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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던 동료들이 ‘거금’이라는 단어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먼저 반응한 것은 말이 없는 탄테였다.
“거금이라니, 무슨 말이냐? 자세히 말해 보거라.”
로터가 ‘좆 됐다.’라는 표정으로 람스를 쳐다보았지만, 람스는 아랑곳 않고 탄테에게 말했다.
“이 형 대단한 사람이에요. 어제 적군 십여 명을 베어 넘겼어요. 기사도 두 명이나요! 형님들이랑 흩어져서 전 로터 형님하고만 붙어 다녔는데, 그때마다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
반응은 두 가지였다.
먼저 로터는 이마를 지끈 누르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에이 설마?’라는 눈빛과 ‘정말?’이라는 눈빛을 동시에 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눈빛을 확인한 듯한 람스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정말입니다. 제 목숨도 여러 번 구해 주었는 걸요? 그리고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면 기사들도 잡겠어요?”
람스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라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실 이 시대에 일반 병사가 기사를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일단, 준남작과 마찬가지인 준귀족에 준하는 직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실력이 있는 자, 없는 자.
하지만 전쟁터에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실력이 있는 자들로, 실력이 없는 자들은 허울뿐인 기사위만 하사받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터에 나온 이들은 대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기사의 종자로 들어가 온갖 잡일을 했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혹독한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15년에서 20년 정도를 종자생활을 해야 마침내 모시고 있는 기사의 추천으로 기사 작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데 이십 년, 아니 짧게는 10여 년이니 10여 년이라고 치자. 10여 년을 검을 연마한 기사를 죽였다? 그것도 둘씩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로터는 이마만 지끈 누르고 있었기에 사실 확인을 해 봐야 했다.
“로터, 람스 녀석이 하는 말이 정말이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언젠가 저들도 알게 될 거,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흩뿌려지기 시작했음인지, 현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알량한 솜씨가 좀 있죠.”
그에 동료들이 ‘우오오.’라는 감탄성을 내질렀다. 자신의 동료들 사이에 기사를 잡은 이가 나왔기 때문이리라.
이 대목만 보더라도 기사들은 참으로 고귀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귀족들은 평민들에게 즉결처분권이라는 것을 가지는데 이건 준귀족인 준남작, 기사도 다르지 않았다.
한데, 귀족이 즉결처분권을 행사하든, 기사가 행사하든 대부분은 기사가 처리한다. 귀족들이 더러운 평민의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해서라나 뭐라나. 그래서 이 땅의 백성들은 대부분이 기사를 선망의 대상과 더불어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았다.
“야아! 그럼 검투장에 가도 되겠는데? 기사 두 명이면 웬만한 놈들은 다 잡을 것 아니냐?”
아스니아가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는 말하자, 그에 필스도 질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맞습니다, 대장님! 야아! 이거 답답이 요거 물건이네. 기사 둘을 잡았다니. 다시 봤다?”
“뭘요…… 운이었죠, 뭐.”
“아니다, 아니야. 그들이 비록 마칸타스 대륙의 기사들이라 하지만, 우리 같은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단한 건 대단한 거야. 운으로 치부하지 마라.”
현의 겸손 아닌 겸손에, 탄테가 다시금 그를 치켜세웠다.
“자자, 그건 됐고. 그럼 검투장으로 가자.”
아스니아가 그들을 독촉해 검투장으로 가자고 말하자, 이번엔 현이 딴지를 걸었다.
“근데 아까부터 검투장, 검투장 하시는데 검투장은 또 뭐예요?”
현은 검투장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에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투장이란 곳이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닌지, 필스 또한 구박하지 않고 순순히 알려주었다.
“검투장은 두 가지로 나뉜단다. 검투 노예와, 우리 같은 일반인이 참여하는 검투. 먼저 검투사, 즉 검투 노예들은 우리와 상관없으니 패스하고, 우리 같은 일반인 혹은 병사들이 참여하는 검투는 실전을 방불케는 하지만 가검을 들고 결투에 임한단다. 그리고 거기서 차례차례 토너먼트 형식으로 올라가서 상금을 거머쥐는 거지. 물론, 1승 1승 오를 때마다 내기 형식으로 걸어진 돈 중 일부가 너에게 들어오기도 한다. 뭐, 상대가 너무 강하다거나 한다면 기권해도 되는 거고.”
한마디로 뒷골목의 길거리 싸움에 페이를 거는 거라 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진 자와 이긴 자에게 건 돈을 나누어 가진다는 뜻 같았다.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갔다는 뜻이었다.
“제가 승리할 수 있을까요?”
현의 물음에 필스가 가슴을 텅텅거리며 말했다.
“날 믿어라! 람스의 말대로라면 넌 1등을 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걱정 마. 가면을 쓰고 할 테니 널 알아보는 자들은 없어.”
“그게 아니라…….”
“야야, 그러지 마라. 이 형님들이 우리 좋자고 이러는 거냐? 모두 다 좋자고 이러는 거 아니냐? 그리고 너 듣자 하니 여자에게 흥미를 못 느낀다며? 어디 가서 남자의 채취나 맡아 봐라. 킥킥.”
“아, 그게 아니라니까요!”
투덜대면서도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현이었다.
3. 락센을 이기다
검투장은 거대했다. 흡사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의 모습과 같이 웅장하고 화려했다. 그 크기는 콜로세움의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사람이 많이 가 봐야 좋을 것은 없기에, 이런 일에 해박한(?) 아스니아와, 필스 그리고 검투사가 될 현만이 이곳에 왔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신청장으로 향했는데, 현은 그곳에서 간단한 신상명세와 가검이긴 하지만 혹시나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다면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항에 동의하는 절차, 검투장에서 쓸 예명을 적었다.
로터는 예명에 대해 별로 상관치 않았기에 그냥 로터라고 적었고, 죽을 수도 있다는 조항이 있는 걸로 보아서 더러 죽는 자들이 있긴 있는 모양이지만, 현은 떨리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오감이 바짝 곤두섰는데 두려움에 곤두서는 것이 아니라 저번에 느꼈던 사람을 베고 난 뒤 느꼈던 쾌락의 느낌과 비슷했다.
아무튼 신청을 마치자 관리원은 ‘24’라는 숫자가 적힌 번호와 검투 대결을 하며 입을 갑옷, 방패, 검을 지급해 주었다.
현은 그 자리에서 갑옷을 걸치고 방패를 등에 메고 검투장으로 향했다.
검투 노예들이 하는 검투장은 오른쪽이었고 일반인들이 하는 곳은 왼쪽이라 양 갈래 길에서 현은 왼쪽으로 향했다.
‘후우 괜히 했나?’
왼쪽 문을 들어서자 또 여러 개의 문으로 나뉘었는데 1∼10, 11∼20, 21∼30 등으로 나뉘어진 걸 봐서 현은 3번째 문으로 가야될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선 곳엔…… 우람한 체격의 사내들뿐이었다. 그들을 보자 왠지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고 곧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동료들에게 등 떠밀려 온 것이었지만 사실은 현도 내심은 이런 곳이 있다면 와 보고 싶었기에 거부하지 않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 후회가 되기도 했다.
“어이, 신입이냐?”
그때 우람한 체구의 거구가 동료들과 노닥거리다가 어벙한 표정의 현을 보곤 신입이냐 물었다. 그에, 현은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들 중 자신과 싸울 이들이 한 명은 섞여 있을게 분명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였기에
현은 예의바르게 인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이리 어리숙하게 보여 상대가 될 이에게 방심을 유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세 갈래의 무리로 나뉘어졌는데, 한 무리는 검투사를 업으로 삼는 검투사 무리들일 테고, 또 다른 무리는 현과 같이 경험삼아 도전하는 무리들, 마지막은 검투사를 업으로 삼긴 하지만 길드 형식으로 이루어진 무리들일 것이다.
“여기로 앉아라.”
반응은 조금 냉막한 분위기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얼마 뒤에 자신과 같이 치고 박을 줄 모르는데 정을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일 것이기에 이러는 것이리라.
현은 그나마 자신을 맞아 준 거구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체격이 근 190cm는 되는 체격에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옆에 서 있는 현은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조금 꿀리는군.’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조용한 자세로 결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들어왔다.
“자자, 방금 들어온 저 신입까지 합쳐서 총 64명의 참가자가 참여했다. 방식은 늘 그렇듯이 토너먼트 형식이고, 잘 싸워 주길 바란다. 자, 그럼. 가자.”
말을 마친 관리인이 등을 돌려 밖으로 발길을 돌리자, 다른 이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뒤따랐다. 현은 눈치껏 자신에게 말을 붙여 준 거구를 뒤따라갔다.
잠시 동안 걸음을 하자, 또 다른 대기실이 나왔다. 그곳에 들어가자 다른 관리원들이 나와 대진표를 각각의 검투사들에게 건네주었다. 현 또한 지금은 검투사였기에, 대진표를 받아들었다.
락센(52승 5무 10패) vs 로터(0승 0무 0패)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자신의 이름만이 들어올 뿐이었는데, 자신의 전적과 상대의 전적을 비교하자니 너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필시 저자는 검에 대해 능숙한 베테랑임이 틀림없을 것이기에, 마음을 다잡는 현이었다.
“자, 일단 너희들의 대결이다. 나와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귀족들에게 너희들의 기상을 드높여 주거라.”
잠시간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예의 그 관리인이 다가와 모여 있던 선수들 중 열여섯의 선수들을 데리고 갔다.
아마, 검사들이 맞붙을 검투장이 8개밖에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나머지는 각자 단련을 하고 있어도 좋다.”
단련을 해도 좋다는 말에 현이 자신이 받은 검을 꺼내 들었다. 처음 받았을 땐 몰랐지만, 막상 결투가 눈앞에 다가와서인지 좋아보이지가 않았다.
휘리릭!
현이 능수능란하게 검을 빙빙 돌려 보았다. 바람을 가르는 게 괜찮은 듯싶지만, 한쪽에 무게가 쏠려 있어 결투할 때 방해가 될 듯싶었다.
현은 밖으로 나가 관리인을 찾아갔다.
“저, 다른 걸로 바꿔도 되겠습니까요, 나리?”
역시 그렇듯 어리숙한 표정과 자존심을 다 버린 듯한 말투였다.
관리인은 평소에 흉악한(?) 검투사들 사이에서 무시만 당하고 살았었는지, 현의 말에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는 말했다.
“그래, 말해 보거라. 내가 도와줄 게 있다면 물심껏 도와주겠느니라.”
“헤헤, 감사합니다요. 다름이 아니라, 이 목검이 좀 이상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요.”
현이 말을 끝내고 목검을 관리인에게 건네주었다.
“흐음…… 난 검을 수련하지 않아서 어디가 이상한지 모르겠구나.”
관리인의 말에 현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 있습죠. 이렇게 된다면 결투를 할 때 방해가 되는지라, 좀 교환을 하면 어떨까 해서 말입니다요.”
현의 말에 검과 현을 힐끔힐끔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관리인이 말했다.
“따라오너라.”
“감사합니다요.”
관리인을 따라간 곳은 검투사들이 모인 대기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엔 병장기들이 놓인 곳이었는데, 갖가지 무기가 다 있었다.
도끼, 창, 검, 활, 할버드 등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은 이걸 보고 하는 말이리라.
“골라 보거라.”
관리인이 두 손바닥을 내밀며 하늘로 향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현이 얼굴 가득 미소를 걸고는 말했다.
“정말입니까요?”
“그렇다. 사실 검투 대결에 사용할 무기는 기본 목검이 아니라면 자신이 구입하거나 해야 하지만, 내 특별히 너에겐 빌려 주도록 하마. 원하는 게 있다면은 골라 보도록 하거라.”
사실 현은 검투 대결을 떠밀 듯이 밀려온 것이라, 잘 몰랐다. 해서 기본적으로 받은 방패와, 검, 갑주만을 받아 왔는데, 처음에 대기실에 들어오니 모든 검투사들이 휘황찬란한 병장기들과 갑주를 입고 있어 꽤나 놀랐었다. 처음엔 저게 기사야, 검투사야? 라는 착각까지 불러 일으켰었다.
현은 병상에 있을 때 기사들을 많이 보았다. 아니, 병상에 있을 때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바깥에서 햇볕을 쬐고 있을 때였다. 한데, 그들의 풀 플레이트 아머는 아니더라도 체인 메일 정도를 일개 검투사가 착용하고 있어 꽤나 놀랐던 것이다.
아무튼 현은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자신이 쓸 만한 무기를 찾고 있었다.
“어서 찾거라, 시간이 없다. 곧 검투 대결이 끝나, 네 차례도 올 것이다.”
10여 분 가량 찾았을까? 관리인이 계속 재촉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현의 눈에 괜찮은 무기가 보였다.
“이거 괜찮습니까요?”
집어 든 무기는 다름 아닌 창이었다.
저 관리인이 무기를 대여해 주기로 한 이상 검보단 자신이 좋아하며 잘 쓰는 창술을 쓰는 것이 나아 보여 창을 고른 것이었다.
창의 길이는 약 2m 남짓한 것으로 뾰족한 창에 뭉툭한 솜을 덧씌워 불상사가 없게 만든 전형적인 검투 대결에 쓰이는 창이었다.
‘흐음…… 협도가 없는 게 좀 그렇군.’
현은 창도 창이지만 협도를 더 즐겨 사용했기에 내심 협도가 없는 것에 대해 불평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협도는 없으면 그만, 있으면 좋은 것이기에 나중에 자신이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다.
“좋네, 그걸 사용하시게. 대신, 꼭 반납해야 하네?”
“예, 나으리. 감사합니다요.”
현이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자, 관리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창을 들고 대기실로 돌아온 현은 곧바로 갑주로 갈아입었다. 갑주는 별것이 아니라 가죽 갑옷이었는데 무두질이 잘 안 된 모양인지 좀 빈약해 보였다. 가상 대결인 검투 대결에서 갑옷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었기에 그냥 나가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은 지급받은 원 방패와 창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지 모른다. 예상키로 약 이십 분가량이 흘렀을 때, 다른 검투사들 몇몇이 빠져나갔을 때쯤 또 다른 관리인이 들어왔다.
“너, 너, 너. 그리고 너, 너, 너, 너, 너. 그리고 너희들도 나오도록.”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킨 관리인은 자신이 할 말을 끝냈다는 듯 밖으로 나가 버렸다.
손가락질을 받은 사람들 중엔 현 또한 있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들고 나갔다.
“이봐, 신입. 조심하라구. 여기 있는 이들을 만만히 봐선 큰코다칠 거야. 이들은 저기서 싸우는 일개 병사들보다도 나은 놈들이라고. 알겠어?”
나가려는 현을 붙잡는 것은 다름 아닌 현에게 처음 말을 걸어 준 거구의 사내였다.
“고맙습니다. 참고하지요.”
현은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곤 관리인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를 제외하고도 열다섯이 함께했음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제2차 대결입니다! 돈을 거실 분은 저기 있는 저들에게 돈을 거시면 됩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어둠의 용사들이여 나오십시오!”
중계자는 마이크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리도 목청이 큰지 콜로세움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콜로세움 비슷한(현은 모르지만 이곳의 이름은 레이카살라이라고 한다.) 곳은 콜로세움과 마찬가지로 건물을 지을 때 특수 처리를 하여 얕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울리게 만든 구조 같았다.
그리고 수천, 수만 명이 넘어가는 관객들 사이에는 돈을 걷어 장부에 적는 자들도 있었다.
아무튼 중계자의 말이 끝나자 열여섯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게르쿤이다!”
“저길 봐, 락센도 나왔어!”
“락센과 게르쿤이 제아무리 세다 한들 바락에겐 안 될 걸?”
관중들은 저마다 고함을 내지르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검투사들을 응원했다.
물론 그들은 평민들이었고 귀족들은 따로 마련된 곳에서 조용히 감상할 뿐이었다.
한편 현은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심장 박동수는 점점 빨라졌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다리가 떨려 오기 시작했다.
이세계에 와서 몇 달간 대련을 하지 않다가 우연찮게 이런 경로로 실전을 방불케하는 대련을 하니, 긴장이 된 모양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던 동료들이 ‘거금’이라는 단어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먼저 반응한 것은 말이 없는 탄테였다.
“거금이라니, 무슨 말이냐? 자세히 말해 보거라.”
로터가 ‘좆 됐다.’라는 표정으로 람스를 쳐다보았지만, 람스는 아랑곳 않고 탄테에게 말했다.
“이 형 대단한 사람이에요. 어제 적군 십여 명을 베어 넘겼어요. 기사도 두 명이나요! 형님들이랑 흩어져서 전 로터 형님하고만 붙어 다녔는데, 그때마다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
반응은 두 가지였다.
먼저 로터는 이마를 지끈 누르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에이 설마?’라는 눈빛과 ‘정말?’이라는 눈빛을 동시에 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눈빛을 확인한 듯한 람스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정말입니다. 제 목숨도 여러 번 구해 주었는 걸요? 그리고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면 기사들도 잡겠어요?”
람스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라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실 이 시대에 일반 병사가 기사를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일단, 준남작과 마찬가지인 준귀족에 준하는 직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실력이 있는 자, 없는 자.
하지만 전쟁터에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실력이 있는 자들로, 실력이 없는 자들은 허울뿐인 기사위만 하사받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터에 나온 이들은 대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기사의 종자로 들어가 온갖 잡일을 했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혹독한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15년에서 20년 정도를 종자생활을 해야 마침내 모시고 있는 기사의 추천으로 기사 작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데 이십 년, 아니 짧게는 10여 년이니 10여 년이라고 치자. 10여 년을 검을 연마한 기사를 죽였다? 그것도 둘씩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로터는 이마만 지끈 누르고 있었기에 사실 확인을 해 봐야 했다.
“로터, 람스 녀석이 하는 말이 정말이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언젠가 저들도 알게 될 거,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흩뿌려지기 시작했음인지, 현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알량한 솜씨가 좀 있죠.”
그에 동료들이 ‘우오오.’라는 감탄성을 내질렀다. 자신의 동료들 사이에 기사를 잡은 이가 나왔기 때문이리라.
이 대목만 보더라도 기사들은 참으로 고귀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귀족들은 평민들에게 즉결처분권이라는 것을 가지는데 이건 준귀족인 준남작, 기사도 다르지 않았다.
한데, 귀족이 즉결처분권을 행사하든, 기사가 행사하든 대부분은 기사가 처리한다. 귀족들이 더러운 평민의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해서라나 뭐라나. 그래서 이 땅의 백성들은 대부분이 기사를 선망의 대상과 더불어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았다.
“야아! 그럼 검투장에 가도 되겠는데? 기사 두 명이면 웬만한 놈들은 다 잡을 것 아니냐?”
아스니아가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는 말하자, 그에 필스도 질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맞습니다, 대장님! 야아! 이거 답답이 요거 물건이네. 기사 둘을 잡았다니. 다시 봤다?”
“뭘요…… 운이었죠, 뭐.”
“아니다, 아니야. 그들이 비록 마칸타스 대륙의 기사들이라 하지만, 우리 같은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단한 건 대단한 거야. 운으로 치부하지 마라.”
현의 겸손 아닌 겸손에, 탄테가 다시금 그를 치켜세웠다.
“자자, 그건 됐고. 그럼 검투장으로 가자.”
아스니아가 그들을 독촉해 검투장으로 가자고 말하자, 이번엔 현이 딴지를 걸었다.
“근데 아까부터 검투장, 검투장 하시는데 검투장은 또 뭐예요?”
현은 검투장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에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투장이란 곳이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닌지, 필스 또한 구박하지 않고 순순히 알려주었다.
“검투장은 두 가지로 나뉜단다. 검투 노예와, 우리 같은 일반인이 참여하는 검투. 먼저 검투사, 즉 검투 노예들은 우리와 상관없으니 패스하고, 우리 같은 일반인 혹은 병사들이 참여하는 검투는 실전을 방불케는 하지만 가검을 들고 결투에 임한단다. 그리고 거기서 차례차례 토너먼트 형식으로 올라가서 상금을 거머쥐는 거지. 물론, 1승 1승 오를 때마다 내기 형식으로 걸어진 돈 중 일부가 너에게 들어오기도 한다. 뭐, 상대가 너무 강하다거나 한다면 기권해도 되는 거고.”
한마디로 뒷골목의 길거리 싸움에 페이를 거는 거라 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진 자와 이긴 자에게 건 돈을 나누어 가진다는 뜻 같았다.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갔다는 뜻이었다.
“제가 승리할 수 있을까요?”
현의 물음에 필스가 가슴을 텅텅거리며 말했다.
“날 믿어라! 람스의 말대로라면 넌 1등을 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걱정 마. 가면을 쓰고 할 테니 널 알아보는 자들은 없어.”
“그게 아니라…….”
“야야, 그러지 마라. 이 형님들이 우리 좋자고 이러는 거냐? 모두 다 좋자고 이러는 거 아니냐? 그리고 너 듣자 하니 여자에게 흥미를 못 느낀다며? 어디 가서 남자의 채취나 맡아 봐라. 킥킥.”
“아, 그게 아니라니까요!”
투덜대면서도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현이었다.
3. 락센을 이기다
검투장은 거대했다. 흡사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의 모습과 같이 웅장하고 화려했다. 그 크기는 콜로세움의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사람이 많이 가 봐야 좋을 것은 없기에, 이런 일에 해박한(?) 아스니아와, 필스 그리고 검투사가 될 현만이 이곳에 왔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신청장으로 향했는데, 현은 그곳에서 간단한 신상명세와 가검이긴 하지만 혹시나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다면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항에 동의하는 절차, 검투장에서 쓸 예명을 적었다.
로터는 예명에 대해 별로 상관치 않았기에 그냥 로터라고 적었고, 죽을 수도 있다는 조항이 있는 걸로 보아서 더러 죽는 자들이 있긴 있는 모양이지만, 현은 떨리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오감이 바짝 곤두섰는데 두려움에 곤두서는 것이 아니라 저번에 느꼈던 사람을 베고 난 뒤 느꼈던 쾌락의 느낌과 비슷했다.
아무튼 신청을 마치자 관리원은 ‘24’라는 숫자가 적힌 번호와 검투 대결을 하며 입을 갑옷, 방패, 검을 지급해 주었다.
현은 그 자리에서 갑옷을 걸치고 방패를 등에 메고 검투장으로 향했다.
검투 노예들이 하는 검투장은 오른쪽이었고 일반인들이 하는 곳은 왼쪽이라 양 갈래 길에서 현은 왼쪽으로 향했다.
‘후우 괜히 했나?’
왼쪽 문을 들어서자 또 여러 개의 문으로 나뉘었는데 1∼10, 11∼20, 21∼30 등으로 나뉘어진 걸 봐서 현은 3번째 문으로 가야될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선 곳엔…… 우람한 체격의 사내들뿐이었다. 그들을 보자 왠지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고 곧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동료들에게 등 떠밀려 온 것이었지만 사실은 현도 내심은 이런 곳이 있다면 와 보고 싶었기에 거부하지 않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 후회가 되기도 했다.
“어이, 신입이냐?”
그때 우람한 체구의 거구가 동료들과 노닥거리다가 어벙한 표정의 현을 보곤 신입이냐 물었다. 그에, 현은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들 중 자신과 싸울 이들이 한 명은 섞여 있을게 분명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였기에
현은 예의바르게 인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이리 어리숙하게 보여 상대가 될 이에게 방심을 유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세 갈래의 무리로 나뉘어졌는데, 한 무리는 검투사를 업으로 삼는 검투사 무리들일 테고, 또 다른 무리는 현과 같이 경험삼아 도전하는 무리들, 마지막은 검투사를 업으로 삼긴 하지만 길드 형식으로 이루어진 무리들일 것이다.
“여기로 앉아라.”
반응은 조금 냉막한 분위기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얼마 뒤에 자신과 같이 치고 박을 줄 모르는데 정을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일 것이기에 이러는 것이리라.
현은 그나마 자신을 맞아 준 거구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체격이 근 190cm는 되는 체격에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옆에 서 있는 현은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조금 꿀리는군.’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조용한 자세로 결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들어왔다.
“자자, 방금 들어온 저 신입까지 합쳐서 총 64명의 참가자가 참여했다. 방식은 늘 그렇듯이 토너먼트 형식이고, 잘 싸워 주길 바란다. 자, 그럼. 가자.”
말을 마친 관리인이 등을 돌려 밖으로 발길을 돌리자, 다른 이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뒤따랐다. 현은 눈치껏 자신에게 말을 붙여 준 거구를 뒤따라갔다.
잠시 동안 걸음을 하자, 또 다른 대기실이 나왔다. 그곳에 들어가자 다른 관리원들이 나와 대진표를 각각의 검투사들에게 건네주었다. 현 또한 지금은 검투사였기에, 대진표를 받아들었다.
락센(52승 5무 10패) vs 로터(0승 0무 0패)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자신의 이름만이 들어올 뿐이었는데, 자신의 전적과 상대의 전적을 비교하자니 너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필시 저자는 검에 대해 능숙한 베테랑임이 틀림없을 것이기에, 마음을 다잡는 현이었다.
“자, 일단 너희들의 대결이다. 나와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귀족들에게 너희들의 기상을 드높여 주거라.”
잠시간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예의 그 관리인이 다가와 모여 있던 선수들 중 열여섯의 선수들을 데리고 갔다.
아마, 검사들이 맞붙을 검투장이 8개밖에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나머지는 각자 단련을 하고 있어도 좋다.”
단련을 해도 좋다는 말에 현이 자신이 받은 검을 꺼내 들었다. 처음 받았을 땐 몰랐지만, 막상 결투가 눈앞에 다가와서인지 좋아보이지가 않았다.
휘리릭!
현이 능수능란하게 검을 빙빙 돌려 보았다. 바람을 가르는 게 괜찮은 듯싶지만, 한쪽에 무게가 쏠려 있어 결투할 때 방해가 될 듯싶었다.
현은 밖으로 나가 관리인을 찾아갔다.
“저, 다른 걸로 바꿔도 되겠습니까요, 나리?”
역시 그렇듯 어리숙한 표정과 자존심을 다 버린 듯한 말투였다.
관리인은 평소에 흉악한(?) 검투사들 사이에서 무시만 당하고 살았었는지, 현의 말에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는 말했다.
“그래, 말해 보거라. 내가 도와줄 게 있다면 물심껏 도와주겠느니라.”
“헤헤, 감사합니다요. 다름이 아니라, 이 목검이 좀 이상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요.”
현이 말을 끝내고 목검을 관리인에게 건네주었다.
“흐음…… 난 검을 수련하지 않아서 어디가 이상한지 모르겠구나.”
관리인의 말에 현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 있습죠. 이렇게 된다면 결투를 할 때 방해가 되는지라, 좀 교환을 하면 어떨까 해서 말입니다요.”
현의 말에 검과 현을 힐끔힐끔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관리인이 말했다.
“따라오너라.”
“감사합니다요.”
관리인을 따라간 곳은 검투사들이 모인 대기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엔 병장기들이 놓인 곳이었는데, 갖가지 무기가 다 있었다.
도끼, 창, 검, 활, 할버드 등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은 이걸 보고 하는 말이리라.
“골라 보거라.”
관리인이 두 손바닥을 내밀며 하늘로 향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현이 얼굴 가득 미소를 걸고는 말했다.
“정말입니까요?”
“그렇다. 사실 검투 대결에 사용할 무기는 기본 목검이 아니라면 자신이 구입하거나 해야 하지만, 내 특별히 너에겐 빌려 주도록 하마. 원하는 게 있다면은 골라 보도록 하거라.”
사실 현은 검투 대결을 떠밀 듯이 밀려온 것이라, 잘 몰랐다. 해서 기본적으로 받은 방패와, 검, 갑주만을 받아 왔는데, 처음에 대기실에 들어오니 모든 검투사들이 휘황찬란한 병장기들과 갑주를 입고 있어 꽤나 놀랐었다. 처음엔 저게 기사야, 검투사야? 라는 착각까지 불러 일으켰었다.
현은 병상에 있을 때 기사들을 많이 보았다. 아니, 병상에 있을 때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바깥에서 햇볕을 쬐고 있을 때였다. 한데, 그들의 풀 플레이트 아머는 아니더라도 체인 메일 정도를 일개 검투사가 착용하고 있어 꽤나 놀랐던 것이다.
아무튼 현은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자신이 쓸 만한 무기를 찾고 있었다.
“어서 찾거라, 시간이 없다. 곧 검투 대결이 끝나, 네 차례도 올 것이다.”
10여 분 가량 찾았을까? 관리인이 계속 재촉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현의 눈에 괜찮은 무기가 보였다.
“이거 괜찮습니까요?”
집어 든 무기는 다름 아닌 창이었다.
저 관리인이 무기를 대여해 주기로 한 이상 검보단 자신이 좋아하며 잘 쓰는 창술을 쓰는 것이 나아 보여 창을 고른 것이었다.
창의 길이는 약 2m 남짓한 것으로 뾰족한 창에 뭉툭한 솜을 덧씌워 불상사가 없게 만든 전형적인 검투 대결에 쓰이는 창이었다.
‘흐음…… 협도가 없는 게 좀 그렇군.’
현은 창도 창이지만 협도를 더 즐겨 사용했기에 내심 협도가 없는 것에 대해 불평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협도는 없으면 그만, 있으면 좋은 것이기에 나중에 자신이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다.
“좋네, 그걸 사용하시게. 대신, 꼭 반납해야 하네?”
“예, 나으리. 감사합니다요.”
현이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자, 관리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창을 들고 대기실로 돌아온 현은 곧바로 갑주로 갈아입었다. 갑주는 별것이 아니라 가죽 갑옷이었는데 무두질이 잘 안 된 모양인지 좀 빈약해 보였다. 가상 대결인 검투 대결에서 갑옷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었기에 그냥 나가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은 지급받은 원 방패와 창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지 모른다. 예상키로 약 이십 분가량이 흘렀을 때, 다른 검투사들 몇몇이 빠져나갔을 때쯤 또 다른 관리인이 들어왔다.
“너, 너, 너. 그리고 너, 너, 너, 너, 너. 그리고 너희들도 나오도록.”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킨 관리인은 자신이 할 말을 끝냈다는 듯 밖으로 나가 버렸다.
손가락질을 받은 사람들 중엔 현 또한 있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들고 나갔다.
“이봐, 신입. 조심하라구. 여기 있는 이들을 만만히 봐선 큰코다칠 거야. 이들은 저기서 싸우는 일개 병사들보다도 나은 놈들이라고. 알겠어?”
나가려는 현을 붙잡는 것은 다름 아닌 현에게 처음 말을 걸어 준 거구의 사내였다.
“고맙습니다. 참고하지요.”
현은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곤 관리인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를 제외하고도 열다섯이 함께했음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제2차 대결입니다! 돈을 거실 분은 저기 있는 저들에게 돈을 거시면 됩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어둠의 용사들이여 나오십시오!”
중계자는 마이크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리도 목청이 큰지 콜로세움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콜로세움 비슷한(현은 모르지만 이곳의 이름은 레이카살라이라고 한다.) 곳은 콜로세움과 마찬가지로 건물을 지을 때 특수 처리를 하여 얕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울리게 만든 구조 같았다.
그리고 수천, 수만 명이 넘어가는 관객들 사이에는 돈을 걷어 장부에 적는 자들도 있었다.
아무튼 중계자의 말이 끝나자 열여섯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게르쿤이다!”
“저길 봐, 락센도 나왔어!”
“락센과 게르쿤이 제아무리 세다 한들 바락에겐 안 될 걸?”
관중들은 저마다 고함을 내지르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검투사들을 응원했다.
물론 그들은 평민들이었고 귀족들은 따로 마련된 곳에서 조용히 감상할 뿐이었다.
한편 현은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심장 박동수는 점점 빨라졌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다리가 떨려 오기 시작했다.
이세계에 와서 몇 달간 대련을 하지 않다가 우연찮게 이런 경로로 실전을 방불케하는 대련을 하니, 긴장이 된 모양이다.