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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리고 사람 일이란 게 혹시 모르는 것이기에 자신의 실력을 아군에게 조차 숨기는 것이다.
실력의 드러남은, 후일 있을 전투에서 드러나도 좋다.
“실력은요……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죠. 뭐.”
현이 자신이 직접 그 상황을 겪었다는 듯 어리숙하게 머리까지 긁적이며 말했다.
“에이, 운도 실력이다? 녀석 대단한데. 살아남은 자들도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
필스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하자, 또다시 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저는 잘 모르겠네요. 헤헤.”
바보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아스니아 십인대장과 필스, 아크니아와 함께 십인대의 막사로 돌아온 현이었다.
다른 여섯 명들도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는지 모두 저마다의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병이다. 이름은 로터고 나이는 스무 살. 고향은…… 고향은 어디랬지?”
현, 아니 정확히는 그의 육체인 로터를 소개하던 아스니아가 고향을 말하려다 그 점을 말하지 않았음을 그제야 깨닫고 조용히 현에게 물었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현은 기억을 조금 되살려 고향을 끄집어내었다.
“으음…… 카르시스 영지예요.”
생각을 하며 말하는 현을 잠시 흘겨본 아스니아가 말했다.
“뭘 고향을 생각씩이나 하고 있냐, 들었지? 카르시스 영지란다. 아는 사람 있나?”
아스니아가 현의 고향인 카르시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묻자, 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중년인이 손을 들었다.
“내가 알고 있네.”
아스니아가 부대원들 중에 어렵게 대하는 이가 유일하게 있는데, 바로 탄테였다. 그는 매사가 조심성이 많은 건지, 신비주의 컨셉인지는 몰라도 다른 이들과 말하는 것을 꺼려했고, 그만큼 베일에 가려진 게 많은 인물이었다.
“아…… 타, 탄테 형님. 말해 보시지요.”
아스니아가 그를 형님이라 칭하며 말했다.
탄테가 유일하게 말을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여자 이야기를 할 때와 자신이 싫어하는 아저씨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인데 그걸 아는 부대원들은 탄테를 형님이라 지칭했다.
“내가 살던 영지의 이웃 영지였지. 영주가 악랄하기가 왕국에서 내로라 한다던데……. 그래 로터라고 했지? 로터, 사실인가?”
카르시스 영지는 일개 남작이 다스리지만 남작령 치고는 약간 큰 동네(?)였다.
이 시기의 레노 왕국은 긴 시간에 의해 축적이 되어서 인지 남작은 대략 5만에서 많으면 10만의 인구를, 자작은 10만에서 20만의 인구를, 백작은 20만에서 50만의 인구를, 후작은 50만에서 100만의 인구를, 공작은 100만에서 그 이상의 인구를 영지 안에 두었다.
한데 앞서 말했듯 카르시스 영지는 좀 별나서(?) 그 인구수가 약 15만 이상이 되었다.
본래 영지 인구가 높다면 작위도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만약 인구 5만의 남작이 어느 새 11만의 인구를 가진 영지의 영주가 되었다면 그는 한 단계 올려 자작위로 승작되는 것이다. 물론 백작 영지의 인구를 갖는다면 백작위를 하사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대부분 쓰이지 않는 법이나 다름없었다.
각 왕국들은 이에 대해 제약을 하나 걸었는데, 타 영지민을 포섭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포섭한 내용이 밝혀지거나 많은 수의 타 영지민이 해당 영지로 이주할 경우, 이주한 영지민의 영주는 해당 영주에게 영지전을 선포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유민의 수는 포함시키지 않는다거나, 법적제재가 있다거나 등등 합법적이지만 실상은 불법인 제약이 따랐다. 해서 카르시스의 영주 또한 인구 15만의 자작령에 준하는 영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의 작위는 남작인 것이다.
또한 그는 별나기로 소문이 났었다. 온갖 골동품을 모으는 것이 그의 취미였는데, 그로 인해 세금을 골동품에 처바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영지민들을 착취하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쥐어짜기 시작했다.
탄테는 그 점을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 카르시스의 영주가 악랄하긴 했지만 저희 일가는 산간 마을에 살았기에 비교적 피해를 덜 받았습니다.”
“으음…… 그랬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탄테였다.
“자자, 그만하고 부대원들과 인사나 하지. 뭐 탄테 형님과는 인사를 했을 테고…… 어, 그래. 저기 보이는 저 뚱땡이는 케일 저 안경잡이는 록슨이야. 그리고…….”
그 뒤로도 부대원을 소개하는 아스니아였다.

21십인대는 대장인 아스니아와 부대장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아크니아, 그리고 마흔두 살의 중년인 탄테, 서른두 살 케일, 스물다섯 록슨, 스무 살 게르비안, 열여덟살 람스, 스물네 살 필스, 마지막으로 스물한 살의 베단으로 이루어졌다.
중년인 탄테는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말해 주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 십인 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는 람스는 매우 활달적이 었고 분위기를 이끄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또한 베단과 게르비안은 탄테와 같이 비교적 말수는 적었지만, 아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나이에 맞지 않게 조금 묵묵한 성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케일은 람스와 더불어 십인 대의 분위기 메이커였는데, 덩치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작은 산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 분위기 메이커가 한 명 또 있다. 바로 필스였다.
“야, 로터. 고향 이야기나 좀 해 볼래?”
필스가 로터의 고향에 대해 물었다. 다른 이들도 궁금한 사항이었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고, 고양이요?”
“짜식이 미쳤나, 되도 않는 농담을 하고 있어!”
로터의 썰렁한 농담에 필스가 받지도 않았다.
“빨리 고향 이야기나 좀 해 봐라, 이 형님들 궁금해하는 거 보이지 않냐?”
묵묵한 성격의 베단과 게르비안 또한 귀를 쫑긋 세운 것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그건 전에 다 말씀드렸잖아요.”
현이 약간은 겁에 질린 듯한 말투로 말하자 머쓱해진 필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그거야 그냥 간단한 네 소개고. 이번엔 네 고. 향. 마. 을. 을 소개해 보라니까?”
“고향 마을이요?”
되묻는 현을 필스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치며 말했다.
“아오, 답답해! 그래. 니가 나고 자란 고향!”
그에 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현의 한숨 쉬는 모습을 보고 필스는 ‘이걸 쥐어박아, 말아?’라는 모션을 취했다.
“제 고향은 카르시스 영지에 속한 마르텐이라는 마을이에요. 약 50여 호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는데, 야생 짐승들이 많은 곳이라서 다른 마을들과는 다르게 목책 안에서 살아요. 또 산간 마을이라 그런지 주민들은 대부분이 사냥꾼이시죠.”
다른 대목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귓 구녕을 후벼 파며 듣고 있던 필스가 ‘사냥꾼’이라는 단어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사냥꾼?”
필스의 물음에 뭔가 좀 부족한 사람처럼 현이 몸을 움찔했다.
“네 사냥꾸운…….”
“오! 그럼 너도 활 좀 쏠 줄 아냐?”
절레절레.
“아오, 이 쓸모도 없는 답답아! 사냥도 못하냐? 아, 이럴게 아니다. 넌 이제부터 답답이다, 답답이!”
“다, 답답이요?”
“아, 속 터져! 그래, 니 별명이니까 대갈통에 각인시켜.”
“아, 알았어요.”
필스가 한심하다는 듯 현을 흘겨보고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때, 탄테가 말을 걸어왔다.
“마르텐 마을 출신이라고?”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 필스에게 나중에 보자는 식으로 쳐다본 뒤, 현이 탄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어리숙한 표정으로.
“예.”
“우연이군……. 난 가르 마을 출신인데…….”
뭔가 반갑다는 듯이 말하는 탄테였기에 현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가르 마을…… 가르 마을…… 가르 마을…… 아!’
생각을 하던 현의 머리에 노랑 빛 전구가 켜진다. 기억이 난 것이다.
“우와! 반갑네요. 옆 마을 사람을 여기서 보다니.”
아닌 게 아니라 가르 마을과 마르텐 마을은 옆 마을이었다. 한마디로 영지의 구분 선에 존재하는 마을들이었는데, 뭐 이웃이라곤 하지만 그 거리가 상당히 있긴 하다.
아무튼 그 두 마을은 이웃 마을인지라 자주 오고갔고, 산간 마을인 이상 사냥을 잘하는 마르텐 마을 사람들에게서 가르 마을 사람들은 가죽이며 고기 등을 돈으로 사 가거나 그들이 주로 하는 치즈를 만들거나, 우유를 만들어 교환하곤 했다.
참고로, 가르 마을은 넓은 초지가 있어, 젖소들을 키우기에 알맞았기에 단연, 치즈와 우유가 특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후후, 그건 나도야. 사실 이 마칸타스 대륙에 오면서 나와 이웃인 영지의 사람을 본 적은 없거든…….”
“그건 저도예요!”
현이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하자, 탄테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군……. 그나저나 걱정인 걸? 이번에 전면전을 벌인다는 소문이 무성하던데…….”
이렇게 긴 문장을 구사하는 탄테를 대원들도 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무심코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전면전을 벌인다는 말에는 놀람에 또 두 눈을 뜨기에까지 이르렀다.
“정말입니까, 형님?”
아스니아의 쌍둥이 동생 아크니아가 묻는다.
“뭐, 거짓일 수도 있을게야.”
“하지만 사실이면요?”
“사실이면 나가 싸워야겠지. 빌어먹을 마칸타스 놈들…….”
탄테가 돌연 눈가에 불꽃을 피우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 점이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긴 했으나 그러려니 했다. 이곳은 전쟁터기 때문이다.

다음 날.
이제 이곳의 십인대원들과도 어느 정도 친해진 현이었다. 대한민국에선 묵묵한 성격이었는데, 분위기 메이커인 람스와 케일, 필스 등에 의해 그도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그는 지금의 생활이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뭐, 여전히 필스는 자신을 답답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전투에 나간 뒤에는 확연히 바뀔 것이다.
지금은 새벽이었는데, 본래 무술을 해서 그런지 새벽잠이 없던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몰래 숨어든 쥐새끼마냥 슬금슬금 바깥으로 향했다.
“으아아!”
나오자마자 팔을 한껏 좌우로 벌리고는 기지개를 펴는데, 공기가 대한민국의 탁한 그것과는 달라서 그런지 매우 상쾌하고 좋았다. 시원한 것이, 흡사 탄산음료를 코로 흡입하는 느낌이었다.
21십인대의 옆에는 숲이 있었는데, 거길 지나가면 작은 공터가 나왔다.
참고로 현의 십인대, 아니 비단 21십인대만이 아니라 이곳에 주둔 중인 십수만의 부대가 요새 안에 주둔 중이었다. 다름 아닌 크라망 요새. 하지만 요새는 정말로 컸다. 그래서 그런지 공터도 있었고 숲도 있었다.
아무튼 현은 숲을 지나 작은 공터로 향했다. 현이 아무리 창법과 검법에 능하다지만, 연습을 게을리하면 퇴보하는 것이 바로 무술이라는 것이다. 해서, 현은 몇 달간 몸 상태를 핑계로 미뤄 두었던 무예를 오늘부터 연마하기로 마음먹었다. 거기다 탄테가 말하길 전면전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숲을 지나 작은 공터 안으로 들어온 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익히 말했다시피 창법인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봉술을 쓸 만한 긴 막대는 보이지가 않았다.
한숨을 내쉰 현은 일단 검법부터 익히고 차례차례 돈을 모아 창을 사자고 마음먹었다. 이곳 병사들에겐 한 달에 1골드씩 돈이 나오는데, 그걸 모아서 창을 사려는 것이다. 이곳은 본토보다 가격이 비싼데, 그 이유는 당연히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해서 한 3달은 모아야 어느 정도 괜찮은 창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현은 허리를 구부려 나무막대를 주웠다.
휘, 휘이.
현이 나무막대를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괜찮군.”
손에 어느 정도 잡힌다 싶은 현은 자세를 가다듬었다.
먼저 살며시 검을 잡고…….
샥!
현의 왼발이 빠르게 나아간다 싶더니, 좌에서 우로 베기를 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왼발은 도로 본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샤샤샥!
이번엔 연속기였다.
찌르기를 시전하고 그대로 위로 올려쳐, 우에서 좌로 베기를 시전했다.
“휴, 다행이네 그래도 녹슬진 않았어.”
세 달간 쉬어서 어느 정도 실력이 많이 녹슬진 않았을까, 걱정하던 찰나였는데 이정도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빠르기도 괜찮고 손의 떨림도 없었다. 이정도면 능히 전쟁터에서 제 한 목숨은 지킬 수 있으리라.
그때였다.
꾸꿀!
어디선가 돼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냉큼 고개를 돌린 현의 눈앞에는 거대한(?) 멧돼지 하나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검법을 훔쳐본 거냐?”
아무리 크다곤 하나 일개 요새에 멧돼지가 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검법을 훔쳐봤다는 게 더 짜증났다.
이렇듯 미물에게 말을 거는 현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이가 맞는 것 같다.
아무튼 그 말뜻을 이해하는지 모르는지, 멧돼지는 앞발로 땅을 파며 현에게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꿀!
돌진해 오는 멧돼지!
하지만 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살며시 나무막대를 움켜쥐고는 멧돼지가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멧돼지는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는 식으로 돌진을 해 왔는데, 그 속도가 역시 멧돼지라 그런지 꽤나 빨라 곧 현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현은 왼발을 축으로 해서 오른발을 반원을 그리듯 살며시 몸을 돌리며 빠져나가 그대로 지나가는 멧돼지를 향해 나무막대를 내려찍었다.
파악!
끊어 치듯 쳐서 그런지 효과가 배가 된 것 같았지만, 멧돼지는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저 머리에 맞은 충격을 가시게 하려는 듯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독한 놈일세.”
현이 독하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멧돼지란 잡기가 힘든 동물임은 맞다. 하지만 현처럼 본국검법과 창무지 등으로 무장한 무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은 겨울수련을 할 때, 먹을 게 없어 멧돼지도 잡아먹은 적이 있었기에 손쉽게 멧돼지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세를 다시 다잡은 현이 이번엔 선공을 취했다.
파악!
또다시 내려찍기를 시전하는 현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좌에서 우로 베기를 시전했다.
그러자…….
철푸덕!
그간 어찌어찌 버티고 있던 멧돼지의 다리가 어느샌가 후들후들 떨리더니 몸을 좌로 뉘이며 쓰러졌다.
“한낱 미물 따위가…….”
말을 마친 현이 다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야아, 이게 무슨 냄새야?”
누군가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 운운하며 다가온다. 그를 필두로 그 뒤에서도 몇몇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십인대원들이었다.
“헤헤, 오셨어요? 아니, 이 멧돼지가 죽어 있길래요.”
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필스에게 말했다.
검수를 마치고 돌아오려던 중 아까 멧돼지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거기다 배도 고프고……. 해서 멀건 죽 같은 스프 아닌 스프에, 딱딱한 돌빵(?)을 먹는데, 이번 차에 고기다운 고기를 좀 먹어 보자라는 생각에서 멧돼지를 손질하여 고기를 구운 것이다.
그리고 미리 십인대원들에게 일러 그들도 오게 만들었다. 그들은 일단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게 숲 안쪽으로 들어갔고, 울창한 숲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