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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성공했다!
수명은 10년 정도 줄어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폐인이 되거나 주화입마에 빠져들지 않았고 단전을 만드는 것도 성공했다.
비록 작고 초라한 단전이었으나 이제 단전이 생긴 이상 진기요상술을 펼칠 수 있었다.
모용명은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을 통해 망가진 폐로 진기를 보냈다.
재빨리 진기요상술을 펼쳐 폐의 혈맥을 뚫었고 드디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후우…….”
본격적인 치료를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부터 전신의 혈맥을 뚫고 썩고 있던 장기를 회복시켜야 했다. 모용명은 밤을 지새우며 오직 운기에 매달렸다.
꼬기오!
그러나 새벽닭이 울 때까지 겨우 내상의 3할(30%)밖에 치유하지 못했다. 내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부상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다시 역기충혈대법을 쓸 수는 없었다. 좀 전의 경우, 어차피 죽을 상황이라 사용하긴 했지만 주화입마에 걸릴 확률이 7할(70%) 이상이라 너무 위험천만했다.
게다가 위험성과는 별개로 반드시 10년의 수명이 줄어드는 마공이었다.
“날이 밝으면 공개 처형을 당하게 될 텐데 큰일이군.”
이렇게 된 이상 몸이 회복되지 않아도 탈출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 죽어 가는 노예 놈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감옥의 경계는 허술했다.
간수는 단 두 명뿐!
그마저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몸을 결박하고 있는 건 쇠로 된 족쇄가 아니라 단순한 밧줄이었다. 비록 밧줄을 자를 칼은 없지만, 모용명은 내공을 움직여 손목에 힘을 주었다.
몇 번 반복해 힘을 주자 손목의 결박이 느슨해졌다. 손이 자유로워지자 발목의 결박을 푸는 건 일사천리였다.
밧줄을 양손에 하나씩 움켜쥔 그는 철장 너머로 간수들을 노려보며 간격을 가늠했다.
다행히 밧줄의 길이는 충분했다.
휘이익―!
모용명은 밧줄을 채찍처럼 휘둘러 간수들의 목을 휘감았다. 그대로 힘껏 잡아당기자 목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우두둑―
비명 지를 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간수들을 해치웠지만, 그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내공 문제야 당장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움직임이 너무 둔해졌다. 역시 몸이 바뀌어서 그런 건가?’
새로운 몸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어쨌거나 그는 밧줄을 잡아당겨 간수를 끌어온 후 호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냈다.
찰깍―
자물쇠를 열고 철창 밖으로 나오자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이 그를 향해 외쳤다.
“이봐요! 나도 풀어 주시오!”
“구해 주세요!”
관찰하듯 그들을 한차례 훑어본 모용명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게 구는 놈은 풀어 주지 않겠다.”
“…….”
모용명은 망설이는 기색 없이 철창을 자물쇠를 죄다 열어 버렸다.
그들을 풀어 준 이유는 단지 미끼로 쓰기 위해서였다. 죄수들을 풀어 주면 추격자들의 시선이 분산될 것이다.
“고맙소!”
죄수들이 그에게 인사를 했지만, 모용명은 그들을 상대하는 대신 벽에 걸린 기름등잔을 뽑아 들고 간수들의 짐을 향해 던졌다.
화르륵!
불꽃과 연기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갑자기 불을 지르다니 무슨 짓이요?”
“이곳저곳에 불을 질러! 불을 끄느라 조금은 추격이 늦춰질지도 모르니까.”
“아! 그렇군요.”
간수의 옷을 모조리 벗겨 낸 모용명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모자까지 눌러쓰자 이마에 새겨진 노예의 낙인이 가려졌다.
무엇보다 기분 좋은 것은 간수가 가지고 있던 검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그가 쓰던 검보다 무겁고 투박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모용명은 죄수들이 우르르 몰려나간 후에야 움직였다.
조급함을 참지 못해 먼저 나간 놈들은 미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죄수들은 곧 병사들에게 제압되고 말 테니 시간적 여유는 별로 없었다.
‘죄수들이 복도로 나갔으니 난 벽을 타고 내려가야겠군!’
검을 휘둘러 나무 창살을 부셔 버린 그는 비좁은 창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의 10장(약 30미터) 정도 되는 높이였다.
아직 이른 새벽인데다가 구름이 달을 가려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밧줄에 의지해 아래로 내려가던 모용명은 뒤늦게 로프의 길이가 조금 짧다는 것을 느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벽호유장공을 펼쳐 벽을 타고 내려갔다.
벽돌들 사이에 틈이 있는데다 3장(약 9미터)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아서 곧 어렵지 않게 바닥에 내려섰다.
정작 어려운 것은 이제부터다.
들키지 않고 말을 탈취하는 것이 그의 1차 목표였는데, 이동하는 도중에 병사들을 만나면서 일이 어그러졌다.
“멈춰라! 이 시간에 어딜 돌아다니는 거냐?”
“너는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냐?”
간수의 옷을 훔쳐 입었기 때문인지 다행히 그들은 탈출한 죄수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병사는 모두 다섯! 해치우고 마구간으로 빠르게 이동하자!’
모용명은 바닥을 박차며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슈아아아악― 파앗!
그의 검이 단숨에 병사의 목을 갈라 버렸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 병사들이 미쳐 반응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잘린 목에서 시리도록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온 후에야 그들은 다급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적이다!”
“모두 공격해!”
모용명이 다음으로 노린 상대는 황급히 입에 뼈 피리를 문 병사였다.
병사는 위급함을 알리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나 피리를 불기도 전에 모용명의 검이 날아와 그의 목에 틀어박혔다.
파악!
“억!”
빈손이 된 모용명에게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휘둘렀다.
그는 뒤로 물러서는 대신 가문의 절예인 두전성이(斗轉星移)를 펼쳤다.
샤아아―
눈에 보이지 않는 신묘한 힘이 그들을 한차례 휩쓸었다.
채앵!
금속성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병사들의 무기가 서로 맞부딪혀 불똥을 사방으로 튀겼다.
“어…… 엇?”
“으앗! 왜 나를 공격하는 거야?”
엉뚱하게도 병사들의 검이 도중에 방향을 바꾸며 동료를 서로 공격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어째서 갑자기 자기네끼리 검을 맞부딪치게 되었는지 영문을 몰라 몹시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는 바로 상대의 힘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두전성이의 위력인데 상대의 힘을 교묘히 되돌려주거나 힘의 방향을 비틀어 버리는 무예다.
‘내공이 너무 부족해서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군!’
모용명은 원래 두전성이를 펼쳐 병사들이 서로 죽이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공이 받쳐 주질 않아 원래의 신묘함이 사라지고 가벼운 상처를 입히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으윽…… 어떻게 된 거지? 마법인가?”
“다들 조심해, 흑마법이다!”
마법사는 지극히 보기 드문 존재였다. 때문에 평민들은 마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암흑 교단의 흑마법사들은 시체와 피를 다루는 악랄하고 해괴한 마법을 펼쳤기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모용명은 그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재빨리 쇄심장(碎心掌)을 펼쳤다.
퍼억!
“크아악!”
쇄심장에 맞은 병사는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것을 느끼며 나가떨어졌다. 나머지 병사들은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었다. 모용명의 손바닥에 잠깐 붉은 기운이 어리는 신기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으으…… 진짜 흑마법사였어. 도, 도망쳐!”
“흐윽…… 다리가 안 움직여.”
그때 모용명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쇄심장까지 형편없어졌군! 정통에 맞고도 한참이나 숨이 붙어 있다니…….’
쇄심장(碎心掌)은 명중하면 반드시 심장을 파괴하는 무공으로 모용명이 스스로 창안한 독문무공이었다. 일단 가격당한 뒤에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쇄심장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높았다.
화가 치밀어 오르자 단전의 내공이 저절로 끓어오르며 모용명의 두 눈이 온통 붉어졌다.
그가 양강(陽剛)의 내공심법인 적양신공을 익혔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으앗! 부, 붉은 눈이라니…….”
“마, 마족!”
공교롭게도 마족의 특징이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이었기에 병사들이 그런 착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멋대로 지껄이는 소리에 짜증을 느낀 모용명은 그들을 향해 쇄심장을 날렸다.
슈아아― 콰앙!
“크아아악!”

가볍게 병사들을 해치운 모용명은 곧바로 마구간으로 향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병사들이 곳곳에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동원되었기 때문에 어수선한 상태였다. 흩어진 죄수들이 그가 충고한 대로 불을 지른 것이다.
모용명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기 위해 말고삐를 풀어 주고 마구간에 불을 질렀다.
히이잉!
불을 보고 공포에 빠진 말들이 미친 듯이 사방으로 달려 나갔다.
“엇? 마구간에도 불이!”
“말들을 잡아라!”
말은 원래 몸값이 매우 비싼 동물이다. 특히 군마들을 잃어버리면 자주 발생하는 영지들 간의 전투에서 매우 불리해진다. 때문에 병사들은 우선적으로 말들을 붙잡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그는 병사 한 명을 제압했다.
아혈과 마혈을 동시에 짚어 버리자 병사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져 쓰러지고 말았다.
병사로 위장한 모용명은 말들을 붙잡는 척하며 주위를 살폈다. 동쪽 하늘이 점점 밝아오기 시작했지만 평소와는 달리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죄수들이 탈옥했기 때문에 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성벽으로 올라간 뒤 벽을 타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영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등잔 밑이 어둠다고 근처에 숨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지만 모용명은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는 결국 부상이 낫지 않은 몸이라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강행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모용명은 난폭하게 날뛰는 말을 향해 뛰어들었다.
“헛? 위험해!”
날뛰는 말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는 묘기라도 펼치듯 아슬아슬하게 말의 발길질을 비켜내며 고삐를 움켜잡았다.
하지만 곧 날뛰는 말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땅에 질질 끌려갔다.
“이봐! 고삐를 놔!”
“저러다 사람 죽겠군!”
공교롭게도 말이 향하는 방향은 성벽 쪽이었다.
사실은 모용명이 은밀히 지풍(指風)을 날려 말을 조정한 것이다. 누가 봐도 말에 끌려가는 모습이었기에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성벽에 충분히 접근했다고 판단한 모용명은 슬쩍 말고삐를 놓아 버렸다.
“이봐! 괜찮아? 정신 차려!”
“안 되겠군! 일단 초소로 옮겨야겠어!”
제논은 원래 심한 매질과 고문에 엉망이 된 상태였으나, 병사들은 말에 끌려 다니다가 생긴 상처로 오인하고 그를 초소로 옮겼다.
원래 초소에 아무나 들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경비대장급인 기사들은 모두 영주의 저택으로 불려간 상태였다. 게다가 곳곳에서 일어난 소동으로 병사들의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
“그놈은 뭐야?”
“말발굽에 차여서 다친 모양이야.”
병사들은 그를 일단 성벽 초소에 옮겼다.
모용명은 완전히 의식을 잃은 척 숨을 죽이고 있다가, 호기심을 느낀 병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길 기다려 갑자기 공격을 펼쳤다.
“쇄심장(碎心掌)!”
붉은 빛이 번뜩이며 눈 깜짝할 시간에 일곱 번의 공격이 펼쳐졌다.
슈아아앙― 파앙!
“크아악!”
비록 이름값은 하지 못하고 갈비뼈를 부수는데 그쳤지만, 몰려 있던 병사 일곱이 거의 동시에 피를 쏟으며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그는 바닥을 박차고 초소 바깥으로 쏜살처럼 튀어나갔다.
“뭐야? 무슨 일…….”
초소 문 밖에는 비명 소리를 듣고 무심코 몰려든 병사들이 있었다.
모용명은 그들을 향해 다짜고짜 장력을 펼쳤다.
슈아아아아앙!
응축된 진기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붉은 빛이 터졌다.
콰앙!
뇌전이라도 터진 듯한 폭음과 함께 병사들이 성벽 바깥으로 나가떨어졌다.
“크아아악!”
까마득한 성벽 아래로 떨어진 병사들은 단단한 바닥과 부딪혀 몸뚱이가 터져 버렸다.
마치 잘 익은 토마토가 붉은 과즙을 쏟아 내며 터지는 광경을 연상시킨다.
성벽의 높이는 무려 4장(약 12미터) 남짓.
즉, 인간이 시각적으로 가장 공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높이다.
그러나 모용명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렇다고 아무 대책 없이 뛰어내린 것은 물론 아니다.
성벽 위에 밧줄을 걸어 두었기에 그의 몸은 2장(6미터) 내려가다 공중에 멈췄다.
“화살을 쏴라!”
“쏴 버려!”
누군가의 지시하에 병사들은 황급히 활시위를 당겼다.
쉐에에엑―
모용명은 성벽을 힘껏 박차며 화살을 피해 냈다. 로프에 매달린 그의 몸은 진자의 추처럼 흔들렸다.
원래 움직이는 목표를 화살로 쏘아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주위가 아직 어두운데다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은 정규병이라기보다 파수꾼에 가까웠기 때문에 활 솜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
병사들 중 하나가 밧줄을 끊으려고 다가왔지만, 그는 로프를 자르기 전에 성벽의 벽돌을 움켜잡는데 성공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벽호유장공을 펼쳐 벽을 타고 내려갔다.
그때 병사들이 다시 그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쉐에에엑―
위에서 아래로 쏘아져 내리는 화살은 눈부시게 빨랐다.
모용명은 왼손으로 단단히 벽돌을 움켜잡고 오른손으로 장력(掌力)을 쏟아 화살을 쳐 냈다.
파앗!
맨손으로 정확히 화살을 쳐 내자, 병사들은 기예에 가까운 그의 손놀림에 놀라 잠시 흠칫했다.
그사이 아래로 2척(약 60cm) 정도 더 내려간 모용명은 병사들이 다시 활시위를 당기기 전에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바닥과의 높이는 아직 14척(약 4.4미터) 정도 남아 있었으나, 그는 두전성이를 펼쳐 낙하 충격을 수평으로 분산시켜 부드럽게 착지했다.
덜컥!
그러나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성문이 열렸다.
판금갑옷을 착용한 기사가 거대한 양손검을 들고 그를 향해 곧장 돌격해 왔다.
슈아아아앙―!
그야말로 미친 들소처럼 맹렬한 힘이 담긴 츠바이핸더(Zweihader)!
거의 기습이나 다름없어 피할 틈이 없다.
모용명은 병사들에게 훔친 롱 소드를 휘둘러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콰앙!
무기가 부딪히자 뇌성벽력이라도 내려치듯 엄청난 굉음이 울리고! 엄청난 괴력에 바람에 휩쓸린 낙엽처럼 밀려난 것은 다름 아닌 모용명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파괴력은 오직 양손검이란 이점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건! 분명 내공(內功)이 실린 공격이다!’
테넨로베프 제국에도 내공과 비슷한 개념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만물의 근원인 기(氣)를 마나라고 지칭하며, 기사들은 내공심법과 비슷한 마나 코어(Mana―Core)라는 것을 익히고 있었다.
“흐아아아압!”
사내는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연속으로 검을 휘둘렀다.
슈아아아아앙!
검법 자체는 무척 단순하게 투박했지만, 어떻게 보면 거대한 츠바이핸더와 잘 어울려 위력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더없이 폭발적인 위력 앞에서 모용명은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상대보다 내공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전성이를 펼쳐 상대의 공격을 받아 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강맹한 공격을 오직 두전성이(斗轉星移)의 신묘함을 빌려 모조리 흩어 버린 것이다.
“이놈! 무슨 짓을 한 거냐? 혹시 넌 흑마법사냐?”
기사 크라이슨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흑마법사란 단어를 입에 올리긴 했지만, 지금까지 이런 괴상한 마법에 대해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피의 폭풍이라 불렸던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건가?’
용병 출신인 그가 기사 서임을 받게 된 것은 오직 뛰어난 검술 실력 덕분이었다. 기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크라이슨은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사내가 기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다.
두려움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 더욱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마치 물 먹인 솜을 후려치는 것처럼! 혹은 형태가 없는 구름을 후려치는 것처럼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모용명의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상대의 강맹한 공격을 기껏해야 콩알만 한 내공으로 받아 내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전성이로 상대의 힘을 분산시킬 때마다, 극도로 집중력이 소모되며 극심한 피로를 느끼게 되었다.
‘분하군! 이깟 삼류 무인 정도밖에 안 되는 상대에게 고전하다니!’
모용명은 극심한 치욕감을 느꼈다.
내공이 받쳐 주지 않은 두전성이로는 그저 적의 공격을 흘려 버릴 뿐, 반격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위력을 떨칠 수 없었으니 두전성이(斗轉星移, 하늘의 축을 뒤집어 별자리를 움직인다.)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정신 못지않게 체력도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모용명은 무자비한 고문과 부상을 입은 몸!
부상을 입은 몸으로 격하게 움직이다 보니 빠른 속도로 지치게 되었고 상처가 터지며 피가 쏟아졌다. 다만 두꺼운 옷이 상처를 가려 주었고, 약세를 감추기 위해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피를 너무 흘린 탓인지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그러나 모용명은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짜내 두전성이를 펼쳤다.
‘이대로 죽는 한이 있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리라!’
그는 치욕적으로 무릎을 꿇느니 싸우다 죽는 쪽을 선택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죽음을 각오하고 응전하던 그때 성문으로 내려온 병사들이 크라이슨을 돕기 위해 화살을 날렸다.
쉐에에엑―!
크라이슨 하나를 상대하기도 벅찬데 화살이라니!
끈질기게 버티던 모용명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 것 같았다.
그러나 화살을 보고 그의 얼굴에 오히려 화색이 돌았다.
사실 모용명에게 이것은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그는 재빨리 두전성이를 펼쳐 화살을 끌어들였다.
두전성이의 요체는 적의 힘으로 적을 상대하는 것!
맹렬하게 날아오던 화살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크라이슨을 향해 날아갔다.
“엇?”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크라이슨은 몹시 당황했다. 엉겁결에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파앗!
화살들은 그의 검에 가로막혀 튕겨나갔지만 그 순간 승부가 결정되었다.
순간의 빈틈을 노리고 날아든 모용명의 쇄심장!
슈아아아악―!
“크억!”
크라이슨 두터운 판금갑옷을 입고 있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갑옷은 멀쩡한 채 충격이 안쪽으로만 파고들었다.
그것이 쇄심장이 일종의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계열의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파앙!
요란한 파공성과 함께 갈비뼈가 모조리 부서져 나갔다.
이번 공격은 모용명이 사력을 다해 펼쳤기 때문에, 비록 심장을 파괴하진 못해도 심혈관을 압박하는 것은 성공했다.
심장이 일시적으로 멈추며 크라이슨은 온몸에 힘이 풀려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타앗―
그 틈을 타, 모용명은 경공을 펼쳐 울창한 숲을 향해 달아났다.
쉐에에엑―
그의 등 뒤를 노리고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순간 모용명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경공을 펼쳐 화살이 쏟아지는 범위를 벗어났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화살이 겉옷을 스쳤고 모용명은 숲 안쪽으로 멀리 몸을 빼내어 버렸다.
병사들은 결국 그를 놓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