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군주의 길 2
1화
제10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은가
테로이실은 알뵈스 섬의 동남쪽 해안에 있는 지역이었다.
온대 수림이 울창한 계곡은 남쪽으로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동쪽의 산과 수림을 헤치고 나가면 절벽과 모래밭이 번갈아 이어지는 절해(絶海)였다.
이런 이유로 이 테로이실은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의 손이 그다지 닿지 않는 곳으로 남아 있었는데, 내전 이후 조금씩 전란을 피해 들어온 주민이 늘어나면서 계곡을 중심으로 목초지와 밭을 늘려 생활을 꾸리게 되었다.
이 테로이실 지역은 자작령으로 묶여 있었고, 오랜 세월 상징적인 작위에 머물러 있던 테로이실 자작으로 처음 부임해 온 것이 바로 에딜린이었다.
에딜린이 처음 영지에 부임해 와서 한 일은 영지민의 인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파악된 인구는 세 개의 마을을 합쳐 436명이었다.
차마 자작령이라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인구로 일개 준남작의 장원(莊園)이나 꾸릴 만한 인구였다.
거기에 돈이 되는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산품도 없으며, 남는 것이라고는 계곡 주위를 겹겹이 둘러친 산지뿐이었다.
“우선은 정확히 영지의 실정을 파악해야 할 것 같네요.”
포 마델이 차를 달여와 에딜린을 찾아온 오후, 에딜린은 생각을 정리하고서는 포 마델에게 말했다.
“인구수라면 일전에 파악을 했고, 영지민이 사는 환경은 대충 보지 않았나?”
“그야 그렇지만, 우선은 정확한 계획 위에서 영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정밀한 파악이 필요해요. 우선은 지도부터 만들 생각이에요.”
“지도라… 쉽지 않을 텐데.” 포 마델의 걱정에 에딜린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포 마델의 걱정은 일견 타당한 것이긴 했다.
이 당시 아뎀데나펜의 지도 제작술은 매우 일천한 것으로, 그나마 연근해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이 작성한 비교적 상세한 해도(海圖)를 제외한다면 육지의 지도는 모두 군사기밀로 묶여 있기 일쑤였고, 그나마도 길과 길, 성과 성의 대략적인 위치만을 표시한 측량술이 전혀 배제된 추상화된 그림의 편린들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포 마델이 그런 지도라도 만들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대체 이 코딱지만 한 영지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투로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 마델의 우려에도 개의치 않고 에딜린은 대충 나무를 조금 구해 와서 측량을 하기 위한 경위의(經緯儀)를 만들고, 방위를 확인하기 위한 나침반, 포 마델이 가지고 있던 조잡한 망원경, 그리고 수평자와 양피지, 펜을 챙겨 들고서는 말을 몰아 우선 영지 남쪽으로 향했다.
테로이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테로이실 강(江)이 밤나무 골의 외곽을 돌아 나가면, 성긴 모래가 잔뜩 깔린 해안과 마주하게 된다.
이 척박한 바닷가에는 아무런 사람의 흔적이 없었는데, 하다못해 초라한 오두막과 쪽배도 없는 말 그대로 천연지였다.
‘우선은 해발고도(海拔高度)를 재기 위해서는 바다의 높이부터 정해야 한다.’
에딜린은 해가 중천에 올라 정오가 될 때를 기다렸다가, 마법으로 그때의 해안선에 수평을 그은 뒤, 수평자를 가져다가 그 높이와 일치하는 곳 해안가에 좌표(座標)를 세웠다.
그 점을 기준으로 해서 에딜린은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해안 지역부터 시작해서 테로이실 영지의 전체적인 지도를 그리는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흘이 지나서야 남쪽 해안의 대략적인 윤곽이 나왔고, 그 다음은 에딜린이 처음 당도했던 동쪽 해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절벽이 드문드문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동쪽 해안은 대단히 미려한 절경이었지만, 도무지 영지민의 삶을 풍족하게 해 줄 자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바다와 면한 숲에서는 오크 같은 몬스터 떼가 드문드문 출몰하고 있었다.
예전 아델리에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오크 떼가 출몰했던 것을 에딜린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측량을 위해 샅샅이 동부 해안을 뒤지는 중에도 에딜린이 우려했던 큰 오크 부락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열댓 마리 단위로 여기저기 흩어진 소규모의 오크들만 이곳에 존재하는 듯했다.
에딜린은 지나가는 길의 그런 오크 부락들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다행히도 오크를 제외하고는 큰 몬스터의 서식은 없는 듯했다.
그것은 꼭 이 테로이실뿐만이 아니라 아뎀데나펜의 전체적으로 그랬는데, 흉포한 몬스터는 어딜 가나 찾아보기 힘든 존재였다.
그나마 오크 정도가 사람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산중이나 수림 속에서 군락 생활을 할 뿐, 오우거 정도만 되도 사람이 사는 지역 가까이에서는 정말 보기 드물었다.
동쪽 해안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높은 산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산들을 따라가며 땅의 정령인 놈을 불러 광맥을 찾아보았지만, 정말 소규모의 갈탄(褐炭)과 매우 순도가 낮은 철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광물은 거의 포기해야겠군.’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외곽 지대의 지도 작성이 끝나자 에딜린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정착지와 목초지, 그리고 밭의 종류와 크기, 가축의 종류 따위를 세심하게 파악하면서 지도에 표시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다 보니 마법의 힘을 빌리고서도 보름이나 걸리는 일이었다.
사람이 없다 뿐, 작지 않은 테로이실 영지였고, 대규모 마법을 시전해서 하늘 위에 몸을 띄워 지도를 그리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에딜린은 우선은 이런 지도 제작의 방법론을 체계화시켜 기회가 되면 누군가에게 교육시킬 생각으로 직접 발품을 팔아 가며 영지의 파악에 나섰던 것이다.
물론 직접 지도를 그리면서 영지의 실상을 확인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오, 이렇게 정교한 지도는 나도 처음 보는 것인데.”
에딜린이 양피지 두루마리 위에 그린 지도를 영지 관저 한쪽에 펼쳐서 걸어 놓자, 그것을 본 포 마델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는 꼼꼼히 손가락을 옮겨 가며 지도에 표시된 영지 여기저기를 확인해 보더니, 다시 한 번 감탄성을 흘렸다.
“대단해, 대단해! 언제 또 이런 지도 제작술은 터득했단 말이냐.”
포 마델의 말에 에딜린은 그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중요한 건 지금 지도가 얼마나 잘 완성되었냐 보다, 그걸 만들기 위해 돌아다녀 본 영지의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거예요.”
“기사 하나 없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도 너와 나 둘뿐이니. 거기에 영지민 500이 안 되면 정말 인재가 없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글을 읽을 줄 아는 것도 우리 둘뿐인 것 같구나. 낄낄.”
포 마델이 곰곰이 따져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물론 인적인 자원도 중요하지만 주변이 바다와 산인데 제대로 된 광물 하나 없어요. 배도 한 척 없고요.”
“그것도 그렇구나.”
말 그대로 자원 하나 없는 영지였다.
포 마델은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에딜린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그래도 뭐하나 풍부한 것은 있지 않냐.”
“예, 뭐가요?”
말은 곱게 했지만, 사실 에딜린은 이따위 영지에 뭐가 풍부하냐고 역정을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포 마델은 그런 에딜린의 표정을 읽고서는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무.”
“나무, 말씀이십니까?”
이제는 자작이라는 신분을 의식해서인지, 도뷜은 머쓱한 경칭을 에딜린에게 붙이고 있었다.
기사도 아니고 자경단원의 단장인 도뷜이 영주인 에딜린에게 말을 편하게 한다는 것은 썩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털털한 웃음으로 보여 주는 표정에서는 거리감 없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에딜린은 그런 도뷜을 한 번 바라보고서는,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 그래. 나무. 역시 이 테로이실에 넘쳐 나는 건 사방을 둘러싼 나무밖에 없더군.”
“물론 나무가 많기는 하지요.”
“그래. 그 나무를 벌목을 좀 해볼까 하는데.”
“장작으로 쓰시려구요? 그건 다들 알아서 하는데……. 아직 겨울이 온 것도 아닌데요.”
도뷜은 나무를 떠올렸을 때 장작 외의 용도로는 생각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곳에 대충 어떤 종류의 나무들이 있는지는 아나?”
“글쎄요…….”
자경단원이 되기 전에 산을 돌아다니며 가끔 나무도 베곤 했던 도뷜이기에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줄줄이 읊어 대기 시작한다.
“산 아래 쪽에는 이나무, 노각나무, 나도밤나무, 비목나무, 사람주나무, 산벚나무, 팽나무 따위가 있고, 산 위로 올라가면 전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잎갈나무, 주목 같은 게 자라는데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여기 제일 많은 나무는 자작나무지요. 자작나무 숲이 아주 큽니다.”
도뷜이 줄줄이 나무 이름을 읊어 대자 에딜린은 조금 감탄했다. 몸에 근육만 만드는 놈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의외의 구석에서 신기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산을 이고 살아가는 테로이실의 주민인 이상, 이 정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도뷜이 말해 주는 나무들은 에딜린이 지도를 만들면서 대충 살펴보았던 것과 비슷한 품종들이었다.
그때는 나무를 어떻게 잘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식생을 본다는 생각으로 꼼꼼히 살피지 않았는데, 지금 들어 보니 생각보다 다채로운 나무가 많이 자라는 듯했다.
비가 많은 해안 지대인 테로이실은 따뜻한 온대 기후를 가지고 있었기에 비교적 고도가 낮은 지역에는 온대 활엽수가, 고도가 좀 높은 지역에는 온대 침엽수가 자라는 드넓은 혼합림(混合林)을 이루고 있었다.
“도뷜, 테로이실 전체에 대장간이나 제재소 같은 것도 하나도 없지?”
“대장간은 테실까지 나가야 하고, 제재소는 밤나무 골에 어설프게나마 하나는 있습죠.”
“그래? 그 제재소로 안내를 좀 해 주겠나?”
도뷜은 에딜린의 부탁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제재소는 안내라고 할 것도 없는 거리였다. 워낙 조그만 마을인 밤나무 골이니 만큼 관저―얼마 전까지 회관으로 쓰던―에서 나와 한 골목 돌아서 목책 주변으로 가니 조그만 오두막 하나 주변으로 어설프게 나무 토막들이 옹기종기 쌓여 있는 곳이 보였다.
“여기가 펠 영감이 하는 제재소입니다.”
에딜린은 약간 실망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무지 제대로 된 제재소라기 보다는 그저 땔감 장수가 하는 나무 가게 같은 느낌이었다.
“어이쿠, 영주님, 어쩌다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한쪽에서 톱으로 나무를 썰고 있던 펠 영감은 도뷜과 함께 온 사람이 새로온 영주인 에딜린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고서는 허겁지겁 뛰어와서 모자를 벗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펠 영감의 이마에 흥건한 땀을 보고서는 에딜린은 좀 안쓰러운 기분이 들어 그에게 허리를 그만 펴라고는 말해 주고선 제재소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이가 성치 못한 톱들이 널려져 있었고, 나무는 모두 장작 크기로 쪼개져 있었다.
“여기가 제재소 맞나?”
에딜린의 물음에 도뷜과 펠 영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제재소는 맞습죠. 근데 땔깜 패는 곳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펠 영감의 부연 설명에 에딜린은 그럼 그렇지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래서는 생각하는 바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펠 영감, 나무를 다룬 지는 몇 해나 됐는가?”
“십여 년 전 여기 흘러들어 오기 전에 리겔 공국의 도읍인 가센에서 목수질을 좀 오래 했습죠. 나이가 들고 처자도 없고 하다 보니, 가산을 정리하고 여기서 그냥 땔감이나 패고는 있습니다만…….”
“목수라고 했지. 어떤 걸 만들었었나?”
펠이 목수질을 했다는 이야기에 에딜린은 귀가 번쩍 뜨였다.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가구 같은 걸 만들고 그랬습죠. 문짝도 달아 주고, 탁자도 만들고. 젊은 시절엔 좀 그럴싸한 목재로 좋은 집에 들어가는 가구도 만들곤 했습니다만, 그것도 잠깐이었지요.”
펠 노인도 대단한 목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에딜린은 그런대로 그나마 기술이 있는 사람을 테로이실에서 처음 만난 것이라 조금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에딜린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나무를 베어다가 질 좋게 다듬어 가구를 만드는 공방이었다.
얼마 안 되는 인구가 모두 척박한 곳에서 목축이나 밭을 매어 사는 이 테로이실에서 당장에 무슨 엄청난 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꿈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우선은 아무런 특산품도 없으니, 그나마 넘치는 나무라도 베어다가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에딜린의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저지대에 자라는 온대 활엽수들은 단단하지는 못하지만, 무늬가 아름답고 결이 고와서 가구로 만들기는 안성맞춤인 나무들이었다.
“다 좋긴 한데…….”
그러나 가구라는 것도 덜컥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에딜린이 생각할 정도로 품질 좋은 가구를 만들어 특산품이 될 정도면, 상당히 유행에 민감하고 솜씨 좋은 목수가 여럿은 있어야 했고, 나무를 베어다 줄 나무꾼도 필요했으며, 더군다나 제재소 규모가 이 정도로는 안 될 일이었다.
에딜린은 다시 한숨이 나오려고 했지만 우선은 차근차근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가구를 만들 나무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자라는 활엽수들이니, 제재소 위치는 그냥 이곳 계곡 끝자락에 있는 밤나무 골이 적당했다.
그러나 톱 몇 줄에 이 펠 노인 한 명으로는 가구는커녕 땔감 만들기도 모자란 형편이었다.
“펠 영감, 혹시 가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이곳에 영감 말고도 있는가?”
“글쎄요……. 이 테로이실 영지 전체에서 목수는 저 하나로 알고 있습죠.”
우선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에딜린은 먼저 도뷜과 자경단원들에게 집에서 혹시 일을 하지 않는 젊은 청년들을 모두 끌어 모으게 했다.
그러나 역시 먹고 살기 척박한 영지인지라 집에서 놀고 있는 청년이래 봐야 겨우 일곱 명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무슨 자경단원을 하겠다고 설치는 녀석들이니 힘만 좋은 도뷜의 추종자 같은 놈들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이들에게 각자 집에서 도끼와 톱을 챙겨 오게 해 나무를 베는 일을 시킬 수는 있었다.
우선은 이 나무들을 베어 내면, 베어 낸 자리는 그 청년들의 집에 농토로 준다고 해서 청년들이 쉽게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했다.
에딜린과 펠 영감, 그리고 도뷜은 직접 숲으로 들어가 꼼꼼히 살펴서 좋은 나무들을 골랐는데, 펠 영감이 생각하는 가구는 적당히 괜찮은 나무면 충분했지만, 에딜린은 직접 쫓아 다니며 최고급의 나무만을 고르게 했다.
이렇게 대충 좋은 나무들을 골라서 베어야 할 숲을 정해 주면, 이 마을 청년들이 그 나무들을 벌채해 오는 것이었다.
이 나무들을 나를 마차도 여러 대 있어야 했기에, 에딜린은 우선 밤나무 골에 영주 소유로 있는 말 네 마리 중에 자신이 타고 다닐 것을 빼고 세 마리를 모두 마차를 끌 용도로 내어놓아야만 했다.
얼기설기 펠 영감이 만든 나무 틀에다가 바퀴만 엇댄 마차는 나무꾼 청년들이 벌채한 나무를 날라서 펠 영감의 제재소 앞마당에 쌓아 놓았다.
“근데 좋은 나무들이긴 합니다만, 이걸로 어떻게 가구를 만드시려고 하시는지…….”
에딜린의 곁에 서서 제재소 마당에 쌓여지는 나무들을 보고 있던 펠 영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예전 그저 촌스러운 가구들만 만들던 목수이고, 거기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손도 맵지가 못하니 영주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가구들을 만드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펠 영감으로서는 영주에게 감히 일을 못하겠다고 운운하는 노릇인지라, 벗겨진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한 것이 에딜린의 눈에도 선명히 보일 지경이었다.
1화
제10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은가
테로이실은 알뵈스 섬의 동남쪽 해안에 있는 지역이었다.
온대 수림이 울창한 계곡은 남쪽으로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동쪽의 산과 수림을 헤치고 나가면 절벽과 모래밭이 번갈아 이어지는 절해(絶海)였다.
이런 이유로 이 테로이실은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의 손이 그다지 닿지 않는 곳으로 남아 있었는데, 내전 이후 조금씩 전란을 피해 들어온 주민이 늘어나면서 계곡을 중심으로 목초지와 밭을 늘려 생활을 꾸리게 되었다.
이 테로이실 지역은 자작령으로 묶여 있었고, 오랜 세월 상징적인 작위에 머물러 있던 테로이실 자작으로 처음 부임해 온 것이 바로 에딜린이었다.
에딜린이 처음 영지에 부임해 와서 한 일은 영지민의 인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파악된 인구는 세 개의 마을을 합쳐 436명이었다.
차마 자작령이라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인구로 일개 준남작의 장원(莊園)이나 꾸릴 만한 인구였다.
거기에 돈이 되는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산품도 없으며, 남는 것이라고는 계곡 주위를 겹겹이 둘러친 산지뿐이었다.
“우선은 정확히 영지의 실정을 파악해야 할 것 같네요.”
포 마델이 차를 달여와 에딜린을 찾아온 오후, 에딜린은 생각을 정리하고서는 포 마델에게 말했다.
“인구수라면 일전에 파악을 했고, 영지민이 사는 환경은 대충 보지 않았나?”
“그야 그렇지만, 우선은 정확한 계획 위에서 영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정밀한 파악이 필요해요. 우선은 지도부터 만들 생각이에요.”
“지도라… 쉽지 않을 텐데.” 포 마델의 걱정에 에딜린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포 마델의 걱정은 일견 타당한 것이긴 했다.
이 당시 아뎀데나펜의 지도 제작술은 매우 일천한 것으로, 그나마 연근해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이 작성한 비교적 상세한 해도(海圖)를 제외한다면 육지의 지도는 모두 군사기밀로 묶여 있기 일쑤였고, 그나마도 길과 길, 성과 성의 대략적인 위치만을 표시한 측량술이 전혀 배제된 추상화된 그림의 편린들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포 마델이 그런 지도라도 만들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대체 이 코딱지만 한 영지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투로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 마델의 우려에도 개의치 않고 에딜린은 대충 나무를 조금 구해 와서 측량을 하기 위한 경위의(經緯儀)를 만들고, 방위를 확인하기 위한 나침반, 포 마델이 가지고 있던 조잡한 망원경, 그리고 수평자와 양피지, 펜을 챙겨 들고서는 말을 몰아 우선 영지 남쪽으로 향했다.
테로이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테로이실 강(江)이 밤나무 골의 외곽을 돌아 나가면, 성긴 모래가 잔뜩 깔린 해안과 마주하게 된다.
이 척박한 바닷가에는 아무런 사람의 흔적이 없었는데, 하다못해 초라한 오두막과 쪽배도 없는 말 그대로 천연지였다.
‘우선은 해발고도(海拔高度)를 재기 위해서는 바다의 높이부터 정해야 한다.’
에딜린은 해가 중천에 올라 정오가 될 때를 기다렸다가, 마법으로 그때의 해안선에 수평을 그은 뒤, 수평자를 가져다가 그 높이와 일치하는 곳 해안가에 좌표(座標)를 세웠다.
그 점을 기준으로 해서 에딜린은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해안 지역부터 시작해서 테로이실 영지의 전체적인 지도를 그리는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흘이 지나서야 남쪽 해안의 대략적인 윤곽이 나왔고, 그 다음은 에딜린이 처음 당도했던 동쪽 해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절벽이 드문드문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동쪽 해안은 대단히 미려한 절경이었지만, 도무지 영지민의 삶을 풍족하게 해 줄 자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바다와 면한 숲에서는 오크 같은 몬스터 떼가 드문드문 출몰하고 있었다.
예전 아델리에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오크 떼가 출몰했던 것을 에딜린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측량을 위해 샅샅이 동부 해안을 뒤지는 중에도 에딜린이 우려했던 큰 오크 부락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열댓 마리 단위로 여기저기 흩어진 소규모의 오크들만 이곳에 존재하는 듯했다.
에딜린은 지나가는 길의 그런 오크 부락들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다행히도 오크를 제외하고는 큰 몬스터의 서식은 없는 듯했다.
그것은 꼭 이 테로이실뿐만이 아니라 아뎀데나펜의 전체적으로 그랬는데, 흉포한 몬스터는 어딜 가나 찾아보기 힘든 존재였다.
그나마 오크 정도가 사람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산중이나 수림 속에서 군락 생활을 할 뿐, 오우거 정도만 되도 사람이 사는 지역 가까이에서는 정말 보기 드물었다.
동쪽 해안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높은 산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산들을 따라가며 땅의 정령인 놈을 불러 광맥을 찾아보았지만, 정말 소규모의 갈탄(褐炭)과 매우 순도가 낮은 철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광물은 거의 포기해야겠군.’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외곽 지대의 지도 작성이 끝나자 에딜린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정착지와 목초지, 그리고 밭의 종류와 크기, 가축의 종류 따위를 세심하게 파악하면서 지도에 표시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다 보니 마법의 힘을 빌리고서도 보름이나 걸리는 일이었다.
사람이 없다 뿐, 작지 않은 테로이실 영지였고, 대규모 마법을 시전해서 하늘 위에 몸을 띄워 지도를 그리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에딜린은 우선은 이런 지도 제작의 방법론을 체계화시켜 기회가 되면 누군가에게 교육시킬 생각으로 직접 발품을 팔아 가며 영지의 파악에 나섰던 것이다.
물론 직접 지도를 그리면서 영지의 실상을 확인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오, 이렇게 정교한 지도는 나도 처음 보는 것인데.”
에딜린이 양피지 두루마리 위에 그린 지도를 영지 관저 한쪽에 펼쳐서 걸어 놓자, 그것을 본 포 마델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는 꼼꼼히 손가락을 옮겨 가며 지도에 표시된 영지 여기저기를 확인해 보더니, 다시 한 번 감탄성을 흘렸다.
“대단해, 대단해! 언제 또 이런 지도 제작술은 터득했단 말이냐.”
포 마델의 말에 에딜린은 그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중요한 건 지금 지도가 얼마나 잘 완성되었냐 보다, 그걸 만들기 위해 돌아다녀 본 영지의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거예요.”
“기사 하나 없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도 너와 나 둘뿐이니. 거기에 영지민 500이 안 되면 정말 인재가 없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글을 읽을 줄 아는 것도 우리 둘뿐인 것 같구나. 낄낄.”
포 마델이 곰곰이 따져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물론 인적인 자원도 중요하지만 주변이 바다와 산인데 제대로 된 광물 하나 없어요. 배도 한 척 없고요.”
“그것도 그렇구나.”
말 그대로 자원 하나 없는 영지였다.
포 마델은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에딜린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그래도 뭐하나 풍부한 것은 있지 않냐.”
“예, 뭐가요?”
말은 곱게 했지만, 사실 에딜린은 이따위 영지에 뭐가 풍부하냐고 역정을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포 마델은 그런 에딜린의 표정을 읽고서는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무.”
“나무, 말씀이십니까?”
이제는 자작이라는 신분을 의식해서인지, 도뷜은 머쓱한 경칭을 에딜린에게 붙이고 있었다.
기사도 아니고 자경단원의 단장인 도뷜이 영주인 에딜린에게 말을 편하게 한다는 것은 썩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털털한 웃음으로 보여 주는 표정에서는 거리감 없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에딜린은 그런 도뷜을 한 번 바라보고서는,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 그래. 나무. 역시 이 테로이실에 넘쳐 나는 건 사방을 둘러싼 나무밖에 없더군.”
“물론 나무가 많기는 하지요.”
“그래. 그 나무를 벌목을 좀 해볼까 하는데.”
“장작으로 쓰시려구요? 그건 다들 알아서 하는데……. 아직 겨울이 온 것도 아닌데요.”
도뷜은 나무를 떠올렸을 때 장작 외의 용도로는 생각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곳에 대충 어떤 종류의 나무들이 있는지는 아나?”
“글쎄요…….”
자경단원이 되기 전에 산을 돌아다니며 가끔 나무도 베곤 했던 도뷜이기에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줄줄이 읊어 대기 시작한다.
“산 아래 쪽에는 이나무, 노각나무, 나도밤나무, 비목나무, 사람주나무, 산벚나무, 팽나무 따위가 있고, 산 위로 올라가면 전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잎갈나무, 주목 같은 게 자라는데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여기 제일 많은 나무는 자작나무지요. 자작나무 숲이 아주 큽니다.”
도뷜이 줄줄이 나무 이름을 읊어 대자 에딜린은 조금 감탄했다. 몸에 근육만 만드는 놈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의외의 구석에서 신기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산을 이고 살아가는 테로이실의 주민인 이상, 이 정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도뷜이 말해 주는 나무들은 에딜린이 지도를 만들면서 대충 살펴보았던 것과 비슷한 품종들이었다.
그때는 나무를 어떻게 잘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식생을 본다는 생각으로 꼼꼼히 살피지 않았는데, 지금 들어 보니 생각보다 다채로운 나무가 많이 자라는 듯했다.
비가 많은 해안 지대인 테로이실은 따뜻한 온대 기후를 가지고 있었기에 비교적 고도가 낮은 지역에는 온대 활엽수가, 고도가 좀 높은 지역에는 온대 침엽수가 자라는 드넓은 혼합림(混合林)을 이루고 있었다.
“도뷜, 테로이실 전체에 대장간이나 제재소 같은 것도 하나도 없지?”
“대장간은 테실까지 나가야 하고, 제재소는 밤나무 골에 어설프게나마 하나는 있습죠.”
“그래? 그 제재소로 안내를 좀 해 주겠나?”
도뷜은 에딜린의 부탁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제재소는 안내라고 할 것도 없는 거리였다. 워낙 조그만 마을인 밤나무 골이니 만큼 관저―얼마 전까지 회관으로 쓰던―에서 나와 한 골목 돌아서 목책 주변으로 가니 조그만 오두막 하나 주변으로 어설프게 나무 토막들이 옹기종기 쌓여 있는 곳이 보였다.
“여기가 펠 영감이 하는 제재소입니다.”
에딜린은 약간 실망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무지 제대로 된 제재소라기 보다는 그저 땔감 장수가 하는 나무 가게 같은 느낌이었다.
“어이쿠, 영주님, 어쩌다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한쪽에서 톱으로 나무를 썰고 있던 펠 영감은 도뷜과 함께 온 사람이 새로온 영주인 에딜린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고서는 허겁지겁 뛰어와서 모자를 벗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펠 영감의 이마에 흥건한 땀을 보고서는 에딜린은 좀 안쓰러운 기분이 들어 그에게 허리를 그만 펴라고는 말해 주고선 제재소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이가 성치 못한 톱들이 널려져 있었고, 나무는 모두 장작 크기로 쪼개져 있었다.
“여기가 제재소 맞나?”
에딜린의 물음에 도뷜과 펠 영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제재소는 맞습죠. 근데 땔깜 패는 곳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펠 영감의 부연 설명에 에딜린은 그럼 그렇지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래서는 생각하는 바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펠 영감, 나무를 다룬 지는 몇 해나 됐는가?”
“십여 년 전 여기 흘러들어 오기 전에 리겔 공국의 도읍인 가센에서 목수질을 좀 오래 했습죠. 나이가 들고 처자도 없고 하다 보니, 가산을 정리하고 여기서 그냥 땔감이나 패고는 있습니다만…….”
“목수라고 했지. 어떤 걸 만들었었나?”
펠이 목수질을 했다는 이야기에 에딜린은 귀가 번쩍 뜨였다.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가구 같은 걸 만들고 그랬습죠. 문짝도 달아 주고, 탁자도 만들고. 젊은 시절엔 좀 그럴싸한 목재로 좋은 집에 들어가는 가구도 만들곤 했습니다만, 그것도 잠깐이었지요.”
펠 노인도 대단한 목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에딜린은 그런대로 그나마 기술이 있는 사람을 테로이실에서 처음 만난 것이라 조금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에딜린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나무를 베어다가 질 좋게 다듬어 가구를 만드는 공방이었다.
얼마 안 되는 인구가 모두 척박한 곳에서 목축이나 밭을 매어 사는 이 테로이실에서 당장에 무슨 엄청난 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꿈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우선은 아무런 특산품도 없으니, 그나마 넘치는 나무라도 베어다가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에딜린의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저지대에 자라는 온대 활엽수들은 단단하지는 못하지만, 무늬가 아름답고 결이 고와서 가구로 만들기는 안성맞춤인 나무들이었다.
“다 좋긴 한데…….”
그러나 가구라는 것도 덜컥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에딜린이 생각할 정도로 품질 좋은 가구를 만들어 특산품이 될 정도면, 상당히 유행에 민감하고 솜씨 좋은 목수가 여럿은 있어야 했고, 나무를 베어다 줄 나무꾼도 필요했으며, 더군다나 제재소 규모가 이 정도로는 안 될 일이었다.
에딜린은 다시 한숨이 나오려고 했지만 우선은 차근차근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가구를 만들 나무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자라는 활엽수들이니, 제재소 위치는 그냥 이곳 계곡 끝자락에 있는 밤나무 골이 적당했다.
그러나 톱 몇 줄에 이 펠 노인 한 명으로는 가구는커녕 땔감 만들기도 모자란 형편이었다.
“펠 영감, 혹시 가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이곳에 영감 말고도 있는가?”
“글쎄요……. 이 테로이실 영지 전체에서 목수는 저 하나로 알고 있습죠.”
우선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에딜린은 먼저 도뷜과 자경단원들에게 집에서 혹시 일을 하지 않는 젊은 청년들을 모두 끌어 모으게 했다.
그러나 역시 먹고 살기 척박한 영지인지라 집에서 놀고 있는 청년이래 봐야 겨우 일곱 명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무슨 자경단원을 하겠다고 설치는 녀석들이니 힘만 좋은 도뷜의 추종자 같은 놈들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이들에게 각자 집에서 도끼와 톱을 챙겨 오게 해 나무를 베는 일을 시킬 수는 있었다.
우선은 이 나무들을 베어 내면, 베어 낸 자리는 그 청년들의 집에 농토로 준다고 해서 청년들이 쉽게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했다.
에딜린과 펠 영감, 그리고 도뷜은 직접 숲으로 들어가 꼼꼼히 살펴서 좋은 나무들을 골랐는데, 펠 영감이 생각하는 가구는 적당히 괜찮은 나무면 충분했지만, 에딜린은 직접 쫓아 다니며 최고급의 나무만을 고르게 했다.
이렇게 대충 좋은 나무들을 골라서 베어야 할 숲을 정해 주면, 이 마을 청년들이 그 나무들을 벌채해 오는 것이었다.
이 나무들을 나를 마차도 여러 대 있어야 했기에, 에딜린은 우선 밤나무 골에 영주 소유로 있는 말 네 마리 중에 자신이 타고 다닐 것을 빼고 세 마리를 모두 마차를 끌 용도로 내어놓아야만 했다.
얼기설기 펠 영감이 만든 나무 틀에다가 바퀴만 엇댄 마차는 나무꾼 청년들이 벌채한 나무를 날라서 펠 영감의 제재소 앞마당에 쌓아 놓았다.
“근데 좋은 나무들이긴 합니다만, 이걸로 어떻게 가구를 만드시려고 하시는지…….”
에딜린의 곁에 서서 제재소 마당에 쌓여지는 나무들을 보고 있던 펠 영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예전 그저 촌스러운 가구들만 만들던 목수이고, 거기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손도 맵지가 못하니 영주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가구들을 만드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펠 영감으로서는 영주에게 감히 일을 못하겠다고 운운하는 노릇인지라, 벗겨진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한 것이 에딜린의 눈에도 선명히 보일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