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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에딜린은 루가멜 사도레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기억을 잃고 벙어리 신세로 로쉬엠의 빈민촌을 전전하던 당시 루가멜 사도레에게 남색 상대로 팔려 갔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다.
“루가멜 사도레만큼은 안 됩니다. 그 사람의 소문은 저도 익히 들었어요. 그렇게 인정 없는 사람이 재산을 모으는 것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루가멜 사도레가 취급하는 가장 중요한 품목들이 겔라하윈에서 수입해 오는 고급 제품들이고, 그중에서도 가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어차피 우리 물건을 팔려면 루가멜 사도레와 맞설 수밖에 없다.”
포 마델은 좀 더 현실적인 이유에서 에딜린의 말에 동의했다.
“흠…….”
“내 생각에는 가장 큰 상회인 기쉬 상회는 어떨까 싶다. 여러 대귀족들과도 연이 잘 닿아 있고, 옛 내전에서의 선출파 귀족이든 승계파 귀족이든 할 것 없이 교묘하게 중간에서 줄다리기를 잘해 와서 왕국의 동부에서 서부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손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제 생각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포 마델은 가끔 에딜린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에딜린의 뛰어난 판단력과 머리를 믿기에 항상 그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었다.
설사 포 마델이 경청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일은 영주인 에딜린이 결정할 사안이었다.
때문에 포 마델은 에딜린이 제시하는 안들이 합당하다면―거의 그래 왔지만―어떤 방면으로든 도울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대규모 상단에 영지의 칠기 가구를 공급한다면 원체 취급 품목이 많기에 굳이 주력으로 삼을 이유도 없고, 따라서 생각보다 판로 개척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영지에서 공급해 주는 물품에 사활을 걸 정도로 도전적인 중소 규모의 상단이 더 적합할지 몰라요.”
“때마침 적당한 상단이 있기는 하다만.”
“어떤 상단인가요?”
“적당히 연줄 있고 적당히 규모 있고, 적당히 신용 있고, 문제는 늘 적당해서 문제인 상단이긴 하지.”
“말씀해 보세요.”
“제게쉬헴 출신의 뱃사람인 리쉬 빈센이 일으킨 상단이다. 로쉬엠에서 여러 연안 항구들을 거쳐 제게쉬헴까지 가는 항로를 독점하며 성장한 사람인데, 최근에는 제게쉬헴 백작에게 면장을 사서 아주 독립한 뒤에 상선의 규모도 늘리고 로쉬엠에도 상관을 세워 내륙 무역에까지 뛰어들고 있다. 은룡해에 수천 년간 지속되던 폭풍이 멎으면서 가장 이득을 보게 된 사람이지.”
리쉬 빈센의 이름도 기억 저편에서 기억이 났다. 기억이 맞다면 은룡해에서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태워졌던 참나무호의 선장이 리쉬 빈센이었다.
서해기사단과의 싸움에서 얻은 얼굴의 상처를 실룩이며 웃던 시원하게 생긴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은룡해의 폭풍이 멎게 돼서 성공 길에 올랐다구요?”
“내 생각에는 아이로에메께서―신께서 그 위대한 이름을 늘 지켜 주시길―자연으로 돌아가신 뒤에 밀집되어 있던 마나가 다시 흩어지면서 그것에 기인했던 폭풍이 은룡해에서 완전히 멎어 버린 듯하다. 그것이 벌써 몇 해 전의 일이니 그렇지 않아도 폭풍을 감수하고 그 항로를 다니고 있던 리쉬 빈센이 물 만난 고기처럼 기회를 잡은 것은 당연하지. 그래도 그간 쌓아 온 신용이 큰 몫을 하긴 했지.”
에딜린이 기억하기에도 리쉬 빈센은 속물적일지언정 적어도 거짓부렁은 없던 사나이였다.
“리쉬 빈센의 상단 이름이 뭔가요?”
“참나무 상회라고 들었다.”
“연락해 볼 방도가 있을까요?”
“외달뵈스에도 얼마 전에 상관이 열렸다고 하니, 그곳의 객주에게 한번 연통을 넣어 보는 것이 어떠냐? 바쁘지 않다면 물품을 살피러 조사원을 보내올 거다.”
참나무 상단의 외달뵈스 상관 객주인 노이 트라이보위는 테로이실에서 사람이 와서 칠기 가구를 팔아 보는 것이 어떻냐고 하기 전에, 이미 그 가구에 대해서 소문을 듣고 있었다.
루비외넨 백작에게 들어간 그 칠기 가구가 뛰어난 품질이라고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딸인 루이나 영애가 그 가구에 홀딱 반해서 집안의 가구를 테로이실 제품으로 교체하고 있다는 말까지도 말이다.
대형 상단과 경쟁하기 위해서 신생 상단인 참나무 상회는 이런 시시콜콜한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잖아도 알뵈스 섬의 입구인 이곳 외달뵈스에 상관을 열어 놓고도 마땅한 일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노이 트라이보위는, 그 가구의 품질이 그저 소문이라고 할지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직접 쫓아가 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던 차에 오히려 테로이실 영지 쪽에서 먼저 자신에게 연통을 넣어 오니 잘됐다는 생각에 바로 테로이실 자작령으로 달려갔다.
“…….”
그리고 늘 처음 테로이실의 초라한 가구 공방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과 똑 같은 반응 보이고 말았다.
도저히 자작령의 수읍(首邑)이라고는 부를 수도 없는 이 조그마한 밤나무 골을 두른 목책 아래에 얼기설기 엮은 너와집이 바로 그 가구를 만들어 낸다는 공방이었다.
“천천히 살펴보시오.”
그러나 젊고 잘생긴 영주는 이런 초라한 시설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듯, 오히려 태연하게 노이 트라이보위에게 내어 보이고 있었다.
노이 트라이보위는 슬슬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이왕 온 것, 적당히 나쁘지 않으면 가구를 매입할 작정이었다.
“……!”
그러나 들어가서 가구를 본 순간 노이 트라이보위의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들고 나가든 신경 쓰지 않고 가구를 짜내고 있는 것은 분명히 드워프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양식의 유려한 가구는 다시 곧 손재주 있어 보이는 노인의 손에 의해 옻칠이 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같이 세워진 무두장과 염료 공방에서는 고급의 피혁을 생산해 내서 그 가구에 필요한 부분에 덧대고 있었는데, 비록 소규모의 공방이지만 그 품질만큼은 그간 보지 못했던 정도의 최고급품이었다.
“이 정도일 줄은…….”
노이 트라이보위의 입이 결국 떡 벌어지고 만다.
“어떤가? 마음에는 드신가?”
에딜린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트라이보위에게 묻는다.
“그렇다마다요. 저희 외달뵈스 상관, 아니, 참나무 상회 전체에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부디 다른 곳과 계약을 하지 않으셨다면 저희에게 전매권을 주십시오. 자작님.”
계약 조건이 어떻든 지금은 흥정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 노이 트라이보위의 생각이었다.
괜히 어물쩍 저울질을 하다가 다른 곳에 이 가구가 넘어가 버린다면, 우선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참나무 상회의 외달뵈스 상관은 한동안 일거리가 또다시 없을 것이 분명했고, 더군다나 이런 고품질의 고급재의 판매권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큰 상회로 거듭나고자 하는 상단주 리쉬 빈센에게 빈축을 살 것이 틀림없었다.
“전매권까지는 좀 힘들 것 같소만.”
“2년 계약으로 해 주시면 됩니다. 저희도 그 이상은 안 바랍니다. 어차피 생산량에도 한계가 있으니 여러 상단에 주시면 그것이 오히려 손해입니다.”
그래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노이 트라이보위의 계산은 재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제안은 일정 부분 에딜린에게도 합리적인 것이었다.
“좋소, 그렇다면 2년 한정으로 하지. 그리고 원가를 제외하고 마진은 6:4로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 어떻소?”
“그렇다면 영주님 측이 6을 가지시는 겁니까?”
“그렇소.”
“좋습니다. 계약서는 제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노이 트라이보위는 들뜬 얼굴을 감추지 않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다음 빠른 걸음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물러 나갔다.
상회의 각 지점에 나가 있는 상관의 책임자들은 이렇게 긴급한 사안에 대해서 전결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문에 직접 조건을 제시하고 협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까다로운 리쉬 빈센에게 이 일을 보고했더라면 6:4가 아니라 5:5로 이익 선을 맞추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15장.
영지 개발에 뛰어들기
참나무 상회를 통해 팔리기 시작한 테로이실의 칠기 가구는 이내 아뎀데나펜 동부와 남부에서 큰 호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외달뵈스까지 육로를 통해 옮겨진 가구는 그곳에서 배를 통해 선적되어 로쉬엠에 있는 참나무 상회의 경매장으로 옮겨진 뒤, 그곳에서 경매를 통해 판매되고 있었다.
테로이실의 칠기는 오로지 로쉬엠의 참나무 상회의 경매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는데, 애초에 드워프 한 명이 짜내는 가구의 수량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테로이실 칠기는 공을 들여서 최고급품으로 만들어 낸 탓에 경매장에서 엄청난 값이 매겨지기 일쑤였는데, 가구 자체도 기존의 고급품이라 여겨지던 겔라하윈의 가구 양식을 탈피한 데다가, 가구에 윤택을 더해 주는 동시에 수명을 늘려 주는 옻칠이 더욱 가구를 가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판매된 테로이실 가구는 아뎀데나펜의 제귀족(諸貴族)들과 로쉬엠의 부호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테로이실산 칠기 식탁, 금화 10딤닛에서 시작합니다!”
“12딤닛!”
“15딤닛!”
“30딤닛!”
경매원이 처음의 가격을 부르자마자 여기저기서 가격을 높여 호가(呼價)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팔 지경인 것이다.
“생각보다 높은 값으로 팔리고 있군.”
경매를 지켜보던 참나무 상회의 상단주 리쉬 빈센은 나직한 목소리로 옆에 앉은 노이 트라이보위에게 속삭였다.
노이 트라이보위는 이번에도 직접 테로이실에서 가구를 실어다가 로쉬엠으로 가지고 들어왔는데, 매번 상당한 이익을 남겨서 리쉬 빈센에게 요즘 들어 신임을 받고 있었다.
“테로이실 자작 에딜린 가쉬엘레딘 님은 신흥 귀족이시라더니, 아무래도 다른 귀족들에 비해 생각이 유연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공예품을 영지의 돈줄로 만들 생각은 아무나 못하지요.”
이런 기회를 잡게 해 준 에딜린은 노이 트라이보위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의 입에서도 에딜린에 관해서는 칭찬만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듣기에는 상당히 잘생긴 미남이라던데. 하여간 얼굴이 반반한 놈들이 재주도 좋다니까.”
“사실 영주의 재주가 좋다기 보다는 드워프의 손재주가 좋은 셈이지요. 그러나 이런 사업을 고안해 내는 머리의 단수가 확실히 높습니다.”
“언제 한번 그 영주님을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다.”
이제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노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리쉬 빈센의 말은 무게감 있게 들린다. 다만 말할 때마다 실룩이는 상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가 조만간 약속을 한번 잡아 보겠습니다.”
노이 트라이보위가 고개를 넙죽거리며 말하자, 리쉬 빈센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이내 두 사람은 경매장의 상황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격은 많이 올라가 있었다.
“80딤닛!”
“예, 80딤닛 나왔습니다. 더 높여 부르실 분 없습니까?”
“81딤닛.”
“83딤닛!”
10딤닛에서 시작해 83딤닛까지 올라간 가격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예! 83딤닛에 낙찰되었습니다. 낙찰받으신 분께서는 경매가 끝난 뒤에 현금으로 결재해 주시고 가구를 수령해 가 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은…….”
칠기 가구를 판 대금은 착실하게 테로이실 영지의 재정으로 편입되어 가고 있었다.
매달 거의 300딤닛 내외의 금화가 가구 대금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가구를 다섯 점에서 열 점 정도를 판 대금 치고는 매우 높은 값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수입을 늘리고 싶어도 지금도 밤낮으로 가구를 만드느라 기력을 소진하고 있는 딜라잇 듈람 하나로서는 생산력을 증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영지 재정이 매우 튼튼해졌어.”
포 마델은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며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영지에 비하면 많은 수입은 아니지요.”
만족스러운 표정의 포 마델과는 달리 에딜린은 내심 뭔가 아쉽다는 표정이다.
“루비외넨 백작의 연수입이 아마 3천 딤닛 정도 될 것이다. 매달 3백 딤닛의 수입이라면 연 수입이 루비외넨 백작의 그것과 맞먹는 수준이야.”
“인구 500의 자작령 치고는…….”
“그래. 인구 500의 자작령 치고는 대단한 수입이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에딜린은 아쉬운 대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는 법이 아닌가. 거기에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가난하고 사람 없는 영지에서 처음 시도한 일이었다.
“그냥 세금으로만 걷으면 영지 재정이 어느 정도였을까요?”
“내가 징세관 노릇 하던 시절에 매년 이 영지에서 걷어간 세금이 대충 30딤닛 정도였다.”
“…….”
“이래저래 별 볼일 없고 가난한 영지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것이 없을 테지.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지 않겠냐.”
포 마델의 희망적인 말에 에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마따나 사실상 지금부터가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에딜린은 어느 정도 자본이 축적되자, 우선은 가구 공방을 확대하는 일에 착수했다.
공방으로 사용하던 펠 영감이 얼기설기 지어 놓은 제재소 건물에서 숲과 가까운 곳에 새롭게 지은 건물로 공방을 옮겼다.
그곳에는 공방과 함께 염료 공방과 무두장도 딸려 오게 되었는데, 밤나무 골 서쪽에 있는 숲으로 올라가는 길에 그럴싸한 규모로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에딜린은 이곳 공방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높은 급료를 약속하고 기존의 주민들을 끌어들였다.
밤나무 골의 주민들은 그간 시원찮은 농사일이나 목축에 종사해 오고 있었는데, 매달 일곱 세겔의 은화를 급료로 준다는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일곱 세겔의 은화는 절대 적은 수준의 급료가 아니었는데, 거의 기술 좋은 직공이나 지방 유지격인 향사(鄕士)들의 수입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예전 에딜린이 루가멜 사도레에게 팔려 갔을 때의 몸값이 리겔 은화로 열 세겔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알뵈스 은화가 리겔 은화에 비해 값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높은 값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렇게 밤나무 골 성인 남성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는 80인의 인원이 확충되어 나무를 베고, 옻을 뽑아내는 일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젊은 영주님이 오고서 조금 형편이 펴기 시작하는 것 같아.”
“일이야 조금 고되지만, 더 이상 먹고 입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야 감지덕지지.”
“예전에는 몇 달을 일해야 겨우 만지던 돈인데, 이렇게 쉽게 돈을 벌게 되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수입이 늘어나니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공방이 확장되고 나무를 채벌하는 양도 늘어나기 시작하자 에딜린은 참나무 상회를 통해 로쉬엠에서 재능 있는 가구 직공이나 도제들을 수배해 고용한 뒤 딜라잇 듈람의 보조로 붙여 주었다.
딜라잇 듈람은 틈틈이 이들을 교육시키면서 이들에게 일을 보조하도록 했는데, 차츰차츰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앞으로는 상당히 체계 있게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일감이 좀 줄어서 다행이네. 휴…….”
파이프 담배를 빼어 물고서는 연기를 뻐금거리는 것이 유일한 낙인 딜라잇 듈람이었다.
“아저씨 얼굴이 좀 좋아 보이긴 하네요.”
“휴, 그놈의 영주가 나를 그저 피 말릴 때까지 부려 먹을 줄 알았더니, 요즘에는 담배며 맥주도 쥐어 주고, 일 같이 하라고 사람도 붙여 주니 좀 살 만하다. 그래도 노예나 다름 없긴 하지. 그놈의 가구가 대체 얼마에 팔려 나가는지 들었냐?”
넬리에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딜라잇 듈람은 여전히 입에 붙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정말 거창한 불만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저 습관적으로 해 대는 그런 것이었다.
“금화 수십 닢이라면서요.”
“그러게 말이다. 흥! 그런데 내 대우는 아직도 찬밥 신세야.”
“그야 잘못을 저지르고 노역 생활을 하시는 상황이니 그렇지요.”
“……너는 아니냐?”
“…….”
딜라잇 듈람을 놀리다 보니 넬리에 자신의 처지도 같은 상황이었다.
요즈음 분위기 좋은 작업장에서 요리를 해 주며 벌목꾼들에게 예쁨을 받다 보니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 영주 소유의 농노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깜빡하곤 하는 그녀였다.
“그나저나 요즘 그 멍청한 멀대 자식은 왜 안 보이냐?”
“도뷜이요? 요즘 새벽부터 제일 먼저 나가서 옻을 뽑고 나무 베기 시작해서 해가 지고 나서야 들어와요.”
“안 어울리게 열심히 하는군.”
넬리에의 말 대로 도뷜은 속죄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매일같이 벌목꾼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일을 나가 오전에는 옻나무에서 옻을 긁어 내고, 오후에는 가장 깊은 산으로 들어가 질 좋은 나무들을 베어 오느라 해가 지고도 한참 뒤에나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다른 봉급을 받는 주민 출신의 벌목꾼들과 달리, 도뷜은 죗값을 치르느라 일을 하는 것이기에 잠자리와 세 끼의 식사 말고는 받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음에도 잘못을 뉘우치겠다며 순순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도 너무 도뷜에게 떽떽거리지 마세요. 솔직히 우리 때문에 덤터기 쓴 건 도뷜 아니겠어요.”
“이 계집애가. 그 멍청한 자식이랑 친해졌다고 이제는 아주 역성들고 나서는구나.”
“하여간, 아저씨 그 모난 성격도 문제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