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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뭐였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암흑 속에 갇혀 있던 인국의 시야가 밝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치, 침착하자.’
이상한 기운에 모든 것이 암흑 속에 싸여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인국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저건!’
눈앞을 가리고 있던 암흑의 기운이 걷히고 난 뒤 나타난 모습에 인국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어머니가 쓰러져 있었고 자신의 소중한 아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 어머니! 태완아!!”
인국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인국은 곧바로 혜화 곁으로 가서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깊은 잠에 빠져든 듯 숨을 거둔 혜화는 일어날 줄 몰랐다.
“크흐흑! 어머니!”
생기가 느껴지지 않자 인국은 자신의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완아! 어머니! 흑흑흑!”
오열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인국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식은 사라지고 어머니는 차가운 육체만을 남긴 채 영영 이 세상을 등진 것이다.
“크흐흑, 어머니.”
“여보!”
오열 소리에 놀라 방으로 뛰어들어 온 수아가 인국을 불렀다.
“어, 어머니가! 크흐흐흐흑!”
“어떻게 된 거예요?”
“돌아가셨어.”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머님이 돌아가시다니!”
자신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수아가 놀라 물었다.
“크흑, 모르겠어.”
“그, 그럼. 태완이는요?”
수아는 아들의 행방을 물었다.
“크, 그것도 모르겠어. 방 안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태완이는 사라져 버렸어.”
“아아…….”
충격적인 소식에 수아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태, 태완아!”
애처롭게 불러봤지만 자신의 아들인 태완이 사라진 방 안에는 찬바람만이 맴돌 뿐이었다.
“흐흐흐흑!”
어이없고 놀랍기 만한 사실에 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휘익! 휘이익!
바람과 같이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수환과 금령이 날 듯 달리고 있었다.
주변의 풍경이 접히듯 사라지는 것을 보면 축지(縮地)라는 신령들의 경신법임이 분명했다.
땅을 접어 한 걸음 이동한 후 금령이 수환에게 물었다.
“야, 그놈은 멀리 떨어졌냐?”
“그래, 시간은 조금 번 것 같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의 영지(靈地)에 우리가 들어왔다고 아예 길을 열어줄 줄이야. 나중에 만나면 한 번 타작을 해야겠다.”
수환은 자신들의 허락 없이 영지를 열어준 태백산신이 괘씸했다.
“으드득! 우리보다 오백 년이나 후배인데 자식이 선배한테 개겨? 일만 끝나면 봐라.”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를 위해 길을 열어준 태백산신을 향해 금령이 이를 갈았다.
빠드득!
“그래, 어느 정도 교육이 필요할 시기가 되기는 했지.”
수환도 이번 일이 끝나기만 하면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생각인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일단 나부터다. 그 자식을 만나면 완전히 대머리를 만들어주고 말 거다.”
“아서라. 교육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대머리 만들어 버린다고 하면 그놈 아마 죽자 사자 개길 거다. 전에 열린 전국 산신연합 연말총회에서 가뜩이나 인간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머리털이 빠진다고 열받아 있던데…….”
금령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있지만 태백산의 산신은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특히 민둥산이 되어 가는 머리로 인해 대머리라는 말만 들으면 한 꼭지 돌아 버리는 경향이 있었기에 수환은 금령을 말렸다.
교육은 어디까지나 적당한 선이 좋았다.
“그럼, 그 자식 신나게 매타작이나 한 번 하는 거지 뭐. 쪽팔리게 이렇게 부리나케 도망쳤으니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좀 풀리겠다.”
“그래, 늘씬하게 자근자근 다져 주자.”
애써 말리고는 있지만 금령과 마찬가지로 수환은 분통이 터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격으로 따질 때 태백산신은 자신보다 한참 밑이다.
산신이 된 시기가 조금 늦다는 이유로 자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단단히 손을 봐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금령과 수환은 예전부터 자신들이 태백산신을 놀린 것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자신들이 태백산신이 하는 일에 분탕질을 친 일은 아예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태백산신이 이렇게 막 나가는 이유가 모두 자신들 때문임을 말이다.
“야, 그건 그렇고. 그 어린놈이 신통하기는 하다. 어떻게 그리 잘 맞추는지 말이야. 누가 지 마누라 아닐까 봐 어떻게 행동할지를 다 아니 말이다. 그리고 태돌이 녀석의 일도 그렇고.”
수환은 자신들에게 이번 일을 시킨 화영에 대해 놀라움을 드러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앞으로 일어날 상황들에 대해 화영에게 전해 들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확하게 맞히고 있었다.
자신의 아내인 혜화의 움직임은 그렇다고 쳐도, 태백산신의 방해를 할 것이라는 것까지 예상했기에 수환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금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지능이라고 해봐야 산신이 자신도 겨우 하루 정도에 대충 윤곽만 그릴 뿐인데 화영이 정확히 맞추는 것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러게 말이다. 아무리 영력이 높은 자라고 하지만 미래에 관한 것은 예지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놈 심보도 고약하지 육탈해서 호국신급 영력을 가진 놈이 자기 손자를 괴롭히지를 않나, 지 마누라 수명을 갖고 장난질을 치지를 않나. 후우, 하여간 그놈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가 그놈 속을 알겠냐? 처음부터 그놈에게 엮인 우리가 재수 없던 거지.”
“맞는 얘기다. 집 뺏겨! 이제는 하인 노릇까지…… 어쩌다 우리 신세가 이렇게 됐는지. 휴우!”
“그나저나 이제는 그놈에게 다 와가니 뭐 빠진 것 없나 살펴봐라. 그놈 말한 대로 임무 완수가 되지 않으면 경을 칠지도 모르니까.”
수환의 말에 금령은 빠진 것이 없나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그놈 손자는 이렇게 고이 모시고 가니 됐고. 그놈 마누라에게 청생혼(靑生魂)도 챙겨줬고…….”
금령이 말끝을 흐리며 수환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 전했다.”
수환이 손가락으로 승리의 표시를 하며 말했다.
“그놈이 말한 것은 다 챙긴 것 같은데…….”
금강의 기운으로 감싸 보이지 않는 태완은 자신의 등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화영의 아내인 혜화를 영계로 들여보내기 위한 인연의 끈도 전해진 상태였지만 뭔가 찜찜했다.
“헉!”
“왜, 왜 그래?”
헛바람을 삼키는 금령을 향해 수환이 불안한 듯 물었다.
금령이 허리춤을 뒤적이며 말없이 무엇인가 찾다가 수환을 바라보았다.
“수, 수환아. 너 초혼령은 어디다 챙겼냐?”
“초혼령! 허걱!”
“서, 설마 빠트린 거냐?”
“으아아아악! 우린 이젠 죽었다. 그놈이 초혼령은 꼭 챙겨오라고 했는데…….”
비명을 지르며 수환이 연신 뒤를 바라봤다. 초혼령을 가지러 다시 돌아갈 일이 까마득했던 것이다.
“금령아! 이제 어쩌지?”
“어쩌긴, 온 세상에 수신 하나가 맞아 죽었다고 부고장 안 돌리려면 다시 갔다 와야지!”
초혼령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집을 빼앗기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자칫 화가 난 화영에게 소멸을 당할 수도 있었다.
자신들의 집을 빼앗은 화영이 떠나기 전에 분명히 그렇게 경고했었기에 수환은 사색이 되었다.
“그, 금령아!”
수환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금령을 바라보았다.
“나랑 같이 가자는 거냐?”
금령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켰다.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기에 수환의 뜻이 맞는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그럼 바늘 가는데 실이 안 가려고? 너 안 가고 슬슬 뒤로 빠지면 진짜 화낸다.”
“그래, 화를 내봐라. 내가 꼼짝이나 하나. 그리고 너 자꾸 그러면 다시는 안 본다. 나는 방 빼면 그만이니까.”
간신히 빠져나오는 길이라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기에 금령은 최후의 통첩을 했다.
수환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으드득! 치사한 자식! 나 혼자 가면 될 거 아니야! 집주인이라고 유세는! 금강산이 지척이지만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지. 얼른 가서 초혼령을 가지고 온 다음에 이 모든 걸 그놈에게 말해줄 테다.”
수환은 분을 이기지 못한다는 듯 씩씩대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말해라, 말해.”
돌아가면 마주칠 존재 때문에 금령은 모른 척했다.
“그것만 말할 줄 알고, 그분이 도와주라고 했던 것도 모두 말할 테니 어디 너 혼자 잘해봐라.”
초혼령을 회수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였다.
자신은 하기가 귀찮아 청생혼을 전해줄 때 챙겨오라고 했던 터였다.
수환이 고자질하면 화영에게 자신이 먼저 깨질 판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분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화영에게 절대로 알려지면 안 되는 일이었다.
파파팟!
금령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 수환을 붙잡았다.
“빨리 갔다 오자. 그 갑옷만 똘똘 뭉쳐 입은 놈에게 걸리지 않고 갔다 오려면 빨리 서둘러야 한다.”
조금 전과는 달리 굳은 표정으로 금령이 재촉했다.
“그래, 걸리더라도 차라리 그 어린놈에게 줘 터지는 것보다야 그놈하고 태돌이에게 몇 대 맞는 것이 낫지.”
초혼령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어차피 같이 깨질 것이기에 조금 전의 서운함은 버린 터라 수환도 동조했다.
“휴우!”
“후우!”
의견이 일치한 두 사함은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갈 일이 까마득했기 때문이다.
“가자!”
“그래.”
말은 빠르게 갔다 오자고 했었지만 둘은 구겨진 인상을 애써 펴가며 자신들이 온 길을 힘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수환과 금령이 힘이 없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돌아가면 반드시 마주쳐야 할 껄끄러운 존재가 있었다.
천갑마(天甲魔)라는 도저히 상종 못할 신령과 부딪쳐야 하는 것이다.
태백산에서 이곳까지 천갑마와 부딪치기 싫어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는데 다시 돌아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나름대로 도력이 꽤 깊은 지령신에 속하는 수환과 금령이지만 천갑마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금령아! 잘 살펴라. 그 새끼 열받으면 일단 먼저 선방부터 날리고 보는 놈이니까. 만나면 그 자식이 열받아 있는지 아닌지부터 살펴야 한다.”
수환은 금령에게 당부를 했다.
금령의 기감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천갑마의 기분을 알지 못하고 깐족대다가 큰 사단이 벌어졌던 탓에 수환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알았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놈도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을 테니까.”
비록 아랫동네에서 셋방살이 신세지만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수환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수환을 보며 금령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수환과 금령은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달려온 길을 다시 되돌아와 태백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축지의 술을 이용해 단번에 태백산 자락에 이르렀을 때였다.
멀리서 공기가 파헤쳐지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부아아앙!!
“헉!”
“히끅!”
누군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색 공이 그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수환과 금령은 사색이 되었다.
그토록 만나기 꺼렸던 천갑마가 틀림없었다.
“수환아, 곧장 달려오는 것을 보면 저 자식이 우릴 발견한 모양이다.”
발걸음을 멈춘 금령은 수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환은 성격과는 달리 지금 떨고 있었다. 지금 다가오는 천갑마는 수환에게 있어 그야말로 악몽이었던 것이다.
“그런 것 같다. 저리 씩씩대며 굴러오는 것을 보니 좋게 끝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금령아! 저놈 모두 알고 있을까? 우리가 장난친 거 말이다.”
천갑마를 상대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무서워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수환은 천갑마를 상대로 했던 장난은 도가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태돌이 놈이 다 일러바쳤겠지.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무지막지한 기운을 풍길 리가 없을 것 같다.”
다가오는 천갑마를 보더니 금령이 긴장하며 말했다.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심하긴 심했지. 태돌이 놈이 듣는지도 모르고 자향천녀(紫香天女)에게 그 녀석을 갑돌이라고 놀려댔으니 말이다.”
“태돌이 놈 입이 오죽 싸냐?”
“분명 지난번 산신연합 연말 총회에서 회장 출마하는데 쌍지팡이 짚었다고 갑돌이에게 우리가 자향천녀에게 했던 말을 모두 일러바쳤을 거다.”
“맞아, 그런데 진짜 다가오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다.”
“금령아, 저 녀석 단단히 화가 났으니 말로 하긴 틀린 것 같고, 이제는 정식으로 한판 붙어야 할 것 같다.”
“인마, 잊어 먹었냐? 여긴 태돌이 놈 동네야. 우린 여기서 제대로 된 힘을 못 쓴단 말이다. 그러니 일단은 튀고 보자.”
자신들의 터가 아닌 곳이었다. 어느 정도는 버틸 수는 있겠지만 오래가지 못하기에 금령이 제안을 했다.
“그러다 걸리면? 저 성질에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소나기는 피해 가랬다고, 일단 튀자.”
“네 마음은 알겠는데 어디로 튄단 말이냐?”
“어디긴 어디냐. 초혼령 안 가지러 갈 거야?”
“맞아, 초혼령! 일단 튀자.”
피융!
샤아앙!
거무튀튀한 쇠공이 굴러오는 것을 본 금령과 수환은 양옆으로 각기 방향을 잡고는 일단 도망부터 치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푸른빛과 금빛이 번득이는 것만 보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땅 거죽을 덮고 있던 낙엽들이 솟아오르고 나뭇가지들이 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떨었다.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는 금령과 수환으로 인해 다가오던 쇠공이 머뭇거렸다. 누구를 쫓아가야 할지 잠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금령이 내뺀 곳을 향해 쫓기 시작했다.
콰지지지직!
검은 구체는 일직선을 그리며 굴러가자 부서진 나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두 지령신의 속도에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검은 쇠공에는 살기마저 어려 있었다.
◈◈◈
휘이익!!
정신을 차린 태완이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뿌옇게 멀어져 가는 산들의 모습이었다.
영상이 지나가 듯 주변의 산야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쫓기면서도 초혼령 때문에 다시 태백산으로 가고 있는 거로군.’
태완은 익숙한 기운이 점점 가까워져 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을 들쳐 업은 금령이라는 존재가 다시 태백산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보면 분명히 뭔가 있는데…….’
금빛으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태완은 할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일들과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상기했다.
금강경의 독송을 들으며 안식을 찾은 후 그저 이대로이기만을 바랐는데 파도처럼 사건들이 들이닥쳤다.
‘어마어마한 기운을 가진 존재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정말 죽는 줄만 알았었는데.’
이전까지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존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존재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무려 서른여섯이나 되었다. 간신히 제어가 되던 기운들이 흔들렸고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할머니도 독송만으로는 부딪쳐 오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막는 것이 되지 않았는지 제령주라는 새로운 술법으로 자신을 지키기 시작했다.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괜찮았는데 어째서 할머니는 그런 선택을 하신 것이지?’
고통을 참으며 차츰 파고들어 온 기운을 제어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목숨을 담보로 진혼인라는 비장의 술법을 자신에게 베풀었다.
자신은 괜찮다고 소리쳐 말려 봤지만 그저 헛된 외침에 불과했다. 자신의 뇌리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통해 진혼인이라는 것이 뇌리에 심어지고 평안을 찾았다.
그간 받아 온 고통이 싹 사라져 버린 것을 물론이고 은하처럼 휘돌던 기운도 이제는 뜻대로 제어가 됐다.
‘그 뒤부터는 정말 놀라웠지. 신령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과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시기는 하셨지만 할머니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하나밖에 없는 손자이니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 이해가 갔지만 다음부터는 아니었다.
금강산의 산신들이라는 존재와 할머니의 대화에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평범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의 일이 누군가의 안배로 벌어진 것이고, 금강산으로 향하는 동안 금령과 수환의 대화를 들으며 그것이 바로 할아버지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할아버지는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신 거고?’
초자연 현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무척이나 답답했다.
‘후우, 머지않아 할아버지에게 갈 테니 답답함은 풀리겠지만, 그러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 상황은 벗어나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금령과 수환이 천갑마라는 존재에게 쫓기고 있었다.
둘 다 두려워하고 있는 빛이 역력하니 잡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에게 가야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 텐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으음, 내 생각만 했구나.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무척 걱정하실 텐데 큰일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걱정이 되지 않지만 어머니는 울고불고 난리 났을 텐데…….’
영계에 드는 존재의 육신은 이제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에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이 분명했다.
할머니의 죽음에 이어 자신의 실종까지 이어졌으니 보지 않아도 부모님의 모습이 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