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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는 황급히 오러를 끌어 올려 내부로 파고드는 충격을 막아 냈다.
모용명은 끊임없이 장력을 쏟아내 크라이슨을 몰아붙였다.
콰앙! 쾅!
“크윽!”
연속되는 공격에 내부로 충격이 누적되자 크라이슨은 답답한 신음을 뱉어 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방어에만 주력할 뿐 반격하지 않았다.
“이런! 발을 묶어 두려는 수작이었나?”
“이미 늦었다!”
덤불 속에 숨어 있던 기사들이 기습적으로 그를 포위했다. 모용명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단순한 놈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능구렁이였군. 이곳의 기사들도 공력(마나)을 쓸 수 있으니 곤란한 상황이다!’
내공이 부족해서 이들을 상대로 두전성이의 교묘한 재간을 펼치기 힘들 것 같았다.
실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때 기사단장 맥베스가 크라이슨을 향해 빈정거리듯 말했다.
“이깟 노예 놈에게 부상을 입다니…… 그동안 수련이 부족했던 거 아냐?”
맥베스의 말에 호응하듯 기사들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모용명의 그들의 태도를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 상황이 조금 묘하게 돌아가는데?’
비웃는 듯한 동료들의 반응에 크라이슨이 인상을 찌푸리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한 마법을 쓰는 자입니다. 얕보다간 큰코다칠지도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아무렴 조심해야겠지? 아차 하고 방심하는 순간 개구리가 될지도 모르니까.”
“하하하!”
맥베스는 의도적으로 크라이슨을 조롱하며 통쾌함을 느꼈다.
그가 보기에 모용명은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노예 놈에 불과했다. 게다가 오히려 동정심을 느낄 정도로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마법사가 되려면 적어도 수십 년은 고된 수련을 거쳐야 하는데, 저렇게 어린놈이 무슨 수로 마법을 쓴다는 말인가?’
애초에 그는 크라이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기사들을 동원해 잡으러 온 것은 영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과잉 충성을 한 것뿐이었다.
무릇 기사들이 출세하는 방법으로는 전공을 쌓는 방법과 영주의 신임을 얻는 방법이 있는데, 맥베스는 영주에게 아부하여 기사단장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제 노예 놈을 생포하기만 하면 오웬 영주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으음…… 날 얕보고 있는 건가? 이건…… 기뻐해야 하는 거겠지?’
모용명의 심정은 복잡 미묘했다.
얕보이고 있는 바람에 허를 찌를 기회가 생긴 것은 좋았지만, 이런 삼류 무사만도 못한 놈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되니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한편 크라이슨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였다.
‘젠장! 오크 머리통 같이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심각함을 인지 못하는 맥베스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이번에 또 사고를 치면 기사 자격을 박탈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상한 노예 놈을 잡으려면 동료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놈은 공격을 되돌리는 이상한 기술을 씁니다. 모두 동시에 공격해야 놈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노예 놈 하나 잡기 위해 우리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오우거라도 본 것처럼 말을 하는군! 언제 그렇게 소심해졌나?”
“하하하!”
맥베스의 조롱하는 말투에 기사들이 웃었다.
그러나 모용명은 크라이슨의 말을 듣고 안색이 굳어졌다.
‘놈의 말대로 모두 동시에 공격한다면 받아 낼 수 있을까? 내공이 너무 부족해 두전성이를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두전성이의 유일한 약점은 공력(功力)의 차가 너무 클 경우 교묘한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전투로 내공의 8할(80%)을 소모했다. 아홉 명의 기사가 동시에 힘을 합쳐 공격한다면 공력의 차이는 극명해질 것이다. 모용명은 2할(20%)의 내공만으로 받아칠 자신이 없었다.
결론은 하나!
저들이 의견을 합치기 전에 치고 나가야 했다.
‘저놈이 제일 약해 보이는군!’
맹수는 무리에서 약한 사냥감을 노려 공격한다. 모용명 역시 어리고 경험이 미숙해 보이는 기사를 목표로 삼았다.
늘어진 소매로 숨겨진 손바닥에서 붉은 빛이 어른거렸다.
응축된 장력이 벼락같이 장력이 쏘아졌다.
쇄심장(碎心掌)!
슈아아아아앙― 콰앙!
“크아아악!”
기사 놈이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모용명은 민첩하게 바닥을 박차고 경공을 펼쳤다.
“앗! 제이드!”
“이놈이 감히!”
동료의 죽음에 광분한 기사들이 그의 등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마나가 잔뜩 실린 공격이라 파열음이 예사롭지 않다.
슈아아아앙―!
기사들의 검에 도륙당할 위기에 처한 순간 모용명은 신행미종보를 펼쳤다.
그러자 마치 누군가가 줄을 달아 확 잡아당긴 것처럼, 그의 몸이 갑작스럽게 솟아오르며 공격을 피해 냈다.
타앗―
모용명은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남은 내공을 모조리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몸놀림은 그야말로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정신 차려! 제이드.”
“빨리 포션을!”
“젠장! 이미 숨이 끊어졌어.”
그때 맥베스가 우왕좌왕하는 기사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거야? 모두 추격해!”
열을 내는 맥베스를 향해 크라이슨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러기에 제가 뭐랬습니까? 긴장 좀 하시라니까…….”
이죽거리는 말투에 맥베스는 아무 말 없이 크라이슨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두 사내 사이의 불화가 더욱 커졌다.
한편, 무턱대고 영지를 빠져나온 네르시아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기를 당해 가지고 나온 보석과 돈을 모두 잃었고, 뒷골목 무뢰배들과 마주쳐 순결을 잃을 급박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녀의 수발을 들던 시녀는 길거리에서 그들에게 치욕적으로 당했다.
그녀가 먼저 당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맛좋은 요리(?)를 맨 나중에 맛보고 싶다는 무뢰배들의 심리 때문이었다. 맛있는 음식부터 먼저 맛보고 나면 다른 평범한 음식들은 아주 맛없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처럼 잔뜩 여유를 부린 탓에 네르시아는 무사할 수 있었다.
우연찮게도 마침 그곳을 순찰하던 영지의 병사들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무뢰배들을 처단해 구해 줬던 것이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네르시아 님!”
“난 괜찮아! 그보다 부탁할 것이 있는데.”
“말씀만 하십시오! 네르시아 님.”
그런 흉악한 일을 겪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도망친 노예 추적에 파견된 기사들을 따라잡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네르시아는 머뭇거리는 병사들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빨리 마차를 대령하지 않고 뭐해? 이것들이! 채찍 맛을 좀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원래 병사들은 네르시아를 오웬 백작의 성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네르시아의 호통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네르시아의 아름다운 얼굴 뒤에 숨겨진 악랄하고 지독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다간 그녀의 채찍이 날아와 목을 콱 조일 것 같았다.
실제로 네르시아의 채찍에 목이 감겨 죽은 사람만도 부기지수다.
“아, 아닙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결국 그녀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영지의 기사들을 추적했다.
길이 험해지고 마차 바퀴가 부서졌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승마를 배운 네르시아는 어렵지 않게 말에 올랐다.
그렇게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그녀는 결국 기사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말을 달렸던 네르시아와 달리 파견된 기사단은 모용명이 남긴 흔적을 살피며 나아가야 했기에 이동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그녀를 본 기사단장 맥베스는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아가씨! 여기까지 어떻게 오신 겁니까?”
네르시아는 날벌레라도 쫓듯 소매를 털어 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도망친 노예 놈을 손수 처단하러 왔어!”
그녀는 사실 제논을 구하기 위해 쫓아왔지만 그런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떠들 수는 없었다. 본심을 드러내면 기사들이 방해할 것이 분명한데다, 무엇보다 비천한 노예 놈을 맘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 스스로도 창피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너무 위험해서 안 됩니다! 아가씨. 그리고 백작님의 허락은 받고 나오신 겁니까?”
“흥! 그건 네놈이 알 필요 없어! 넌 그냥 나를 도우면 돼!”
평소 때처럼 네르시아는 막무가내로 명령했다.
그러나 맥베스는 결코 그녀의 지시를 따를 수 없었다. 다른 것이라면 뭐든 네르시아의 요청을 따르려 했겠지만 이 일은 그녀의 안위가 달린 문제였다.
만약, 네르시아가 조금이라도 다치게 된다면 오웬 백작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기사의 직위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감옥에 갇혀 혹독한 심문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 맥베스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계속 고집을 부리신다면 강제로 모실 수밖에 없습니다.”
“뭐?! 네놈 따위가 감히 내 명령을 거역하겠다고? 네놈 따위가!”
분노한 네르시아는 그를 향해 채찍을 후려쳤다.
쫘아아악!
공간을 가르며 날아온 채찍은 흉험한 소리를 내뿜으며 맥베스의 목을 노렸다.
채찍에 일단 목이 조이면 그걸로 끝!
날카로운 쇠붙이가 경동맥과 성대를 꿰뚫었고 힘주어 당기면 숨통이 막혀 물에 빠진 사람처럼 바동거리다 질식사했다.
네르시아는 기사단장을 죽이고 기사들을 장악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맥베스는 어렵지 않게 건들렛을 낀 손으로 채찍 끝은 잡아챘다.
“앗!”
순식간에 그에게 채찍을 빼앗긴 네르시아는 분노로 얼굴이 온통 붉어지며 눈에서 불이라도 내뿜을 듯 독기가 와락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그녀의 처벌에 저항하지 못했다.
네르시아의 눈 밖에 나면 결국 오웬 백작의 분노를 사게 된다. 저항해 봤자 그 결국 비참하게 처형될 테니 차라리 채찍에 목이 졸려 죽는 게 편안한 죽음이었다.
게다가 백작의 기사들은 평소에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네르시아의 눈에 드는 것이 백작에게 아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가, 감히!”
네르시아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의 분노를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얼른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사단장 맥베스는 분노한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뜨끔했으나 어차피 내친걸음이었다. 지금은 그녀를 제압해 영지로 되돌려 보내는 것밖에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는 머뭇거리는 기사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들 뭐하나? 어서 아가씨를 모시게!”
“네! 단장님.”
기사들은 힘차게 대답했지만 네르시아의 미움을 받기 싫어서 서로 눈치를 살폈다. 먼저 나서는 쪽이 그녀의 분노를 독차지하게 될 것이니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때 네르시아가 돌연 단검을 꺼내 날카로운 날을 자신의 목에 바짝 붙이며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마!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목을 긋겠어!”
그 모습에 기사들이 기겁했다.
그녀의 몸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생긴다면 그들에게 백작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그저 한바탕 혼이 나는 것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문책을 받아 기사 작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허엇! 아, 아가씨! 위험합니다!”
“네르시아 님! 위험한 장난은 하지 마십시오!”
네르시아는 그들을 향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장난이라고? 감히 나를 모욕하고 치욕을 주다니!”
장난이란 단어에 발끈한 그녀는 불쑥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한 네르시아는 이성을 잃고 손잡이에 살짝 힘을 주었다.
예리한 칼날이 살갗을 파고들며 가녀린 목을 타고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래도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엇?!”
그녀의 지독함에 놀란 기사들은 일제히 경악성을 내질렀다. 정말로 자해를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억울한지 네르시아의 눈에 물기가 살짝 어렸지만 표독스런 눈빛은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기사단장인 맥베스를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면 여기서 확 죽어 버리겠어!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난 기사단장 당신 때문에 죽는 거야!”
네르시아의 독한 말에 가슴이 철렁한 맥베스는 사색이 되어 그녀를 만류했다.
“아, 아가씨! 정말 왜이러십니까?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흥! 계속 시간을 끄는 걸 보니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이야! 하긴 그렇게 나를 업신여기니까. 감히 내 옷을 찢고 능멸하려 들었겠지!”
네르시아가 마구잡이로 모함하자 맥베스는 억울한 듯 항의했다.
“네? 제가 언제 아가씨의 옷을…….”
찌이익―!
“…….”
모함하기 위해 옷자락을 찢는 그녀의 독한 모습에 맥베스는 질린 듯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사실 네르시아는 기사단장이 평소에 아부하길 좋아하며 담이 작은 인물이라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처럼 맥베스를 집중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가만히 보고 있는 걸 보니. 내 가슴도 구경하고 싶은가 보지? 하긴 이미 날 마음껏 농락하고 즐긴 과거가 있는데 가슴을 보는 정도쯤이야. 네놈에게 대수겠어?”
“그, 그만하십시오! 아가씨.”
결국 맥베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네르시아는 안심하긴 이르다는 생각에 싸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경고했다.
“혹시나 해서 일러두는데. 날 슬쩍 따돌릴 계획을 꾸미고 있다면 포기해! 그랬다간 아버지에게 가서 네놈이 내 몸에 수시로 손을 대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려 버릴 테니까!”
맥베스는 간곡한 목소리로 만류했다.
“제발 좀 그런 말은 그만해 주십시오! 뭐든 아가씨 뜻대로 하겠습니다!”
네르시아는 원하는 것을 결국 손에 넣은 어린아이처럼 득의양양의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 간청한다면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먼저 감히 날 모욕한 벌을 받아야겠지?”
그녀의 표독스런 말에 맥베스는 뭔가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그 예감이 적중했는지 네르시아는 오만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용서받고 싶으면 무릎 꿇고 싹싹 빌어! 그리고 맞을 짓을 했으니 채찍을 한 100대쯤 맞아야겠지?”
“…….”
기사단장 체면에 수하들이 보는 가운데 무릎을 꿇고 노예처럼 채찍을 맞으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네르시아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맥베스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암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크라이슨은 그런 처지에 놓인 그를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시각.
모용명은 거대한 바위 뒤에 등을 기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은 그다지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다만 노예 사냥꾼인 용병들과 기사단의 공격을 연달아 받고 8할(80%)에 가까운 내공이 소모했기 때문에 급히 내공을 회복해 둘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그는 다소 위험을 무릅쓰고 운기에 돌입한 것이다.
주위를 경계하면서 내공을 회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너무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운기라는 것은 원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잡념이 끼어들거나 마음이 산만해지면 효율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는 것은 물론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도 있었다.
주화입마에 빠지면 최소한 미치거나 반신마비, 심하면 전신의 혈도와 경맥이 터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할 만큼 상황은 급박했다!
내공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다면 열다섯의 아직 여물지도 않는 육체로 곳곳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감당해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하듯 내공이 없으면 외공으로 상대해야 하겠지만, 모용명이 새로 얻은 몸은 전혀 단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불가능했다.
머릿속으로는 강호의 각 문파들의 수많은 절기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펼칠 수 없으니 정말로 갑갑한 일이다.
초초함 때문인지 공력을 일주천을 하는데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았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해! 조급함은 주화입마를 부른다!’
모용명은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인내심을 갖고 운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조금씩 회복한 내공이 총 4할(40%) 정도에 이르렀을 때!
바스락거리는 기척이 들리는 듯했다.
모용명이 운기를 중단하고 급히 눈을 뜨는 순간, 사방에서 그를 향해 화살이 쏟아져 나왔다.
쉐에에에엑―!
화살들은 공기를 꿰뚫으며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고 있었지만, 무림인인 그의 눈에는 별로 빠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공력을 끌어 올리면 오감이 몇 배로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화살을 쏘는 걸 보니 용병들이군!”
제국의 기사들은 활을 다루지 않는다. 궁술을 배우는 건 일반 병사들이나 용병들뿐이다.
그들은 화살을 쏜 즉시 바위나 나무 뒤에 숨었다. 두전성이에 크게 당한 경험이 있기에 다들 몸을 사린 것이다.
모용명은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 소매를 휘두르며 두전성이의 절예를 펼쳤다.
샤아아―
세차게 날아오던 화살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갔다.
용병들은 저마다 엄폐물 뒤에 몸을 숨겼지만 묘용명은 두전성이의 요결 중 회자결(回字訣)을 펼쳐 그들을 모조리 맞췄다.
파악! 파악! 파악!
“으앗!”
“크아악!”
안심하고 있다가 화살에 직격당한 용병들은 자지러질 듯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타앗―!
모용명은 그들이 상처를 수습하기 전에 바닥을 박차고 경공을 펼쳤다.
그는 풀잎을 스치듯 밟으며 바람처럼 나아갔다. 이를 두고 강호에선 초상비(草上飛)라 부른다.
그런데 적들은 이미 곳곳에 넓게 깔려 있었다. 조금이라도 내공을 회복해두기 위해 추적하기 쉬운 곳에서 운기행공을 한 탓이었다.
그들 개개인의 능력이야 별로 대수로울 것이 없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때 마법을 익힌 용병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뒤 일제히 마법을 날렸다.
“라이트닝(Lightning)!”
번쩍!
허공에서 방전이 일어나며 굵은 번개 다발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모용명은 몸을 피하는 대신 번개를 향해 쇄심장을 폭사했다.
슈아아아아앙― 콰아앙!
강맹한 장력과 전격 마법이 충돌하며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발음이 일어났다.
모용명은 충돌의 반발력을 살려 경공을 펼쳤다.
쉐에엑―!
바람의 결을 타며 침착하게 신행미종보를 펼치자 그는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된 것처럼 하늘을 훨훨 날았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의 모습에 용병들은 닭 쫓던 개가 된 격으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모용명은 그렇게 기류의 흐름을 이용하며 내공을 소모를 조금이나마 줄였다. 하지만 살뜰히 아끼고 아껴도 공력이 줄어드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따돌렸다 싶으면 다른 곳에 매복해 있던 추적자들이 또 나타났다!
그들을 상대하다 보니 4할까지 회복해 두었던 내공은 어느새 2할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경공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야금야금 공력이 소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포위망이 넓은 줄은 몰랐군!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한곳을 뚫고 나갔을 것을!’
모용명은 네르시아가 대륙 남부의 지배자인 버몬트 후작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몰랐다. 또한 그 때문에 오웬 백작이 자신의 목에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단 사실도 알지 못했다. 사정이 그랬기에 각지의 용병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들 것이란 예상 역시 하지 못했다.
여하튼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지금 상황에서 뭔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추적자들을 따돌리는 동시에 뭔가 묘안을 짜내려고 고심하는 그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판금갑옷을 입은 기사들까지 공격에 합세했다.
“드디어 찾았다!”
“각오해라! 노예 놈!”
그들은 바로 맥베스와 크라이슨을 포함한 오웬 백작의 기사들이었다.
제일 먼저 덤벼든 것은 바로 크라이슨이었다.
슈아아아앙―!
그야말로 미친 들소처럼 맹렬한 힘이 담긴 츠바이핸더(Zweihader)!
가뜩이나 공력이 고갈되고 있는 상황에 미련하게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더없이 미련한 일!
모용명은 즉시 보법을 펼쳐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그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시퍼런 날이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내공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딱 필요한 만큼만 움직인 것이다.
크라이슨의 공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자.
마치 이때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 모용명은 그의 정강이뼈 한복판을 추미각(追靡脚)으로 걷어찼다.
파악!
“크아악!”
정강이뼈가 부러질 듯한 충격에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른 크라이슨은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절뚝거리며 물러났다.
그러는 동안 다른 기사들을 그를 포위하는 에워싼 후 기사단장 맥베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함께 공격에 나섰다.
“전원 공격!”
슈아아아악―!
수십 개의 검이 거침없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냈다.
제법 일사불란한 포위, 공격!
칼날에 반사된 햇빛이 요란하게 뿌려지며 그들의 공격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펼쳐져 도저히 피할 곳에 없어 보였다.
그러나 모용명은 마치 곡예라도 펼치듯 아슬아슬하게 빈틈을 찾아가며 보법을 펼쳤다.
그 모습은 마치 거센 바람에 휘말린 낙엽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지금은 용케 피해 내고 있지만 다음번 공격에는 반드시 날카로운 날에 쫘악 갈라지며 순식간에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될 것 같은 살벌함이랄까?
거기다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현상금을 노린 용병들도 그를 노리고 활시위를 당겼다.
쉐에에에엑!
기사들 사이에 둘러싸이다시피 한 목표물을 정확히 노려 화살을 날리는 그 예리함이란!
대부분의 용병들은 명사수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실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모용명은 기사들의 공격을 피해 내는 것과 동시에 화살의 궤도까지 예측하며 정확히 보법을 펼쳤다.
폭풍처럼 몰아지는 적들의 공격 속에서도 그는 마치 태풍의 눈에 서 있는 것처럼 안전했다.
심지어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며 다른 생각에 잠길 여유까지 있었다.
‘마음가는 대로 하자면 쇄심장으로 후려갈겨 주고 싶지만! 남아 있는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쇄심장을 날릴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두 번 정도일 뿐, 세 번째는 확실히 무리다! 최악의 순간까지 내몰리면 역기충혈대법을 다시 써야 할지도…….’
역기충혈대법은 수명을 갉아먹고 높은 확률로 주화입마에 빠지게 하는 마공이다.
그러나 이대로 순순히 죽어 줄 수는 없었다. 내공이 완전히 바닥나면 결국에는 역기충혈대법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기충혈대법을 한 번 펼치면 10년의 수명이 줄어든다!
모용명은 이미 회생하기 위해 그것을 한 번 사용했다. 정말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은 이상 절대로 대법을 펼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로 고심하고 있던 그때! 기사들 뒤에 서서 묵묵히 구경하고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그의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마치 모용명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앞을 가로막고 선 그 사람은 기사들을 향해 돌아서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멈춰!”
뜻밖에도 어린 여성의 목소리였다.
남루한 옷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모용명은 즉시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현상금을 노리고 몰려든 용병들에게도 말했다.
“나는 오웬 백작의 딸이자 대륙 남부의 지배자인 버몬트 후작의 정혼녀인 네르시아다! 모두 다 공격을 멈추고 무릎을 꿇어라! 나를 향해 화살을 겨누는 자들은 사지가 찢겨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그녀는 바로 네르시아였다.
용병들은 네르시아의 얼굴을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에 결코 거짓으로 꾸며낸 것은 아니란 생각이 저절로 들며 공격을 멈추었다.
“앗! 위험합니다! 아가씨!”
기겁한 기사들이 황급히 그녀를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그야말로 입안으로 먹잇감이 굴러들어 왔으니!
기민한 모용명이 이처럼 좋은 기회를 노칠 리가 없다.
그는 마치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네르시아의 목과 허리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커억!”
숨쉬기 곤란해진 네르시아가 바동거렸지만 모용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단히 목을 조였다.
인질을 잡는데 성공한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가 짙어졌다.
“무엄하다! 노예 놈이 감히!”
“어서 아가씨를 놓아줘라!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오웬 백작의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외쳤다.
그러나 칼자루를 틀어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모용명이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들에게 위협하듯 말했다.
“다들 크게 착각하고 있군. 지금 네르시아의 생사는 내 손에 있단 말이다!”
모용명은 그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망설이지 않고 네르시아의 가냘픈 목을 조였다.
우드득!
“케에엑!”
숨이 막혀 오는 걸 느낀 그녀가 가녀린 작은 새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그만! 멈춰라!”
“원하는 게 뭐냐?!”
네르시아의 위급함을 보고도 기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애가 타는 듯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칠 뿐!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위협하자 그저 일정한 거리를 두며 에워싸기만 할 뿐이다.
모용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확실히 기선 제압을 해 두지 않으면 적들은 자신의 요청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네르시아의 혈도를 눌러 분근착골(分筋錯骨)의 수법을 펼쳤다.
우드득―
“크아아아악!”
그대로 전신 근육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모든 뼈마디를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효과적인 고문 수법이었다.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네르시아는 기절해 버렸다.
모용명은 기절한 그녀의 혈도를 자극해 다시 깨운 뒤 반복해서 분근착골을 펼쳤다.
“크아아아악!”
네르시아는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아앗! 네르시아 님!”
아름다운 그녀가 고문당하는 모습에 기사들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다가섰다.
모용명은 미친 듯 광기 어린 눈빛을 일렁이며 으르렁대는 맹수처럼 소리쳤다.
“다들 물러서! 목을 콱 부러뜨려 버리기 전에!”
그의 과격한 행동은 효과가 있었고 기사들은 다시 멀찍이 물러났다. 한 번 기세에 밀린 이상 어떻게 몰아붙이기도 힘들다.
기사들 중 일부는 기습을 해 볼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한 방으로 저놈을 죽이지 못하면 네르시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자칫 그녀가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오웬 백작의 엄중한 문책을 피하기 어려우리라!
“그만하라니까! 아 자식아!”
맥베스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네르시아가 털끝만큼이라도 상하게 된다면 오웬 백작의 분노가 자신에게 쏟아지게 될 것이다. 영주의 신임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기사단장 자리에서 해임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