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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같은 시간, 루비외넨 성의 뒷골목의 허름한 집에서는 두 명의 인물이 시시덕거리며 도뷜에게서 훔쳐 낸 금괴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 명은 엄청 작은 난쟁이로, 후드를 쓰고 있어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성인 남자의 허리춤까지밖에 오지 않는 키임에도, 두터운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바로 어제 도뷜이 마지막으로 술을 마실 때 옆에서 시중을 들던 작부, 넬리에였다.
짙은 화장을 하고 요염한 미소를 짓던 어제와는 다르게 넬리에는 수수한 복장을 하고 앉아 뚱한 표정을 짓고서 난쟁이와 함께 금괴를 살펴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금괴는 어디서 나온 건가요? 이렇게 순도 높은 금괴를 부어 낼 수 있는 대장간은 아뎀데나펜에는 없어요. 혹시 겔라하윈에서 만들어진 걸까요?”
넬리에의 물음에 난쟁이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아니야. 이거 대단한데. 여기 금괴 위에 찍힌 문장 보이지?”
“예. 별 시답잖아 보이는데요? 또 어떤 귀족가의 문장이겠지요.”
넬리에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흥! 뭘 모르는 인간 계집이니 이걸 봐도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지. 이 금괴는 무려 천이백 년 전에 번영하던 루가스탈 왕국의 현자왕 베냐우 치세에 만들어진 것이다. 크기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 도량형과는 맞지 않은 당시의 루가스탈의 도량형에 맞추어 만들어진 금괴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요즘 금괴랑 크기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런 그러니까. 이때 베냐우 왕의 야금장(冶金匠)들은 모두 드워프들이었지. 으흠, 이런 순도 높은 금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손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이야.”
“하여간 잘난 척은.”
넬리에가 비꼬자 난쟁이는 후드를 벗고선 눈을 이글거리며 넬리에를 쏘아본다.
“드워프가 드워프 일족의 작품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무에 문제야?!”
땅딸막한 체구 위로 커다란 얼굴은 잿빛의 수염에 뒤덮여 있었고, 말갈기 같은 그 수염 사이로 솟아오른 두툼한 코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 드워프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눈이 침침한 듯 드워프는 연수정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코의 너비에 잘 맞지 않는 듯 코를 계속 실룩거리고 있었다.
“아, 그렇죠. 드워프가 드워프의 작품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렇다면 저는 그 드워프에게 일을 시킨 현자왕 베냐우에게 같은 인간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비웃어 드리죠.”
“하여간 염치없이 발 한 뼘 뺄 줄 모르는 계집 같으니라고.”
“흥!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요? 루비외넨 안에서 팔았다가는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
“이렇게 귀중한 금괴를 역사적 가치까지 잘 쳐서 두둑이 지불해 줄 안목을 가진 이를 찾으려면, 로쉬엠의 루가멜 사도레 정도는 찾아가야 할 거다.”
“으익, 그 남색 돼지 말이에요?”
드워프의 말에 넬리에는 속이 뒤집어진다는 듯 구역질하는 시늉을 한다.
“그놈, 하여간 욕심이 뒤적뒤적 묻어 나오는 돼지기는 하지만 재물이 되는 것을 보는 눈은 정확하지. 그러니까 그런 못난 성격에도 그렇게 돈을 모아대서 로쉬엠에서 제일가는 거상이 된 것 아니겠냐.”
“하여간 유유상종이라더니, 돼지끼리는 통하나 보네요. 욕심 많은 것까지 똑같아.”
“하여간, 이 계집이!”
드워프가 다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를 빽 질렀다.
“알았어요, 알았어. 미안하다구요. 어쨌든 어제 제가 작부 노릇까지 해 가면서 호구 하나 잡으려고 한 노고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 도발은 받아 주셔야죠.”
“그래 수고하긴 했다. 그 술집 주인에게 눈감아 주는 대가로 아쉘반넬 은화를 네 세겔이나 주긴 했지만, 이거 완전 대박을 잡았으니. 세상에, 처음 그놈 전낭을 봤을 때는 본전치기나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금괴가 나올 줄이야.”
“고마운 줄 아셔요.”
어깨가 으쓱해진 넬리에가 미소를 지으며 땅딸막한 드워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드워프는 코웃음을 치고서는 넬리에의 손을 걷어 내고서는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그런데 네가 수고 한 번 더 해 줘야겠다.”
“예? 또, 뭘요?”
“수배된 몸인 내가 성 밖을 나서 로쉬엠까지 가는 모험을 저지를 수는 없는 일 아니냐.”
“그러는 저는 같이 수배된 몸이 아닌가요?”
“너는 분장이라도 할 수 있지. 나는 체구가 이렇다 보니 인간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금방 들통 난단 말이다. 요즘 같이 드워프가 잘 보이지도 않는 판국에 바로 검문 대상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내가 로쉬엠까지 가리?”
“그냥 여기서 팔아요.”
“이년아! 그러면 반값도 못 받어!”
“어차피 장물이잖아요.”
“루가멜 사도레는 그런 거 안 따져!”
드워프는 다시 한 번 소리를 빽 질렀다.

한참을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도뷜은 허겁지겁 어제 술을 퍼마셨던 여관에 들어가 주인을 불러 놓고 자초지종을 따져 보았지만 주인은 묵묵부답이었다.
“어제 하여간 그 작부 그년이랑 살림 차리겠다면서 밖으로 나간 게 누군데?”
“그럼 아, 그 작부 주소라도 알려 달라니까요.”
“나도 몰라. 원래 여관의 작부라는 년들 중에는 여자 혼자 몸으로 다니며 들르는 곳에서 여관 주인에게 돈 좀 셈해 주고 영업 하는 년들도 많어. 그년도 그런 년들 중 하나니 오늘 아침 일찍 성문을 나섰을지도 모르지.”
“아오, 환장하겠네 진짜.”
이미 넬리에에게 돈을 네 세겔이나 셈해 받고 모든 일에 눈감기로 해 준 여관 주인이니 만큼 더 캐 봐야 도뷜에게 더 말해 줄 내용도 없었다.
사실 그도 넬리에가 실상은 작부가 아니라 취객의 호주머니 털어 먹는 여자라는 사실만 알 뿐, 그 정체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었다.
“씨발, 수고하쇼. 잘 먹고 잘살라고.”
결국 도뷜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인의 발아래에 침이나 뱉고서는 다시 거리로 나서는 것밖에 없었다.
주인이 등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욕지거리를 해 댔지만 도뷜의 귀에는 그걸 듣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심지어 루비외넨 백작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사정해서 금괴를 찾는 일을 도와달라고 해볼 생각까지 해 보았지만, 도무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거기에 에딜린과 포 마델의 얼굴에 똥칠까지 하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터벅터벅 거리를 목적 없이 헤매다가 돌고 돌아 주저앉은 곳은 성문 앞이었다.
“이보슈. 여기서 얼쩡거리면 안 되오.”
성문의 경비병이 도뷜을 쫓아내려 했지만, 도뷜은 상종하지 않겠다는 태세로 그저 엎어져 있었다.
술집 주인이 말한 그 작부가 떠돌이라는 말만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이미 성 밖을 나섰으면 모를 일이지만, 아니라면 사방이 강물로 막혀 있고, 육로는 이곳 북동쪽으로 나가는 길뿐이니 죽치고 앉아 있으면 언젠가는 기어 나오리라는 심산이었다.
“거 좀 사정 좀 봐주시오. 어제 밤에 도둑년한테 주머니를 탈탈 털려서 그년이 혹시 성 밖으로 나서지는 않나 싶어 죽치고 앉아 있으려는 작정이니 말이오.”
“거 참. 조심 좀 하고 다니지.”
도뷜의 말을 들은 경비병은 혀를 끌끌 찼다.
“혹시 새벽부터 이 성문 밖을 나선 젊은 여자는 없었소?”
“없었소.”
“그럼 아직 안 나간 것이 확실하구만.”
“나루를 통해서 강 건너갈지 어떻게 알고? 꼭 뭍길로 가라는 법도 없잖소?”
“아, 젠장! 그렇긴 한데 내가 몸이 두 개가 아니니 한쪽에 걸고 도박하는 수밖에.”
“맘대로 하쇼.”
그렇게 도뷜의 도둑 잡기 계획은 그렇게 단순하고 미련하게 시작되었다.

넬리에는 청순한 여행객의 모습으로 단정하게 차려 입고 금괴는 꽁꽁 숨겨 둔 채 길을 나섰다.
듣기에 테로이실 자작인가 하는 신흥 귀족의 전령으로 백작성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괜히 눈물을 쥐어짜며 통 사정을 해서 병사라도 동원해 성안을 수색하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때문에 길을 서둘러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내심 아직까지는 어제의 작부로서의 모습과 오늘의 청순한 소녀의 모습을 같은 사람으로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익숙한 길을 타기 시작하면 로쉬엠까지는 별 문제 없이 잘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넬리에는 북동쪽 문으로 나가는 육로를 택했다.
문제는 그곳에서 젊은 여자라면 무조건 잡아 칠 태세로 도뷜이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넬리에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약간은 경쾌하고 흥겨운 발걸음으로 성문을 향했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돌아, 조그마한 ‘늙은 여우 광장’을 지나면 바로 북동쪽 성문이었다.
거창한 이름 없이 그저 ‘북동문’이라 불리는 성문이었는데, 루비외넨 성의 뭍길로 통하는 유일한 성문이었기 때문에 강을 건너는 나루를 이용하지 않는 여행객들은 이 성문으로 드나들 수밖에 없었다.
흥겹게 성문으로 향하던 넬리에가 도뷜가 눈이 마주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사나운 눈매로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도뷜을 넬리에는 금방 알아보았다.
커다란 키에 우람한 근육, 약간은 멍청해 보이는 흐리멍텅한 눈, 그리고 진창에 굴러 엉망이지만 무릎께 찬 경갑(脛鉀)과 가죽으로 엮은 흉갑(胸鉀)이 어제의 그 호구가 확실했다.
‘아, 이런! 여기서 죽치고 기다릴 줄은 몰랐는데.’
당황한 것도 잠시, 이런 일에 있어서는 전문가나 다름없는 넬리에는 오히려 뻔뻔스럽고 당당한 걸음으로 성문의 경비병에게로 향했다.
“아저씨. 테실 영지까지 가려고 하는데……. 그곳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셔서요. 부모님이 할아버지를 돌보라고 저를 보내셨어요. 그런데 급하게 나오느라 통관에 필요한 허가증 같은 것을 하나도 못 받아서…….”
갈색 머리를 뒤로 틀어 묶은 귀여운 소녀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말하자, 도뷜과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경비병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어서, 어서 가봐. 할아버지가 편찮으신데 길을 서둘러야지. 테실이면 멀지 않으니 열심히 걸으면 저녁쯤에는 도착할 거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시는데 이거라도 맛있게 드세요.”
넬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서는 품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경비병에게 건네자 경비병의 얼굴은 금방 함박웃음으로 뒤덮힌다.
“뭘, 이런 것까지. 어서 가 보렴. 오는 길에 꼭 인사 건네주렴!”
기분이 좋아진 경비병은 이제는 웃기지도 않은 수작까지 부려 본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깔끔하게 잘 피해 나갔다고 생각한 넬리에는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서는 성 밖으로 나서며 흘끔 도뷜을 흘겨보았다. 그 호구는 미심쩍다는 듯 자기를 아직 살펴보고 있었지만 덤벼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긴가민가하고 있거나, 아주 같은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설사 나중에 알아채더라도, 지금 빠져나가서 동쪽의 숲길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녀를 찾아낼 방법은 없을 것이었다.
“거기, 아가씨. 나 잠깐 보지?”
그렇게 시원스럽고 경쾌하게 성문을 나서려는 찰나, 뒤에서 짜증나는 듯한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는다.
순간 흠칫한 넬리에가 뒤를 돌아보니, 웬 얍삽하게 생긴 수염을 기른 사내 하나가 그녀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입은 옷으로 보아 이 성문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루비외넨 성의 경비관(警備官)임에 분명했다.
사과 하나를 받아먹고 통행증 없는 소녀를 내보내 준 것에 대한 문책을 받을 것이 뻔하게 된 경비병은 부동자세로 땀을 삐죽거리며 흘리고 있었고, 경비관은 그 경비병과 넬리에를 번갈아 훑어보며 잘 걸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넬리에는 이 경비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잘못 걸렸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통행증 없이는 못 나가.”
“저는 자유민인데도요?”
“그러면 자유민이라는 신분 증명을 하라니까. 아까는 저 멍청한 경비병한테 말하길, 통행증을 발급 못 받았다며.”
넬리에는 대충 둘러대 보려 했으나 이미 경비관은 아까부터 상황을 쭉 지켜본 뒤에 나선 듯 보였다.
애초에 단속 안 한 것은 이걸 빌미로 삼아서 뇌물이라도 조금 뜯어 보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잘못 걸렸군.’
넬리에가 대충 눈치를 봐서 행낭에서 은화 몇 닢을 몰래 경비관의 손에 쥐어 주려는 때, 불상사는 찾아오고야 말았다.
“거기, 경비관님. 할아버지 간호하러 간다는 소녀인데 좀 봐주시지 그러시오?”
멍청하게 앉아서 넬리에가 어제의 그 술집 작부인지도 모르고 지나쳐 보낸 도뷜이, 괜히 쓸데 없는 정의감을 발휘해 예쁜 소녀를 보호하겠다고 경비관에게 덤벼든 것이다.
“자네는 또 뭔가? 지금 백작 각하께서 직접 이 루비외넨의 성문을 방비하도록 내게 주신 일을 감히 방해하는 건가?”
별 내용 없이 그저 왜 내가 뇌물을 받는 일을 방해하느냐는 뜻이었지만, 거창하게 백작의 이름을 들먹이며 어서 꺼지라는 소리도 내포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무식한 도뷜이 그런 말을 에둘러 들을 리가 없었다.
“아, 백작 각하께서도 할아버지를 간병하러 급하게 간다는 소녀를 붙잡지는 않으실 거요. 내가 보증하지.”
“니가 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테로이실 자작께서 직접 백작 각하께 전찰(傳札)을 보내시고자 수임한…….”
“일개 전령이로구만, 흥! 어디서 감히 수작을 부리느냐! 어서 꺼지지 못할까!”
도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경비관은 말을 잘라 먹고서는 도뷜에게 어서 꺼지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넬리에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사라지려고 했지만, 그새 괜히 경비관의 눈치를 아까부터 슬금슬금 보고 있던 경비병이 넬리에의 어깨를 쥐어 잡았다.
“미안하지만, 경비관님께서 보신 이상 그냥 보내 주기는 힘들겠구나. 부모님을 모셔 온 다음에 통행료를 지불해서 면장을 받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름 신경을 써 준다고 그렇게 말해 주는데 넬리에는 정말 기도 차지 않아 환장할 노릇이었다.
“위딜, 잘했다. 그 아이를 꼭 잡아 두도록. 그리고 너는 어서 꺼지지 못할까!”
경비관이 쥐고 있던 채찍의 끝으로 도뷜의 허리를 툭툭 건드린다.
은근슬쩍 도뷜의 신경을 자극하는 태도였다. 권위를 앞세워서 방해하지 말라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좀체 이런 것에는 개의치 않는 도뷜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에 대해 분개하고 말았다.
“당신 정말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구만! 할아버지를 간호하러 가겠다는 소녀를 어떻게 계속 붙잡아 두나?”
도뷜은 순간적인 분을 이기지 못하고 경비관의 목을 잡아챘다.
경비관은 지니고 있던 채찍을 차마 쓸 여지도 없이 도뷜에게 붙들리고 말았고, 그때부터 차마 눈 뜨고 못 볼 드잡이질이 시작되었다.
도뷜과 경비관은 서로의 멱살을 부여잡고 밀고 당기기를 거듭했다. 그러나 왜소한 경비관이 체격 건장하고 힘 좋은 도뷜의 상대가 되기는 힘들었다.
이내 나자빠져 뒹굴거리는 경비관에게 도뷜은 잠시의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틈을 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던 넬리에가 경비병이 붙들고 있는 어깨를 살짝 빼내어 몸을 튼 것은 그때의 일이었다.
“이봐!”
경비병은 순간 아차 싶어 그녀의 어깨를 다시 급하게 잡아챘다.
넬리에의 어깨에 매여 있던 행낭이 그 손길에 잡아채인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넬리에는 깜짝 놀라 그 행낭을 다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애를 썼다. 그러나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해진 경비병은 행낭을 절대 놓치려 하지 않았다.
행낭을 붙잡고 있는 이상 넬리에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러나 넬리에는 어떻게든 행낭을 챙겨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행낭에는 중요한 금괴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넬리에는 힘을 주어 행낭을 쥐어 채려 했다.
그러나 같은 순간, 경비병이 행낭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양쪽에서 당기는 힘을 받은 행낭은 결국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봉합된 부분이 뜯겨져 내용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
둔탁한 소리가 땅에 부딪혀 울리고, 넬리에는 순간 사색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