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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초혼령으로 밖에서 이곳을 살피고 있는 지령신들을 부를 힘은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이다.
으득!
으드득!
태완이에게 다가간 혜화는 자신의 양손의 모든 손가락을 하나하나 깨물었다.
“으으음!”
이내 혜화의 손가락 끝에는 붉디붉은 핏방울들이 아롱지기 시작했다.
혜화는 양손을 겹쳐 경건하게 수인을 맺으며 진혼인(鎭魂印)의 주(呪)를 암송했다.
“진혼(鎭魂) 제(祭) 삼령주(三靈呪) 환허천밀(環許闡密) 제(祭) 삼령주(三靈呪)…….”
진혼인의 주가 거듭될수록 서기와 같은 기운이 후광처럼 혜화의 머리에서 어른거렸다. 성스러워 보이는 후광은 이내 그녀의 팔을 따라 손끝에 몰려들었고, 손가락 끝에 맺혀 있는 핏방울로 스며들었다.
번쩍!
섬광과 함께 혜화의 팔이 붉은빛에 휩싸였다. 동시에 진혼인의 주도 끝을 맺었다.
혜화는 천천히 양손을 펼쳐 태완의 미간과 백회를 짚어 나갔다.
“세상의 근원이 되는 원심(元心)이 진혼의 인으로 혼백(魂魄)을 보호하나니! 인(印)의 법(法)을 받는 자가 생명의 불꽃으로 보호되기를 기원하나이다.”
신심(信心)이 가득한 기원과 함께 혜화의 손에서 머물던 붉은빛의 광채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쑤욱!
손끝에서 머물던 붉은빛의 광채가 태완의 미간과 백회를 통해 안으로 스며든 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툭!
굵은 땀방울이 콧등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붉은빛이 모두 태완의 몸으로 사라진 후 혜화는 힘겨운 듯 천천히 자신의 손을 거두었다.
창백해져 버린 얼굴에 푸른 기가 감도는 입술이 곧바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겨워 보였다.
진혼인을 펼치고 나자 영력의 원천인 원심이 깨진 탓이다.
이제는 수명도 거의 다 써 버린 탓에 창백해져 있었지만 잔잔한 미소가 어리고 있는 것을 보면 뜻한 바를 이룬 것 같았다.
“이제 지령신들을 부르는 것만 남았구나. 저들이 왜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진혼의 인이 우리 태완이를 보호하는 한 저들도 어쩔 수가 없을 테니 이제는 안심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신기가 저리 강하니 우리 태완이에게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드르륵!
잠시 후 방이 열리며 인국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조그만 방울이 달린 채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미닫이문이 열리며 방으로 들어선 인국은 들어서다 혜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어머니!”
딸랑!
청아하지만 어딘가 귀기스러운 방울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핏기가 하나도 없이 창백한 혜화를 보고는 가슴이 내려앉음을 느끼며 가지고 들어온 초혼령을 놓쳐 버린 것이다.
“놀라지 말고 어서 초혼령을 집어서 나에게 주거라.”
“아, 알겠습니다.”
인국은 넋이 빠진 모습으로 바닥에 떨어진 초혼령을 들어 혜화에게 건넸다.
‘어머니의 원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 내가 초혼령을 가지러 간 동안 무엇을 하셨기에 이런 일이…….’
인국은 어머니의 원기가 빠르게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태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네 아버님이 때맞춰 돌아오셨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지만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태완이에게 진혼의 인을 베푸는 것밖에는 없었다.”
“어, 어머님! 흐흐흑!!”
진혼인이라는 말에 인국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국 또한 진혼인이 어떤 술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문은 이 땅을 지키는 호국신을 모시고 수호하는 가문이다.
그에 반해 외가는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영을 어루만지는 운명을 타고난 가문이다.
영력의 가장 근본이 되며 영력을 사용하는 자의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 바로 원심(元心)이다.
원심을 이용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타인의 혼을 보호하는 진혼인이라는 최후의 법술이 외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술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아들인 태완을 위해 펼칠 줄은 몰랐기에 인국의 가슴이 찢어졌다.
“크흐흐흑, 죄송합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자신의 자식인 태완이가 잡귀와 악귀들로부터 시달리며 영혼이 하얗게 탈색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돌아오지 않으려 했던 가문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눈물 어린 호소로 돌아오긴 했지만 자식을 살리기 위해 돌아온 집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일이 이렇게 되도록 한 것이 자신의 죄인 것 같아 인국은 죄송하다 말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어머니가 이렇게 될 줄 진즉에 알았다면 인국은 이 세상에서 천하게 여기는 박수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총칼이 난무하는 전쟁터보다 더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가문의 숙명 또한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아니, 현존하는 박수 중에 제일가는 영력을 지니셨던 아버지의 대를 두말없이 이었을 터였다.
‘모두가 내 잘못이다. 내 잘못…….’
운명의 그날!
자신이 본 것이 그리 무섭지만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 맴돌았다.
자신 또한 영체를 볼 수 있는 타고난 영자(靈子)였기에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와 원귀들의 처절한 사투에 겁을 집어 먹었다.
원한에 사무쳐 세상을 떠도는 원귀들을 천도하는 것이 가문의 숙명이었다.
그런 숙명이 너무도 겁이 나 무당이라는 굴레를 핑계로 집을 떠났었다.
그런 자신을 안쓰럽게 보내주었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이렇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자신이 가문의 절기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국은 스스로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크으, 어머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저 때문입니다.”
“아니다. 네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가문의 숙명이 너무도 외롭고 처절하기에 나조차 너를 말리지 않은 것이다. 어미가 불쌍타 생각은 말고 모든 것을 잊어라. 난 세상에 대한 원망도 미련도 없으니 좋은 삶을 산 것이란다. 이 어미는 태완이를 위해 내 삶을 준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니 울지 마라.”
혜화는 울고 있는 인국을 다독였다. 자식의 가슴에 회한이 될 일이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인국아, 태완이가 보기 드물게 영통한 아이라 진혼인이 얼마나 견뎌 줄지 그게 걱정이로구나. 앞으로 네가 잘해주어야 할 것이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린 태완이를 지켜내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으마.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없으니 그들을 불러야겠다.”
혜화는 자신에게 더 이상 시간이 없음을 느끼고 초혼령을 이용해 지령신들을 부르려 했다.
스으으…….
혜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법당 안에 신령한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를 부를 필요 없다. 우린 이미 이곳에 와 있으니까.”
신령스러운 음성이 허공중에서 들려왔다.
그와 함께 앙증맞은 두 개의 금빛 방울로 이루어진 초혼령에서는 금색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스스!
혜화와 인국이 있는 방 안에 선풍도골의 두 노인이 서서히 나타났다.
금령과 수환이었다.
금령은 방에 나타나자마자 인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기운이 일렁이며 인국을 감쌌다.
혜화도 금령이 뿌린 기운을 느끼긴 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기운의 힘을 봐서는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것이고, 두 신령이 자신하고만 대화하려 함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림하신 분들께서는 태백산신이신지요?”
혜화는 방 안에 나타난 금령과 수환의 정체를 물었다.
“아니다. 난 금강산에서 왔다.”
“난 그 옆 동네에 살아!”
“야, 인마! 사실대로 밝히지 않을 거냐?! 넌 내 아래 동네에 살잖아!”
“그래, 금령아. 네 아래 동네에 산다. 그래서 어쩔래!”
“그게 정석이지 자식이 꼭 우긴단 말이야!”
지령신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찌 신령들이라는 존재가…….’
혜화는 넘어가는 숨이 다시 돌아올 만큼 기가 막혔다.
신령이라는 존재들이 자신 앞에서 동네 양아치마냥 다투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으음, 그래도 가진 신력이 강력한 분들이다.’
외양과는 달리 범접하기 힘들 정도의 기운이 주변에 감돌았다. 혜화는 눈앞에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두 신령의 신력이 꽤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신력이라면 내게 말씀한 대로 금강산의 산신들임이 분명하다. 이 땅에 저만한 신기를 품을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터전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구나.’
처음엔 금강산을 지키는 지령신들이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터전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 지령신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태백산의 산신이라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기운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에서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 목적이 있음이 분명하다.’
터를 떠났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일이기에 혜화는 두 지령신의 의도를 알아보기로 했다.
“먼 금강산에서 어이신 일로 이곳까지 친히 왕림하신 것인지요?”
혜화의 말에 금령이 얼굴을 돌렸다.
“궁금해도 참아. 나도 더 이상은 말하지 못하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짜증나는 금령의 말투에 혜화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진짜! 네가 영계로 들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 더 이상 묻지 마라.”
“제, 제가 영계로 든다는 말씀입니까?”
놀라운 말에 혜화가 물었다.
“맞다. 귀찮게 자꾸 묻고 그래.”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 이미 진혼의 인을 원심을 이용해 저 아이에게 베풀었습니다. 원심이 깨진 이상 제 혼은 영계로 들지 못할 터인데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영술사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원심이었다.
원심이 깨어지면 삼생을 거듭하는 윤회의 틀이 깨어진다.
영력을 얻게 되어 원심이 성장하면 전생과 후생의 영력까지도 모두 끌어 오게 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때문에 원심이 깨어진다면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다시 환생을 할지 기약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환생하는 것도 아닌 보다 높은 차원의 영계로 들 수 있다는 금령의 말이 혜화로서도 쉬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3장 지령신들의 수난
금령은 혜화의 질문에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 진짜! 귀찮게 왜 자꾸 물어?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지. 그리고 저 아이는 당분간 나와 저놈이 데리고 있을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해. 그래야 잡귀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금령은 태완을 데리고 가서 보호하겠다는 뜻만 내비쳤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두 신령이 태완이를 보호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자세한 말을 해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인과율과 관련이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
혜화는 금강산의 산신인 금령이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말해주지 않는 이유가 아무래도 천계의 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분께서 보호해 주신다면야 저야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혜화는 두말하지 않고 금령과 수환에게 태완을 부탁했다.
어찌 되었든 이제 조금 있으면 자신의 명이 모두 끝남을 알기 때문이다.
“그만 가야겠다. 귀찮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뭐 별거 아니다. 태백산을 지키는 놈이 자기를 무시했다고 삐쳐 있거든.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말이야. 쬐그만 놈이 한 성깔 하거든.”
“예?”
“그리 깊게 알려고 하지 마라. 그럼, 우린 네 손자 아이를 데려가겠다.”
“그리하시지요. 영험하신 금강산의 산신이시면 믿을 수 있는 분이시니 우리 태완이를 맡기도록 하지요. 사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이만 가보십시오.”
혜화는 금령에게 데리고 가도록 했다.
허락이 떨어지자 태완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태완을 막 들쳐 업으려던 금령을 수환이 불렀다.
“금령아!”
“왜 불러? 나 바쁜 거 지금 안 보여? 이 아이를 데리고 가려면 상당히 힘들 테니 너도 나 좀 도와.”
“에고, 쯧쯧! 윗동네 사는 놈이라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지금 다가오는 기운도 느끼지 못하는 거냐?”
수환은 무엇인가 느낀 듯 초조한 모습으로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금령 또한 그가 본 방향을 쳐다보았다.
“무슨 기운? 허걱! 수환아 빨리 튀자! 저놈에게 걸리면 국물도 없다.”
멀리서 전해져 오는 기운은 금령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금령은 태완을 빠르게 들쳐 업었다.
“그래, 빨리 튀어야지. 아무래도 태돌이 놈이 앙심을 품고 길을 열어준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놈이 여기 올 리가 없으니까.”
수환은 태완을 등에 업은 금령의 손을 잡았다.
“가자!”
“그래!”
금령과 수환의 몸이 금빛과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기운으로 변했다. 태완의 몸이 두 가지 기운에 둘러싸여 안개처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자신들의 일이 방해받을까 두려웠는지 빠르게 사라진 두 신령의 기운이 초혼령이라 불리는 작은 방울 속으로 일부 스며들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경을 칠 것 같은 표정으로 황급히 사라져 버린 금령과 수환이 떠난 자리에는 혜화만이 초혼령을 들고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후우, 뭔가 남기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알아볼 수가 없으니…….”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는 초혼령을 조심스럽게 보았다.
자신들의 기운을 초혼령에 남긴 것을 보면 무엇인가 뜻이 일을 터였지만 이제 죽음으로 가기 시작한 그녀는 그것을 알아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잘될 것이다. 하지만…….”
손자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존재들!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믿자. 태완이에게 결코 해가 되실 분들은 아니다. 이곳까지 무사히 들어온 것으로 볼 때 그 양반하고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혜화는 어쩐지 두 신령이 이곳에 온 것이 자신의 남편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혼령이 바닥에 떨어지며 울렸고, 초혼술을 펼치지도 않았는데도 들어온 두 신령이었다.
아무리 지령신이라 해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제령주의 결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뚫고 들어왔다는 것은 가문의 비술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염사가 걷히기를 기다렸다가 아무 피해도 없이 제령주를 뚫고 들어왔다면 그이가 보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제 안심할 수 있겠구나. 경박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보였으니 태완이를 잘 돌보아 줄 것이다.”
혜화는 금령과 태완을 믿기로 했다.
손자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분명 두 신령도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으음!”
혜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툭!
그녀의 신형이 허물어지듯 바닥에 누웠다.
‘이, 이제 끝인가?’
원심이 깨진 탓에 혜화는 정신은 흐려져 가고 있었다.
‘태완아,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거라. 네 앞을 막는 것이 무엇이 됐던 거침없이 치워 버리며 마음먹은 대로, 그리고 뜻대로 살아가거라.’
혜화는 진심을 다해 손자의 삶을 기원했다. 이승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호호호, 재미있는 분들이었어. 손자 녀석을 잘 돌봐주실 것을 믿습니다. 으음…….’
비록 장난기 가득한 지령신들이었으나 어쩐지 믿음이 가는 것을 느끼며 혜화의 숨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스슷!
혜화가 이승에서의 숨이 다해가고 있을 때 사라졌던 수환이 다시 방 안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런 심부름까지 해야 하다니…….”
불만스러운 음성을 내뱉은 수환은 혜화의 미간에다 푸른빛을 머금은 손을 얹었다.
이미 의식이 잦아들었기에 혜화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
“육탈을 시작했군. 그 미친놈이 전해 준 것이니 알아서 잘 진행이 되겠지.”
팟!
수환은 혜화의 숨이 멎은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방 안에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