을 올리지도 못하는 왕실이지만, 적어도 포 마델은 그 왕실 종친 중 가장 어른이었으며, 이곳 루비외넨 백작령에서 만큼은 그의 진실됨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포 마델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입을 열었다.
“조카 손주는 잘 아셔야 하네. 공작이 헤데바 초를 자네에게 먹인 것은 충분히 공작의 입장에서는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었네. 자네가 죽고 나면 적법한 왕실 혈통이라 주장할 수 있는 자는 루이나뿐이고, 알다시피 여자는 왕통을 승계할 수 없으니, 그녀가 시집가는 상대에게 왕관을 이을 권리가 생기는 것이지. 왕실 척족인 에딜린이 등장하기 전이니, 공작으로서는 자네가 죽는다면 왕실호법관으로서 보호권을 행사해 그녀의 신병을 확보한 뒤, 자신의 젊은 아들인 에틀렌에게 시집보낸다면, 다른 공국들에서 뭐라고 하든 적법한 왕실의 후사로 자신의 가문을 내세울 권리는 적어도 확보하게 되는 것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걸치적거리는 왕실의 말예를 이곳 루비외넨의 백작이란 이름으로 묶어 두고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왕통의 후계를 내세워 정당한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로군요.”
백작의 얼굴은 침통하게 바뀌었다.
포 마델이 에딜린을 데리고 등장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몇 개월 내로 목숨을 잃고 왕실의 혈통은 끊기며, 그의 딸은 불행한 인생을 보낼 뻔했다는 사실이 백작을 괴롭게 했다.
“그러나 어쨌든 공작의 은근한 야욕은 이로서 일단은 저지되었으니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 보는 것이 어떤가?”
포 마델이 백작의 침통한 표정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포 마델의 말마따나 우선은 앞의 일에 대한 계산이 더욱 중요했다.
“그러나 앞으로 저를 암살하려던 시도는 없어지더라도, 딸을 내어놓으라는 알뵈스 공의 전언이 공식적으로 들어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공국들에서도 앞다투어 루이나의 신병을 확보하려 노력하겠지요. 저는 그런 꼴을 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좌중이 침묵에 잠겨 있는 가운데 어렵사리 입을 연 것은 테실 남작 넬 루바즈였다.
“에딜린 경이 있지 않습니까. 일전 그분이 포 마델 경의 손자가 되시는 것을 알고 나서 생각해 본 것인데, 역시 루이나 영애와 에딜린 경을 혼인시킨다면 왕실 안에서의 통혼(通婚)으로 적법한 왕가의 핏줄을 견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공작들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일입니다.”
넬 루바즈가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이 합당하지 않느냐는 시선을 보내자 포 마델은 도리어 고개를 저었다.
“에딜린이 내 손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쉽게 혼인을 강제할 수는 없네.”
포 마델의 말에 케레빌 자작이 의문을 표시한다.
“그렇게 혼사를 결정짓지 않으면, 결국 루이나 영애는 다른 곳으로 시집가 그곳 집안에 왕실의 계승권을 주장할 빌미를 주고 맙니다. 그건 우리 모두 바라지 않습니다.”
케레빌 자작의 말에 백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할아버님, 물론 에딜린 경과 내 딸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이건 적법한 왕실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백작까지 이렇게 거들고 나오자, 좌중은 에딜린과 루이나의 혼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울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포 마델은 그렇게 쉽게 동의를 해 버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에딜린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없는 위치인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배를 위해 준비된 몸으로 에딜린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을 어떤 방법으로도 그에게 강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에딜린은 분명히 이 혼인을 원하지 않을 것이었다.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종법(宗法)을 보면.”
포 마델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고법(古法)과 신법(新法)의 두 가지가 있네. 잘 알다시피 고법은 매우 오래된 법으로, 우리 아뎀데나펜의 가쉬엘레딘 왕가가 시작될 때 세워진 법일세. 고법에서는 여자에게는 일체 승계권이 주어지지 않으니,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시집을 오는 이에게도 어떠한 승계권도 돌아가지 않네.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 전대 왕의 다음 세대 이하의 남자가 아니면 왕위를 승계할 자격도 없어지지.”
“선출파에서 이 고법을 들어 선대인 발테제 각하의 계승을 반대해서 결국 내전이 촉발되었었죠.”
구법과 신법의 이야기는 백작도 잘 아는 것이었다.
포 마델은 고개를 끄덕여 주고서는 말을 이었다.
“이 고법을 들어 주장한다면, 당연히 왕위를 승계할 사람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없는 것이지. 아직까지 뢰반데엔 공국과 리겔 공국에서 주장하는 바이고. 반면, 어떻게든 루이나를 데려와 자기들의 왕위 계승을 주장하고 싶다, 이렇게 되면 신법을 들어서 말할 수밖에 없는데.”
포 마델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백작은 손뼉을 치며 납득했다.
“과연, 신법을 들고 나온다면 오히려 에딜린의 왕위 승계권이 높으니 루이나가 어디로 시집가든 에딜린이 있는 한 그들이 왕위를 주장하기는 힘들겠군요.”
“한마디로 어차피 고법을 주장하던 이들은 누구의 왕위 계승권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루이나를 통해 왕위의 계승을 주장하려 노리고 있던 알뵈스 공작 같은 이들은 이미 에딜린 때문에 신법을 들먹이며 이것을 주장하기 곤란해졌으니 굳이 에딜린과 루이나가 혼사를 맺지 않아도 정당한 왕실의 혈통을 보존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이 말이네.”
포 마델의 명쾌한 설명에 나머지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렇다면 에딜린에게는 어떤 배분(配分)을 주어야 옳겠습니까. 이번에 기여한 공적이 적지 않고 어쩌면 왕실의 대통을 승계할 이가 될지 모르는데.”
백작이 물었다.
“작위와 영지를 하나 내어 주게.”
포 마델이 말했지만 백작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그런 작위와 영지를 내릴 권리는 제게 없습니다. 그것은 이곳에서는 알뵈스 공작만이 가진 권리입니다.”
“새로 작위를 만들고 영지를 떼어 놓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네. 자네가 보위한 작위가 몇 개인가?”
“가장 높은 배분의 것은 사람들이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 아뎀데나펜의 국왕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어차피 대관도 못 치렀으니 의미가 없는 것이고. 다음이 바로 이 루비외넨 백작위, 그리고 클로벤 자작, 테로이실 자작, 그리고 플랑헨 남작입니다. 아!”
“그래. 자네가 가진 작위 중에서 하나를 에딜린에게 주게나. 그놈의 테로이실 땅이 좋겠군.”
“테로이실 말씀이십니까? 그보다는 클로벤이 더욱 풍요로운 곳인데.”
“테로이실은 주변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산지라, 오히려 에딜린이 은연자중 하며 힘을 기르기 좋을 것이네. 그곳을 주면 나중에 자네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게야.”
“포 마델 경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테로이실 자작위를 에딜린에게 하사하십시오.”
넬 루바즈도 포 마델의 의견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깐깐한 케레빌 자작마저 동의를 하고 나서자 백작은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허리를 의자에 묻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 우선은 연회장으로 돌아가 만족스러운 만찬을 마저 즐기도록 하지.”
백작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술이 가득 담긴 뿔피리 하나가 또 던져졌다. 적당히 몸의 활기를 돋아 오크통 위를 뛰고 있던 에딜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그 뿔피리를 낚아채 술을 들이켰다.
이미 반대편에서는 도뷜이 뒤뚱거리며 휘청이고 있었다. 원래 선천적으로 몸의 자질이 뛰어난 도뷜이었지만, 만취한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균형을 잡으며 술통 위를 달리는 것은 그에게도 무리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 안 잡히고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에딜린이 본신의 능력으로 상대하고 있지 않기는 했다. 에딜린은 지금 철저히 그냥 육체의 능력으로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그것 자체도 매우 뛰어난 편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딸꾹, 슬슬 포기하시지, 끅, 에딜린?”
얼굴이 불콰해져서 다시 술 한 잔을 들이키고서는, 뒤뚱거리며 술통을 넘어가며 도뷜이 말했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하늘로 펴졌던 손은 입가를 흘러내리는 술을 닦기 위해 내려와 있었고, 몸은 언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뒤뚱거리고 있었다.
“너야말로 내려와야겠다.”
에딜린이 이죽거리고서는 속도를 점차 높혀 갔다.
아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며 에딜린을 응원했다.
악단의 연주는 점차 빨라지고, 에딜린이 경쾌하게 술통을 밟는 박자에 맞춰, 사람들은 발구름으로 응답했다.
반대편에서 도뷜을 응원하던 패들은 아쉽다는 듯 야유했지만, 이미 도뷜은 휘청거리다 못해 아주 술통 위에 거의 엎어져 있었다.
“으악, 아직 끝이 아니야!”
에딜린이 지척에 와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 도뷜은 깜짝 놀라 다시 술통 위를 뛰기 시작했다.
좌중은 이내 다시 흥겨운 환호성으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