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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폼생폼사라고 천상계의 선녀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다니던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이놈들아! 되는 대로 살아라. 꼴 같지 않게 분위기 잡지 말고.”
“우린 이대로 살라니까 네 걱정이나 해라. 인마!”
자신들의 본모습을 보인 것이 겸연쩍은 듯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금령이 말했다.
“아쭈! 묵천망 안에 있으면서도 또 개겨? 그래, 나도 니들이 그렇게 살든지 말든지 상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제는 밀린 빚은 갚아야지?”
“빚?”
“무슨 빚?”
서슬 퍼런 천갑마의 빚을 갚으라는 말에 금령과 태완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며 말했다.
―수환아! 무조건 우기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묵천망에 갈가리 찢겨 죽거나 아님 저놈한테 맞아 죽는다.
태완의 뇌리로 전해오는 금령의 영언에 수환은 힘차게 눈을 깜빡였다.
“천갑아! 우리가 언제 너한테 빚졌냐? 전에 수오령(首烏靈)은 네가 나에게 준 거잖아!”
“이것들이 진짜! 누가 그거 말이냐!”
시치미를 잡아떼며 모른 척하는 금령과 수환에게 화가 나는 천갑은 다시 손을 오므렸다.
수십 개의 돌기들이 금령과 수환의 영체를 빠르게 파고들었다.
“으악! 미치겠네.”
“아이고, 따가워!”
한동안 돌기에 쏘이는 것을 지켜보던 천갑이 다시 손을 풀었다.
“이 자식들아, 사실대로 불어라.”
“으아, 미치겠네. 전에 네가 자향천녀(紫香天女) 갖다준다고 준비한 천년유정(千年乳情)을 내가 몰래 훔쳐 먹은 거? 사실 그것 때문에 도망치긴 했지만, 천갑이 너!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
수환이 화가 난 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그것 말고 인마! 그까짓 천년유정이야 힘들지만 다시 구할 수 있는 거잖아!”
천갑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린 너에게 빚진 것이 없는데? 네가 이러는 이유도 모르겠고? 진짜 이러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는다.”
열이 받은 표정을 지으며 아니라고 우기는 수환의 시치미에 천갑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말 화가 나는지 짙은 푸른빛을 뿌리며 전투 태세에 돌입하는 것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아닌가?’
자신이 사모하는 자향천녀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웃으며 놀려댄 것은 금령과 수환이 분명했다.
하지만 벌에 쏘인 듯 온몸에 상처를 입고 씩씩대는 둘의 표정에서는 분노밖에는 없었다.
거짓말하는 긴장감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짓말이라면 내가 이런 상태에서는 저렇게 행동할 리 없는데 말이야.’
옛날부터 전투 모드로 돌입한 자신을 금령과 태완도 상당히 두려워했다. 일부러 전투 모드로 돌입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묵천망에 갇히고서도 억울하다며 자신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보니 한 순간 의심이 들었다.
‘혹시, 내가 그 새끼한테 속은 건가? 하긴 그 자식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예전부터 뒤통수치기로 유명한 이가 바로 태돌이었다.
신령계 동기인 수환과 생령 때부터 친구였던 금령의 모습에서 자신이 태백산의 산신이 태돌이 놈에게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전에 한 번 태돌이가 금령이 녀석에게 당했었지. 이 새끼! 만약 나에게 사기를 친 거라면 넌 죽었다.’
태백산 산신인 태돌이가 지난번 산신연합 연말 총회에서 벌어진 회장 선거에서 금령이 때문에 떨어졌었다.
그것 때문에 상당한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산신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금령을 괴롭히려 되지도 않는 사실을 자신에게 고하고 길을 열었을 수가 있었다.
천갑은 태돌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에 더 이상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정말, 니들이 하지 않았다는 거지?”
“천갑아, 무슨 일인데 그래?”
도대체 모르겠다는 듯 이유를 묻는 금령에게 천갑이 대답했다.
“글쎄, 어떤 놈들이 내가 사모하는 우리 자향에게 내가 구멍이 없어 응가를 못해 이렇게 부풀었다는 둥 돌돌돌 굴러다녀 별명이 돌돌이라는 둥 헛소리를 하고 다녔지 뭐냐. 내 참, 기가 막혀서…….”
“뭐! 그런 녀석이 있었어?”
“아니, 똥물에 튀겨 죽일 녀석들을 봤나.”
금령과 수환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찔끔했지만 자신들을 바라보는 천갑의 시선에 짐짓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며 더 화를 냈다.
스스슥!
“니들 혹시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놈들 못 봤냐?”
가까이 다가온 천갑은 자신을 놀리고 다니는 놈들에 대해 금령과 수환이 알고 있는지 물었다.
“아, 아니!”
“전혀!”
가슴이 철렁하기는 했지만 고개를 좌우로 급하게 흔들며 금령과 수환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음을 항변했다.
“으음! 그렇다는 말이지. 하기야 나랑 제일 친한 너희들이 그럴 리가 없지. 내 태돌이 이 자식을 그냥!!”
“태돌이?”
금령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니다. 그나저나 미안하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희들 의심이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놈들을 어떻게 잡으면 좋겠냐? 잡히기만 하면 그냥 다리몽둥이를 분지르고 피똥을 쌀 때까지 열라 패줘야 되는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천갑의 모습을 보며 금령과 수환의 몸이 알게 모르게 떨려왔다.
―헉! 이 자식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맞아. 그러고도 한 대 더 때릴 걸.
천갑에게 붙들려 피똥을 싸며 맞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몸을 떨었다.
“언, 언젠가는 잡히겠지! 뭐.”
“그런 놈들이 있으면 금령이와 내가 꼭 잡아놓고 너에게 바로 연락할게.”
“고맙다. 너희들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이 묵천망 좀 풀어주지 않을래?”
“이런! 미안하다.”
금령과 태완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것인지 천갑의 손짓에 둘을 가두고 있던 묵천망이 풀어졌다.
“그건 그렇고 너희들 노군께서 시키신 일은 다 한 거냐?”
“어? 네가 그 일을 어떻게 알아. 너도 노군님께 들었어?”
예상외의 질문에 금령이 놀라 물었다.
“약간은. 노군님께서 너희들에게 시키신 일이 있다고 하시며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나를 보내신 거다. 그리고 겸사겸사 해결할 일도 있었고 말이다.”
“그 양반 좀스럽기는.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하시지. 그런데 네가 온 것은 의외다. 너 노군님을 싫어하잖아?”
“사실, 자향이가 부탁을 해서 말이다.”
천갑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아! 그랬구나.”
“어쩐지.”
수환과 금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향천녀가 부탁한다면 자신의 소멸도 마다하지 않을 이가 천갑이었다.
“그런데 너희들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빨리 서둘러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래, 빨리 서둘러야지. 노군님의 부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내가 건망증이 심해서 한 가지 빠뜨리고 왔지 뭐냐. 그래서 가지러 다시 이곳에 오는 길에 널 만나게 된 거다.”
딸랑!
금령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금을 울리는 듯한 청아한 방울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금빛 방울이 천갑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 초혼령이잖아? 네가 어떻게…….”
“사실 태돌이 때문에 오해해서 네놈들을 혼내줄 겸 그곳에 갔었다. 하지만 노군님 말씀이 생각나서 너희들 주려고 초혼령의 주인을 설득했다. 아들을 위해서라고 하니까 그대로 내주더라.”
“그, 그러냐?”
수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몸이 이래 봬도 사적인 것하고 공적인 것하고 구분은 하는 몸이다. 이제 오해도 풀렸으니까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라.”
“천갑아, 고맙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빨리 가지고 가봐라. 그리고 노군님께서 말한 아이가 네가 업고 있는 아이냐?”
천갑은 태완의 등에 업혀 금강기로 감추어진 태완을 가리켰다.
“그래, 이 아이가 노군님께서 말한 아이다. 아주 골치 아픈 아이지.”
“노군님께서도 무슨 욕심이 그리 많으신지…….”
“무슨 말이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천갑을 향해 금령이 물었다.
“아니다. 그 아이에게 내가 뭐 하나 줄 것이 있다. 그러니 그 아이를 나에게 다오. 노군님께서 부탁하신 일이니 나도 빨리 마무리 짓고 태돌이 놈 교육 좀 시키러 가야겠다.”
“음!”
“으음!”
천갑의 가장 큰 장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태상노군을 두고 거짓을 말할 리 없었기에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너도 이 아이 때문에 노군님께 따로 받은 부탁이 있냐?”
“그래, 그러니 어서 그 아이를 다오. 태돌이 놈 도망가기 전에 빨리 끝마쳐야 하니까 말이다. 내가 끝마치는 대로 너희들은 이 아이를 데리고 곧장 금강산으로 가라.”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천갑의 말대로 그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철저히 구분하는 신령이었다.
―어떻게 할까?
―우리도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괜찮을 거다.
금령과 수환은 상제와 함께 천상계를 양분하고 있는 태상노군의 부탁으로 주는 것이라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승낙하기로 했다.
“알았다.”
별다른 일이 없을 것 같기에 금령은 자신의 진체 영기로 보호하고 있던 태완을 천갑 앞에 내밀었다.
천갑은 두 손으로 머리를 짚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운을 서서히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르!
천갑의 기운이 태완의 몸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와 더불어 묵빛으로 빛나던 몸이 하얗게 색이 바래어 갔다. 묵천기를 건네는 만큼 동글동글하던 그의 몸집은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너, 너?”
금령이 놀라운 듯 눈을 치켜뜨며 말을 더듬거렸다.
지금 금령이 이렇듯 놀라고 있는 것은 천갑이 흘려보내는 기운 때문이었다.
천갑이 그렇게 놀림을 받아도 포기하지 않았던 묵천기(墨天氣)였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향천녀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힘들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묵천기였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수련하던 기운을 태완에게 건네주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휴! 저 자식이 어째서 저런 미친 짓을 하는 거지?
―그러게. 완전히 포기하는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지켜보자.
―그래,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천계의 선위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어떤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태완에게 해가 될 일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다른 존재를 해하는 것은 진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천갑이 저러는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사연이 있을 것이기에 금령과 수환은 입을 다문 채 지켜만 볼 뿐이었다.
◈◈◈
의혹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금령과 수환과는 달리 태완으로서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이, 이건! 뭐야?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지? 정말 미치겠네.’
천갑의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난데없이 자신에게 엄청난 기운을 주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영체들의 기운을 흡수해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거기에 더해 진혼인을 얻으며 거의 완벽하게 제어가 되는 상황이다.
천갑에게서 흘러들어 와 몸에서 휘돌고 있는 기운을 제어하고 흡수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완이라고 했나? 지금은 의문이 일더라도 참아라. 묵천기는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다룰 만한 힘이 아니니 말이다.
―저…….
―대답은 하지 마라. 아무리 진혼인이 너를 보호한다고 해도 정신을 다른데 쏟으면 큰일 나는 수가 있다. 너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니니 나를 믿고 일러주는 대로 기운을 돌리도록 해라. 지금 네가 쓰고 있는 방법은 불안정하니 이제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내가 말한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뭔가 물으려 할 때 다시 천갑의 영언이 들려왔다.
‘사심이 전혀 없다. 그리고 지금 이자가 나에게 한 말은 모두 사실이다.’
천갑의 기운이 스며들자 고속으로 돌며 기운을 제어하던 상태가 흔들리고 있었다. 태완은 천갑이 자신을 돕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음 영언을 기다렸다.
―그래, 내 말을 알아들었나 보구나. 지금 네가 사용하고 있는 운용법은 너무 고속으로 힘을 끌어들이고 있어 매우 위험하다. 지금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작은 충격만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다. 진혼인이 네 의식을 지키고 있지만 충격으로 파탄이 발생하게 되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말해주는 묵천기는 천상계에서도 최고에 속하는 운용법 중 하나다. 오랜 옛날 지고하신 분께서 남기신 것이니 네 것으로 만든다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진혼인과 함께 너를 지켜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묵천기의 운용법을 불러줄 테니 잘 듣고 마음에 새기도록 해라. 현현(玄玄), 제(濟), 무량한(無量翰)…….
구결과 함께 묵천기가 끊임없이 뇌리로 흘러들었다.
처음 들어보는 구결이지만 천갑이 불러주는 것들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불러주는 대로 구결을 생각하자 태완이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묵천기가 운용되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릉!
어둠보다 짙은 묵색의 기운이 고속으로 회전하던 은하에 흡수되며 변화하기 시작됐다. 은하의 중심부가 폭발하듯 퍼져 나갔고, 그 주변을 남아 있는 묵색의 기운이 감쌌다.
엄청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지만 진혼인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운용되고 있는 묵천기 때문인지 고통도 없었고 정신도 혼미하지 않았다.
‘성질은 물론 느낌도 완전히 다른 힘으로 변하고 있다.’
묵천기는 계속해서 유입되며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물에 떨어진 먹물처럼 태완이 지금까지 흡수한 기운들을 자신과 같은 형질로 만들어 버렸다.
태완의 몸속에 있는 기운들이 묵천기로 변화하는 과정은 매우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그러나 끝나는 시간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천갑이 가지고 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기운이 태완의 몸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묵천기로 변화하는 시간은 거의 6시간이나 걸렸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기운을 변화시킨 후 묵천기는 다음 과정을 밟아 나갔다.
태완의 세포 하나하나에 파고든 후 완전히 다른 세로로 변화시켜 나갔다.
천갑은 지금 상황을 궁금해 할 태완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세포변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갑이 영언을 보냈다.
―후우, 이제는 됐다. 묵천기와 진혼인이 하나가 됐다. 안정을 되찾아 이제 영언을 발해도 되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도록 해라.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는 태상노군의 부탁을 받고 너를 돕기 위해 왔다.
―태상노군이라는 분이 말입니까?
―그렇다. 사실 묵천기를 얻기 전의 너는 안전핀을 뽑은 폭탄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이 상태에서 폭주를 시작하면 천계의 모든 힘을 동원한다고 해도 막기 힘든 것이라 묵천기를 건네준 것이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막대한 힘을 저에게 준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아무리 막대한 힘을 얻었다고 해도 일개 인간인 나를 천계에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말입니다.
―후후후, 믿어지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초혼지체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너 혼자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에 너와 똑같은 체질을 타고난 이가 있었지.
―저, 저랑 같은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 존재했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 당시에는 초혼지체에 대해 알려진 것이 전혀 없었다. 위대하신 이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초혼지체는 조물주도 의식하지 못하던 존재였다.
―서, 설마요.
―사실이다. 초혼지체는 조물주가 계획한 피조물이 아니다. 그냥 뚝 떨어졌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존재였지.
―그렇군요.
정색을 하는 천갑을 느끼며 지금 들은 말들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초혼지체로 인해 조물주께서 만드신 차원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특히나 명계와 천계는 물론 영계와 선계까지 영체들이 머무는 곳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각계의 주인이 바뀌고 거주하고 있는 존재들 태반이 소멸해 버릴 정도로 엄청난 피해였다.
―어, 어떻게,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요?
―사실이다. 대부분의 영체들이 초혼지체에게 흡수당해 버렸다. 피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차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억조창생의 영혼도 상처를 입었다. 어찌어찌 수습을 하기는 했지만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내가 너에게 묵천기를 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초혼지체는 혼돈의 카오스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어떤 힘으로도 소멸시킬 수 없고,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존재다. 그래서 묵천기를 너에게 준 것이다. 좋은 쪽으로 네 성향을 돌리고 싶기는 하지만 혼돈의 힘을 가진 너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 최소한 이성을 잃고 폭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제가 초혼지체라는 것은 어떻게 아신 건가요?
―삼신할미가 너의 탄생을 미리 알려주어서 네 존재는 태어나기 전부터 감지가 되었다. 이제 묵천기에 대해서는 완전히 인식했으니 이제는 네 스스로 기운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천갑과의 대화로 그가 어째서 묵천기를 자신에게 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진혼인으로 붙잡아 놓기는 했지만 은하의 기운이 고속으로 돌 때마다 정신이 흔들리 던 것이 이제는 싹 없어져 버렸다.
묵천기로 변해 버린 기운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슨 연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고맙습니다.
―고마워 할 것까지는 없다. 나도 이제는 무거운 짐을 덜어 홀가분해졌고, 억조창생을 위해 일조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겁니다.
진실로 홀가분해 하는 것 같기에 태완도 수긍을 했다.
―이제 묵천기의 전수가 끝났으니 너는 저놈들과 함께 금강산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럴 것 같더군요. 저분들은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온 것이 분명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다.
―부탁이라면…….
심상치 않을 것 같기에 태완이 말끝을 흐렸다.
―금강산에 가면 너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아마도 그 이상한 일은 너의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연유가 궁금하기는 하겠지만 너와 내가 만났다는 것과 묵천기를 건네받았다는 것을 비밀로 해주었으면 한다.
―비밀로 하라고요?
―그래, 절대 말하지는 마라. 자칫 네 할아버지가 알았다가는 모든 것이 틀어지니까 말이다.
―그것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의문이 아닐 수 없어 태완이 반문했다.
‘하긴 친인이니 무조건 감출 수만은 없겠지. 어차피 연유를 알아야 하니 말해주도록 하자.’
태완의 질문에 천갑은 감추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