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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8장 고통의 시간
팟!
화영에 의해 생겨난 선명한 붉은색의 쐐기들이 일순 사라져 버렸다.
퍼―퍼퍼퍽!
격타음과 함께 꼼짝 못하고 있던 검은 인영들의 왼쪽 다리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사라졌던 쐐기들이 강력한 힘으로 암습자들의 다리를 관통한 것이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법, 본전은 챙겼으니 이제 이자만 받으면 되겠구나! 첨!”
화영은 인혼술의 첨자결을 다시 시전했다.
화영은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는지 연이어 공격을 했다.
그에게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시간을 암습자들에게 빼앗긴 탓에 그는 기분이 상해 있었던 때문이다.
퍼퍼퍽!
다시금 붉은빛의 쐐기들이 생겨나고 조금 전 같이 시야에서 사라지며 이번에는 검은 인영들의 오른쪽 다리에서 피분수가 쏟아졌다.
암습자들의 기동력을 빼앗은 것이다.
“크윽!”
“윽!”
비명을 흘리는 암습자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던 화영이 입을 열었다.
“정체가 무엇인지 말해라.”
“크으으…….”
화영의 물음에 암습자들은 신음만 흘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네놈들은 북방을 맡고 있는 가문의 사주를 받았음이 분명한 터, 아무리 네놈들이 이천 년을 내려오는 음자의 맥을 이었다고 해도 오늘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실토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라.”
스산하기 그지없는 음색이었다.
화영의 말에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던 네 명의 음자들은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포위하고 없애려 한 자는 자신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구나. 절대의 합격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다니 정말 무, 무서운 자다.’
고구려 군부의 비첩(秘諜)으로 시작된 음자(陰子)의 맥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있는 존재였다.
음자를 알고 있다면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힘으로 청부를 끝낸 것은 실패로군.’
그저 간단히 끝날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청부자의 요구로 천음문(天陰門) 본 단에서는 특급에 속하는 자신들을 보냈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 사앙신(四殃神)이라 불리는 자신들이었다.
처리해야 할 대상이 술법자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투입된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자신들에게 화영을 죽여 달라고 사주한 자가 준 어둠의 결계인 암흑린을 이용한 공격에도 단지 어깨에 부상만을 입고 유유히 빠져나가 버렸다.
거기다 웬만한 결계는 통하지 않는 자신들을 알 수 없는 술법을 사용하여 결박 지어 놓았다.
비록 육체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세에 다시 보기 드문 강력한 술법을 소유하고 있는 자라는 정보가 있었기에 준비를 철저히 했었는데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자신들에게 의뢰한 자가 예견했던 대로 청부가 실패한 것이다.
‘이래서 그런 말을 했었던 건가?’
화영의 삼엄한 기세를 느끼며 사앙신은 출발하기 전 청부자가 자신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자신들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달아날 수가 없을 것이니 자신이 베푼 술법을 사용하라는 말이었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자신들에게 술법을 베푸는 조건으로 청부를 의뢰할 때 준 막대한 청부 금액과 같은 액수의 돈을 주었기에 사앙신은 마지못해 승낙하고는 시술을 받았던 것이다.
청부를 의뢰한 자는 실패할 확률이 무척 많음을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그리고 최후가 다가오면 자신이 만들어 준 방법을 써야만 한다고 했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청부자의 말은 옳았다.
‘그자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군. 혹시나 했었는데 다행이 아닐 수 없구나. 이번 청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청부자는 의뢰가 실패하면 반드시 죽음으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해놓은 상태였다. 청부는 실패했지만 비밀 엄수는 천음문의 절대 명령이었다.
술법자라면 자신들의 사후에도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어차피 자결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면 청부자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에 술법을 펼치기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하는 사앙신의 눈빛이 묘하게 변하고 있었지만 화영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듯 아무 대답이 없자 말을 이어 나갔다.
“네놈들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의 장막 같은 존재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저 한낱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살아 돌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 거다. 물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남기고 말이다.”
감추어진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화영이 사앙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앙신은 화영이 자신들의 근처에 거의 다다르자 청부자가 자신들의 몸에 베푼 술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사앙신의 몸에서 음습한 기운이 기하급수로 폭증했다.
‘음! 이건!’
자신을 공격했던 사앙신 중 한 명의 머리에 손을 얹는 순간 화영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폭발하고 있음을 느꼈다.
‘제기랄!! 잔혼파령(殘魂破靈)이다. 북방을 수호해야 할 네 가문의 암술들이 모두 나타나다니…….’
음자의 의식 세계를 살펴보려면 음자들의 몸과 직접 접촉해야 하기에 가까이 다가갔던 것이 실수였다.
때가 늦었음을 알았지만 그래도 피해야 했다.
“영천환(靈泉環)!”
화영은 자신의 혼을 파괴시켜 적의 혼백을 끊는 북방가문 중 잔혼영문(殘魂靈門)의 제일암술이 암습자들의 몸에서 펼쳐졌음을 깨닫고는 빠르게 영기의 막을 전신에 둘렀다.
번쩍!!
영천환이 펼쳐짐과 동시에 영술사들이 상대하기 제일 꺼려 하는 비장의 암술이 화영을 향해 폭사됐다.
피와 갈가리 찢긴 육체와 함께 수천, 수만으로 갈라진 영혼의 화살들이 화영을 향해 쏟아졌다.
퍼퍼퍽!
영천환을 펼쳐 막아내려 했지만 너무 가까이 있던 탓으로 일부 잔혼파령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영천환이 다 펼쳐지기도 전에 몇몇 잔혼파령이 뚫고 들어왔다.
“크윽!”
화영의 신형이 비틀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파파팟!
죽은 이의 뒤를 이어 다른 사앙신들의 생명을 도외시한 파상적인 공격이 감행됐다.
‘막고 피해야 한다.’
이미 심각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공격을 허용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영기가 많이 손상되었지만 화영은 무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혼술(人魂術)! 선(旋).”
휘―리리리릭!!
화영은 자신에게 접신한 천매의 기운으로 몸 주위를 감싼 채 휘돌기 시작했다.
티티티티틱!
대부분의 공격은 회전하는 기운으로 튕겨 낼 수 있었다.
번쩍!!
공격이 실패했지만 가까이 다가온 그들의 몸에서도 잔혼파령이 펼쳐졌다.
이미 영천환이 반쯤 허물어진 터라 화영은 고스란히 공격을 감내해야 했다.
잔혼파령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영천환을 붕괴시키고 빠르게 화영을 향해 쇄도했다.
아직까지 인혼술의 기운이 남아 있어 부서진 피륙은 막아낼 수 있었지만 영혼의 파편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명유환(冥幽環)!”
다급한 화영은 최후의 주법을 시전했다. 검붉은 기운이 화영의 전신에 머무는 찰나 영혼의 파편들이 부딪쳤다.
퍼퍼퍼퍼퍼퍼퍽!
“커억!!”
비명과 함께 붉은 선혈이 화영의 입에서 토해졌다.
다행이 제때 명유환을 시전해 간신히 죽음은 면했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웩!! 크으으윽!”
화영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간신히 즉사는 면했구나.”
죽지는 않았지만 몸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연이어지는 잔혼파령의 공격으로 영기를 크게 훼손당한데다가 목숨을 걸고 시전한 명유환의 주법으로 인해 화영은 회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화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씁쓸한 눈으로 장내를 바라보았다. 알게 모르게 그의 속은 지금 매우 복잡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은 죽은 자들을 사주한 놈들의 안배인 것이 분명하다.’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 여행길에서 자신 앞에 유난히 지박령이 많이 나타났었다. 그로인해 금강산으로 오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영기를 대부분 소모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중상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가 있으면 그것을 부른 원인이 있는 법이다. 우연이라는 것은 결코 없다고 확신하는 이가 바로 화영이었기에 자신을 잘 아는 누군가 이번 일을 사주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후후후, 천절영가의 수장이라는 놈이 이런 꼬락서니하고는…… 어쩌랴, 내 방심이 부른 결과인 것을.’
숨어 있을지도 모를 자를 의식해 애써 침착해 보이려 했지만 심각한 내상을 입었기에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영기가 모여 있는 곳으로 빨리 가야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숨어 있는 놈이 있을지 모르니 절대로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미 나머지 삶은 포기했지만 손자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노리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영물이 있는 곳까지만 간다면 방법이 있었기에 화영은 마지막 남은 영기를 끌어올렸다.
화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거기다가 무서운 기운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혹시 모를 적으로 인해 간신히 내상을 막고 있는 기운 중 일부를 돌려 허장성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화영이 시야에 담고 있는 것은 잔혼파령을 시전해 핏물이 되어 바닥에 뿌려진 자들의 잔해였다.
영력을 끌어올린 터라 그의 눈에는 피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사앙신들의 영혼이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나를 원망하지 마라. 모두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니.’
아무리 적이지만 사앙신의 영혼을 명계로 들이는 것이 천절영가의 수장인 화영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어려웠다. 사앙신을 위해 천도제를 지내주고 싶어도 이미 원영이 붕괴되기 시작한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상황이 무척이나 어려워졌기에 화영은 영술사로서 살아온 생애 중 오늘 단 한 번 자신의 사명을 저버리기로 했다.
“쯧! 쯧! 불쌍한 자들! 영혼을 파괴시키는 수법이라 승천도 못하고 영영 이승을 떠돌아야겠구나. 아무리 적이었지만 윤회의 길로 인도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아 미안하다. 어떤 놈들인지 모르지만 너희들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영혼을 가지고 장난을 친 그놈들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살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화영의 주변에 살기가 휘몰아쳤다.
엄청난 고통이 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화영은 기운을 내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적에게 자신이 아직도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네놈들은 머지않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나중에 못다 한 살풀이를 해주마.’
명유환을 시전한 터라 자신도 머지않아 핏물로 변해 버린 저들과 같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잔혼파령으로 인해 영영 이승을 떠돌아야 하는 사앙신과 같은 상태가 될 것이 뻔한 이상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화영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화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신형을 움직여 자신이 영막을 둘러친 곳으로 향했다.
‘크윽! 힘들구나. 하지만 언제 놈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태완이를 위해서라도 기력을 잃기 전에 저곳까지 가야만 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화영은 죽을 맛이었다.
어차피 죽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틈을 보이면 어렵게 마련한 기회를 잃을 것이 분명하기에 화영은 고통을 참으며 사력을 다해 움직였다.
팟!
영막이 쳐진 곳으로 온 화영은 신형을 띄워 올렸다.
절벽 중턱까지 올라간 화영의 신형이 꺼지듯 허공에서 사라졌다.
스르르르!
화영이 계곡 깊은 곳으로 사라진 후, 격전이 있었던 장소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두 개의 불빛이 생겨났다.
그것은 눈동자였다.
인간의 눈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현기 가득한 금빛의 눈동자가 갑자기 허공중에 나타난 것이다.
금빛의 눈동자는 화영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절벽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재수 없는 놈이 들어왔군.
스으윽!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가 만폭동을 울리자마자 파란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러게.
―수환아, 어떻게 생각하냐?
―아무래도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네가 봐도 그렇지?
―그래.
―우라질 놈! 하필 내 집이라니!
―어서 가자. 금령아! 감히 우리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침범하는 놈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
―아암! 그래야지.
팟! 팟!
허공에 떠 있던 금색과 푸른색의 눈동자가 꺼지듯 사라졌다.
그와 함께 알 수 없는 미지의 기운이 화영이 사라진 계곡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미지의 존재들의 뿌리는 기운이었다.
◈◈◈
‘여긴 어디지?’
하얀 눈동자를 한 악마가 자신을 노리고 다가온 이후 정신을 잃었던 태완은 깨어나자마자 주변을 돌아보았다.
“으음! 또 꿈인가?”
아주 어렸을 적에 꿈을 꾸었을 때 보았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으아악! 제기랄!!”
꿈이라는 것을 인식한 태완이 악을 썼다.
“꿈이라면 제발 깨자. 제발!!”
자신을 괴롭힌 기운들이 머지않아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뭐지?’
갑자기 서늘함을 느꼈다.
샤아∼악!
바람이 갈라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뿜어내는 기운이 주위를 싸늘히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뭐냐?”
전과는 다른 선명함에 태완이 소리를 질렀다.
피―피피핏!
뭔가가 날아들었다.
음습한 기운들이 빠르게 태완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고 여지없이 태완의 몸에 부딪쳤다.
퍼퍼퍼퍼퍽!
“커억!”
사정을 두지 않고 부딪친 후 아귀처럼 달라붙었다. 연이어 부딪쳐 오는 기운들로 인해 태완은 죽을 맛이었다.
뭔가 보여야 싸우기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크으윽! 제기랄!!”
전과는 달리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너무 아파서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렸을 때 꾸었던 악몽과는 확실히 달랐다. 고통이 이는 것을 보면 확실히 꿈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런 일을 왜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까닭에 태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크으, 그만둬!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태완은 악을 써대며 소리를 질렀다.
퍼퍼퍼퍼퍽!
소리를 질러보고, 그동안 배워왔던 합기도나 특공무술의 술식을 이용해 사방을 공격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태완을 향해 더욱 강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어둠으로 물든 날카로운 기운들이 무섭게 달려와 충돌했다.
“크으으윽!”
고통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태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전에는 그저 희미하게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자신과 부딪치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의 기운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크으으,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전부 다르다.’
자신을 압박하며 고통을 주는 기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같은 종류는 없었다. 하나같이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기운들이었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뭔가 해야 한다. 영찬이가 죽은 후에 성공을 했었는데, 그거라면 혹시라도 이 상황을 막아줄지 모른다.’
영찬이가 원귀가 되기 직전 검은 기운을 몰아냈던 것에 생각이 미친 태완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인터넷과 도서관을 섭렵하고, 오래된 고서점을 샅샅이 뒤진 끝에 알게 된 것들 중 파사(破邪)에 가장 뛰어난 효과를 가졌다는 금강경을 차용한 공격 수법인 금강인이었다.
맺어진 금강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퍼퍼퍼퍼퍽!
‘크으으윽, 영찬이 때도 분명 효과가 있었는데…….’
금강인이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부딪쳐 오는 숫자만 더욱 늘어나 고통만 더욱 가중되었다.
‘그, 그거라면…….’
금강인이 소용이 없자 태완은 효과를 보았던 부동금강결을 손을 맺었다.
퍼퍼퍼퍼퍼퍼퍽!
‘크으으으, 역시 안 되는구나.’
이대로 있으면 당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서인지 부동금강결 역시 효과가 전혀 없었다.
퍼퍼퍼퍽!
기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딪쳐 왔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크으으윽! 도망가야 한다.’
이러다가는 큰일이 나겠다는 싶은 생각에 태완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젠장할! 너무 많아서 빠져나갈 틈이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것이 느껴졌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기운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자신을 향해 돌진할 때를 기다리는 기운들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어 빠져나갈 틈이 전혀 없었다.
‘크으으으, 아주 순서대로 대기를 하고 있구나. 가, 가만!’
자신을 향해 달려들 때만 기다리고 있는 기운들을 보면서 태완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고통스러워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태완은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휘익!
퍼퍼퍼퍽!
‘크윽, 내 생각이 맞았다.’
움직임에 따라 달려드는 존재들이 경로를 바꿨다. 그중 몇몇은 서로 부딪친 후 격렬한 투기를 발산했다.
‘놈들은 같은 종자들이 아니다. 각자의 뜻에 따라 나를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틈을 만들 수 있다.’
자신에게 달려들기는 하지만 다른 존재들을 극도로 경계한다는 것을 알아낸 태완은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였다.
퍼퍽!
파지지지지직!
서로 다른 기운들이 태완에게 다가오다 부딪친 후 스파크가 튀었다.
서로를 인식하며 잠깐 투기를 흘리다가 태완을 향해 움직였지만 다시 부딪친 후 벌어진 현상이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실히 인식한 태완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파지지직!
콰지지지직!
두어 번 부딪친 기운들은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다른 상대를 향해 투기를 보이며 격렬하게 계속 부딪쳤다.
부딪친 기운들은 태완을 독차지하기 위해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태완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하게 번져 나갔다. 투기에 전염이 된 듯 주변을 둘러싼 기운들이 모두 태완을 빼앗기 위한 쟁탈전에 가담을 하고 있었다.
‘제기랄! 지들끼리 싸우는군. 하지만 지금이 기회다.’
잡아 놓은 고기를 놓고 서로 먹겠다고 다투는 짐승들처럼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태완은 화가 났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냉정해져야 했다.
잠시나마 그냥 내버려 둔 덕분에 잠시 고통이 가신 태완은 냉정히 상황을 파악했다.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였기에 잠시 숨을 고르며 틈을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