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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아아악!”
쨍그랑!
“서, 설마!”
해가 지기 시작하자 부엌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던 정수아는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에 들고 있는 접시를 떨어트렸다.
“태, 태완아.”
파리하게 질린 얼굴이 된 수아는 태완의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당탕탕!
수아는 거실을 지나 아들의 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태완아!”
침대 위에서 경련이 일어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곧장 침대로 가서 아들을 잡아 흔들었다.
“태완아, 어서 깨! 어서!”
수아는 아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흔들어 깨운 여파인지 태완의 눈이 떠졌다.
“그래, 태완…… 헉!”
검은자위라고는 하나도 없는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에 수아는 놀라 비명을 삼켜야 했다.
―키키키키! 네 아들은 내 거다. 키키키키키키!
“이놈, 물러나라! 태완이를 네놈에게 내어 줄 수는 없어! 내 아들에게서 떨어져! 어서!!”
아들을 지키려는 악에 받친 목소리가 수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키키키키키!
수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태완의 몸을 차지한 존재는 비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절대로 안 돼!”
수아는 아들을 빼앗길 수 없었다.
우드득!
수아는 태완의 옷을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고는 태완의 상반신에 기이한 문양들을 그려 나갔다.
―그래 보았자 헛수고다. 키키키키키!
“네 이놈! 네놈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수아는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수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악령 퇴치 의식에 쓰이는 문양들이 심장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 태완의 상반신을 빠르게 덮어 버렸다.
“주여! 불쌍한 어린 양을 보호하소서!”
수아는 기도와 함께 마지막으로 태완의 이마에 세 개의 십자가를 그렸다.
번쩍!
피의 생명력을 간직한 붉은 십자가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르르!
붉은 광채를 발하는 세 개의 십자가가 태완의 이마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7장 금강산 혈투
하얀색의 눈동자가 점차 제 색을 찾기 시작하고 검은 눈동자가 맺히기 시작했다.
검은 눈동자의 시선이 수아에게 고정되었다.
아들의 눈동자는 절대로 어머니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빛을 찾은 눈동자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었다.
“됐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키키, 네년이 믿고 있는 신이란 놈의 힘으로 날 어쩔 수 있다고 생각했더냐?
“안 돼! 절대로 네놈에게 태완이를 내줄 수 없다.”
―키키키키, 네가 만군의 주라는 군신의 힘을 사용한다고 해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어리석은 계집이로군. 크크크, 네년의 아들은 내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을 가졌다. 본신의 힘도 아니고 그까짓 가피로 나를 막을 수는 없단 말이다.
“네 생명을 던져서라도 널 막을 것이다. 그리고 주께서 널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
수아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웠다.
그녀는 아들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자신의 힘을 아들의 심장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수아가 전하고 있는 힘은 그녀의 생명을 깎아 만든 것이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어머니다.
수아 또한 그런 어머니 중 하나였다.
‘주의 말씀을 깨우게 되면 태완이가 깨어날 것이다.’
태완의 상반신을 덮고 있는 문양들은 주의 말씀을 오롯이 전하는 신들의 문자였다.
속박받는 자를 구원하기 위한 신의 문자에 자신의 생명을 깎아 만든 힘이 더해진다면 아들의 몸을 차지한 악령을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 수아는 굳게 믿었다.
생명력이 흡수되자 태완의 가슴에 있던 신들의 문자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되, 된다.’
영롱한 빛을 통해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의 힘을 엿본 수아는 아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치지지지직!
“아아악!”
우당탕탕!
기쁨은 잠깐의 순간뿐이었다.
갑자기 검은 뇌전이 수아를 덮쳤고, 충격을 받은 듯 비명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검은 뇌전은 태완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묵주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어, 어떻게!”
수아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아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그녀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묵주에 달린 은으로 만든 십자가가 부글부글 끓더니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 신성의 십자가가 녹고 있다니…….”
예수의 성혈이 묻은 은화에 신성력을 불어넣고 또 불어넣어 100퍼센트 순수한 진은(眞銀)으로 만든 뒤 특별한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신성의 십자가였다.
신의 가호를 받은 성물이라 용광로에 들어가도 녹지 않는 것이었는데 더운 여름날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녹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흑,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들을 지키던 물건들이 사라지는 모습에 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끄아아아아!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하며 낙담을 하는 수아의 귓가로 미지의 악마가 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크으으윽, 이년!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악마에게 잠식당한 태완의 하얀 눈동자가 수아를 노려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충격을 받고 있다. 저놈에게 저런 충격을 준 것이 무엇이지?’
자신을 바라보는 하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수아는 아들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저 악마를 흔드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오래전부터 이런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수아는 침착하게 악마가 당혹해 하는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저, 저건! 아버님이 주신 묵주인데…….’
태완에게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양쪽 손목에 채워진 묵주뿐이었다. 검은색의 묵주가 은은한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고, 묵주 바로 위로 검은 색의 문양들이 떠올라 있었다.
절대로 손자의 몸에서 떼어놓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시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전해진 묵주였다.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어떤 것인지 살펴달라고 부탁을 했었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도 뭐하는 것인지 모른다고 하셨는데 저런 힘이 깃들어 있었다니…….’
진은의 십자가가 달렸어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 그냥 평범한 물건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결코 아니었다.
신화학과 악마학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신의 아버지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물건이었다.
시아버지가 자신의 손자에게 해로운 물건을 전할 리 없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성물인 진은의 십자가를 달아 아들에게 준 것인데 뜻밖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끄으으윽!”
머리를 울리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태완의 입에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비명이 흘러나온 데 뒤이어 몸을 있는 대로 비틀고 있었다.
악마가 아들을 차지하기 위한 몸부림이 전혀 아니었다.
‘모를 일이다. 묵주에 담긴 힘이 어떤 것이기에 진성악마인 저 존재를 저리 괴롭게 만든다는 말인가?’
악마의 발버둥은 한눈에 보기에도 처절했다.
“크아아아악! 주, 죽여 버리겠다.”
비명을 질러대고, 저주에 찬 음성이 태완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묵주에 담긴 힘이 진성악마를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또, 또! 변하고 있다.’
묵주가 또다시 변하고 있었다. 검은색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처절하기 그지없는 비명 소리가 아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태, 태완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아는 그저 아들의 이름만 불렀다.
“커어어억!”
묵주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비명 소리와 함께 처절할 정도로 발버둥 치던 태완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끄르르륵!”
마지막인 듯 기력이 다한 숨소리와 함께 움직임도 완전히 멈추었다.
“돼, 됐다.”
가슴을 졸이게 만들던 잔혹한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태, 태완아!”
수아는 아들의 몸에서 악마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태완에게 다가가 조용히 머리에 손을 짚었다.
식은땀이 흥건한 아들의 이마를 짚으며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악마의 흔적을 찾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 수아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흐흐흑, 태, 태완아!”
수아는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을 깨워야만 했다. 정신을 차려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아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으로 인해 신의 힘이 일부나마 작용한 상태였다. 정신을 차려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뜻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아직까지 몸에 남아 있는 신들의 힘을 일깨우려 아들의 심장에 손을 가져다댔다.
자신의 생명력을 이용해 신의 힘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이미 상당량의 생명력을 쏟아부은 상태였기에 정수아가 시도하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아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의 희생으로 아들이 살아날 수만 있다면 백 번이라도 달갑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수아의 시도는 소용이 없었다.
남아 있는 생명력을 쏟아부으려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가로막으며 그녀의 힘을 거부했다.
“이게 없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들의 손목에 채워진 묵주를 빼내려 했다.
“왜! 안 되는 거지?”
콩알 정도로 변해 버린 묵주는 태완의 몸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아아악!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수아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내 아들을 살리게 해줘. 제발!!”
수아는 묵주에서 뻗어 나오는 미지의 힘에게 사정을 하며 애원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명력을 가로막고 있는 미지의 힘은 요지부동이었다.
“태완아! 태완아!!”
신의 힘을 이용해 아들을 살리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수아는 소리를 지르며 아들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우격다짐 같은 수아의 움직임에도 태완은 눈을 뜰 줄 몰랐다.
“흐흐흑…….”
아무리 해도 깨어나지 않는 아들을 바라보는 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흑, 이대로는 보낼 수 없다. 이대로는…….”
눈물을 훔친 수아는 굳은 표정을 한 채 바깥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그녀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퇴마의식에 쓰이는 신의 힘을 거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 이상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다.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적 의지보다는 아들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거실로 나간 수아는 다급하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들의 상태와 함께 결혼한 이후 금기시 되어 왔던 주제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인국은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곧장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인국과 수아는 아들을 옮기지 않았다.
아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병원에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깊어가고 자정이 다가올 때까지 손을 쓰지도 못한 채 아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
금강산!
일만이천 개의 봉우리만큼이나 무수한 전설을 간직한 이곳은 한반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영산이라 불리는 곳이다.
오늘처럼 보름인 경우에 은은히 비치는 달빛을 받은 금강산의 모습은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오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하잘 것 없음을 인식하게 만들 정도로 신비로움과 현기를 품고 있는 모습이다.
쉬이이이익!
달이 중천에 걸려 밤이 깊은 시각, 날카로운 소음이 금강산을 가로질렀다.
놀랍게도 소음의 주인공은 사람이었다.
금강산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이 된 후 찾는 발길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이런 야심한 시간에 사람을 찾아본다는 것이 어려워 의외라 할 수 있었다.
슈―슛!
사람의 흔적이 나타난 것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보여준 움직임이었다.
발놀림이 그리 빠르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마치 쏘아낸 화살처럼 움직였다. 한 번 발걸음을 놀릴 때마다 10여 미터씩 땅을 접듯 허공을 날아 빠르게 나아갔다.
전설로만 내려오는 축지(縮地)의 술(術)이었다.
탁!
빠르게 움직인 탓에 생긴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허공을 가르던 그가 이제 목적지에 근처에 도착해 멈추어 선 탓이다.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달빛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금강산의 계곡 깊은 곳에 멈추어 선 그는 성산 카일라스에서 이름 모를 동굴신전으로 들어섰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힘든 여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에 계곡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감회로 젖어들었다.
“후우, 힘들군. 이제 다 왔으니 이곳부터는 천천히 가도 되겠지. 그래도 덕분에 봉인에 대한 비밀을 손에 넣었으니 다행이다. 후후후!”
얼마 전 행했던 의식으로 인해 상당히 지친 상태라 온몸이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제 들어가 보자. 후우우!”
숨을 크게 한 번 쉬더니 이내 계곡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사사삭!
본인의 말처럼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유령 같은 몸놀림으로 빠르게 계곡 안으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었다.
안으로 한참 들어간 그가 갑자기 신형을 멈춰 세웠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디 보자.”
노인의 시선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밤이 깊었지만 노인의 시야를 벗어나는 것은 없었다.
“저기 있군. 그나저나 언제 봐도 역시 좋구나.”
목적지를 확인한 화영은 금강산 만폭동의 비경에 심취했다. 달빛을 받은 만폭동 주변의 기암절벽이 절경이라 할 만큼 풍경이 좋았다. 이런 비경을 본다는 자체가 그에게도 특별한 일이었다.
사실 화영은 지금 이 시각 절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화영은 엄연히 대한민국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전 상태라 군사분계선으로 가로막혀 함부로 오갈 수 없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가 가진 또 다른 신분이 이렇게 금강산에 있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이미 영술(靈術)이 절정의 반열에 오른 그에게 있어 군사분계선 같은 것은 발걸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못되었다.
“쯔쯔―쯧!”
절경을 바라보던 화영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혀를 길게 찼다.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을 남북이 분단되어 잘 오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구나. 이런 비경을 자자손손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시절이 언제나 올 것인지…….”
분단의 아픔을 생각하던 화영은 이내 상념을 멈추었다.
‘카라의 비밀을 푸는 과정에서 지박령들을 천도시키느라 영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니 저곳에서 영기를 흡수해 몸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목적지를 한번 힐끗 바라본 화영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절경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일라스에서 얻은 카라의 봉인에 대한 비밀을 푸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카라라는 이름 모를 신을 모시는 문명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하늘의 도움인지 화영은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카라의 봉인을 풀 수 있었다.
자신의 수명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영술을 시도한 결과 카라의 봉인이 반응을 보이면서 실체를 드러냈던 것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과 같은 시도가 성공한 것이다.
카라의 봉인을 해제하는 작업이 무사히 끝난 것은 아니다.
화영은 봉인을 푸는 과정에서 정신력은 물론 가지고 있던 영력 대부분을 소모했다.
수명이 깎인 것은 물론이고, 상당한 내상마저 입은 상태였기에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망가진 몸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일단 이곳에서 영력을 회복하고 난 뒤에 십대가문의 회합에 참석하도록 하자. 그리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이 났으니까.”
자신의 손자를 위한 법술을 시행하기 전에 마련해야 할 준비는 다 갖추어진 상태였다.
이제 다음 과정을 진행하고 카라의 봉인을 풀기 위해 소진한 영력을 회복하는 것만 남았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영력을 보충할 수 있는 금강산 깊숙이 숨겨져 있는 영물을 알기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력을 회복한 후에는 영가(靈駕)의 십방을 수호하는 십대가문의 수장으로서 회합에 참석해야 한다.
어차피 오래전부터 알아서 돌아가는 터라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별 다른 부담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