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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13장.
검은 모루의 딜라잇 듈람
도뷜의 실수로 인해 촉발된 일련의 사태로 인하여, 가장 이득을 본 것은 어쩌면 에딜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가구공 몇 명에 좋은 품질의 겔라하윈 가구를 얻으면 어떻게든 일을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이었으나, 이 일에 연류된 드워프 딜라잇 듈람의 신원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이 드워프의 이력이 에딜린의 마음에 쏙 든 것은 사실이었다.
과거의 불행한 행적으로 인한 범죄야 어쨌든 죗값을 치르면 될 일이고, 예전 노예로 노역하며 도제 생활을 하며 겔라하윈에서 갈고닦았던 가구 만드는 기술이 이제 때마침 에딜린이 계획하고 있던 가구 일에 써먹힐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딜라잇 듈람이 테로이실로 압송되어 오자마자, 에딜린은 이 꼬장꼬장한 드워프에게 바로 목재를 주어 가구를 만들어 낼 것을 지시했다.
드워프는 바로 목재의 결이 상하지 않게 잘 다듬어 말린 뒤에 조심스럽게 대패질로 다듬고, 노련한 솜씨로 잘 장식된 겔라하윈풍의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냈다.
“이, 이런 탁월한 작품이!”
이 노련한 드워프가 가구를 뚝딱거리며 만들어 가지고 오자, 가장 놀라며 기함을 토해낸 것은 부끄럽게나마 가구를 만들어 본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이제는 테로이실 가구 공방의 책임자가 된 제재소의 펠 영감이었다.
10년 노역형에 처해진 드워프는 그 펠 영감의 반응을 보고서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으쓱해하고 있었다.
“흠…….”
그러나 가구를 꼼꼼히 살펴보는 에딜린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가구는 분명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과 무늬로 장식되어 있었다.
목재가 최상급이 아닌 것을 감안해 볼 때,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겔라하윈의 솜씨 좋은 가구장이였다는 딜라잇 듈람이었지만, 에딜린의 눈에는 성이 차지 않았다.
이 이름 없는 산골 구석의 테로이실에서 대륙을 상대로 장사하는 겔라하윈의 가구와 경쟁하려면, 겔라하윈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기본적으로는 겔라하윈이 주도하는 유행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이 이제 드워프 하나가 늘고 노역형에 처해진 도뷜까지 포함해 8명이 된 나무꾼과 다 늙은 제재소 노인 펠, 거기에 이제는 이 일꾼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농노의 신분이 된 넬리에까지 11명으로 겔라하윈을 상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었다.
“이래서는 안 될 일이지.”
에딜린은 불편한 표정으로 자존심 센 드워프 딜라잇 듈람을 쏘아보았다.
“…….”
“목재의 상태를 감안했을 때 이 정도의 마감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네. 가구에 목재의 결이 잘 살아 있고 표면도 매끄럽기 짝이 없군. 그러나 너무 겔라하윈의 형식 그대로지 않는가. 이래서 테로이실의 이름을 걸기는 너무 아쉬워.”
에딜린이 칭찬을 하다 말고 딴죽을 걸고 넘어지자 딜라잇 듈람은 괜히 속이 상했다.
노예로 끌려가 이런저런 견제를 받는 통에 최고의 명장으로서의 인정을 받진 못했지만, 누구나 그가 겔라하윈의 가구장 중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을 지니고 있음을 대놓고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이 시골 자작이라는 애송이가 자기 작품을 품평하고 있다.
“……익!”
“뭐 할 말이라도?” 뭐라고 항변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자기 잘못 때문에 테로이실 자작에게 예속되어 노역을 하도록 벌받은 몸이었다. 거기에 내심 딸같이 생각하는 넬리에가 이 테로이실의 농노의 신분이 되어 버렸다.
“없…습니다.”
“그럼 다시 만들어 와 보시게.”
이렇게 자부심 넘치는 검은 모루 일족의 딜라잇 듈람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아, 도대체 몇 번째냐. 허…….”
펠 영감의 제재소를 적당히 개조해 만든 가구 공방의 한 구석에 만들어 놓은 침대에 걸터앉은 딜라잇 듈람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벌써 에딜린이 자신이 만들어 간 가구를 혹평하며 쫓아 내보낸 것이 열댓 번째였다.
“힘내세요. 그래도 어떻게 생각하면 쫓겨다니며 전전긍긍할 때보다는 살 만한 것 같아요.”
드워프의 속도 모르고 멀건 스프를 쑤어 온 넬리에가 아픈 곳을 긁어 댄다.
이 아이는 뭘 모른다. 도대체 지금 이 상황이 겔라하윈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랑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철없는 인간 계집애야. 지금 나는 이렇게 내 실력에 대한 대접도 못 받고 안목도 없는 귀족 나부랭이가 시키는 일만 죽어라 의미 없이 하고 있고, 너는 평생 여기서 죽이나 쑤게 생겼단 말이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예전에 보발 언덕에서 밥 빌어먹을 때보다는 괜찮은 걸요.”
“그래, 그래……. 좋을 대로 생각해야 맘이나 편하지.”
딜라잇 듈람은 넬리에가 쑤어 온 수프를 후루룩 마셔 버리고서는 자리에 벌렁 누웠다.
하루종일 목재를 다듬고, 가구의 틀을 짜고, 조각을 하는 일을 반복 하다 보니 몸의 온갖 곳이 결려 오지 않는 데가 없었다.
작은 키와 두툼한 장딴지는 오랜 기간 작업을 하는 신체를 지탱해 주는 데에 좀 유리한 편이었지만, 완력 좋으면서도 섬세한 손으로도 종일 혼자서 작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성긴 잿빛 수염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망치를 두드려 대고 끌로 쪼아 대도, 그렇게 성의 있게 만들어 간 작품을 테로이실 자작이라는 애송이는 그저 콧방귀 뀌며 돌려보낼 뿐이다.
“아이고, 허리야.”
짤막한 팔로 두툼한 등 뒤를 두드려 보려 해도 닿지 않는다.
이렇게 허리가 결릴 때만큼 드워프의 신체가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다.
“어머, 호호!”
넬리에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더니 웃어 댄다.
“웃지만 말고 좀 와서 허리라도 두들겨 줘.”
“그럴게요.”
넬리에가 지근지근 허리를 두들겨 주자 딜라잇 듈람은 조금 편해진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낫네.”
“도대체 드워프들의 신은 이렇게 노동일 많이 하는 난쟁이들이 허리도 못 두드리게 몸을 만들어 주셨대요?”
“이 계집아. 어디서 율기트 님의 이름을 운운 해. 율기트 님은 다 이 드워프들이 노동의 가치를 느끼라고 이 못난 팔과 허리를 만들어 주신 거다.”
딜라잇 듈람은 오래전 부모님 에게 들은 말을 되 읊었다. 드워프 들이라고 왜 자기 허리를 못 두드리게 몸이 만들어 졌는지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항상 광산을 캐고, 쇠를 담금질 하고, 조각을 하고……. 망치와 끌을 떼어 놓고서는 드워프의 삶을 논할 수 없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면 온 몸이 노곤하고, 거기에 허리가 아파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무지 드워프의 손은 자기 허리에 닿지 않는다.
종족 특성상, 드워프는 배가 불룩하고 팔이 짧다. 배가 앞으로만 부르지는 않으니, 옆구리 살도 두툼하기 짝이 없는데, 나이 서른 넘은 드워프 치고 살이 오르지 않는 이를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 팔로는 허리를 두드려 댈 수가 없다.
그러다가 고민해서 생각해 낸 변명이라는 것이, 망치와 드워프의 신 율기트는 드워프들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알려 주기 위해 드워프들에게 이런 몸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인간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그건 노동의 신성함을 알려 준다기 보다는 노동을 싫어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넬리에도 드워프 손에 자라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은 인간이다. 거기에 놀기 좋아하는 젊은 여자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냐. 그만 두드리고 어서 가서 잠이나 푹 자 둬라.”
또다시 하루가 지나가지만 장년의 드워프 딜라잇 듈람이 팔자 펴질 날은 아직 멀어 보였다.
딜라잇 듈람이 하루하루 고된 날을 보내는 동안, 에딜린도 다른 궁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뛰어난 드워프 가구장이인 딜라잇 듈람이 만들어 오는 가구를 보았지만, 뭔가 획기적으로 테로이실의 명산품으로 만들 만한 힘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이대로도 겔라하윈식 가구의 쓸 만한 대용품으로서 적어도 아뎀데나펜의 귀족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겠지만, 이 척박한 테로이실 영지에 사람을 유인하고 재화를 끌어 모을 파급적인 상품이 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애초에 딜라잇 듈람과 다 늙은 펠 영감 둘이서 생산해 낼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펠 영감의 손재주는 딜라잇 듈람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에는 딜라잇 듈람 혼자서 가구를 계속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거 정말 골치 아프네. 그런 겔라하윈 가구의 모조품 같은 것만 찍어 내는 걸로는 부족한데…….’
그래서 아쉬운 대로 뭔가 방법을 찾아보려 에딜린은 펠 영감을 대동하고 주변 산을 헤집기를 반복했다.
좀 더 가구로 만들기에 좋은 나무를 찾을까해서였다.
“여기도 다 비슷한 나무들의 군락이군.”
“테로이실 계곡 주변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품종은 비슷비슷 합니다. 예전에 살펴보셔서 아시겠지만, 가구의 재료로 쓸 만한 나무들은 이것들이 전부입니다요.”
펠 영감의 씁쓸한 말에 에딜린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테로이실 계곡 주변에서 나는 나무들의 질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에딜린이 처음에 가구 산업을 생각했을 정도로 좋다면 좋은 편이었다.
다만 문제는 최상급의 나무는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대륙 전체에서 최고급 목재를 긁어모아 최고의 드워프 장인들 손에서 가구를 생산해 내는 겔라하윈의 가구 공방들이랑은 애초에 경쟁이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아쉬운 대로 산을 한 바퀴 둘러보고 한숨만 내리쉬고 나오는 길에, 산 터럭 한쪽에 가늘고 엉성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옻나무입니다요. 가구의 재료로는 도무지 쓸 수도 없을 뿐더러, 괜히 건드렸다가는 독이 오르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요.”
펠 영감은 에딜린의 시선이 옻나무에 가서 머물러 있자 손사래를 쳤다.
옻나무는 그저 야산을 차지하고 있는 쓸모없다 못해 건드리면 독까지 오르는 수종일 뿐, 도무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옻나무란 말이지……?”
“예?”
“아닐세. 일단 좀 가까이 가 보세나.”
그러나 에딜린의 생각은 좀 달랐다.
당연히 쓰임새를 모르면 그것의 귀함도 모르는 일이다. 그간 가구의 재료만 찾아 다니느라 염두에 두지 못했던 옻나무였다.
그러나 이 옻나무라면 뭔가 특별한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옻나무에 누구나 독이 오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거야 그렇습지요. 독이 오르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펠 영감은 어떤가?”
“저야, 예전에 나무를 찾으러 젊은 시절 산을 탈 때도 옻나무에 쓸리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었습니다요.”
“옻나무의 수액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은 있는가?”
“아, 그 찐득찐득 하고 시커먼 그놈 말씀하시는 겁니까요? 본 적 있습죠, 있습니다요. 나무 수액 중에서도 그만큼 진한 놈도 드물 겝니다. 거기에 잘못 건드렸다가는 독이 잔뜩 오르니 함부로 건들려고 하지를 않습죠.”
에딜린이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옻나무의 수액이었다.
밤나무 골 서쪽 야산의 터럭 너머에 자생 군락을 형성한 이 옻나무들은 대체적으로 수령이 10여 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것들로, 옻나무 수액을 뽑아내기에는 충분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 옻나무 수액은 바로, 옻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칠(漆)이라고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동양에서 목재를 마감하는데에 많이 사용했던 일종의 코팅재였다.
이 공정을 거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칠기(漆器)로, 도자기와 함께 근세 유럽에서 대유행을 떨쳤던 동양산 물품이었다.
“이 수액을 좀 채취해 볼 수 있겠나?”
“도대체 이 몹쓸 진액은 뽑아서 무엇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두고 보면 알게 될 걸세.”
옻나무를 두드려 보며 흘러나오는 진액의 상태를 확인한 에딜린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돌파구가 생긴 것이다.
덧붙여 다행이게도 에딜린 또한 옻독은 오르지 않았다. 옻독을 앓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아, 하나가 끝나면 하나가 닥쳐 온다더니.”
어느 날 갑자기 에딜린이 만들어 온 가구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기에 기분이 좋아졌던 딜라잇 듈람은 또다른 시련을 맞이하고야 말았으니, 가구 공방에 한 가득 쌓이게 된 옻에 잔뜩 독이 오르고야 만 것이다.
피부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간지럽다 못해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가 되고서야, 딜라잇 듈람은 그 원인이 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 틀림없어. 금괴 하나 탐한 죄가 이리도 크단 말이던가.’
금괴를 탐한 죄는 매우 큰 것이었지만, 그게 도리어 작아 보일 정도로 그만큼 옻독은 괴로운 것이었다.
“……흐으, 도대체 이 몹쓸 찐득이들을 어디다 쓴다고……. 헉!”
공방의 문이 열리고 옻을 잔뜩 짊어진 사내가 들어온 것은, 딜라잇 듈람이 온몸을 긁어 대며 불평을 해 대고 있을 때였다.
상체를 벗어젖히고 종일 짜낸 옻나무 수액을 담은 나무 통을 들고 들어오는 것은 바로 도뷜이었다.
루비외넨 성에서 친 사고로 인해 자경단장 노릇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고, 삼림 벌채꾼으로 2년간 복역하게 된 것이었다.
하는 일이 자경단원 노릇에서 옻나무에서 옻을 뽑아 내는 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생활이 바뀐 것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가 루비외넨에서 친 사고는 테로이실 계곡 전체에 소문이 나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 솔직히 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원체 시원하고 뻔뻔한 성격인 도뷜은 이제는 웃음을 되찾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옻나무 수액을 뽑아 대고 있었다.
그게 좀 지나쳐서 문제지만 말이다.
“이놈의 멀대 같은 자식아. 그놈의 독물은 그만 뽑아 대란 말이다. 아니면 밖에 좀 쌓아 놓던가. 내가 죽겠단 말이다!”
딜라잇 듈람이 가렵다 미처 고성을 질러 대자, 도뷜은 보란 듯이 그 옻이 잔뜩 담긴 통을 딜라잇 듈람이 드러누운 침대 바로 옆에다 가져다 놓으며 놀려 대기 시작한다.
“그러게 누가 남의 멀쩡한 물건을 도둑질하랬소? 이 썩어 빠질 똥자루 영감아. 덕분에 같이 고생하고 있으니 불평불만은 하지도 마쇼.”
도뷜은 그 옻 통 위에 주저앉아서 침대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이 못난 드워프를 통쾌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는 영감이 아니라 아직 장년이다.”
“나이가 여든인데 말이요?”
“드워프 나이 여든이면 한창 팔팔거릴 때다.”
“그런데 옻독이 잔뜩 올라서 꼼짝도 못하고 계시는구만.”
“…….”
딜라잇 듈람은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는 듯 도뷜이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애초에 악연으로 맺어진 인연이니 사이가 좋을 턱이 없었지만 워낙에 성격이 털털한 도뷜이다 보니, 이제는 그냥 이 모난 성격의 드워프를 놀려 먹는 정도로 그냥 앙갚음을 대신하고 있었다.
“어머, 도뷜 왔구나.”
“어, 넬리에. 옻을 좀 더 가지고 왔어.”
“그래서 아저씨가 저렇게 몸이 벌게져서 돌아누워 있는 거구나.”
거기에 도뷜은 악연이라면 지독하게도 악연인 이 넬리에와 친해져 있었다.
도뷜이 주머니를 털린 사정만 없다면, 이 싹싹하고 기분 좋은 여자애는 도뷜과 죽이 잘 맞고도 남았을 것이다.
처음에 공방에 나무를 해서 가져다줄 때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만 미운 얼굴도 보면 볼수록 정이 든다고, 어느샌가 말을 터놓고 시시덕거리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도뷜은 자기 잘못도 있는 일이니 언제까지고 이 드워프와 넬리에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넬리에, 그놈 좀 쫓아내!”
괜히 심통이 난 딜라잇 듈람이 넬리에에게 쏘아붙일 정도로 이제는 두 사람이 합심해 이 드워프를 잘도 골려 먹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옻은 왜 계속 가져다 놓는 거래?”
“영주님께서 어디다 쓴다고 하시더라고. 이 옻으로 가구를 칠할 거라고 하시던데.”
“우리 똥자루 아저씨만 이제 죽어 나시겠구만.”
“만드는 가구마다 이제는 옻칠을 해 댈 텐데 견뎌 내기는 하겠소?”
아주 이제는 대놓고 이 불쌍한 드워프를 골려 먹으려고 물어 댄다.
딜라잇 듈람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가만히 누워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끓는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대 맡에 걸터앉은 도뷜과 넬리에는 시시덕거리느라 더 이상 딜라잇 듈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래서 딸년은 키워 놔도 소용없다더니……. 으, 간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