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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3년 전 그날, 태완 앞에 나타난 존재는 귀신 같은 것이 아니라 영혼이었다.
진짜 영혼을 본 그때부터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영적인 존재인 것은 맞지만 영혼이 나타났을 때 묵주는 별로 힘이 되지 않았다. 묵주의 힘으로 퇴치되었어야 할 상황이었는데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묵주의 신비한 효과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때인가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것들 중 특별한 존재인 영혼을 만난 후로 변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묵주를 차기 전까지 무수한 나날을 괴롭혔던 알 수 없는 기현상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지켜줄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인지 악몽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수인도의 그림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수인을 맺은 후 잠이 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태완은 영혼을 본 3년 전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젖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처음 만났던 괴수 같은 존재들이 다시 나타난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타난 것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학교를 가고 있지 못할 테니까.’
그나마 느끼던 불안감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괴수들은 아니었지만 영적인 존재들과 마주치기는 했었지만 무슨 일인지 해를 입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서워 두려움에 떨던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해를 입히지 않기에 공포심만 이겨내면 되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묵묵히 견뎌 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많이 단련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두려움도 어느 정도 가시고, 해도 끼치지 않아 이제는 만성이 되어 버렸다. 주변에서 그런 상황이 일어나도 그저 그러려니 하는 정도다.
그렇지만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태완은 묵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귀찮은 존재로 전락을 했을 뿐이었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볼까? 아니야! 그동안 아무것도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지난 시간을 회상하던 태완은 보모님에게 사실을 털어놓을까 생각해 봤지만 곧장 접어 버렸다.
‘에이, 그동안 별다른 일도 없었고, 사실을 아시게 되면 그때부터는 나 혼자 있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까지처럼 말씀드리지 말자.’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부모님에게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었다.
솔직하게 사실을 말한다면 어머니는 당장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실 것이 뻔했던 것이다.
별다른 위협도 가하지 않는 존재들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있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오늘도 영찬이 녀석에게 놀림을 받게 되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는 학교에 있는 것이 훨씬 나으니까. 그리고 엄마는 내가 묵주를 가지고 가야 마음을 놓으실 테니.’
묵주로 인해 아들이 학교에서도 탈 없이 다니고 있다고 어머니가 믿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등굣길마다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묵주를 손목에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교에 있을 때보다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이상 현상이 더 빈번히 나타나니 말씀을 드리지 않고 있는 편이 좋았다. 말씀을 드렸다가는 당장 학교를 그만두게 하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적어도 궁금하지는 않을 테니까.’
포박자에 나와 있는 내용에도 이런 현상에 대해 언급해 놓은 것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책도 찾아보고, 여러 방면으로 알아도 봤었다.
무당이나 주술 같은 것을 다룬 책에서 비슷한 현상에 대해 언급한 것을 찾기는 했지만 그것도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 어느 것도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는 못했기에 이제는 포기한 상태였다.
‘이제는 모두 잊어버리자. 더 이상은 결론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
어젯밤에도 밤새 인터넷을 뒤져 봤지만 쓸데없는 정보만 얻었을 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이제는 그만둘 때였다.
빠르게 생각을 털어 버린 후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전이 빈곳이 많구나.”
부모님이 원체 번잡한 곳을 싫어하셨기 때문에 이사를 온 전원주택 단지지만 몇 년이 되도록 아직 완전히 집이 들어차지 않았다.
개발이 끝나기는 했지만 유령을 봤다느니, 귀신을 목격했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문이 몇 차례 돌고 난 후에는 들어오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모두 내가 겪었던 현상 때문이기는 하지만 정말 사람이 없구나.’
이른 아침이기도 했지만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아직도 인도에는 자신 혼자뿐이었다.
거리에 혼자밖에 없음을 인식하며 태완은 밝아 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은 태양이 동쪽 하늘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덜해서 그런지 기분은 좋구나.”
아침 일찍 나와 혼자서 아침 햇살을 받는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
따뜻한 기운과 함께 세상을 비추는 태양이 보이면 마음이 푸근해지기에 이상한 일을 겪은 후부터는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여명이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이상 현상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후후! 가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태완은 빠르게 등굣길을 서둘렀다.
주변 지역이 여전히 개발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태완이 다니는 학교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곳에 있기는 하지만 집에서 무척이나 가까워 금방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태완이 다니는 북정고등학교는 그리 크지 않지만 뒷산도 있고, 사람들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미션스쿨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학교 중 하나다.
7살에 학교에 들어간 탓에 태완은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고, 몇몇을 제외하고는 교우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후우, 오늘도 내가 제일 일찍 온 모양이구나.”
학교로 들어선 태완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향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지 학교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야 할 텐데…….”
교실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미션스쿨이라서 그런지 선생님들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하시지만 묵주를 본 아이들은 기괴한 모습에 많이 놀려대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학교 때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영찬이와 그 일당들이 심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금까지 동창인 영찬은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더욱 심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니 할 수 없지.”
손목에 채워져 있는 묵주를 다시 한 번 바라보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태완은 교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역시나, 오늘도 내가 일착이군.”
지금은 일곱 시 삼십 분!
교실로 들어선 태완은 오늘도 자신이 제일 먼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있으면 반장이 오겠구나.”
의자에 앉은 태완은 다른 자리에 눈길을 보냈다. 반장인 대일이의 자리였다. 앞으로 십 분 후면 반장인 대일이가 들어올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일이었다.
영찬이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닌 대일이었다.
친해질 법도 하건만 묘하게 거리를 두면서도 언제나 자신 근처에 있는 아이였지만 특별히 교류를 가지지는 못했다.
“반장하고는 언제나 친해질 수 있을까? 말이 없기는 하지만 괜찮은 녀석인 것 같은데 말이야. 에고, 책이나 읽자.”
몇 년을 그렇게 생활해 온 터라 더 이상의 궁금증을 접은 태완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드르륵!
몇 페이지 읽었을까 소음과 함께 교실 문이 열렸다.
‘후후후, 저 녀석. 오늘도 어김없구나.’
교실로 들어온 대일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말없이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언제나 똑같구나. 엄친아인 녀석이 너무 무뚝뚝해.’
대일은 조금 이상한 아이였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 마디 이상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말수가 없었다. 사교성이 제로라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태완의 키도 작은 편이 아닌데 대일은 그보다 한 뼘이나 더 크고 얼굴도 잘생긴 편이다.
공부는 전교에서 일등을 놓쳐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검사에 어머니가 변호사라 집안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한마디로 엄친아라고 할 수 있는 아이다.
‘칫! 말을 걸면 지난번처럼 화를 내겠지? 관심 끄고 책이나 읽자.’
언젠가 한 번 말을 걸려다가 ‘참견하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하라.’며 핀잔을 들은 적이 있었다.
대일은 책가방을 열고 책을 꺼내 들고 있었다.
자신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태완은 들고 있는 책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에구, 그 녀석들도 왔구나.’
교실 뒤편에 앉아 책을 읽던 태완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야, 어제 말이야. 그 계집애 죽이지 않냐?”
“죽이기는 뭐가 죽이냐? 욕을 얼마나 잘하는지 입이 아주 걸레더라.”
“하하하하! 입에 걸레면 좀 어때. 몸매가 착하지 않냐! 몸매가!”
“크크크, 하긴! 몸매 하나는 죽이더라.”
어제 미팅을 나간 것이 분명했다.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학생인 녀석들이 말이야. 그런데 공부에 관심도 없는 녀석들이 어째서 학교는 일찍 오는 거야.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등교를 하는 까닭에 희한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며 태완은 책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어차피 아는 척을 해봤자 싸움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드르르륵!
왁자지껄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맨 앞에 어릴 적 친구인 영찬이가 보였다.
언제나 대장 노릇을 하는 영찬이는 보무도 당당하게 교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또 시작이군. 저 녀석은 지겹지도 않나? 하루도 빼먹지를 않으니 말이야.’
태완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 앞으로 다가오는 영찬을 볼 수 있었다.
“오호! 오늘도 귀돌이!”
영찬이 아는 척을 했지만 태완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책만 읽어 내려갔다.
“이 자식아, 또 내 말을 씹는 거냐?”
태완의 대답이 없자 비아냥거렸다.
“그러고 보니 반장도 일찍 와 있네?”
언제나 같은 수순이었기에 영찬의 시비가 대일에게로 향했다.
“크크크, 귀돌이 녀석이야 새벽까지 돌아다니느라고 그렇다고 쳐도. 반장! 매일 일찍 오는 이유가 뭐냐? 혹시 귀돌이랑 같이 다니는 거 아니냐? 크크크크!”
“낄낄낄!”
“크크, 그러게.”
영찬이 반장까지 걸고넘어지자 패거리들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으이그, 빌어먹을 녀석들. 나 하나면 됐지. 오늘도 반장을 걸고넘어지는구나.’
자신 때문에 반장까지 도매 급으로 놀림을 받고 있었지만 태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놀리다가 이내 그만둘 것이기 때문이다.
“어이! 귀돌이!”
역시나 자신을 다시 찾는 영찬을 보며 태완은 내심 한숨을 흘렸다.
‘에휴, 이놈의 묵주만 아니라면 이런 일도 없을 텐데. 그만 좀 해라. 이 자식아.’
영찬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태완은 잠자코 있었다. 속으로는 욕을 해 댔지만 언제나처럼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발끈한다면 그것을 빌미로 시비를 걸 것이고 싸움이 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반장 녀석도 잘 참내. 속내는 여간 아닌 것 같은 녀석이야.’
대일 또한 영찬이 그러거나 말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책을 보고 있었다. 아예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이 녀석들이 쌍으로 내 말을 씹는구나. 제기랄!’
두 사람이 아무 반응이 없자 영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히나 태완은 더 이상 건드려 봐야 소용도 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재미 좀 보려고 했는데 틀린 모양이군.’
내세우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합기도와 특공무술을 오랫동안 익혀온 태완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영찬은 알고 있었다.
더 괴롭힐 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 한다면 싸움으로 번질 것이 분명했고, 태완을 이길 자신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다.
“인마, 얼굴 펴고 다녀라. 그렇게 굳히고 있으면 정말 귀신인 줄 알겠다. 크크, 인상을 펴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태완에게 한마디 던진 영찬은 자신의 자리로 갔다.
‘저 녀석도 알고 보면 원래 나쁜 녀석은 아닌데 말이야.’
자리에 가면서도 자신을 노려보는 영찬의 모습을 느끼며 태완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태완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같은 반이었던 영찬은 장난 삼아 태완에게 묵주를 빼앗아 갔었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였는데 영찬의 놀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태완이 양쪽 손목에 차고 있는 묵주는 보통 크리스천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각기 6개, 총 12개로 스님들이 가지고 다니는 염주만 한 크기의 검은 구슬들이 엮어져 있는 묵주다.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검은색이기는 하지만 반투명한데다가 약간 말랑말랑한 느낌을 주어 유리 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문양도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문양이라는 것이 심상치 않다. 겉면이 아니라 검은 구슬 안에 자리하고 그것만으로도 보통 묵주가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묵주 내부 있는 문양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얼핏 보면 귀신이나 악귀처럼 보였다. 묵주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는 새하얀 십자가만 아니었다면 묵주 안에 귀신이 들어 있다고 남들에게 오해를 살 정도로 섬뜩한 문양이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었지만 처음 괴수를 만난 후 나타난 문양들이었다.
영찬은 묵주에 있는 문양을 본 후 태완에게 별명을 붙였다.
바로 귀돌이다. 귀신 들린 아이란 뜻이었는데 지금까지도 별명을 부르며 놀려대고 있는 중이다.
‘묵주 때문에 놀려서 지금까지 저 녀석하고 참 많이도 다퉜었지.’
태완은 고집이 센 편이다. 남들보다 말이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성깔도 제법 있어서 자신을 놀릴 때마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을 놀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성격이 아니었기에 덩치가 컸지만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찬과 있었던 중학교 때의 싸움은 친구들 간에 흔히 있는 그런 다툼 가운데 하나로 지나갔다.
그렇게 한번 크게 싸운 이후로는 놀리지 않았다. 태완이 단 몇 수만에 간단히 영찬을 단단하게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사이로 시간이 지나갔다.
‘영찬이 녀석이 변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나?’
태완은 영찬이 문제아가 된 원인을 떠올렸다.
중학교 2학년 때 동생이 갑작스럽게 죽자 영찬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고 못되게 굴기 시작했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출생을 비밀을 알아 버렸던 것이다.
사실 영찬은 고아였다. 아주 어렸을 때 친부모로부터 버려졌고 지금의 부모가 입양한 아이였다.
그러는 가운데 동생이 태어났다. 양부모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여동생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투정을 부리곤 했지만 동생이 죽기 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였다.
동생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양부모의 폭언을 통해 영찬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부모라고 여기던 분들이 양부모였다는 충격과 동생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영찬은 남들이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로 변해갔다.
양부모는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영찬에게 다시 정성을 쏟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영찬은 장난꾸러기이지만 착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시샘이 났는지 영찬은 중학교 다니는 내내 학생들을 괴롭혔다.
특히나 태완에 대한 괴롭힘은 지속적이고 끈질겼다.
오랫동안 운동을 해서 싸움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과 웬만하면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탓인지 일정한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습관적으로 태완을 놀려댔다.
그것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싸움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영찬은 매일같이 놀려댔고 태완이 무시하는 상태로 그냥 그렇게 지내오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싸워도 몇 번 싸울 일이지만 태완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태완은 영찬이를 미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변해 버렸는지 알기도 하지만 영찬이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황을 매일 겪는 탓이다.
그저 영찬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도 귀돌이라는 별명을 부르는 탓에 괘씸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도 며칠 전부터 털어 버렸다.
알고 보면 영찬이도 아주 많이 불쌍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오늘로서 저 녀석을 보는 것도 끝이로군. 불쌍한 녀석, 정말 지지리 복도 없지. 부디 내세에서는 좋은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텐데…….’
태완은 한없이 깊은 눈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찬을 바라보았다.
‘쯧! 쯧! 이제 마지막인데 그만 좀 하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긴다는 것도 모르고 영찬은 자리에 앉아 자신의 똘마니들과 자신을 씹고 있는 중이었다.
“반장새끼도 그렇고, 귀돌이도 그렇고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냐?”
“그러게. 이거 우리 반에 부적을 붙여야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후후.”
“크크크, 부적 붙였다가 학주에게 걸렸다가는 엉덩이 쪽은 그야말로 죽음일 거다.”
“그래, 인마. 여기 미션스쿨인 거 모르냐? 부적 붙였다가는 아주 작살 날 거다.”
“크크크, 그렇구나. 그럼 엑소시스트로 해야겠네.”
“이제야 이해하는구나.”
아이들이 놀리는 대화를 들으며 영찬은 태완의 반응을 살폈다.
‘칫! 반응이 없으니 놀리는 것도 재미가 없네.’
태완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놀리는 것은 이쯤 해야겠다. 괜히 담탱이한테 들키면 골치 아파지니까.”
영찬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래야겠네.”
일진인 영찬의 말에 대화를 멈췄다. 교실 좌석이 하나둘 차기 시작했다. 계속 놀려도 되겠지만 아침 조회 시간이 멀지 않아 담임 선생님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걸렸다가는 찍혀서 재미가 없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오늘 게임하러 언제 갈래?”
“점심시간 지나면 튀자. 그 계집애들은 저녁에 만나기로 했으니 시간은 충분할 거다.”
“좋아, 후다닥 도시락 까고 곧바로 튄다.”
“크크크, 그래. 어차피 우리야 대학교도 포기했으니 걸려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다.”
“자랑이다. 인마.”
“크크크.”
드르르륵!
영찬이와 그 패거리들이 오늘 학교를 땡땡이치고 PC방으로 갈 의논이 한창인 와중에 문이 열리며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이다.”
“그래,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
영찬의 패거리들이 곧바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아이들의 수군거림도 일제히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