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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마치 유명한 조각가가 정성 들여 조각한 듯 흠잡을 곳이 전혀 없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전체적으로 이국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미녀랄까?
아름다운 모습에 더해진 야릇한 탄성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그녀에게는 뭔가 수컷의 본능을 충동질하는 아찔한 매력이 있었다.
저 기다란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곱게 감은 두 눈을 보라!
제아무리 얌전하고 소심한 사내라 하더라도 마치 체념한 듯 눈을 감은 그녀의 모습을 마주보게 된다면 갑자기 용기가 불끈 샘솟아 자신의 남성적 매력을 거칠게 과시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모용명은 정심한 내공을 익혔기 때문에 그녀의 매력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단순히 겉모습에 현혹될 만큼 그의 수행이 얕지 않았다.
게다가 배신한 아내 진옥비와 표독스런 네르시아도 외모만큼은 뭇 사내를 흔들어 놓을 만큼 매력적인 여성이어서 그는 겉모습만으로 여자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체득하고 있었다.
‘제법 미인이군!’
단지 그렇게 평가했을 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한참 동안이나 달뜬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잠결인 듯 몸을 뒤척이며 갑자기 그의 팔을 와락 움켜잡았다.
“카아아아아―!”
그녀는 흡혈의 본능에 지배당해 미친 듯 괴성을 내지르며 그의 손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하얀 송곳니가 등잔불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빛났다.
타앗!
모용명은 즉시 금나수를 펼쳐 그녀를 거칠게 뿌리친 후, 재빨리 어깨와 가슴의 마혈을 짚어 버렸다.
아밀리에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리는 것을 느끼며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그런 지경이 되어서도 그녀는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하아아악! 피를! 달콤한 피를 줘! 제발!”
사실 그녀는 해적단의 대장 루커스가 제때 인간을 공급해 주지 않아 지난 며칠 동안 피를 마시지 못하고 버텼다.
그러나 이제 몸에 한계가 와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뱀파이어는 충분한 피를 마시지 못하면 혈관과 내장이 서서히 말라비틀어져 죽게 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단계까지 오자 흡혈의 본능이 그녀의 이성을 넘어섰다.
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본능만 남게 된 것이다.
아밀리에는 오직 뜨거운 피를 마시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마혈을 제압당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무언가 갈구하는 듯 간절한 눈빛으로 모용명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북극의 빙하처럼 차디찬 마음을 가진 냉정한 사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그녀의 눈빛을 보면 그만 사르르 녹아들고 말리라.
그러나 그녀를 내려다보는 모용명의 눈에는 단 한 점의 온기도 동정심도 없이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눈빛을 보고 도움받기는 틀렸다는 걸 직감한 아밀리에는 더욱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온몸의 모세혈관이 모조리 타들어 가는 듯했고 극에 달한 고통과 욕망 때문에 머릿속에 하얗게 비어 버렸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아아! 피를 마시고 싶어!’
피를 빨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그녀의 숨겨진 능력을 일깨웠다.
그것은 매혹(Fascination)의 능력!
매혹은 뱀파이어 혈족 고유의 능력이지만 아직 아밀리에의 나이가 어려 각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꽃이 피는 것도 각기 제철이 있듯이 아직 그녀는 매혹의 능력에 눈을 뜰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피를 오랫동안 마시지 못해 흡혈 충동이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켰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지경에 처하자 매혹의 능력이 예정된 때보다 일찍 각성되었다.
파아앗―!
바로 그때.
그녀의 눈에 요사스런 자색 빛이 어른거렸다. 숨 막힐 듯한 압도적인 매력이 아밀리에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모용명의 눈에 비친 그녀의 모든 것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자의 눈에 콩깍지가 쓰여 모든 것이 어여삐 보이는 것처럼 그녀의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강호에서는 이를 두고 사랑하는 사람 눈에는 서시가 보인다[情人眼里出西施]고 표현하며 제국의 속담으론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Love is blind)고 말한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젊고 더없이 순수했던 시절의 미칠 듯 가슴 뛰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고백하던 그 순간!
떨리는 호흡으로 입맞춤하던 그때!
처음으로 하나가 되었던 그날 밤!
보일 듯 말 듯 애태우던 모든 순간!
이처럼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마음이 일다가도 일순간 거친 풍랑으로 변하며 난폭하게 그녀를 몰아붙이고 싶은 수컷의 욕정도 들불처럼 화악 일어났다.
사랑과 욕정에 대한 수천 가지 형태의 감정!
그것이 마음속에서 한꺼번에 일어나며 소리 없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에 그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뚜벅. 뚜벅.
결국 그는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를 향해 성큼 다가서며 고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흡혈 본능에 사로잡힌 아밀리에는 손목의 동맥을 물어뜯으려고 입을 벌렸다.
“카아아아아―!”
날카로운 송곳니가 등잔의 불빛을 반사하며 차갑게 빛났다.
조금만 더!
조금 더 손을 뻗으면 날카로운 이가 동맥을 꿰뚫을 것이고 순식간에 그녀는 모용명의 피를 모조리 빨아 마실 것이다.
그런데 바로 순간!
모용명의 머릿속에 아내 진옥비의 얼굴이 문득 스쳤다.
더없이 사랑하고 아껴 주었건만 그녀는 그를 배신하고 술잔에 독을 탔다.
‘어째서? 당신이 감히 나를!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대가!’
갑자기 그의 가슴속에서 활화산 같은 분노가 솟아올랐다.
마치 용광로에 뜨겁게 달구어진 칼날에 심장을 찔린 듯! 가슴이 몹시 쓰리고 덜컥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이는 창자가 조각조각 끊어지는 듯 지독한 고통이었으나 그 덕분에 그는 매혹(Fascination)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감히 내게 미혼술(迷魂藥) 따위를 걸려고 하다니!”
모용명은 그것이 뱀파이어 고유 능력인 매혹이라는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모산파의 미혼술과 비슷한 것이라 짐작했다.
미혼술은 무공이라기보다 도가의 기문방술에 가까운 것인데 무림에선 이를 방문좌도에 가까운 사술이라 여겼다.
이성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특징 때문에 실제로 음흉한 목적에 많이 악용되어 무림인들은 더욱 이를 사악하고 입어 올리기도 더러운 술법으로 인식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미혼술을 익히려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외모와 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혼술의 원리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외적 매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학의 천재라 불리던 모용명도 미혼술을 익히지 못했다.
전생의 그는 사내답고 시원스럽게 생긴 외모였으나 그리 빼어나게 준수하거나 영준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증오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갑자기 다소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상대의 수법을 그대로 상대에게 펼친다는 것이 우리 가문 무공의 특징이지! 새롭게 얻는 몸은 잘생긴 편이니 충분히 미혼술을 펼칠 수 있을 것 같구나!’
모용명은 미혼술의 요결을 알고 있었다. 무학의 귀재라 불리던 그는 자신이 익힐 수 없는 술법이 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한동안 미혼술의 구결을 연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내게 걸려고 했든 미혼술을 그대로 되돌려 주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잔뜩 흥분한 모용명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아밀리에를 향해 미혼술을 펼쳤다.
파아앗―!
아밀리에의 매혹 능력과 모용명의 미혼술이 격돌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팽팽히 맞서는 듯했지만, 결국 승리자는 모용명이었다.
아밀리에는 미혼술에 당한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혼절했다.
이렇듯 쉽사리 승패가 갈린 이유는 흡혈의 욕구에 시달리는 아밀리에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데다 모용명의 외적 매력이 그녀를 훌쩍 능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모습은 단순히 얼굴이 잘생긴 것에 그치지 않았고,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에 체형까지 거의 완벽한 편이었다. 여성들만 눈치챌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완벽했다.
그의 압도적인(?) 매력 앞에 아밀리에는 그저 태양 앞에 나선 반딧불 정도일 뿐이었다.
“하하하하!”
모용명은 마치 진옥비에게 복수한 듯 통쾌한 마음이 들어 한차례 크게 웃었다.
미혼술에 걸려든 이상 그녀는 이제 절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이것의 진정 무서운 점은 마치 깊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 헤어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여성은 한 번 깊이 빠진 대상에게 전부를 거는 경향이 있으니 일단 미혼술에 걸리고 나면 절대로 상대를 배신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지독한 특징은 스스로의 의지로 반해 버렸다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에 미혼술에 걸렸다는 사실을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무릇 달콤한 밀어를 나누는 연인들의 사랑이나 매력적인 여인에 대한 욕정도 시작과 끝이 있는 법! 그 감정과 욕정이 영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혼술에 걸린 대상은 영원히 상대를 사랑하고 갈망하게 된다.
급기야는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지는 나방처럼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를 돕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매혹(Fascination) 때문에 격발된 분노와 흥분이 가라앉자 모용명은 씁쓸한 듯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우! 나답지 않은 짓을 해 버렸군. 대연(大燕) 황실의 후손으로서 어찌 천박한 미혼술 따위를…….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저질러 버린 건 어쩔 수 없지.”
미혼술에 걸려든 이상 아밀리에는 자신의 곁을 결코 떠나지 않으려 할 터!
이렇게 된 이상 그녀를 수하로 받아들여 철저히 부려먹는 방법밖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딱히 이제 와서 다시 여성과 혼인할 생각도 사랑을 나눌 생각도 없으니 별문제는 없겠지?’
여하튼 이 이일을 계기로 모용명은 특이한 마법을 쓸 줄 아는 고위 마법사를 부하이자 대연(大燕)의 첫 번째 백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를 수하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어디가 아파서 저렇게 괴로워하는 거지? 대체 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모용명은 뱀파이어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흑마법사 제뮤엘에게 대륙에 대한 풍습과 지식을 배웠다고는 해도 한 달 남짓한 시간에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알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알 수 없는 특이한 증세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 여성이 지금 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은 뭘까? 혹시 절맥(희귀병) 때문에 생긴 발작인 건가?’
절맥(絶脈)이란 선천적으로 인체의 주요한 혈맥이 막혀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되는 증상이다. 일종의 매우 희귀한 유전병이라 할 수 있다.
절맥의 종류로는 칠음절맥, 구음절맥, 극양절맥, 귀음절맥, 태양절맥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절맥이 있다.
그가 보기에 이 여성이 보이는 증상은 귀음절맥(鬼陰絶脈)에 가까웠다.
‘얼굴은 창백하고 손이 아주 차가우며 심각한 갈증을 느끼는데다가 의식이 혼미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귀음절맥에 가까운 증상이군! 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게 좀 특이하지만, 강호의 무림인들 중에는 혈맥에 내상을 입고 피로 몸을 데워야 하는 자들도 있으니…….’
여기까지 생각한 모용명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귀음절맥을 치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음양교합을 통해 혈맥에 양강(陽剛)의 진기를 주입하는 것이지만. 내 어찌 천박하게 처음 보는 여자와 정을 통할 수 있겠는가?”
귀음절맥은 음기가 지나쳐 혈맥이 얼어붙는 병증!
적양신공의 뜨거운 양기로 혈맥을 뚫어 버릴 수 있으니 이것이 음양화합의 이치였다. 아밀리에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시급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죽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모용명은 아무리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 해도 대연 황실의 후예로서 천박하고 추잡스런 짓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음양화합이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차선책이 없는 건 아니지.’
귀음절맥은 만년하수오, 인형설삼 같은 등등의 희귀한 약재를 먹인다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그와 같은 영약이 없었다.
남은 것은 금침대법을 펼쳐 혈맥을 자극하는 동시에, 내가고수의 강맹한 진기로 단숨에 혈도를 뚫어 내는 것밖에 없었다.
‘성수의가의 금침대법을 펼치고, 적양신공을 펼쳐 단숨에 혈도를 뚫는 것이 유일한 방법! 하지만 막대한 내공이 소모되어 진원지기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런 손해를 감수하며 이 여성을 치료할 가치가 있을까?’
적어도 열흘 동안은 내공이 거의 회복되지 않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고, 운이 나쁘면 진원지기를 손상당해 지금까지 쌓은 내공의 일부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아밀리에는 분명 고위 서클의 마법사!
그것도 바다 괴수를 부리는 신기한 마법을 알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의 절맥을 치료해 주어 목숨을 구한다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모용명은 아밀리에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미혼술을 건 것은 어디까지나 평소의 그 답지 않은 충동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보상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녀의 절맥을 고쳐 주는 것으로 찜찜한 마음을 모두 떨쳐 버리자!’
모용명은 그녀의 뒷머리에 있는 옥침혈(玉沈穴)을 가볍게 누르며 내공을 주입해 뇌맥을 자극했다.
진기로 혈도를 강하게 자극하자 그녀는 잠시 정신이 되돌아왔다.
“으윽…… 다, 당신은?”
아밀리에는 그를 보는 순간 뭐라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든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를 가진데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부드럽게 스치는 미풍처럼 감미롭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녀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아아!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다니! 까악! 반할 것 같아 어쩌면 좋아!’
그녀의 표정을 찬찬히 살핀 모용명은 미혼술에 제대로 걸려들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일단 이 모산파의 술수에 제대로 걸려들게 되면 절대로 헤어날 수 없다. 적어도 전생의 아내였던 진옥비의 경우처럼 그녀에게 배신당할 일은 절대 없는 것이다.
얼굴이 온통 붉어진 그녀는 수줍은 듯 조그만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저……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
모용명이 그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시온이라 불러라!”
“시온 님이라 좋은 이름이군요. 저는…….”
그녀는 수줍은 어조로 자신을 소개하려 했다. 그러나 모용명은 그녀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말허리를 자르며 본론을 꺼냈다.
“소개는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 하지. 너는 지금 당장 절맥을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절맥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는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곧 몸이 떨리며 타는 듯한 갈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 주입한 모용명의 진기가 점차 사그라지며, 흡혈 본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은 분명 옳은 말이었다.
“절맥을 치료할 생각이 있다면 서둘러야 해. 더 늦으면 금침대법도 소용없게 될 테니까!”
아밀리에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시온 님 나를……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금침대법인지 뭔지로 흡혈의 본능을 억제할 방법이 있다는 건가요?”
그녀의 말을 들은 모용명은 착각에 빠졌다.
‘이곳에서는 귀음절맥의 체질을 흡혈의 본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구나!’
뱀파이어의 흡혈 본능과 귀음절맥은 서로 성질과 증상이 비슷해도 본질적으로는 다른 것이다. 흡혈의 본능은 뱀파이어란 종족의 특성일 뿐 질병이 아니었다.
그러나 페겔비에난 대륙에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런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귀음절맥의 치료법으로 뱀파이어의 본능을 어느 정도 억누를 수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 아주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닌 셈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모용명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고칠 수 있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그럼 어서 고쳐 주세요! 시온 님.”
아밀리에는 뱀파이어였으나 흡혈의 본능을 매우 싫어했다.
그것 때문에 일족이 멸망 직전에 이르렀고 은신처를 제공해 줄 계약자를 찾아다녀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어서 이 끔찍한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단, 너를 고치려면 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모용명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마나코어의 마나를 모조리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소모된 마나를 보충할 때까지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 말지. 게다가 마나코어에 손상을 입을 위험도 있다.”
그의 설명에 아밀리에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결코 날 치료해 주지 않겠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이 처참한 운명에서 그리 쉽게 벗어날 수 있을 리가…… 괜한 기대에 헛되이 마음이 들떴군요.”
체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비에 젖어 파르르 떠는 작은 새처럼 한없이 여리고 가냘프게 보였다. 아밀리에의 청초한 미모와 몸가짐에는 사내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고쳐 주지 않겠다고 말하진 않았다.”
“네?”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한 가지 맹세를 해 줘야겠다.”
“뭐든 좋아요! 흡혈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녀는 미혼술의 위력 때문에 점점 그에게 빠져들고 있어서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따라서 해라! 참! 이름이 뭐지?”
“제 이름은 아밀리에예요!”
“좋아! 잘 듣고 따라해. 지금부터 아밀리에는 대연(大燕)의 백성으로서 황실의 후손인 모용명의 충성스런 신하가 되어 명령에 복종하며 평생 따를 것입니다. 오직 대연을 재건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아밀리에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는 모용명이 중요한 단어는 모두 강호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말했기 때문이다. 다만 평생 따를 것이란 맹세만이 그녀의 마음속에 달콤한 파문을 남겼다.
‘아아! 시온 님과 평생 함께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기뻐! 다소 무뚝뚝한 성격인 것 같긴 하지만……. 젊은 남녀가 서로 이끌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같이 다니다 보면 조금씩 정이 들겠지!’
달콤한 상상에 젖어 있던 그녀를 향해 모용명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부터 성수의가의 금침대법을 펼치겠다. 혈도를 풀어 주겠지만 조금도 움직이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그의 진지한 어조에 아밀리에는 덩달아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겠어요. 그런데 흡혈 욕구는 어쩌죠? 그 금침대법이라는 것을 하는 도중에 자칫 이성을 잃기라도 하면…….”
“우선 내가 얼어붙은 혈도에 뜨거운 기운의 마나를 넣어 두면 한동안은 괜찮을 거다. 치료에 대한 모든 것은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그럼 전 뭘 하면 되나요?”
모용명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지시했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네? 뭐라고요?”
아밀리에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모용명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겉옷만 벗고 누우면 된다. 혈(穴) 자리를 정확히 짚어야 하니까 겉옷까지 입은 건 안 돼.”
아밀리에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로브를 벗었다.
사락―
아밀리에는 투덜거리며 두꺼운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로브에 가려져 있던 몸매의 굴곡이 드러났다.
그녀는 군살이 없는 미끈한 몸이었으나 강호의 여성들과는 달리 확실한 볼륨감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가슴에서 엉덩이까지 이르는 굴곡이 확실한데다 길고 날씬한 다리가 그녀의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얼굴만 예쁜 것은 아니었군.’
모용명은 금침을 대신할 바늘을 들고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굵은 바늘을 보고 움찔한 아밀리에가 조그맣게 말했다.
“많이 아픈 건 아니죠?”
“통증은 거의 없을 꺼다. 다시 한 번 말해 두지만 지금부터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을 해선 안 되고, 움직이는 것도 안 돼!”
“네, 알고 있어요.”
그는 잠시 동안 호흡을 골랐다.
되새김질 하듯 금침대법을 머릿속에 찬찬히 떠올리던 모용명은 벼락같이 손을 움직였다.
파앗! 파앗!
순식간에 그녀의 몸에 바늘이 꽂혔다.
62개의 바늘이 모두 꽂혔지만 그녀는 조금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혈(穴) 자리를 정확히 짚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정말 하나도 안 아프네? 어떻게 한 거지?’
금침대법을 전부 펼친 그는 즉시 그녀의 아랫배에 손바닥을 붙이고 강맹한 장력을 한꺼번에 쏟아 냈다.
파아앗―!
‘으윽! 아파!’
아밀리에는 혈관이 산산이 찢어지는 듯 극심한 통증을 느꼈으나, 모용명의 경고를 머릿속에 떠올려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전신의 경맥을 동시에 뚫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오차가 나면 대법은 실패한다.
단전에서 양강의 진기를 모조리 끌어내자 모용명의 얼굴을 타고 온통 식은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렇게 일각(15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모용명은 드디어 그녀의 전신혈맥을 모조리 뚫을 수 있었다.
파박! 파박!
혈도에 양강의 진기가 가득 차며 압력이 증가하자, 몸에 꽂힌 바늘이 동시에 튕겨 나가며 암기처럼 날아가 벽에 박혔다.
“휴우…….”
대법을 마친 모용명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런데 당신 괜찮아요?”
말할 기력도 없는 듯 손바닥을 휘젓던 그는 전에 없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마나를 회복해야 하니 잠시 동안 날 건드리지 말고 말도 하지 마.”
모용명은 아밀리에의 대답을 기다릴 여유도 없이 곧바로 운기행공에 돌입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의 운기가 좀처럼 끝나지 않았기에 침대에서 꾸벅꾸벅 졸던 아밀리에는 결국 잠들고 말았다. 새벽이 되고 아침이 밝아왔지만, 두 사람은 거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똑! 똑!
아밀리에는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뜩 잠에서 깨어났다. 모용명은 그때까지도 운기행공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시온 님! 아침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드시지 않겠습니까?”
모용명은 운기에 한창 몰입하고 있어서 그자의 말을 듣지 못했다. 아밀리에는 일종의 불청객인 셈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문을 두드리던 사내는 돌아갔고, 별달리 할 일이 없었던 아밀리에는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쾅! 쾅!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밀리에가 다시 눈을 떴다.
“시온 님! 점심도 거르시는 겁니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밀리에는 그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걱정되었다.
‘이걸 어쩌지?’
그녀도 명상 중의 기사를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나 명상 중에는 일종의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외부에서 어떤 충격을 줘선 안 되는 것이다.
“실례지만 대답하지 않으시면 들어가겠습니다!”
‘이런!’
밖에서 비상키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깍―!
다급해진 아밀리에는 문을 향해 락(Lock, 잠금) 마법을 사용했다.
파아앗―
잠금 마법을 사용해 문을 잠그면 더 강력한 마법적 수단을 쓰지 않는 이상 절대 열리지 않는다.
그러자 밖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게 왜 안 열리지? 자물쇠가 고장 났나?”
그런데 그때 모용명이 눈을 뜨며 담담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밖에 무슨 일인가?”
“앗! 시온 님. 안에 계셨군요! 아침부터 식사도 거르시고 안에서 나오시지 않기에 걱정되어서……. 실례했습니다.”
“이거 창피하게 늦잠을 자 버렸군. 옷 갈아입고 곧 나갈 테니 그리 알게!”
“네! 알겠습니다.”
사내가 떠나자 아밀리에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왜 이제야 일어난 거예요?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아요?”
“누구 덕분에 마나를 모조리 써 버린 바람에, 좀처럼 마나가 회복되지 않더군.”
모용명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이어서 말했다.
“먹을 만한 걸 좀 챙겨 올 테니까. 답답하더라도 여기 잘 숨어 있어.”
“네. 뭐…… 어쩔 수 없죠. 그나저나 몸은 이제 괜찮은 건가요?”
“뭐, 그럭저럭.”
어젯밤부터 점심때가 될 때까지 줄곧 운기행공에 힘은 쏟을 결과, 그의 내공은 대부분 회복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적어도 열흘 정도는 내공의 운용에 신중해야 했다.
금침대법을 펼친 부작용으로 내공의 회복 속도가 평소보다 3배 정도 느려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진원지기에 손상을 입지 않았군. 후유증이 이 정도에 그쳐서 다행이다.’
모용명은 식사를 하기 위해 곧바로 식당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상단주 카엘과 라혼이 그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지극정성이군! 부모에게도 저렇게 극진하게 대하진 않을 것이다.’
모용명은 저들이 자신에게 극진한 이유가 상단에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무공을 노리고 있다는 점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 부드러운 미소로 표정을 바꾸며 그들에게 말했다.
“혹시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먼저 식사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러자 카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영웅인 크라켄 슬레이어와 식사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어서 앉으시지요.”
‘낯간지러운 소리를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잘도 하는군!’
그때 누군가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했다.
“시온 님! 저어…… 안녕하세요.”
그녀는 바로 카엘의 딸 멜리사였다.
‘이 여자도 여기 있었군.’
그제야 그녀를 발견한 모용명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멜리사 님이군요. 어제 저녁에 뵈었는데도 마치 오랜만에 뵙는 것처럼 반갑네요.”
소심한 편인 그녀는 사교성이 별로 없었고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 나서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잘생긴 사내 앞에만 서면 가슴이 급하게 뛰었다. 그래서 그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모용명과 함께 식사하러 나온 것이다.
그러나 멜리사가 하필이면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더없이 불행한 일이 될지도 몰랐다. 그는 한없이 차갑고 냉정한 심장을 가진 인물이었고 전생의 아내에게 죽임을 당한 후 다시는 혼인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모용명은 그녀의 마음속에 일어난 세세한 변화를 잘 알지 못했다.
식사를 거의 끝낼 때 즈음 갑자기 카엘이 그에게 말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부탁한 가면을 구해 놓았으니 한 번 골라 보게!”
카엘은 수하들에게 지시해 가면이 들어 있는 상자들을 가져오게 했다.
딸깍―
모용명은 상자를 열어 가면들을 구경했다.
“이것이 좋겠군요!”
그가 집어 든 가면은 장식이 거의 없는 강철 가면이었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금속 표면에 흐르는 차가운 광택이 강인한 인상을 더해 줄 것 같았다.
적에게 위압감을 주는 전사의 가면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마음에 드는가? 얼굴에 한 번 대 보게!”
모용명은 카엘의 권유대로 강철 가면을 얼굴에 쓰고 거울에 비춰 보았다. 차갑고 강인한 전사의 기상이 살아나는 것 같아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전투의 절반은 기세 싸움이다.
기선을 제압하는 쪽이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압박당한 적은 이쪽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끌려다니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철 가면으로 적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때 호위대장인 라혼이 뭔가 머릿속에 떠올린 듯 손뼉을 짝 마주치며 외쳤다.
“오! 이건 마치 사신의 강철 가면 같군요!”
상단주 카엘도 호위대장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사신에 대한 전설이 떠오르는군!”
강철 가면을 쓴 모용명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대륙에 퍼져 있는 사신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신은 죽음이 임박한 자들의 눈앞에 나타날 때 항상 강철 가면을 쓴다!
삶에 미련이 많은 자들은 사신들에게 살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당장 죽게 생겼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하랴?
그 절실한 감정에 동요해 임무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사신들은 강철 가면을 쓴다. 사신의 강철 가면(Iron Mask)은 착용자의 정신을 사막처럼 삭막하게 하고 북해의 빙하보다 더 차갑고 냉혹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하여 죽음의 사신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저 명부에 적힌 그대로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모용명도 사신에 대한 전설을 알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닌 강철로 된 가면을 요구한 것은 사실 이러한 전설의 힘까지 빌려 해적들을 강력하게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죽음의 사신(Demon of Death)!
그것이 바로 해적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칠 그의 새로운 별호가 될 것이다.
죽음의 대명사인 이 별호를 듣는 것만으로 잔인한 해적들이 순한 양이 되어 바들바들 떨고 오금이 저려 찔끔찔끔 오줌을 지리게 될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괜스레 우물쭈물할 것 없이 단숨에 루커스 해적단의 본거지를 쳐야겠다. 상단주 카엘이 이 작전에 동의할 리가 없으니 극약 처방을 해야겠다!’
모용명은 마음속으로 더 없이 냉혹한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