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1화
“다들 자질과 집중력이 부족해서 이 정도가 한계로군. 좀 더 몰아붙일 걸 그랬나?”
모용명은 병사들의 자질이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뼈를 깎는 듯 고통스런 수련을 즐기는 강호의 무림인들에 비하면 병사들에게 시킨 것은 수련 축에도 못 끼는 가벼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의 병사들은 무림인들과는 처지나 입장이 달랐다.
그들은 영지에서 강제로 징병된 처지라 하는 수없이 군사훈련이 임할 뿐, 스스로의 각오나 의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원래부터 그의 가르침에 목말라하던 크라이슨만은 성취가 남달랐다.
아직 서투르긴 하지만 보법의 요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연수합격술에서도 남다른 두각을 드러내 보였다.
크라이슨에 대한 그의 평가도 조금 상향되었다.
‘해적 토벌이 끝나고 나면 그를 정식 수하로 받아들여 조금씩 무공을 가르쳐도 될 것 같군! 아직 그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 비전에 속하는 고급 무예는 가르쳐 줄 수 없지만 강호에 널리 퍼진 평범한 무공부터 가르쳐 보자.’
지난 삼 일 동안 그는 병사들을 가르치는 데 힘을 쏟았지만 개인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선실을 따로 잡아 운기행공과 무공 수련에 힘을 쏟은 것은 물론, 별도로 새로운 훈련을 고안해 냈다.
“크라이슨!”
“네! 시온 님.”
“단검을 가지고 갑판 위로 올라와!”
“알겠습니다!”
크라이슨은 오늘도 모용명의 지시대로 단검을 들고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가 이런 훈련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생각했다.
‘시온 님에게 이런 훈련은 따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데……. 어째서 이 수련에 공을 들이는 걸까?’
단검을 던지고 검으로 받아치는 단순한 훈련!
그것도 단검의 개수가 많다면 반사 신경이나 동체 시각을 단련하는 것이려니 생각하겠지만, 모용명이 그에게 요구한 것은 단지 단검을 하나씩 일정한 간격을 두고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크라이슨은 그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터라 감히 이유를 묻지 못했다.
“시작해!”
“네! 알겠습니다.”
크라이슨은 그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쉐에엑―!
힘차게 날아오는 단검을 응시하던 모용명은 검을 휘둘러 손쉽게 단검을 튕겨 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최소한의 공력으로 두전성이를 펼치는 건 쉽지 않구나!’
그는 두전성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 수련에 힘을 쏟았다.
두전성이의 가장 큰 약점은 내공의 차이가 극심한 상대에게 쓰기 어렵고 성공률이나 위력이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점이다.
모용명은 공력의 양을 점점 줄여서 가능한 미약한 진기로 두전성이를 펼치는 훈련을 했다.
훈련을 반복하다 두전성이에 성공하게 되면 내공의 양을 더 줄여서 펼치는 식의 수련이었다.
수련의 진전은 매우 더디었지만 모용명은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반복했다.
‘느리지만 확실히 진전이 있었다. 이 수련을 반복하다 보면 적은 양의 내공으로도 강력한 적을 상대로 두전성이를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련에 집중하는 동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별안간 높다란 망루에 올라간 선원이 크게 소리쳤다.
“전방에 섬이 보입니다!”
드디어 목적지인 휴버트 해적단의 섬 근처까지 오게 된 것이다. 모용명은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군선의 속도를 늦추게 했다.
“모두들 주목! 해적선을 바다로 끌어내 1차적인 공격을 가하겠다! 다들 백병전을 준비하라!”
“네! 대장님.”
예상대로 군선을 발견한 해적들은 곧바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왔다.
수십 척의 해적선이 초승달 모양으로 군선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모용명은 포위망이 완전히 구축되기 전에 곁에 서 있는 아밀리에에게 은밀히 지시했다.
“바다 괴수로 해적선들을 공격해.”
“네, 갑니다!”
그녀는 고대 마법으로 길들인 바다 괴수 바실로사우르스를 움직였다.
쫘아아악―!
물살을 가르며 바실로사우르스가 거대한 몸체를 드러내자 해적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으앗! 바다 괴수다!”
“바실로사우르스다! 어서 배를 돌려!”
해적들은 황급히 바다 괴수를 피하려 했으나 바실로사우르스는 세차게 돌진하며 해적선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앙!
맹렬한 폭발음과 함께 선체가 그대로 두 동강 나며 하늘 높이 튕겨 올랐다.
“크아아악!”
해적들은 갑작스럽게 하늘을 날며 비명을 내질렀다.
부서진 선체가 수면 위로 곤두박질치며 그들 역시 바닷물 속에 깊숙이 처박혀 버렸다.
바실로사우르스는 그것으로 성이 안 찬다는 듯 거대한 입을 쩌억 벌렸다.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선보인 바다 괴수는 부서진 선체를 우적우적 집어삼켰다.
해적들은 날카로운 이빨에 썰리거나 잘게 부서진 잔해와 함께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아아악! 살려 줘!”
“크아아아악!”
해적들은 자맥질에 능숙했지만 바다 괴수보다 빠르게 헤엄칠 수는 없었다.
그들을 모조리 씹어 삼킨 바실로사우르스는 곧바로 다른 해적선들을 향해 돌진했다.
쫘아아악― 콰아앙!
호전적인 성향이 강한 바다 괴수는 몸통으로 선박에 돌진하는 동시에 다른 해적선을 향해 거대한 꼬리를 후려쳤다.
순식간에 아홉 척의 해적선이 침몰했다. 이대로만 해 준다면 해적선들을 모조리 박살 내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밀리에가 갑자기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앗! 어딜 가려는 거야? 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저…… 그게…… 우리 바실(바실로사우르스의 애칭?)이 배가 부르다고 하네요. 아직은 교감이 부족해서 고집을 피우면 어쩔 수가 없어요.”
고대 마법인 콤무니오는 훼손된 베임하리엘 교단의 흑마법과는 달리 정신지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다만 괴수의 경계심을 허물고 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마법이다.
어디까지나 지배가 아니라 친교가 목적이다.
아밀리에는 지난 3일 동안 바실로사우르스와 친해질 수 있었지만 아직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뭐.”
모용명은 그녀를 책망하지 않았다. 능력 밖의 일을 추궁하다면 군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셈이니까.
괜스레 미안해진 아밀리에는 서둘러 말했다.
“제가 마법으로 해적선들을 침몰시킬게요.”
“아직 너무 눈에 띄는 마법은 쓰는 건 안 돼. 네가 마법사란 사실은 제라드 백작에게 비밀로 해 두고 싶으니까.”
그녀가 고위 마법사란 사실이 발각되면 제라드 백작은 틀림없이 아밀리에를 철저히 부려먹으려 들 것이다.
아끼는 수하를 그런 식으로 내돌리는 것을 원치 않는데다, 아직 백작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으니 그녀의 마법은 숨겨진 힘으로 남겨 두는 편이 좋았다.
“네! 알고 있어요. 되도록 은밀하게 마법을 써 볼게요.”
아밀리에는 해적선들을 향해 마법을 캐스팅했다.
“아이스 미스트!”
샤아아아―
그러자 짙은 안개가 해적선들을 중심으로 넓게 퍼졌다.
이처럼 갑자기 안개가 짙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거대한 바다 괴수의 위용에 시선이 빼앗긴 병사들은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마법 스펠을 완성해 자욱한 안개 속에 돌풍을 일으켰다.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
휘이이이잉―!
갑작스런 바람에 해적들은 당황하며 소리쳤다.
“으앗! 갑자기 돌풍이!”
“젠장! 어서 돛을 내려!”
거센 바람과 파도에 휘말린 해적선은 돛이 찢어지고 돛대가 부러져 버렸다.
우지끈!
“크아아악!”
돛대가 요란하게 부러져 버리며 해적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병사들은 짙은 안개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만하면 됐어! 아밀리에. 병사들에게도 실력 발휘할 기회를 줘야지.”
“그럼, 그럴까요?”
그녀가 마력을 거두어들이자 자욱한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용명은 선원들에게 명령해 해적선에 접근하게 한 뒤 병사들 중 수십 명을 뽑아 지시를 내렸다.
“그동안 훈련의 성과를 해적들에게 보여 줄 때가 왔다! 연습한 대로 하되 기대에 못 미치는 자들은 엄벌로 응징하겠다! 다들 알겠나?”
“네! 대장님.”
병사들은 윈프레겐이 정성들여 다듬은 어린검(漁鱗劍)을 들고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자맥질을 펼쳐 해적선 밑으로 들어간 뒤 어린검을 선체 밑바닥에 콱 박아 넣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힘을 모으자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쫘아악―!
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선실로 밀려 들어갔다.
“앗! 저들을 막아라!”
해적들은 병사들을 막기 위해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모용명은 그 순간을 노려 갑판 위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화살을 쏴라!”
쉐에에에엑―!
“크아아악!”
화살에 꿰뚫린 해적들은 물 밖으로 끌려나온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해적들 중 일부는 바닷물 깊이 잠수해 화살을 피해 버렸지만 훈련한 대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이 어린검을 휘둘렀다.
슈아아아악―!
어린검은 물속에서 빠르게 칼날을 휘두를 수 있도록 특수하게 고안된 검!
비록 급하게 칼날을 다듬어 만든 것이라 중원에서 보던 것보다 못했지만 해적들의 검보다 훨씬 빨랐다.
파악!
칼날에 명중당한 해적들은 입을 쩌억 벌리며 몸부림쳤고, 벌어진 상처에서 핏물이 잉크처럼 번져 나가 물속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해적들은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다!
물속에서 병사들을 당해 낼 수 없었고 배에 구멍이 뚫려 해적선은 천천히 침몰하고 있었다.
악에 받친 그들은 배를 몰아 군선을 향해 돌진해 왔다.
콰앙!
선박이 서로 충돌하며 맞닿게 되자 해적들은 밧줄이나 나무판자를 이용해 신속해 군선으로 돌격해 왔다.
“훈련한 대로 일곱 명이 한 조를 짠다! 허둥대다가 부상을 입거나 동료를 위험해 처하게 하는 녀석들은 가차 없이 베겠다! 알겠나?”
“네! 대장님.”
병사들은 해적들을 상대로 연수합격술을 펼쳤다.
그동안 보법을 익혀 그들의 자세는 안정되어 있었고 연수합격술의 위력이 발휘되었다.
그에 비해 개인의 기량과 독기만 믿고 마구잡이도 덤벼들던 해적들은 백병전에서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해적들 중 몇몇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펼쳐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모용명이 은밀히 거파련교권을 펼치자, 혈액과 체액이 뒤흔들리는 충격을 느끼고 어지러워하다가 병사들의 검에 맞고 쓰러졌다.
‘여긴 대충 이들에게 맡겨도 충분하겠군!’
모용명은 윈프레겐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혹시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 병사들을 도와주십시오.”
“흥! 착실히도 부려먹으려 하는구먼!”
“성의를 보여 주시면 잊지 않겠습니다. 뭔가 새로운 자극이 될 만한 기술을 보여 드리죠.”
다소 순진한 구석이 있는 윈프레겐은 그의 말에 금방 귀가 솔깃해졌다.
“으음…… 알았네. 나중에 다른 말하지 말게!”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모용명은 바다를 향해 조그만 나뭇조각을 던졌다.
그는 경공을 펼쳐 손바닥보다 작은 나뭇조각 위에 내려섰는데 신기하게도 몸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전방을 향해 나뭇조각을 다시 던진 그는 같은 방법을 반복하여 나뭇조각 위를 밟으며 달려갔다.
그 모습이 마치 수면을 밟고 나아가는 것 같았기에 윈프레겐은 나직이 탄성을 지르며 중얼거렸다.
“아! 저 녀석 또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군! 저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는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으나 무림의 독자적인 기예인 경공의 원리를 일순간에 파악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해안가에 도착한 모용명은 품속에서 강철 마스크를 꺼냈다.
‘이제 죽음의 사신이 다시 활약할 때가 왔군!’
그는 자신의 실력을 적당히 숨기고 제라드 백작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죽음의 사신을 다시 등장시킬 계획이었다.
강철 가면을 본 해적들은 흠칫 몸을 떨며 소리쳤다.
“앗! 죽음의 사신이 나타났다!”
“젠장! 도망쳐!”
모용명은 루커스에게 지시를 내려 죽음의 사신에 대한 소문을 해적들 사이에 널리 퍼뜨리게 했다. 원래부터 미신을 잘 믿는 해적들은 부풀려진 소문에 겁을 먹고 그를 보자마자 달아나기 바빴다.
그는 즉시 단전의 내공을 끌어 올려 달아나는 해적들을 향해 쇄심장을 펼쳤다.
슈아아아아아앙― 콰아앙!
“크아아악!”
마치 뇌성벽력을 연상시키는 무시무시한 굉음!
쇄심장의 경력이 혈도를 통해 파고들자, 장력에 휘말린 적들은 심장이 모조리 산산조각 났다.
모용명은 쉴 새 없이 장력을 뻗어 냈다.
슈아아아앙― 콰아앙! 콰앙! 콰앙!
“크아아아악!”
붉은 빛의 장력이 사방에서 번쩍거릴 때마다 맹렬한 폭발음과 함께 동료들이 죽어 나가자 해적들은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으아악! 죽음의 사신이다!”
“으앗! 살려 줘! 저리 비켜!”
서로 먼저 가겠다고 다투며 도망치던 해적들은 급기야 앞서가던 동료를 쓰러뜨리고 몸뚱이를 짓밟으며 나아갔다.
쇄심장에 맞아 절명한 해적들보다 동료들의 발에 수차례 짓밟혀 숨이 끊어진 숫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피라미들은 그만 족치고 두목 녀석을 잡아야겠군!’
모용명은 달아나는 해적들에게 곧 흥미를 잃었다. 어차피 그가 손을 쓰지 않아도 곧 제라드 백작의 군대가 몰려와 이들을 잡을 것이다.
루커스의 보고를 통해 본거지의 위치를 파악해 두었기 때문에 그는 바닥을 박차고 거침없이 경공을 펼쳤다.
타앗―!
Chapter 7.
폭풍우 속의 항해
그 시각, 해적단의 두목인 휴버트는 부하들에게 보고받고 있었다.
“두목님! 제라드 백작의 군선이 쳐들어왔습니다!”
“뭐, 뭐라고? 서둘러 짐을 싸고 배를 준비해라!”
휴버트는 백작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그게…… 두목님! 군선은 단 한 척뿐입니다!”
“이런 멍청한 녀석! 그것도 머리라고 달고 다니는 거냐? 백작이 미쳐 버리지 않은 이상 군선 한 척으로 쳐들어왔겠냐? 그걸 두고 유인책이라고 하는 거다! 이 오크 사촌 놈아!”
의심이 많은 성격인 휴버트는 그것이 백작의 유인책이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추측은 나쁘지 않았다.
그때 해적 온몸에 문신을 한 덩치 녀석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소리쳤다.
“두목님! 죽음의 사신이 나타났습니다!”
보고를 받은 휴버트는 너무 놀라 심장이 덜컥 멎어 버릴 것 같았다.
“뭐?! 군선에 이어서 죽음의 사신까지! 젠장! 빨리 짐을 싸지 않고 뭐해? 잽싸게 튀어야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는 거다!”
휴버트는 수하들을 다그쳤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차가운 강철 가면을 쓴 죽음의 사신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용명은 북풍처럼 싸늘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네가 휴버트인가?”
질문을 받은 휴버트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체격이 좋은 수하 놈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아니오! 저분이 바로 해적단의 두목인 휴버트요!”
지목을 받은 해적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두목님! 갑자기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그동안 개처럼 헌신한 수하를 죽이려 하다니! 당신은 인간도 아냐!”
수하의 말에 발끈한 휴버트는 저도 모르게 발끈하며 말했다.
“이 녀석이 감히 어디서 언성을 높…… 앗!”
실수를 깨달은 휴버트는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모용명은 단전의 진기를 천천히 끌어 올렸다.
공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는 해적들을 향해 느닷없이 장력을 펼쳤다.
슈아아아아앙― 콰아앙!
“크아아악!”
이번에는 공력을 극한으로 끌어냈기에 단순히 심장이 부서지는 것에 끝나지 않았다.
해적들의 온몸이 산산조각 나며 수백 조각으로 부서진 뼛조각이 날카로운 암기처럼 날아가 그들의 몸에 박혔다.
쉐에에엑― 파악!
“크아아악!”
사람이 산산조각으로 해체되는 거짓말같이 아찔한 광경!
그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해적들은 극심한 공포에 빠져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체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몇몇은 바지에 실례를 했지만 장작 본인은 오줌을 싼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혼비백산한 상태였다.
‘사람의 산채로 박살 내어 버리다니! 진짜 지옥의 사신이야!’
‘제기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다 틀렸어!’
모용명은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라 해서 손속에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강탈한 해적들! 불쌍히 여길 여지 같은 것은 없었다.
슈아아아아앙― 콰아앙!
“크아아악!”
강맹한 장력에 휘말린 해적들은 온몸이 수십 조각으로 쪼개졌다.
남아 있는 해적들은 뱀을 마주친 쥐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대부분의 해적들이 죽고 해적단의 두목 휴버트 혼자만이 살아남았다.
모용명이 그를 마지막까지 남겨 둔 것은 그동안 나름대로 연구한 섭혼술을 그에게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잘될지 모르겠지만. 실패해도 죽여 버리면 그뿐이니까!’
수라마교의 섭혼술!
고대 마법인 콤무니오!
흑마법인 블러드 스펠!
모용명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상대방의 정신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정신을 지배하는 새로운 섭혼술을 고안해 보았다.
그러나 부족한 기간 동안 이론적으로 만들어 본 것이라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모용명은 휴버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단전의 공력을 끌어 올렸다.
“휴버트…… 대답하라!”
단전의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리자 적양신공으로 인해 그의 두 눈은 피처럼 붉어졌다.
목소리에 공력을 불어넣자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듯 신비롭게 들렸다.
“으으으…….”
수하들의 끔찍한 죽음을 수차례 지켜본 휴버트는 이미 깊은 혼란 속에 빠져 있었고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차가운 빛을 발하는 강철 가면과 피처럼 붉은 눈은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뭔가 그로테스크한 공포를 자아냈다.
거기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섬뜩한 목소리까지!
‘주, 죽음의 사신이다!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그는 이성을 상실하고 휴버트는 눈앞의 사내가 죽음의 사신이라 철썩 같이 믿어 버렸다.
“대답하라! 휴버트…… 나는 누구인가?”
“주, 죽음의 사신이십니다!”
“그렇다. 나는 너의 영혼의 주인! 살고 싶으냐? 휴버트!”
“사,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의 주인임을 인정해라! 그것만이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으으으…….”
모용명은 고대 마법으로 그의 심리방벽을 허물고 흑마법으로 그의 영혼을 옭아맸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의 정신이 파괴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에 극도로 조심하며 심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휴버트는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고 생에 대한 애착이 남부럽지 않게 강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죽음의 사신에게 굴복하며 말했다.
“당신은 내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다만 제 목숨만은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그가 항복을 선언하자 섭혼술의 위력이 극한으로 발휘되었다.
흑마법의 블러드 스펠이 그의 심장에 새겨졌고 고대 마법이 그의 영혼을 지배했다.
휴버트는 그의 앞에 엎드리며 외쳤다.
“오오! 주인님! 주인님께 무한한 경배를 드립니다!”
새로운 섭혼술을 성공했지만 모용명은 뭔가 흡족하지 않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사실상 실패나 다름없구나. 계속해서 연구해야겠어.’
그는 자신이 만든 섭혼술이 불완전한 것임을 느꼈다.
휴버트에게 통한 것은 그가 마음으로 굴복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섭혼술은 당사자의 의지로 동의하면 위력이 극대화된다.
이래서야 의지력이나 정신력이 강한 상대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다.
모용명은 그에게 간단히 명령을 내렸다.
“너는 여기서 대기하며 흩어진 부하들을 다시 모아라. 되도록 평상시처럼 행동하되 도망가지 말고 나를 기다려라!”
“네! 주인님.”
그때 아밀리에가 정신감응 마법인 에그레고르(Egregor)를 사용하며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시온 님! 제라드 백작이 도착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계획대로 은밀히 빠져나와서 해안가에 숨어 나를 기다려라.
―네! 시온 님.
모용명은 즉시 백작을 맞이하기 위해 해안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강철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죽음의 사신이란 모습으로 제라드 백작과 겨루어 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몰아치면 살기 위해서라도 숨겨 놓은 실력을 드러내겠지!’
그가 해안가에 도착한 순간, 제라드 백작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군선에서 막 내리고 있었다.
백작의 군대와 해적들이 해변에서 맹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와아아아! 죽여라!”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마라!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해적들의 수가 병사들보다 더 많았으나 마구잡이로 덤벼들었고 반면 백작의 군대는 오와 열을 맞춰 일사분란하게 해적들을 밀어붙였다.
결국 해적들은 백작의 병사들에게 밀려나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게 되었다.
그러자 제라드 백작은 큰 목소리로 병사들을 독려했다.
“해적들을 놓치지 마라! 모조리 죽여라!”
몹시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가운데도 백작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선명하게 들렸다.
목소리에 응축된 마나를 실었기 때문이다.
‘다시 들어 봐도 이건 역시 무림의 사자후(獅子吼) 등과 비슷한 수법이 틀림없다! 이제 당신의 숨겨진 정체를 밝혀 주겠다. 제라드 백작!’
그가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때 그제야 아밀리에가 미리 약속한 장소에 나타났다.
“시온 님, 벌써 와 계셨네요?”
“아밀리에, 계획대로 마법을 부탁해.”
“네! 잠깐만요.”
그녀는 마나 스펠에 집중해 백작의 군대를 향해 마법을 펼쳤다.
“아이스 미스트!”
샤아아―!
차가운 안개가 백작의 군대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어엇? 갑자기 웬 안개가?”
“조심해! 해적들 중에 마법사가 있다!”
갑작스런 안개에 놀란 병사들은 추적의 발걸음을 멈추고 경계 태세로 들어갔다.
아밀리에는 그들을 향해 또다시 마법을 펼쳤다.
“사이클론(Cyclone, 태풍)!”
슈아아아앙―!
순간 백작을 중심으로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풍속이 얼마나 빠른지! 거센 바람에 휘말린 병사들은 바닥을 뒹굴며 멀리 날아갔다.
“으아아앗! 살려 줘!”
신기한 것은 마치 태풍의 눈이 그러하듯!
제라드 백작이 서 있는 부근에만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하다는 사실이다.
순식간에 주변의 병력이 바람에 휘말려 올라가자 백작은 자욱한 안개 속에 홀로 서 있게 되었다.
“수고했어! 아밀리에.”
그녀를 짧게 치하한 모용명은 즉시 바닥을 박차고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타앗―!
그는 제라드 백작을 향해 쇄심장을 날렸다.
슈아아아아앙―!
백작은 방패에 응축된 마나를 주입해 장력을 막아 냈다.
파아앙!
한차례 폭발음이 일어났지만 백작은 조금도 충격을 받지 않은 듯 멀쩡해 보였다.
‘내공 수위가 깊어서 이 정도 공격엔 꼼짝도 하지 않는군! 하지만 이건 어떨까?’
모용명은 경공을 펼쳐 백작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며 계속해서 장력을 뻗어 냈다.
파앙! 파아앙! 파앙! 파앙!
눈 깜짝할 사이 수십 번의 공격이 펼쳐졌다.
백작은 그의 공격을 막아 내기에 급급했지만 막강한 공력을 바탕으로 심장을 파고드는 쇄심장의 경력을 모두 해소해 버렸다.
모용명은 막강한 내공을 가진 그가 방어에만 치중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째서 막기만 하는 거지? 일부러 실력을 감추는 것일까?’
그때 백작이 몹시 분노한 듯 그를 향해 외쳤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날 기습하려 하느냐!”
모용명은 단전의 공력을 끌어 올려 목소리를 바꾼 후 말했다.
“나는 죽음의 사신(Demon of Death)……. 세상의 갖은 권세와 명예를 누리는 자라 할지라도 죽음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
공력을 주입하자 그의 목소리는 마치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누가 이런 장난을! 정체를 밝혀라!”
모용명은 대답 대신 그를 향해 거파련교권을 날렸다.
쉐에에에엑― 콰아앙!
거파련교권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백작은 전신의 피와 체액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코어(단전)에 응축된 마나를 끌어 올려 충격을 수습했다.
“거기냐?!”
백작은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뛰어들며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슈아아아아앙!
순간, 모용명은 두전성이를 펼쳐 백작의 공격을 되돌렸다.
샤아아아―!
공격에 실린 마나가 절반쯤 되돌아가 백작의 가슴을 때렸다.
콰아앙!
충격으로 강철 갑옷이 움푹 파이고 백작은 울컥 피를 토하며 비틀 물러났다.
“쿨럭!”
그때 모용명은 경공을 펼쳐 빠르게 물러나며 두전성이로 완전히 되돌리지 못한 경력을 해소했다.
‘이상하군! 어째서 검술이 어설퍼 보이는 거지? 발걸음도 평범한 것이 마치 보법을 익히지 못한 것 같구나.’
원래 그는 백작의 공격에서 무공 초식을 읽어내려 했다. 강호 각 문파의 무공은 저마다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백작의 공격이 너무 평범했기에 의아함을 느꼈다. 이래서야 마치 강호의 무공을 전혀 모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는 혼란스러워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